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여기저기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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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냥
작품등록일 :
2024.07.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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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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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6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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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약 술이거든

DUMMY

규한은 네온 빛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휘황찬란한 밤이 조금 낯설었다. 검은 상자를 소중히 안고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한 건물로 들어갔다.


- 브론즈인데 자고 있어?


들어 온 곳은 바로 PC방이었다. 많은 브론즈를 발작 시킬 수 있는 굉장히 도발적인 이름이었다.


자리를 잡고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연결했다. 마땅히 충전할 만한 공간을 찾지 못 해서 이곳으로 들어 온 것이다.


규한의 나이 33살.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친구들과 즐겨 찾던 곳 중 하나가 PC방이었다. 그때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같이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 나만 그런가?’


문득 자신의 상황을 진단해 본 규한이었다.


스마트폰이 2% 충전이 되었다. 전원을 켠 규한이 먼저 확인한 것은 은행 어플이었다.


아리스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11개월 동안 죽을 위기를 넘겨가며, 고생한 대가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 계좌 잔고 : 3,150,000,000원


‘이제 끝났다. 진짜 보상은 이거지’


하루 일급 1,000만원, 임무 기간 315일.


세금을 낼 일도 없는 깨끗한 약 31억이라는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아리스가 급하게 규한을 불러들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놀고 있는 직원에게 돈을 주기 싫은 고용주의 마음이었다.


평범한 삶이라면 평생을 가도 개인으로써는 만져보기 힘든 금액.


물론 규한이 평범함에서 멀어진 것은 벌써 5년 전 일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보수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임무의 위험도, 기간에 따라서 달라지곤 했었다.


이번 카르텐 세계는 위험도, 기간 모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리스 마저 단독으로 임무를 완수한 규한을 다시 볼 정도였다.


‘이제 나도 베테랑 용사구만.’


규한은 계좌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후루루룩~


코끝을 자극하는 향과 귀에 때려 박는 소리.


규한의 옆자리에 한 여성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후루룩 크~


규한도 라면을 주문했다. 통장에 31억이 있어도 PC방 라면은 참기 어려운 법이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규한은 부재중 목록을 확인했다. 11개월 간 꺼져 있던 스마트폰이지만 중요한 연락은 없었다.


메신저 앱을 열고 단체 톡방에 채팅을 했다.


- 형 왔다. 모여라.


올림과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디스플레이에 ‘오늘도내일도콩콩’이라고 적혀있었다.


규한이 운동 하던 학창 시절, 매번 규한에게 금메달을 뺏기던 홍진하.


유명 게이머와 이름도 비슷해서 콩콩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 오 빨라 콩콩이.


- 야이 위아래 없는 친구야~ 어디 있다가 이제 연락해?


거친 음색 속에서 찐한 반가움이 느껴졌다.


- 일 하고 온다고 했잖아. 형은 비밀이 많다.


- 염병~ 어디야?


- 형이 어마어마한 거 가지고 왔으니까. 권용이 가게로 모이라고 해. 오늘은 내가 쏜다.


- 총으로 쏴 버릴까 보다. 그래 알겠어, 지금 갈게.


규한은 어릴 적부터 같이 운동한 5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권대한은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일식에 진심이었다. 귀국 후 그는 7년 넘게 작은 선술집을 운영 중인데, 덕분에 이완용의 이름을 딴 이권용이란 별명으로 매번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


* * *


- 도모(とも)


대한이 운영 중인 선술집.


5층 건물 중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도모가 보였다. 허리 높이의 네코(고양이) 인형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규한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랏샤,,이... 어!! 규한아!!”


대한은 규한을 보고 놀라움과 반가움에 외쳤다.


“뭐 그리 바쁘다고 톡도 안...”


규한은 손을 흔들며 가게를 둘러봤다.


닷지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이 4개 놓여 있었다. 다만 손님이 없을 뿐.


7년 동안 운영을 하고 있지만, 항상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평일이라... 뭐야 언제 귀국한 거야?”


대한이 물었다.


“좀 전에. 이놈 살찐 거 봐라. 음식을 팔 생각을 해야지. 네가 다 먹는 거야?”


대한의 어깨를 톡 치며 규한이 말했다.


“벌써 집에 다녀왔어? 짐이 없네. 그 상자는 뭐고.”


동네 산책 나온 듯한 반바지 차림과 손에 검은 상자를 안고 있는 규한의 모습은 장기간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걸 가지고 왔지.”


규한은 테이블 위로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때 문을 열고 진하가 들어왔다.


“멀리서 고생했다. 브라더.”


“징그러 임마.”


진하가 두 팔을 넓게 벌려 다가왔지만, 규한은 질색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다른 두 녀석은 못 온대. 의리가 없는 놈들이지.”


진하가 말했다.


규한은 단체 톡방을 확인했다.


- 애기가 열이 나서 못 갈 거 같다. 규한아 미안 ㅠㅠ.


- 나 중요한 회식 중이야 끝나고 연락할게. 규한쓰.


뭐 어쩔 수 없지. 너희만 손해지.


“그런데 이건 뭐냐? 전리품이냐?”


진하가 테이블 위에 있는 검은 상자를 보고 물었다.


“보상품이다.”


검은 상자를 열고 규한이 꺼낸 것은 금박지로 포장된 술이었다.


규한은 법사 샤이어를 동료로 권유하기 위해 엘프 마을에 갔었다. 그곳에서 처음 맛본 술을 보상품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매혹적인 향과 달콤한 맛, 발끝까지 느껴지는 짜릿한 목 넘김.


마력을 먹고 자란 머루로 오랜 시간 숙성시켜 만든 과실주였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 술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엘프 만큼 오래 산다는 전설까지 있었다.


마력이 담긴 술이라 보상품으로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차원 관리국에서 한 병은 크게 영향력이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통과 된 거 같았다.


규한이 조심스럽게 술병을 개봉했다.


동시에 술집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향.


두 친구의 코끝을 자극했다.


“와 이거 술 향 맞아?”


“나도 이런 술 향은 처음 맡아 보네.”


규한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글라스 세 잔에 술을 따랐다. 공기와 만난 술의 향은 더욱 진해졌고, 잔 위로 흐르는 선홍빛 물결은 한 폭에 그림 같았다.


“자 한잔해.”


짠-


혀 끝을 따라서 목 안까지 부드러운 실크가 스쳐 지나간 거 같았다.


의식이 아찔해질 정도의 달콤함과 상큼함.


두 친구는 첫 잔부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 술에는 매혹적인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이야 이거 제대로네.”


대한이 대답했다.


“캬, 권용아 김치찌개 좀 가져와.”


“일식집에서 김치우동도 아니고 김치찌개를 달라고 하냐.”


순간 욱한 표정이 대한의 얼굴에 나타났다.


“크크크, 콩콩아 일본 사람한테는 기무치찌개라 해야지.”


규한과 진하는 서로 마주 보고 크게 웃었다.


“나 사시미 있다. 그만해라.”


“흐흐, 장난이고 가장 비싸고 맛있는 걸로 해주라. 문 닫고 한잔하자.”


비싼 안주라는 말에 대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손님 금방 만들어 올게요.”


대한의 손끝에서 다양한 요리가 금방 준비되었다. 한 상 차려진 일식 요리들 옆에는 김치찌개도 있었다.


규한은 UDT 특전사 출신으로 제대 후에는 구조특채로 소방관이 되었다.


그리고 5년 전 갑작스럽게 용사가 되면서 친구들에게는 해외 파병 용병이 되었다고 했다.


여기 처음 보는 술도 파견된 나라의 전통 술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진짜 용병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새 대한이 만든 안주가 바닥이 나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콩콩이 한잔 더 받아.”


규한은 진하에게 아낌없이, 머루주를 따라 주고 있었다.


“이게 맛있는 만큼 더 취하네.”


“한잔 더 받아.”


진하의 잔이 비워지는 족족 채우는 규한이었다.


세 친구들은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옛 이야기까지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이 세계에서 한 병밖에 없는 머루주도 깨끗하게 비워졌다.


대한은 문을 닫고, 규한은 진하를 부축하며 나왔다.


규한은 택시를 불러 진하를 먼저 태웠고,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고 규한은 말했다.


“저거 이제 담배는 끊은 거지?”


“어 완전히, 그나저나 술은 왜 이렇게 준거야?”


진하는 3년 전 폐암에 걸렸었다. 긴 치료를 잘 견뎌냈고 병마와 싸워 이겼다. 다만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조심해야 했다.


“이거 약 술 이거든.”


마력이 가득히 담긴 머루주.


이 술을 먹으면 엘프 같은 수명을 얻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머루주의 효능은 병에 걸리지 않고 치유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진하에게 좋은 약 술이 될 것이다.


사실 힐링 포션을 보상품으로 받고 싶었지만, 차원 관리국에서 거절할 것을 알기에 머루주를 가지고 왔다.


“나도 이제 들어갈게.”


대한이 말했다.


“어 그래, 당분간 계속 있으니까. 자주 올게. 다 같이 모이자.”


규한이 웃으며 돌아섰다. 그의 손에는 검은 상자와 빈 술병이 들려있었다.


아리스가 태우라고 말한 것은 보상품 마지막에 남은 잔재들이었다.


별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규한은 약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30평 크기의 아파트가 그의 보금자리였다. 집을 비우는 동안에도 한 달에 한번은 도우미 업체에 관리를 부탁해서 깨끗했다.


우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카르텐에서 야영을 하며, 동료에게 등을 맡기고 잠을 청할 때가 더 잠이 잘 온 거 같았다.


허전하고 먹먹한 적막감이 규한을 감쌌다.


규한은 친구들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이곳이 내 자리가 아닌 듯한.


천장을 보며 에테르 각성 후 아리스와 만남, 훈련, 첫 임무까지 많은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좌에 찍힌 돈을 보며 다시 잠을 청했다.


작가의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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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신도 무심하시지 24.08.17 43 0 15쪽
11 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24.08.15 36 0 14쪽
10 우선 해장 먼저 하자 24.08.07 55 0 12쪽
9 젠장, 재앙 수준이구만 24.08.04 59 0 14쪽
8 후 재밌었다. 후배님. 24.07.29 61 0 13쪽
7 아 이거 또 사고 쳤어 24.07.24 58 0 11쪽
6 정말 타고난 용사야 24.07.23 64 0 8쪽
5 방전과 충전 같은 건가? 24.07.19 69 0 8쪽
4 쉽게 버는 돈 없구나? 24.07.17 68 0 10쪽
» 이거 약 술이거든 24.07.16 76 0 10쪽
2 존재하기 힘드네 24.07.15 70 0 8쪽
1 또 이런 전개구나 24.07.14 13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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