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여기저기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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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냥
작품등록일 :
2024.07.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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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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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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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기 힘드네

DUMMY

용사는 빛의 기둥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서 눈을 떴다.


넓은 들판을 가르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고, 하늘에 뜬 보름달은 한 낮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달빛 아래 원형 모형의 협상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 곳에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하얀 드레스를 입은 10대의 소녀와 검은 단발에 정장을 입은 20대 여성이었다.


“어서 와 고생 했어.”


검은 단발이 웃으며 용사를 반겨줬다. 그녀의 한 손에는 검은색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매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도 마지막 제대로 인사할 기회는 줄 수 있잖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용사는 물었다.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도 이것 보다는 애틋하게 마무리하겠다.”


“호호 너 일당이 얼마인 줄 알면서 그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얄밉게 웃는 단발.


“왜 그 사이 정이라도 든 것이냐?”


소녀가 말했다.


“마음을 다 터놓고 얘기는 못했지만 1년간 내 뒤를 지켜준 녀석들이야 당연하지. 진심을 나누지 못한 이유는 그 계약 이행 조건 때문이고.”


소녀를 힐끗 노려보며 용사가 말했다.


“온화한 용사는 무슨...”


용사는 낮게 뇌까렸다.


“존경을 받을 만한 성품을 갖춘, 온화한 용사를 요구했지. 거짓으로 사람을 대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네네.”


찰싹


"아 따거.“


“우리 기.본.예.의.는 지킵시다? 비즈니스 안 할 거야?”


검은 단발이 용사의 등을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10대 소녀는 카르텐 왕국을 구하기 위해 용사를 이곳으로 부른 장본인이었다. 즉 소녀가 빛의 신이었다.


빛의 신은 성직자 스테이에게 용사를 소환하라는 신명을 내렸다.


부름에 응답한 스테이가 소환식을 펼쳤고, 그 타이밍에 맞춰 검은 단발이 용사를 내려 보낸 것이다.


각 세계에는 높은 존재들이 있었다. 딱히 지칭할 만한 명사가 없어서 어떤 이들은 신이라고 불렀다.


물론 신이 없는 세계도 있고, 하나 이상 존재하는 세계도 있었다. 신은 자신의 세계에서 전능에 가까운 힘을 보여주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이들의 힘의 원천은 인간들의 믿음에서 나왔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그렇기에 그들은 무한하면서 유한한 존재들이었다.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덕분에 마왕을 물리치고 믿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빛의 신이 말했다.


절망 앞에 놓인 세계, 그곳에 용사가 나타나 모두를 구했다. 그리고 용사를 보낸 것은 빛의 신이었다.


용사를 보내준 빛의 신에 대한 믿음은 이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믿음이 이들에게는 힘이고 존재의 이유였다.


정의롭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용사는 더 많은 믿음을 모으는데 일조했다.


“어머 저희 서비스가 만족스러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두 손을 모으며 단발이 말했다.


“고생한 거 알면 스테이 통해서 잘 말해줘. 녀석들 많이 서운해 할 거 아냐. 그래도 신이 한마디 해준다면 덜 하겠지.”


“그래 그 정도 부탁은 들어 주도록 하지.”


빛의 신은 용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앞으로 영원한 믿음을 지키시기를 빌며 저희도 이만 갈게요. 저희 용사중개사 또 이용해 주세요. 아 굳이 마왕이 퇴치 같은 거 아니더라도 이용 가능하니까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또 이용하고 싶지는 않군.”


웃고 있는 단발을 보며 질린다는 표정으로 빛의 신이 답했다.


“호호 그럼 이만.”


“잘 지내쇼.”


검은 단발은 들고 있던 태블릿에 무언갈 입력하고 실행했다. 그리고 허공에 사각형의 검은 문이 나타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용사는 문을 들어가기 전에 빛의 신을 바라봤다. 지난 11개월 간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맛 좋은 술, 잊지 못할 노을, 초원의 바람 소리, 그리고 동료들.


“아까 말한 건 꼭 좀 부탁할게... 즐거웠고 모두 건강하라고 전해줘”


빛의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했는지 용사도 웃으면서 검은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은 여러 번 반으로 접히더니 이내 사라졌다.


문이 없어진 허공을 바라보며 빛의 신은 말했다.


“후 존재하기 힘드네.”


***


대한민국 부천시.


네온 반짝이는 도시가 보이고, 인적 없는 빌딩 옥상에서 차원의 문이 열렸다.


단발과 용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후 도착했네, 1년 만에 돌아온 느낌이 어때?”


“큼큼한 공기를 맡으니 확실하구만.”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며 용사가 답했다.


“옷부터 주면 좋겠는데?”


단발은 용사를 힐끗 보며 손에 쥐고 있던 태블릿에 또 무언가를 입력했다. 용사는 연미복 복장에서 반바지, 반팔 차림의 편한 복장으로 바뀌었다.


처음 이곳에서 출발하기 전에 복장이었다.


저 태블릿은 도대체 무슨 원리인가?


궁금하지만, 아리스에게 잡혀 복잡한 설명은 듣고 싶지 않은 용사였다.


검은 단발의 이름은 아리스, 그녀는 빛의 신과 같은 높은 존재 중 하나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용사는 입고 있는 바지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옳지, 그리웠다고 진짜.”


스마트폰 전원을 눌렀지만, 배터리가 없었다.


“아, 이상하네. 전원 껐던 것 같은데.”


띠링-


스마트폰 알람음이 들렸다. 스마트폰 전원이 켜지는 줄 알았는데 아리스가 들고 있는 태블릿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돈 확실히 입금했지?”


용사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이러지? 우리가 우습니? 그리고 방금 보상품 승인 났다.”


아리스는 이번에도 태블릿을 조작했다. 좀 전보다 작은 문에서 검은 상자가 나타났다.


임무를 완수한 용사는 이 세계에서 한 가지 물건을 보상으로 가지고 올 수가 있다. 다만 그 대상에는 제한이 있었다.


그 시대와 문명의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물건, 즉 오파츠는 가지고 올 수 없었다. 또한 다수와 여러 사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물건도 제외 대상이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존재했다.


보상품에 대한 허가는 차원 관리국에서 담당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차원의 세계에 균형을 조정하고, 높은 존재와 인간들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신들은 자신의 세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차원 관리국에 의뢰를 하기도 했다.


카르텐 빛의 신은 차원 관리국에 마왕 퇴치 의뢰를 했고, 아리스가 관리하는 용사가 이에 적합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파견된 것이다.


“재료가 특별한 거라서 안 될 줄 알았는데. 크크.”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용사는 상자를 소중히 들었다.


“마지막 뒤처리까지 하는 조건이야. 태우는 게 가장 확실해.”


“네네.”


아리스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하는 용사였다.


“이제 간다. 당분간은 찾지 마소. 푹 쉬어야지.”


“휴가는 한 달이야. 이후 의뢰가 들어오면 찾아갈게. 호호.”


용사는 뒤를 돌아 옥상 문을 열었다.


“이규한 조심히 가.”


아리스가 외쳤다.


규한은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내려가는 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스는 하늘에 뜬 달을 응시했다. 밝은 달빛은 이쪽 세계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며 똑같이 아름다웠다.


“우리 신입은 훈련 잘 받고 있으려나?”


아리스는 다시 한번 차원의 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갔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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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도 무심하시지 24.08.17 42 0 15쪽
11 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24.08.15 35 0 14쪽
10 우선 해장 먼저 하자 24.08.07 55 0 12쪽
9 젠장, 재앙 수준이구만 24.08.04 58 0 14쪽
8 후 재밌었다. 후배님. 24.07.29 61 0 13쪽
7 아 이거 또 사고 쳤어 24.07.24 57 0 11쪽
6 정말 타고난 용사야 24.07.23 63 0 8쪽
5 방전과 충전 같은 건가? 24.07.19 68 0 8쪽
4 쉽게 버는 돈 없구나? 24.07.17 68 0 10쪽
3 이거 약 술이거든 24.07.16 74 0 10쪽
» 존재하기 힘드네 24.07.15 70 0 8쪽
1 또 이런 전개구나 24.07.14 12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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