치트키 들고 무한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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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흔캐
작품등록일 :
2023.07.09 00:40
최근연재일 :
2024.03.05 19:0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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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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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기투합

DUMMY

산 속이었고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산머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금랑전 밖으로 나와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몸을 털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희가 물었다.


"이 나라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가오."

"그 다음엔요?"

"당신 할머니 말대로면 혼조로 갈 가능성이 높소."


희는 그래요, 하더니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이 희에게 고개로 살짝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기자, 희는 성큼 남자를 따라왔다.


"내일부터 추적이 따라붙겠죠. 이제 둘 다 도망자 신세가 돼 버렸네요."

"······?"


남자는 희를 바라보았다.


"지금 나를 따라오는 거요?"


"글쎄요, 우연히 가는 길이 겹친 거 아닐까요?"


희는 짐짓 먼 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람을 대수롭지도 않게 죽이는 사람과 동행하지 않는다더니?"

"어차피 절 죽이진 못하잖아요?"

"힘든 여행길이 될 텐데. 당신은 돌아갈 곳도 있잖소."


"이봐요.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희는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금랑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켰으니 당신이나 나나 잡히면 죽은 목숨이라구요.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잡혔을 때 핑계거리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당신이 주, 내가 종이었다는 식으로."

"나를 방패 삼아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큰 소동을 일으킨 것은 당신이잖소."

"아무렴 이상한 칼에 역귀의 엽전을 가지고 있는데다 호패도 없는 사람 말보다는 내 말을 더 듣지 않겠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산을 내려가는 길을 말없이 같이 걸었다.


"청경을 뽑은 사람은 어떻게 되죠?"

"어떻게 청경을 뽑게 만들었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꺼낸 둘은 잠시 침묵했다.


이내 검이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청경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존재의 말소.

당신은 아마 그 평봉이라는 자가 청경을 뽑게 만들었겠지?

이제 그 자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둘뿐이오."

"사라진다는 게 그런 의미였나요?"

"그 사람이 쓴 글, 그린 그림과 같은 흔적은 사라지지 않소.

누군가 있었던 게 분명한데, 기억을 되짚어도 만져지는 건 공허뿐이니 그 빈 공간을 지독한 혼란이 채우게 되지."


검은 잠시 침묵했다.


"차라리 몇십 년이고 갇혀 있거나 사형이라도 당했으면 나았을 것을."

"혼잣말로 말해도 다 들려요. 지금 내 몸에 힘이 없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한 대 때려줬을 거예요."

"존재가 사라진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오."

"당신이 청경으로 출입국에서 몇 명을 해치웠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요?"

"그들은 존재가 사라진 게 아니오. 다른 시대로 이동했을 뿐."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 번 다시 못 보게 됐죠. 그게 더 잔인해요."

"나의 여행이 이 시대에서 끝날 수 있다면 그들은 다시 돌아올 거요."

"뭘 해야 당신 여행을 끝낼 수 있는데요?"

"그건 말할 수 없소."

"그럼 나도 말 안 해요."

"무엇을?"

"어떻게 그 평봉이라는 사람한테 청경을 뽑게 했는지요."


앞서가던 검이 몸을 돌려 희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그림자를 발 밑으로 길게 드리우며 산마루 너머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으나 마주보고 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서로의 얼굴을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따라오면 당신은 죽을 수도 있소. 지금이라도 돌아가시오.

내가 겁박해서 그랬다고 하든,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읍소하고 형을 줄이는 게 훨씬 이로울 거요."

"언제는 동행해 달라고 사정하시더니?"

"···사정한 적은 없소. 그리고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당신에게 상황이 너무 위험해지지 않았소."

"그럼 당신도 돌아가요. 몇십 년이고 갇혀 있어도 괜찮다면서요?"

"나는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스무 해 동안 갇혀 있던 적이 있었소."


"내가 당신을 따라가려는 이유는,"


희는 그렇게 말하곤 다소 엉뚱한 질문을 꺼냈다.


"여자의 직감이라는 걸 믿으세요?"


"누구보다 강하게 믿는 편이오."


"제 직감에 따르면 당신 주변에서 반드시 큰 일이 일어날 것 같거든요. 난설이 멸망한 것과 비슷한 큰 일이.

어느 날 자다가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죽는 것보단, 이유는 알고 당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 때 뉘엿뉘엿 넘어가던 해가 마지막 찬란한 빛을 뿜고 서산 뒤로 넘어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가장 어두운 밤의 시작에서, 희가 말했다.


"···그리고 난 어차피 돌아갈 곳이 없거든요."

"원래 동행을 청한 것은 나였으니, 거절하지 않겠소. 다만···죽을 때에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희는 코웃음쳤다.


"당신 앞가림이나 잘 하시죠. 내가 없었으면 아까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희는 품 속에서 작은 설기를 꺼냈다.

설기의 뚜껑을 열고 바닥을 위로 밀자 설기 위로 작은 불꽃이 솟아 올라왔다. 해가 져 어두웠던 주변이 금세 환해졌다.


"그리고 이럴 때도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나 없었으면."


희는 산길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검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


"당신은 시장하겠군. 묵을 곳을 먼저 찾는 게 좋겠소."


두 사람은 산을 내려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통해 휘가 말해준 마을로 가고 있었다.


단여는 산에 둘러싸인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를 벗어나자 얼마 가지 않아 산길이었다.


두 사람은 희가 꺼낸 설기에서 나오는 빛에 의지해 걷고 있었는데,

심지가 존재하지 않는지 불꽃은 흔들림도 없이 같은 밝기로 주변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모르는 소리. 빠르면 지금쯤 우리 얼굴을 그린 수배서가 전국에 퍼지고 있을걸요."

"그러면 얼굴을 바꿔주는 이능자를 찾아보는 게 어떻소?"

"그건 안 돼요, 호패를 보면 금방 들통나니까."

"다들 호패, 호패 하던데, 그게 무엇이오?"

"호패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거예요?"


희는 기가 찬다는 듯이 검을 바라보았다.


"열다섯이 되면 나라에서 발급해주는 신분증이에요."


희는 옷의 앞섶을 열어 옷의 가슴 부분에 덧대어 꿰맨 호패를 보여주었다.

손바닥만한 크기로 동그랗게 주조한 호패는 어두운 밤인데도 스스로 옅게 녹색 빛을 내고 있었다.


"특이한 빛을 내는군."

"이능자들은 이런 호패를 받죠. 그 외의 사람들은 일반적인 쇠로 만든 호패를 받구요."

"거기에 소유자의 얼굴은 나오지 않을 것 아니오?"

"제 신상이 호패에 새겨져 있으니 수배서와 대조해 보면 바로 들통나죠.

당신도 가는 곳마다 경을 치기 싫거든 호패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어디에서 만들 수 있소, 그건."

"나랏일이라 저도 모르죠. 당분간은 호패를 쓸 일이 생기면 제가 행동하는 걸로 해요.

당신은 음··· 그런 상황이 오면 누가 말을 걸어도 눈에 힘을 풀고 입에서 침을 질질 흘려요. 이렇게···"


검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좋아요. 매영강으로 가려면 재를 몇 개는 더 넘어야 하니,

여기쯤에서 밤을 보내는 게 좋겠어요."


두 사람은 산기슭에 기댄 동굴을 하나 찾았다.


동굴에 이미 자리잡은 손님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희는 품에서 다른 설기와 부싯돌을 꺼냈다.


검은 밖에서 마른 나무들을 모아서 가지고 왔다.

희가 설기에 달린 누름쇠를 누르자 설기가 사람 몸만한 크기로 부풀었다.


설기의 뚜껑을 열자 안에서는 이불과 베개 등속이 나왔다.

희는 능숙하게 바닥을 정리하고 거대해진 설기를 놓은 다음 그 위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다.


"별별 설기를 다 가지고 계시는군."


검은 불씨를 살리기 위해 마른 나무에 열심히 숨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들려오는 말로 장인이 만든 설기는 군대도 숨길 수 있다고 하던데."


희는 졸음이 짙게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내 타닥, 하는 소리를 내며 불길이 올라왔고 남자는 잔가지들을 던져 넣었다.


"역시 두 명은 너무 적겠소. 다른 사람이 자는 동안 깨어 있을 망꾼을 하나 세워야 할 터인데."


모닥불을 쏘삭거리던 검은 대답이 없자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세상 모르고 잠든 희를 보며 그는 말했다.


"당신은 망 보긴 글렀군."


*


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하게 타오르는 모닥불 옆에 물을 길어놓은 함지가 있었다.

불가에 면해 있어서 물은 따뜻했다.


희는 물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마침 동굴 쪽으로 오던 검이 희의 연붉은 도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에 토끼 한 마리와 맹감인지 딸기인지 모를 열매가 한아름 들려 있었다.


"해가 중천이네요."

"어제는 긴 하루였으니 깨우지 않았소. 저쪽에 냇가가 있으니 씻고 오시오."


희는 눈을 비비며 그가 가리킨 곳으로 갔다.

날이 추웠고 산 속이라 눈이 가득 쌓여 있었다.


투명하게 살얼음이 낀 냇가에서 세수를 하고 매무시를 다듬은 후 자리로 돌아와 보니,

검은 벌써 손질을 마치고 토끼를 두 마리 꼬챙이에 꿰어서 불에 굽고 있었다.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짐승이 없나 잘 살피시오. 겨울잠에서 일찍 깬 짐승이 가장 사나운 법이니."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 식사를 했다.

희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토끼고기를 호호 불며 먹다가, 문득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 날이 많이 추운데도 입에서 김이 나지 않네요?"

"나는 추위도 별로 느끼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소."

"그럼 당신 정말 귀신인가요?"


희는 남자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 보았다.


"차갑진 않은데."


검이 얼굴을 찔러 보려는 여자의 손가락을 살짝 치우며 말했다.


"내가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렇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 시대에 진정으로 발 딛고 서 있지 않으니, 시대가 나한테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말이지."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당신의 할머니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는데."


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할머니는 누가 찾아와 신선이 되는 방법을 물어도 '잠시만 기다리시게, 신선이 되는 방법은 말이지···' 하고 진짜 알려줄 사람이구요."

"하지만 당신 할머니는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소."

"그럼 나는 혹시 시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인 건가요?"


남자는 자신의 손에 입김을 불어보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청경의 힘이 통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소."

"청경의 힘이 통하지 않는 게 저한테 좋은 건가요?"

"가끔 청경의 힘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소. 한 시대에서 열 명 정도나 될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매우 특이한 일도 아니오."

"그래요? 당신이 청경을 마구 휘두른다고 하면 세상에 날 포함해서 남는 사람이 그밖에 없다는 것 아닌가요?"


"그도 그렇군." 검은 순순히 긍정했다.


"설마 그래본 적이 있나요?"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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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머리를 쓰다 24.02.04 12 0 16쪽
26 비명 24.02.03 12 0 12쪽
25 코끼리 24.02.02 16 0 13쪽
24 사투 24.02.01 15 0 12쪽
23 초대 24.01.31 14 0 10쪽
22 잊혀진 도시 24.01.30 14 0 12쪽
21 강한 충격 24.01.29 14 0 12쪽
20 비상 24.01.28 13 0 11쪽
19 무서운 여자 24.01.27 20 0 12쪽
18 무서운 남자 24.01.26 17 0 13쪽
17 송곳니 24.01.25 24 0 12쪽
16 실종, 그리고 폭발 24.01.24 19 0 13쪽
15 연화 24.01.23 22 0 13쪽
14 1,500킬로그램 24.01.22 25 0 13쪽
13 불신과 균열 24.01.21 25 0 14쪽
12 금지된 구역으로 24.01.20 31 0 11쪽
11 믿을 수 없는 제안 24.01.19 32 0 13쪽
10 500년 전 24.01.18 38 0 13쪽
9 학살 24.01.17 40 1 12쪽
8 천년여우 24.01.16 41 1 12쪽
» 의기투합 24.01.15 54 1 12쪽
6 오해와 해방 24.01.12 55 1 12쪽
5 치트 아이템을 빼앗기다 24.01.11 65 1 11쪽
4 낯선 도시 천강 24.01.10 73 1 11쪽
3 이름 없는 남자 24.01.09 87 1 11쪽
2 600살이 넘은 꼬마 23.07.09 146 1 11쪽
1 새로운 시대 23.07.09 25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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