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여기저기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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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냥
작품등록일 :
2024.07.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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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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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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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DUMMY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긴 규한과 지혁이 보인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혁은 두 손가락을 펴, 초전자피스톨을 준비했다. 그 조준 대상은 다름 아닌 두발로 걷고 있는 토끼였다.


사실 저게 토끼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긴 팔과 다리를 가졌고, 뒤뚱뒤뚱 두 벌로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머리 위로 긴 두 귀가 달렸으니, 토끼라고 생각해 보자.


10분 전.


"배고프다. 밥 먼저 먹자."


규한이 말했다.


비워낸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뭐를 먹죠?"


지혁은 눈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배를 채울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규한은 말 없이 고개를 들어 한 곳을 가르켰다.


그곳에 토끼 한 마리가 멀뚱멀뚱 서 있었다.


"진심이에요?"


지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초전자총? 그래 그걸로 맞춰봐."


그렇게 마지 못해, 지혁의 두 손가락은 토끼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전자···피스톨"


작게 속삭이며 전기 총알을 튕겼다.


피융-

지직-


지혁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전기 총알은 곧장 날아가, 토끼를 맞췄다.


토끼는 몸을 부르르 떨며 털썩 쓰러졌다.


"이거지!"


힘 조절을 하기는 했지만, 지혁이 살아 있는 무언가를 맞춘 적은 처음이었다.


"오늘 점심은 전기토끼구이다!"


규한은 점심 재료를 한손으로 들었다. 미세하게 가슴이 떨리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 있었다.


한번 흘겨 보고는 남은 한손을 들어 토끼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토끼의 목을 꺾어 버렸다.


우지직-


그런 규한의 모습을 보고 지혁은 입을 다 물지 못했다.


"왜? 어차피 먹을 건데, 기절했을 때 빨리 보내주는 게 좋지. 안 그래?"


"그렇죠···."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거 손질 할게, 육회 먹고 싶지 않으면 마른 가지랑 모아서 땔감 좀 만들어 줘."


"네···."


"빨리 먹고 움직이자."


규한은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 머리 크기 만한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몇 번 두드려 본 후, 옆에 있는 큰 바위로 냅다 돌덩이를 던졌다.


파악-


큰 소리와 함께 돌덩이와 바위의 깨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중 뾰족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돌조각들을 주웠다.


악력을 이용하여 토끼의 털을 우악스럽게 뽑아내고, 깨진 돌조각으로 팔과 다리 그리고 귀를 잘라냈다.


잘랐다기보다는 짓이겨서 뜯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손질하기 편한 부분만 잘라냈다.


"맨땅에 헤딩하는 건 오랜만이네."


규한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토끼의 일부였던 고기는 제법 양이 많아 보였다.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혁을 바라봤다.


‘이쯤이면 장작도 됐겠지.’


규한의 생각과 달리 장작은 삐뚤삐뚤 어설프게 쌓여있었다.


"하? 장작 쌓을 줄 몰라?"


"좀 엉성하나요···?"


"비켜봐, 가서 마른 가지랑 나뭇잎 좀 더 모아와."


규한은 쌓여 있는 장작을 무너뜨리고 차곡차곡 다시 쌓아 올렸다.


길이가 비슷한 나뭇가지 끝을 맞대고 원뿔 모양처럼 쌓았다. 안에는 얇은 나뭇잎 같은 잘 타는 것들을 넣었다.


마지막에는 튼튼한 나뭇가지에 각각 팔,다리,귀를 꽂아서 세워두웠다.


규한은 능수능란하게 고기 손질부터 장작까지 준비했다.


지혁의 눈에는 규한이 꼭 베어그릴스처럼 보였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이였다.


"여기에 불 붙일 수 있겠어?"


"한번 해 볼게요. 될 거 같아요."


지혁은 쌓여있는 장작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도 나뭇잎을 잡고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다.


지직-


손끝에서 발생한 불똥을 따라서 장작에 불이 붙었다.


"오오 됐어요!!"


"역시."


지글지글-


금세 타오르는 불꽃을 따라 고기도 서서히 익어갔다. 육즙이 장작에 떨어지며 불길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규한과 지혁은 장작 불을 두고 나란히 앉았다.


"처음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에테르 활용도가 좋은 거 같아. 내 에테르는 전투 외에는 쓸모가 없는데."


규한이 말했다.


"뭐라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요"


규한은 3초 정도 표정 없이 지혁을 본 후, 대화를 이어갔다.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는 건 처음이네."


"그렇죠. 만나자마자 싸움부터 했으니."


"크크크크, 싸움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다. 배틀이라고 하자. 그래 그럼 나한테 맞은 데는 좀 어때?"


"그제부터 겨우 목소리는 나오네요. 죽는 줄 알았어요."


"미안미안, 초전자필드? 솔직히 굉장했어. 맞기는 내가 더 많이 맞았잖아."


규한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선배로써 이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몇 가지 알려주자면 첫 번째는 적응력이야."


"적응력이요?"


"환경에 적응해야 해. 모든 것에."


"베어그릴스처럼 인가요?"


"베어그릴스? 크크크크, 그래 그 사람처럼. 그런데 우린 환경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경제 이세계 모든 것에 적응해야 해. 나는 새로운 세계에 올 때마다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을 해. 내 경험 위에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지."


지혁은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그래도 경험이 가장 중요하니까. 지나다 보면 익숙해 질 거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거지."


훈련소에서는 에테르 교육 외에도 다양한 것을 배웠다.


그중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흔히 알려진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부터해서 응급처치, 시체처리 방법, 봉건 신분제, 기초 과학까지 교육 범위는 실로 다양했다.


이 모든 것이 생존력을 올려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이론적인 것들을 생존과 연계시켜 적응 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혁은 머릿속에 무언가 탁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현실적인 조언을 들으니, 규한이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의미로 영양보충은 아주 중요해. 중요한 순간에 배고프면 그냥 끝나는 거지 뭐."


규한은 익은 다리를 들어 지혁에게 건네고, 자신도 하나 들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으음, 나쁘지 않아."


입가에 육즙을 묻혀가며, 규한은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비주얼이랑 다르게 맛있나?"


지혁은 배도 고프지 않고, 비주얼도 썩 내키지 않아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규한의 먹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사실 비주얼만 놓고 보면, 아직 남아 있는 털, 검게 그을린 고기, 도저히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허나 방금까지 생존을 위한 적응력과 영양보충의 중요성에 대해서 들었는데 안 먹을 수 없었다.


물론, 규한의 먹방 탓이 가장 컸다.


'먹어보자!'


지혁도 규한이 준 토끼다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우걱우걱 씹었다.


'흐음··· 이거 맛이? 상당히···.'


"우에엑~ 우욱 퉤퉤."


"크크크크크 하하하하."


지혁은 씹고 있던 고기를 모두 뱉었다. 이를 보고 규한이 크게 웃었다.


고기에선 누린내가 나고, 식감은 고무줄을 씹는 거 같았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덜 뽑힌 털들이 치아 사이에 박히고, 혀와 입천장을 찔렀다.


한 마디로 역겨웠다.


"크크크 아 이거 드럽게 맛 없네."


규한이 웃으며 말했다.


지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규한을 바라봤다.


'나 놀리려고 이 맛없는 걸, 연기하면서 먹은 거야?'


뭐가 그렇게 웃긴지, 규한은 눈물까지 닦고 있었다.


"미안미안. 장난 좀 쳤어. 너무 긴장한 거 같아서, 이런게 맛있을리 없지. 크크크크."


"아니, 무슨 이런 장난을 쳐요. 그럼 아까 생존력이니, 영양보충이니, 이것도 장난인가요?"


"크크크, 아냐. 그건 진짜야. 중요한 거야."


이 사람을 정말 계속 믿어도 될까? 믿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정도로 열악할 수 있다는 건 알아둬. 더 심한 경우도 있지. 여기가 사막이라고 생각해봐. 이 토끼는 진수성찬일 거야."


그러곤 규한은 굽고 있는 귀 한쪽을 베어 물었다.


"그래도 이건 연하고 먹을 만해. 털은 좀 있지만. 식사다운 식사를 언제 할 수 있을지 장담 못해. 지금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 난 진짜 배고팠다고."


규한의 말에 지혁도 남은 귀 한쪽을 들었다.


이번에도 장난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좀 전의 다리보다는 맛이 괜찮았다.


"퉤, 항상 이렇게 시작해요?"


입 안에 털을 뱉으며 지혁이 말했다.


"조력자가 있을 때도 있고, 이런 식일 때도 있고. 이 전에 갔던 이세계는 성직자가 조력자로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아니네."


"성직자요? 오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좋은 녀석이었어. 너랑 비슷한 또래겠다."


"다음에 보면 좋겠네요."


"다음? 어 그렇지."


규한이 애틋하게 웃었다.


허기가 지지 않을 정도로 배를 채운 둘은 불씨를 끄고, 슬슬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우선 사람 흔적부터 찾아보자."


"네."


* * *


규한과 지혁은 수풀을 헤치며 걷고 있었다. 공기는 덥고 습하며, 빽빽한 나무 덕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크 생각보다 앞으로 나가기가 힘드네.'


간혹 보이는 산짐승 따위 외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수풀과 넝쿨은 제법 즐겨서, 앞으로 나가기 쉽지 않았다.


"날 붙이라도 있으면 좀 베면서 갈 수 있을 텐데.


규한이 말했다.


지혁은 앞장서는 규한을 따라 가고 있었다.


"뭐가 보이나요?"


"그냥 가는 거지."


"그럼 지금 미아 아닌가요?"


"미아지. 그것도 이세계 미아."


국제 미아는 들어 봤어도, 이세계 미아라니.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게 있어. 물이야 물. 산짐승은 보이니까. 근처에 물이 있을 거야. 거기서 쉬자."


제법 그럴듯했다. 역시 경험이 중요했다.


그때,


사악 사악.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를 냈다.


"음?"


동시에 비릿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잠깐."


규한은 수풀 사이로 숨었다. 지혁도 이를 따라 자세를 낮췄다.


"왜요?"


"피 냄새다."


"피요?"


옅은 피 냄새가 아니었다.


학살 또는 전장에서나 맡을 수 있을 만큼 찐하고 역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뿌려졌다.


규한은 자세를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수풀 틈 사이로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짐승에게 찢긴 듯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수를 가늠키도 힘들 만큼 많은 숫자였다.


"이게··· 대체 무슨."


"우욱"


지혁은 토할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여기서 좀 진정되면 나와"


수풀 사이에서 참혹한 장면을 지켜보던 규한은 조심스럽게 나왔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현장은 더 처참했다.


온전한 시신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머리, 팔, 다리 모두 제각기 떨어져 있고, 훼손되어 있었다.


큰 이빨과 손톱에 찢겨 나간 듯 한 상처 부위들.


현장을 보니, 시신들은 은색 갑옷과 날 좋은 무기들을 사용했었다.


섬세한 문양과 장식들은 왕국 기사단임일 추측할 수 있었다.


'지독하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규한은 바닥에 나뒹구는 검을 집어 들었다.


파직-

탕-


동시에 검을 놓쳤다. 검에서 순간 전류가 흐르며, 규한의 손길을 거부했다.


검에는 귀속된 자만 사용할 수 있는 인챈트 마법이 걸려 있었다.


"쉬운 게 하나 없네."


수풀에서 지혁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오우."


상체만 남아 내장을 흘린 시신을 보고, 지혁은 한번 더 입을 틀어 막았다.


"정신 차렸으면 쓸 만한 것 좀 있나, 찾아봐."


"여기서요?"


"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지혁은 처음 보는 광경에 아직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규한은 떨어진 단검을 집었다. 이번에는 인챈트 마법이 걸려있지 않았다.


휙휙


단검으로 허공을 몇 번 가르고 허리 춤에 찼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신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죽어 있는 병사가 있었다. 그는 손에 무기가 아닌, 30cm 크기의 무전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규한은 그 병사의 품에서 지도로 보이는 것도 꺼냈다.


"통신병 같은 건가?"


펼친 지도에는 지형이 그려져 있었다. 호수처럼 보이는 곳과 큰 탑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지도의 뒷면에는 동그란 원 안에 알 수 없는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모양이 무전기, 검, 갑옷 등 곳곳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니, 인챈트 마법을 발동시키는 주문을 새겨 넣은 거 같았다.


규한은 허리에 찬 단검을 다시 자세히 살펴봤다. 섬세한 세공이 들어갔지만 주문을 새긴 흔적은 없었다.


"저것 좀 보세요."


지혁이 가리 킨 곳에는 큰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규한이 열어보려고 했으나,


팅-


이번에도 마법이 발동하면서 손길을 거부했다.


가방에도 역시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보안 마법이 걸려 있는 듯했다.


"정말 귀찮네."


규한은 한 손에 단검을 고쳐 잡고, 가볍게 가방을 베었다.


쉭-


"마법은 강한 물리력으로 부숴야지."


가방의 옆구리 쩌억 하고 벌어졌다.


규한과 지혁은 물건들을 확인했다.


"오~ 나이스. 이제 좀 편해지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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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24.08.15 36 0 14쪽
10 우선 해장 먼저 하자 24.08.07 55 0 12쪽
9 젠장, 재앙 수준이구만 24.08.04 58 0 14쪽
8 후 재밌었다. 후배님. 24.07.29 61 0 13쪽
7 아 이거 또 사고 쳤어 24.07.24 57 0 11쪽
6 정말 타고난 용사야 24.07.23 63 0 8쪽
5 방전과 충전 같은 건가? 24.07.19 69 0 8쪽
4 쉽게 버는 돈 없구나? 24.07.17 68 0 10쪽
3 이거 약 술이거든 24.07.16 74 0 10쪽
2 존재하기 힘드네 24.07.15 70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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