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가 여기저기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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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냥
작품등록일 :
2024.07.14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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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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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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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잘 안 취해서요

DUMMY

계곡을 따라 세차게 흐르던 물줄기가 절벽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쑤아아악-


무겁고 차가운 폭포 아래, 규한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규한은 몸 안에 흐르는 에테르를 명치로 집중시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것은 꼭 풍선 같았다.


뭉쳐진 에테르 풍선을 복부를 타고 오른쪽 하체로 내려 보낸 뒤, 다시 천천히 끌어 올려 심장을 지나 왼쪽 팔 끝으로 보냈다. 이렇게 몸 구석구석에 에테르를 순환시켰다.


'아니, 이딴 게 효과가 있다고?'


순간 뭉쳐있던 에테르는 풍선처럼 터져, 흩어지기 시작했다.


규한은 길게 숨을 내 뱉고 천천히 일어나, 물속으로 다이빙 했다. 그리고 근처 마른 바위 위로 올라갔다.


"으으, 춥기만 하고 허리 아프고. 아 이거 정말 강해지는 거 맞아요?"


규한은 건너편 햇빛 잘 드는 바위에 누워있는 한 남자에게 소리쳤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던 남자는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후아암, 뭐야 벌써 끝났어? 보기보다 끈기가 없는 놈일세."


"아니, 에테르가 내공도 아니고 강해지기는 하는 거에요?"


"여기 산 증인이 있지 않은가. 아둔한 제자야."


남자는 말했다.


긴 수염을 늘어뜨린 노신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노신사는 몸을 가볍게 띄우더니, 천천히 물 위를 걸어서 규한에게 다가갔다.


"마나, 내공 그리고 에테르 다 사람이 다루는 힘일 뿐. 그러니 이 모든 것은 일맥상통하느니라."


"하긴 스승님도 에테르 없었으면, 천하제일인? 그거 못 했을 텐데."


노신사는 가르침을 받고 싶으면 스승님이라 부르라 하였기에, 규한은 노신사를 스승님이라 불렀다.


"크하하하하, 에라잇. 허튼 소리할 거면 들어가서 수련이나 더 해라."


노신사가 왼손을 가볍게 흔들었더니, 풍압이 발생했다. 그리곤 규한을 다시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 쫌."


* * *


두두두두.


툭툭.


텐트 사이로 고였던 빗물이 규한의 얼굴로 한두 방울 떨어졌다. 잠에 선 깬 규한이 일어났다.


어스름한 새벽 시간에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 하루 종일 걷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 잠들었던 규한 일행은 피곤했는지,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먼저 일어난 규한은 텐트에 고여 있던 물로 입을 헹구고 세수를 했다.


“갑자기 왜? 영감탱이가 꿈에 나왔지?”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기 마련이다. 규한에게도 지혁처럼 처음 이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규한을 이끌어 주던 사람이 바로 꿈에 나온 노신사였다.


노신사는 에테르 각성자 이전에도 무공의 절대 고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폐관 수련을 하던 중 깨달은 것은 다음 경지가 아닌, 에테르 각성이었다.


그리고 찾아 온 아리스를 만나 용사가 되었고, 무공과 에테르를 조화시켜 천하제일인 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규한이 노신사에게 배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운기조식‘이었다. 내단이 없는 규한이 내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에테르를 내단처럼 뭉쳐 운용하는 방법으로 활용했다.


극적인 성장은 아니었지만, 에테르를 제어하고 출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해볼까?“


규한은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리던 비가 멈추고 햇살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선배, 선배! 이런 취미가 있으셔요?”


지혁의 부름에 규한은 살며시 눈을 떴다.


‘이제 이녁석도 알려 줘야겠지?“


팔을 흔드는 지혁이 눈에 들어왔다.


“배고프다. 밥 먹자.”


식사 당번은 블러스와 도기였다. 식사 준비라고 거창할 것은 없었다. 염장고기와 채소를 넣고 끊인 스튜였다.


“크, 여기에 라면 넣으면 진짜 맛있겠다.”


“네, 뭐요?”


처음 듣는 단어에 도기가 물었다.


“아니야, 이거 맛있다고.”


확실히 야영에 익숙한 길드원들과 같이 보내는 것은 편한 점이 많았다. 텐트부터 식사까지 막힘 없이,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다.


“후웁, 훕”


아침 식사를 끝마친 후 블러스와 도기는 무기를 들고 허공에 휘둘렀다.


“손목 괜찮아?”


큰 도끼를 휘두르는 블러스를 보고 규한이 말했다.


불과 3일 전에 두 손목이 잘렸던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치유의 밴드의 성능도 좋았지만, 단면이 깔끔하게 절단되어 회복이 빨랐다.


“형님이 워낙 깨끗하게 잘라 준 덕이죠. 흐압. 이 정도 상처로 수련을 게을리 하면 안되죠. 헙.”


블러스가 도끼를 허공에 가르며 말했다.


“너 티링한테 발렸잖아?”


“발리다니요. 계속 했으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3대1로 싸운 놈이 말은.”


“아, 형님 그건.”


규한은 듣기 싫다고 손을 휙 저었다.


“지혁아 이리 와 봐. 가르쳐 줄게 있어.”


“넵”


단련하는 둘을 보고, 규한은 지혁에게 운기조식에 대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사실 운기조식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호흡을 통해서 기를 순환시키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다. 규한과 지혁은 내단이 없기 때문에, 기를 대신 에테르를 호흡과 함께 순환시켰다.


애초에 훈련장에서 에테르를 느끼고 다루는 방법은 배우기 때문에, 에테르를 모으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에테르를 몸 속에서 순환시킨다는 개념이 익숙치 않아서 집중력을 요구할 뿐이었다.


지혁은 어렵지 않게, 명치에 동그란 에테르 풍선을 만들었다.


“어, 그렇지. 이제 그 기운을 여기로 보낸다고 생각해봐.”


규한은 지혁의 정수리를 찍었다.


지혁의 명치에 모여 있던 에테르 풍선이 등을 따라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움직이던 에테르는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었다.


“어엇? 생각보다 어렵네요.”


“그래도 처음 치고는 나쁘지 않네. 앞으로 종종 시간나면 연습해 도움이 될 거다.”


“넵.”


지혁은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뭐하시는 거에요?”


불편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는 지혁을 보고 도기가 물었다.


“아 어, 마나를 느끼는 훈련이야.”


규한은 도기에게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우와, 그런 게 있어요?”


“어? 너희는 이런 거 안해?”


규한이 놀라서 물었다.


“이런 거 처음 들어봐요.”


마법사들도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 꾸준한 수련을 해야 했다. 이전 이세계에서 만났던 샤이어도 자연의 마나를 느끼기 위해 명상 하는 것을 규한은 자주 봤다.


그 방법이 운기조식과 비슷해서 규한도 배워봤지만, 끝내 규한은 마나를 느끼지 못했다.


“너도 이거 한번 배워 볼래?”


규한은 도기에게 마나를 느끼는 방법에 대해 알려줬다.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나를 느껴 본 적은 없어서 야매에 가까웠다.


내공이 내부에 에너지라면, 마나는 외부 자연의 에너지다. 힘의 형태는 다르지만, 순환시킨다는 점에서 노신사가 말한 일맥상통은 딱 맞는 의미였다.


짐 정리가 끝나고, 네 사람은 다시 토린스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바쁘게 움직였던 터라,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었다.


토린스까지 향하는 길은 굉장히 따분했다. 넓은 들판을 따라 걷는 길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이따금씩 보이는 것은 들에 핀 꽃과 파란 하늘이 전부였다.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이 지루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아무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는 지혁과 믹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을 했고, 블러스는 둘이 뭐하는 건지 재밌게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혁은 운기조식에 집중하면 포식자, 유적 그리고 안고 있던 수많은 고민거리가 없어지는 거 같았다. 실제 해결되는 문제들은 없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아니, 형님 정말 그렇게 앉아 있으면 강해지는 거에요?”


블러스는 지혁과 도기의 운기조식을 보고 규한에게 물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지.”


규한에 대답했다.


“막내야, 진짜 강해진 것 같냐?”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아 지는 것 같아요.”


“하루 만에 효과가 나타나면 약한 사람이 어디 있어? 꾸준히 해야지.”


규한이 알려준 방법으로도 도기는 마나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숨쉬기 운동만 하고 끝나는 것인데.


규한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어!”


드디어 토린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뒤로 해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네 사람은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좀 더 서둘렀다.


이세계에서 처음만나는 제대로 된 도시였다.


숲속을 방황하고, 다 부숴져 가는 코르네 마을을 거쳐서 드디어 정상적인 도시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져버렸지만 거리마다 밝은 빛을 뿜고 있었다.


“저것도 마도구 인가?”


빛을 내는 형광등 같은 것을 보고 규한이 말했다.


“네, 라이트닝 주문이 걸려 있어요. 처음에는 마나로 켜 줘야 해요. 아마 곧 시간이 지나면 꺼질 거예요.”


초저녁쯤 여관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켜 놓은 불빛들은 꼭 네온빛처럼 반짝거렸다.


“빨리 들어가서 쉬죠. 형님.”


블러스는 일행을 ‘동생의복수‘라는 여관으로 이끌었다.


“여관 이름 한번 참 살벌하다.”


규한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공간을 사람들이 꽉 채우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조용한 분위기였다. 아직 짐을 풀지 않은 여행자들과 벌써 걸걸하게 취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1층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바와 테이블이 있고, 2,3층은 숙박을 하는 방이 있었다. 바닥과 벽 등은 나무 특유의 질감과 사용감이 꽤 오래 전부터 여관이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규한 일행을 보고 한 점원이 다가와 자리를 안내했다. 밝게 웃는 모습이 귀여운 소녀였다. 지혁이 이세계에서 처음 만나는 여자, 그녀의 웃음에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 했다.


“형님, 여기 앉으십쇼.”


블러스는 규한이 앉을 의자를 살며시 빼며 웃었다.


“아, 우선 푸짐하게 먹을 거 좀 내오고, 네 명이 잘 수 있는 방도 하나 준비해줘.”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마지막 남는 방이 있네요.”


점원은 찡긋 웃고 돌아섰다.


“아 잠깐, 형님 혹시 한잔 어떠십니까?”


“술··· 좋지.”


살짝 고민하는 거 같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금방 음식이 차려졌다. 통으로 구운 닭고기와 이름 모를 고기가 꽂힌 꼬치 그리고 부드러운 빵과 과일, 마지막은 맥주까지 나왔다.


매번 마른 육포와 딱딱한 빵, 밍밍한 스튜로 끼니를 때우다가, 드디어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식사였다.


“와 엄청 맛있네요. 미쳤다.”


지혁은 이 여관이 퍽 마음에 들었다. 엔티크한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귀여운 소녀까지 있었다.


특히,


“와 이 고기 뭐에요.”


지혁은 이름 모를 꼬치구이를 들고 점원에게 물었다.


“아 그거 스탠딩토끼 고기에요.”


음?


“두발로 서서 사람처럼 걷는 토끼에요. 숲에서 많이 보셨죠?”


도기가 말했다.


규한과 지혁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부드러운 식감과 고기향 이게 그 첫날 먹은 고기라고?


맥주도 굉장히 맛있었다. 원래의 세계에서 먹던 맥주보다 도수가 높고 텁텁했지만, 풍성하고 쫀득한 거품이 매력 있는 맥주였다.


“와 여기 맥주 좀 치는데?”


규한도 감탄했다.


“와하하, 괜찮죠. 형님? 한잔 더 하시죠.”


이따금씩 테이블 너머로 포식자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는데, 포식자 때문에 발생한 난민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지혁은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코가 시뻘건 사람,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사람, 키가 2m가 넘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보기 힘든 비주얼이지만, 먹고 마시며 웃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른 듯, 똑같아서 재밌네.’


“지혁아, 너는 술 안 마셔?”


규한이 물었다.


“아, 저는 잘 안 취해서요. 마셔도 잘 모르겠어요”


지혁의 답에 규한과 블러스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이 친구 재밌네.”


“크크크크, 내가 너 같은 사람 한두 명 본 줄 알아?”


“어, 진짜인데요. 보여드려요?”


지혁이 대답했다.


“마셔 마셔, 나보다 잘 마시면 여긴 내가 쏜다.”


블러스가 말했다.


“후회 하지마.”


2시간 후.


지혁의 주변엔 도기와 점원인 소녀를 빼고는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어째선지 규한, 지혁, 블러스 세 사람의 술 승부를 지켜보던 옆 테이블에서도 한 사람, 두 사람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식당 내 모든 사람이 함께 술을 마셨다.


규한과 블러스는 이미 1시간 전에 기절했다.


쌓여있는 술통과 멀쩡한 지혁, 도기와 점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괜찮아요?”


점원이 지혁을 보고 물었다.


“아, 재밌었다. 전 진짜 안 취한다니까요.”


얼굴이 빨개지기는 했지만, 지혁은 멀쩡했다.


“후··· 들어가자. 도기야. 짐 들어. 그리고 방 좀 안내해 주세요.”


“아, 네.”


지혁은 규한과 블러스를 각 어깨에 들춰 메고, 도기는 짐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점원을 따라서 계단을 올라갔다.


“아! 그런데 왜 여관 이름이 '동생의복수'예요? 아까부터 궁금해서···.”


지혁은 정말 취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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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앞이 안 보여 24.09.10 9 0 14쪽
17 얼마까지 나올까요? 24.09.01 25 0 14쪽
» 저는 잘 안 취해서요 24.08.27 26 0 14쪽
15 됐어. 나 도끼 못써 24.08.24 36 0 13쪽
14 이 새끼, 왜 이리 당당해? 24.08.22 41 0 16쪽
13 마지막 한 놈까지 다 묶었어요 24.08.19 37 0 13쪽
12 신도 무심하시지 24.08.17 42 0 15쪽
11 우리는 살아 남아야지 24.08.15 36 0 14쪽
10 우선 해장 먼저 하자 24.08.07 55 0 12쪽
9 젠장, 재앙 수준이구만 24.08.04 58 0 14쪽
8 후 재밌었다. 후배님. 24.07.29 61 0 13쪽
7 아 이거 또 사고 쳤어 24.07.24 58 0 11쪽
6 정말 타고난 용사야 24.07.23 63 0 8쪽
5 방전과 충전 같은 건가? 24.07.19 69 0 8쪽
4 쉽게 버는 돈 없구나? 24.07.17 68 0 10쪽
3 이거 약 술이거든 24.07.16 75 0 10쪽
2 존재하기 힘드네 24.07.15 70 0 8쪽
1 또 이런 전개구나 24.07.14 130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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