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의 연인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드라마, 판타지

블랙시안
작품등록일 :
2024.07.20 22:08
최근연재일 :
2024.08.12 23:23
연재수 :
19 회
조회수 :
123
추천수 :
0
글자수 :
95,944

작성
24.07.24 22:15
조회
4
추천
0
글자
10쪽

선명한 세상이 낯설다

DUMMY

[9화]


라임은 택시 뒷좌석에 앉아 반포대교를 지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연두색 가죽 노트가 들려있었다.


창문 너머로 세빛섬이 햇빛에 반사되어 밝게 빛났다.


선글라스를 낀 라임의 시점에서 보는 풍경은 약간 어두웠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세상이 깜깜해졌다.


***


과거의 어느 날, 라임은 버스 안에서 한강에 떠 있는 세빛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라임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한 가지 후회하는 것이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보육원에서 안경을 쓰고 동화책을 읽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수업 중 컴퓨터 앞에서 타이핑을 하던 초등학생, 수학여행 중이던 중학생, 그리고 졸업사진을 찍던 고등학생 시절의 라임이 떠올랐다.


“그래서 항상 결심했었다. 대학생이 되면 시력교정수술을 하기로.”


대학생 라임은 라식/라섹/스마일라식 수술을 받으러 안과에 들어갔다. 수술을 마친 라임은 안경을 벗고 나왔다.


“처음엔 좀 아팠는데, 안경을 쓰지 않아도 뚜렷하게 보이는 세상. 신세계였다.”


현재로 돌아와 창밖을 응시하던 라임의 시선이 머물렀다.


“그런데 요새는 그런 내 선택을 후회한다.”


고등학생 때 버스에서 안경을 벗은 채 바라보던 풍경이 떠올랐다. 버스는 반포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라임의 시점에서 본 화면은 선명하지 않고 수채화처럼 뿌옇게 퍼졌다.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자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난 안경을 벗고 창밖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요상한 취미가 있었다. 뿌옇게 보이는 세상이 나쁘지 않았다. 수채화 같은 풍경. 선명하지 않고 퍼지는 불빛들이 좋았다.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듯, 매일 저녁, 난 그렇게 위안을 받았다.”


수채화처럼 뿌옇게 퍼진 화면은 다시 선명해졌다.


현재, 버스에서 안경을 벗은 채 바라보던 라임은 다시 과거와 같은 장소인 반포대교를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와 같은 위안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너무나 뚜렷이 보이는 세상은 오히려 내가 직시한 현실을 이제는 그만 받아들이라고 선명하게 말해주는 듯하니까.”


라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검은 배경 화면에 뿌연 색색의 눈꽃 송이들이 휘날렸다.


“눈을 감고 그때의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잠시뿐. 내 세상은 다시 까만 어둠으로만 가득 찬다.”


흩날리던 눈꽃 송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검은 배경 화면만 남았다.


“난 오늘도...”


***


라임은 다시 눈을 떴다.


선글라스를 낀 채로 보는 풍경은 약간 어두웠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이마로 걸쳐 올렸다.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풍경에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선명해진 풍경이 라임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선명한 세상이 너무나 낯설다.”


라임은 선글라스를 다시 내려서 썼다.


***


택시는 반포한강공원 근처에서 정차했다.


라임은 선글라스를 낀 채로 내렸다.


그녀의 손에는 연두색 캐리어와 승선권이 들려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거대한 크루즈선, 엘스카이호가 서 있었다.


“와, 입사 특전치고는 좀 쎈데?”


***


라임은 승선 티켓을 보여주며 승선 확인실에 들어갔다.


리셉션 직원이 팜플렛과 반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확인되셨습니다. 오션뷰 객실, 223번 룸으로 가시면 됩니다.”


라임은 놀라서 물었다. “223번이요? 카드키는요?”


리셉션 직원은 반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모든 입장 및 결제는 해당 반지를 통해 이뤄집니다.”


“아.. 편한 시스템이네요,“ 라임은 속마음을 숨기며 말했지만 223번 때문에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리셉션 직원은 밝게 인사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


223번 룸 문 앞에 선 라임은 반지를 가져다 대자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보며 감탄했다.


창을 통해 보이는 한강 경치가 아름다웠다.


라임은 캐리어를 구석에 두고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한 손에는 엘스카이호 층별 이용 팜플렛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팜플렛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진짜 없는 게 없네. 어제 많이 먹었는데, 운동이나 가야겠다~“


***


라임은 피트니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핑클의 ‘영원한 사랑’이었다.


“이젠 내 사랑이 되어줘... 언제나 나를 지켜줄 너라고,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줘...”


라임은 내레이션으로 중얼거렸다.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 개뿔!”


노래가 바뀌고 방탄소년단의 신나는 노래와 함께 러닝머신에서 달리기 시작한 라임은 확신에 찬 눈빛을 가졌다.


이전과는 다른 강인한 분위기가 그녀를 감쌌다.


***


꿈속에서 라임은 어느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중인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외쳤다. “부숴버릴 거야!” 시안은 깜짝 놀라 뒤돌았다가, 라임이 방망이로 자신의 머리를 가격하려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아~~악!!!!”


깜깜한 공간에서 라임은 팔과 다리가 철도레일에 묶여 있었다.


갑자기 켜진 헤드라이트가 그녀의 눈을 부셨다.


“부셔버릴거야!” 시안은 더욱 크게 경악하며 외쳤다.


“아아~~악!!!!”


-짝!


***


하이브 안에서 리사가 시안을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지 않자, 시안의 한쪽 뺨을 때렸다.


-짝!


시안은 다크서클에 멍한 시선으로 일어났다.


리사는 한심한 듯 시안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멍한 시안이 뺨을 감싸자, 리사는 다른 쪽 뺨도 때릴 시늉을 했다.


시안은 잽싸게 일어나서 메템에서 벗어났다.


리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악몽을 저리 맨날 꾼데... 다음 분~!”


***


피트니스클럽에서 라임은 달리기를 마치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러닝머신을 멈추고, 샤워부스에서 물에 젖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얼굴 쪽만 컷이 잡혔다.


덜 마른 머리를 앞쪽으로 털며 헬스장을 나섰다. 얼굴은 가려졌다.


시간이 흐르고 시안이 피트니스클럽으로 들어왔다.


“요새 하루하루가 악몽이네...”


머리를 털며 지나가는 라임을 알아채지 못했다.


라임 또한 시안을 보지 못했다.


***


라임은 하이브 입장예약 대기실에 있었다.


반지를 찍고 들어가 리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리사는 라임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못 보던 이쁜 언닌데, 처음이신가보다. 그쵸?”


그녀는 머리를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라임은 순간 눈이 부셔서 말을 더듬으며


“앗, 눈부셔.”


속마음으로 생각한 말이 저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리사는 빵긋 웃으며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앗, 저도 모르게 그만. 제가 빛에 좀 약해요. 하하.”


라임은 머슥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아~“ 리사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요 언니 봐라? 어린 것 같은데 사회생활 잘 하네?”라고 말하며 다시 웃었다.


“하하.” 라임도 따라 웃었다.


리사는 모니터에 결제내역을 보더니 “근데 3개월 접속 무제한 이용권이라. 부럽당~“이라고 말했다.


라임은 머슥하게 웃으며 “아~ 제가 공모전에 당선돼서, 여기 객실도 3개월 동안은 무료로 같이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라고 설명했다.


“부럽당~ 앞으로 자주 보겠네. 나는 리사라고 해요. 스물넷.” 리사는 자신을 소개했다.


“스물넷이요? 전 스물둘요. 라임이에요.” 라임도 자신의 나이를 밝히며 소개했다.


“어리기까지? 부럽당~“ 리사는 놀라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시간이 지나 푸른색 메템에 들어가 있는 라임. 옆에서 리사가 동기화를 도와주고 있었다.


“신입이라고 쫄지 말고,“ 리사는 눈에 힘을 주며 “기선제압 팍팍! 알지?”라고 말했다.


“예, 언니~“ 라임도 눈에 힘을 주며 “기선제압 팍팍!”이라고 따라 외쳤다.


***


메디치금융국 1층 로비에서 직원에게 안내받는 라임.


직원을 따라가니 마케팅부 사무실이 나왔다.


사무실에 입장하자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라임을 안내한 직원이 마케팅부 팀장에게 간단히 목례하고 나갔다.


“자자, 다들 주목~“ 마케팅부 팀장이 소리쳤다.


마케팅팀원들이 주목했다.


“이번 하반기 마케팅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친구입니다. 앞으로 우리 마케팅부의 핵심전력이 될 인재이니 잘 보듬어주시길 바랍니다. 박수~!” 팀장의 말에 팀원들은 진심으로 환영하는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라임은 뿌듯하고 벅찬 표정을 지었다.


***


빅데이터분석실의 문이 열리자 라임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입사한 마케팅부 라임입니다.” 라임이 인사했다.


“아이구, 반가워요. 근데 우리 부서까지 인사 안 오셔도 되는데.” 래오가 웃으며 말했다.


“아, 이곳에서 보라 언니가 일한다고 들었거든요.” 라임이 설명했다.


“아, 마젠타 지인이었구나?” 래오는 보라 자리 쪽을 보며 외쳤다. “마젠타! 여기 예쁜 친구가 지인이라고 찾아왔는데?”


보라는 앉아 있던 회전의자를 휙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에 진한 검정색의 굵고 동그란 뿔테안경을 쓴 채였다.


뿔테 안경 사이로 보이는 반쯤 풀린 눈과 펑퍼짐한 보라색 후드티, 한 손에는 와인병, 다른 한 손에는 과자 봉지를 들고 있었다.


보라는 라임을 쭉 훑더니 약간의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보라는 반쯤 감긴 흐리멍덩한 눈으로 라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분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부서를 잘못 알았나 봐요. 죄송합니다.”


라임은 돌아서려다가 보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 보라가 외쳤다.


라임이 뒤돌아보자, 보라가 달려와서 라임을 와락 안았다. 라임은 놀라서 멈춰섰다.


안경 코를 위로 올려 이마에 걸친 보라는 빵긋 웃으며 “나야, 라임아.”라고 말했다.


“언니?!!” 라임은 그제서야 보라를 알아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카프의 연인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 19 24.08.12 3 0 1쪽
18 보랏빛 기억2 24.08.05 4 0 9쪽
17 보랏빛 기억 24.07.29 8 0 9쪽
16 빠세달 2호점 24.07.27 9 0 10쪽
15 이해가 안가온 24.07.27 9 0 12쪽
14 기억의 맛 24.07.26 6 0 10쪽
13 켈베로스 24.07.26 6 0 13쪽
12 검은복면 24.07.25 6 0 17쪽
11 사자 몰이 24.07.25 7 0 12쪽
10 뒤통수 친 새끼를 조심하라 24.07.24 6 0 11쪽
» 선명한 세상이 낯설다 24.07.24 4 0 10쪽
8 이기심을 핑계로 한 ■ 24.07.23 6 0 20쪽
7 빠세달 - 채용의 비밀 24.07.23 7 0 12쪽
6 비 오는 날엔 튀밥에 오징어 24.07.22 7 0 11쪽
5 메템 24.07.22 6 0 9쪽
4 하이브 24.07.21 5 0 8쪽
3 취미 매칭 카페, 카프 24.07.21 5 0 11쪽
2 뉴타입 24.07.20 8 0 15쪽
1 엘리스키 24.07.20 11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