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역천맨
작품등록일 :
2024.07.29 13:26
최근연재일 :
2024.09.17 23:57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243
추천수 :
19
글자수 :
288,962

작성
24.08.16 23:53
조회
30
추천
0
글자
19쪽

루나

DUMMY

하늘을 닮은 푸른 단발, 머리 위로 쫑긋 솟아난 토끼 귀, 그리고...


피 묻은 철권(鐵拳).


그녀는 약탈자 한놈을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들고 나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


푸른 머리칼과 대비되는 타오르는 듯한 홍안(紅眼).


나와 그녀는 눈빛으로 빠르게 대화를 끝냈다.


'남은 약탈자 먼저.'


그녀는 피 묻은 철제 건틀릿을 들어 올리고 통통 튀는 듯한 가벼운 스텝으로 홀로 남은 약탈자의 주위를 끌었다.


"이, 개 같은 년들... 함정이었나?"


"어, 함정이야. 그러니까 곱게 죽자."


약탈자놈의 헛발질에 나는 그렇게 답해주며 룰루를 놈의 뒤편으로 이동시켰다.


원래는 창 든 놈을 상대로 물의 화살을 쏘게 할 생각이었는데 토끼수인이 순식간에 한 놈을 해치워준 덕에 영체화를 풀지 않은 상태다.


보통 사람은 영체화 상태의 룰루를 인식할 수 없으니 나와 저 토끼 수인이 주의를 끌때 룰루가 놈의 후방에서 실체화 후 기습 공격을 가하면 쉽게 무너트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흔히 검도의 중단세라 불리는 자세로 놈에게 검을 겨누고 천천히 다가 갔다.


라스에게 선물 받은 엘프 직검은 날 길이만 대충 100cm 쯤은 될법한 장검이니 긴 리치를 바탕으로 압박할 생각이다.


놈의 무장은 왼손엔 상체를 반절 정도 가리는 둥근 나무방패, 오른손엔 날길이 60cm쯤 되는 아밍소드를 가지고 있었다.


이거 느낌이 딱 오는구만.


이놈들은 이 리더라는 놈이 정면에서 검과 방패로 적을 묶어두는 동안 나머지 떨거지들이 활, 창, 암습을 통해 적을 제압하는 전술을 사용했을 것이다.


도대체 1층같은 최하위 쪼렙존에 이딴 미친 약탈자들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냐?


이 정도 수준이면 어지간한 초짜들은 뼈도 못 추릴 거 같은데.


어쨌든 난 그저 검 끝을 겨누고 녀석을 천천히 압박했다.


놈은 앞뒤로 포위되어 방패론 내 쪽을 막고 검으론 수인쪽을 견제하는 상황.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아주 돌아버릴 지경일 거다.


낙오됐던 활쟁이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끌려 할 텐데...


물론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지금! 물의 화살을 쏴!'


스르륵.


실체화한 룰루의 몸체에서 물의 화살이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다.


푸학!


"크악!"


놈은 사각에서 발사된 물의 화살에 옆구리를 꿰뚫려 휘청거렸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방패의 사각인 하단, 놈의 발등을 향해 검을 찔렀다.


"큭!"


그와 동시에 토끼 수인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자 놈이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카앙! 캉!


철제 건틀릿이라 망정이지 보통의 가죽장갑이나 맨손이었다면 큰 낭패를 봤을 거다.


어쨌든 놈은 죽음의 위기를 느꼈는지 발악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토끼 수인은 검의 사거리 밖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며 놈을 농락했다.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지.


"하아압!"


나는 기합과 함께 일부러 큰 동작으로 방패에 막힐 걸 알면서도 사선베기로 놈을 후려쳤다.


팍!


토끼 수인은 검을 막느라 놈의 시선이 잠깐 돌아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놈에게 쇄도해 한 손으론 칼날을 잡아채고 반대 손으로 얼굴에 무자비한 철권을 꽂았다.


뻐각!


"끄허..."


육중한 철제 건틀릿은 코뼈를 완전히 뭉게버리고 놈을 단 한 방에 기절시켜 버렸다.


죽은 건 아니겠지?


"죽이진 마요. 물어볼게 있어요. 그리고 한놈 더 있는데..."


내 말에 그녀는 추가로 내리꽂으려던 주먹을 멈추고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때마침 낙오됐던 활잡이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다.


"혀, 형님..."


나와 그녀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


"저,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그래. 대신 거짓말하면... 알지?"


나는 내 애착식칼을 뽑아 들고 활쟁이놈을 위협했다.


놈은 우릴 보고 도망치려다 등짝에 룰루의 물화살을 맞고 잡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치껏 잘하는 우리 룰루, 최고다!


어쨌든 나는 활쟁이와 리더를 따로 심문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교차검증을 통해 꽤 쓸 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겠지.


의외인건 리더놈이 제압된 이후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얌전히 군다는 것.


악으로 깡으로 개지랄을 떨줄 알았는데 그냥 어차피 죽을 거 고문당하다 죽기보단 깔끔하게 갈 생각인가.


어쨌든 나는 애착식칼을 자랑하며 심문을 시작했다.


우선은...


"도대체 왜 너희 같은 수준의 약탈자들이 1층에 있는 거지? 너희 정도 약탈자들이 흔한가?"


"아니, 그럴 리가. 우린 주로 2층에서 작업하던 놈들이다... 거기서도 충분히 잘 나갔지."


"그런데 왜 1층까지 기어내려온 거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뭐때문에?"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냥 1층에 내려가달란 권유를 받았다. 젠장, 그냥 좆까고 2층으로 갔어야 하는데..."


"권유를 받았다고? 대체 누구한테? 그게 1층에 내려올 이유가 되나?"


"나도 모른다. 그냥, 돈을 주더군. 간만에 가볍게 사냥이나 즐길 생각으로 내려왔더니... 킥, 너희 같은 괴물들을 만날 줄이야..."


이 새끼가 누구 보고 괴물이래.


어쨌든 나는 그 밖에도 궁금했던 것들을 전부 물어 봤는데 조금 어이없는 답변을 듣기도 했다.


"...약탈자 끼리는 잘라 낸 손가락이나 귀, 코로 피아식별을 한다고? 심지어 그걸 가지고 있으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시발. 도대체 사람 신체가 액운을 어떻게 막아준다는 거냐?


무슨 주술사도 아닌 놈들이 아주 지랄도 풍년이다.


- 정신 나간 거 아니예요? 완전 악신 숭배자 같은데.


나도 델리시아의 말에 동의한다.


무슨 주술적 의미가 있는 거 같지도 않고 미신만 믿고서 피해자들의 신체를 토막 내 가지고 다니다니.


어쨌든 알만한 건 다 알게 됐고 질문이 끝나자 놈은 성실히 답했으니 깔끔하게 죽여달라고 간청했다.


내가 수녀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신을 믿는 수녀인 거 같은데 무슨 명복도 빌어달라더라. 아주 미친놈이 따로 없다.


"내가 왜?"


굳이 내가 나서서 처리하지 않더라도 놈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은 있다.


가령 이번 심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루나라던가.


아, 루나는 저 토끼 수인의 이름이다.


짧은 자기소개로 서로 이름 정도는 알게 됐다.


루나는 열 받은 표정으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러 놈들을 끝장냈다.


죽고도 남을 정도로 주먹을 휘두르는걸 보니 정말 어지간히 원한이 깊었나보다.


들었던 정보들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나는 우선 주변을 정리했다.


전투 승리 후 파밍은 국룰이니까.


"루나씨, 전리품 분배는 어떻게 할래요?"


"...전 이놈들 때문에 제 짐을 다 잃어 버렸어요. 우선 가방이랑 생존용품 같은 게 필요한데..."


"알겠어요. 그럼 일단 그런 것들은 전부 루나씨 줄게요."


"고마워요. 근데 이 떠다니는 물덩이는 뭔가요? 각성능력인가? 델리시아는 각성자인가요?"


루나의 질문에 델리시아가 속삭였다.


- 이렇게 룰루의 정체를 밝혀도 될까요?


'흠. 그러게. 이미 모습을 보여줬는데 어쩐다...'


나는 델리시아와의 짧은 고민 후 대답했다.


"제가 각성자인건 어떻게 알았어요?"


비기, 말 돌리기.


"이런 이상한 건 처음 보니까요... 정말 신기하네."


[ 이상해? 룰루? ]


- 아냐 룰루 안 이상해. 귀엽고 사랑스러워. 이 토끼 언니가 룰루의 매력을 잘 몰라서 그래. 나중에 친해질 기회가 오면 그때 보여주자~!


[ 응! 좋아! ]


어쨌든 우린 간단한 잡담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고 나는 그녀에게 동행을 제안 했다.


1층 정도야 홀로서기가 가능할 거라고 만만히 봤는데 이런 수준의 약탈자들이 더 있다면 혼자 다니기 부담스럽다.


또한 보스를 잡기 위해서도 믿을 만한 동료는 필수다.


"그래요. 같이 다녀요. 1층은 별거 없다고 듣고 혼자 왔는데 낭패를 봤으니까..."


그녀는 약탈자들을 떠올렸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모습마저 풋풋하고 귀엽다 해야 하나?


키는 165cm 정도? 세실보다 조금 더 컸지만 얼굴은 앳된 티가 나는 미소녀다.


푸른 머리와 붉은 눈이 잘 어우러지는.


"좋아요, 루나. 아 참, 우리 말 편하게 할까요? 나이도 비슷한 거 같은데."


내 말에 루나는 눈썹을 작게 꿈틀거렸다.


"...아무리 봐도 제가 더 연장자 아닌가요?"


"제가 사연이 좀 있어요. 루나는 몇 살인데요?"


"저는 열다섯이예요. 델리시아는요?"


...지구 나이로 하면 내가 무조건 이긴다.


"크흠, 저도 비슷해요."


내 대답에 루나는 눈을 잠깐 가늘게 떴지만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알겠어. 잘 부탁해, 델리시아."


"나야말로. 잘 부탁해, 루나."


나는 그렇게 격투가를 영입했다.


'지구였으면 격투가 따위는 사정사정해도 내 파티에 절대 안 받아줬을 텐데.'


- 왜요? 저 언니, 실력이 대단한 거같던데. 무기도 꽤 괜찮지 않나요?


'그러니까 받아준 거야. 지구에선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겠다는 미친놈들이 은근 많았거든. 그 강한 나조차 무기를 들고 싸우는 데 진짜 이해 못 할 인간들이었지.'


- 네? 무기를 왜 안 들어요? 맨손으로 싸운다고요? 대체 왜... 무기 살 돈이 없어서 인가요?


'그건 아직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란다. 루나는 그래도 철로 된 건틀릿을 끼고 있으니 받아준 거야.'


- 오빠가 살던 그 지구라는 곳도 참 신기한 사람이 많네요.


내가 생각해도 그래.


어쨌든, 약탈자 세놈으로부터 얻은 전리품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각종 옷가지와 모포류, 물과 건량 육포 등을 비롯한 식량들.


나에겐 딱히 필요 없는 것들이고 고급품이랄건 없었다.


루나는 내켜지 않아 하면서도 본인 짐을 다 잃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가장 상태 좋은 배낭과 모포, 식량등을 챙겼다


그리고 은화.


무려 세 놈에게서 은화 24개가 나왔는데 그냥 깔끔하게 반절로 나눴다.


루나의 기습과 합류로 전투가 수월해졌고 그녀는 충분히 1인분 이상을 해주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


당장의 돈보다는 서로의 관계가 깨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기나 장비류는 바로 나갈 생각이 없으니 대부분은 버렸다.


창과 활, 방패는 다룰 사람이 없고 챙길만 한건 그냥 검 두 개가 전부였다.


나는 가장 처음 약탈자 놈들에게 얻었던 아밍소드를 버리고 새로운 아밍소드로 교환했다.


확실히 2층 출신이라 그런지 검 상태가 나쁘지 않다.


루나도 만약을 대비해서인지 검을 하나 챙겼다.


와... 지구발 격투가 놈들은 총도 안쏘고 너클도 안끼는 원시인들 천지였는데 중세 격투가임에도 무기를 챙기는 루나를 보니 기립박수 참느라 혼났다.


그 외엔 점화석같은 쓸 만한 것도 있었지만 잡동사니들이 대부분이라 별 볼 게 없었다.


화살촉이나 창날 이런 건 따로 챙겨다 팔아도 괜찮겠지만 나는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델리시아의 육체는 여전히 12살 수준이라는걸 감안 하면 과욕은 독이 된다.


루나도 짐 무게를 더 늘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나저나 그 첫 번째로 죽은 도적 같은놈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더라...


[ 룰루! 알아! 이쪽! ]


젠장, 믿고 있었다고...! 정령은 정말 완벽하게 최고다.


"루나, 놈들은 네 명이었잖아. 한놈은 내가 죽였거든. 거기로 가 볼까 하는데. 어때? 좀 걸어야 해."


"상관없어. 방향은 확실히 아는 거지? 이런 숲에선 길을 쉽게 잃는 법이야."


"응, 알지. 나만 따라오면 돼."


"저걸 따라가는 건가? 정말 신기하네..."


나와 루나는 룰루를 따라 숲길을 걸었고 루나는 룰루를 신기한듯 흘깃거렸다.


그나저나 르와에게 받은 백지 성유물은 우리가 원하는 권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종류였는데 아직도 어떤게 좋을지 정하지 못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 여러 축복이나 기원들을 경험해 보고 결정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회복과 치유에 관련된 범용적인 능력을 불어넣거나.


"아, 그런데 루나는 어쩌다 던전에 오게 된 거야? 혼자 다니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그냥 일탈 같은 거야. 별거 없어. 그러는 넌? 델리시아는 어린 수녀 같은데 교단에서 무슨 고행이라도 시키는 거야?"


"아니, 나는 그 반대여서 몰래 나왔어. 너무 잘해줘서 부담되더라."


"...?"


어쨌든 우리는 룰루덕에 길을 잃지 않고 그 도적 같은 놈이 죽은 곳으로 올 수 있었다.


다행히 누가 털어가진 않았나 보다.


나는 놈에게서 은화 6개와 단검 2개, 초승달 모양의 목걸이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약탈자들에게 듣기로 이 초승달 목걸이가 기척과 소음을 줄여주는 아티팩트라는데 발동조건은 피를 떨어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하루에 한번, 잠시동안만 유지되지만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유용하게 쓰거나 팔 수 있을것이다.


이것들은 전부 내가 챙겼고 루나도 딱히 별말을 하진 않았다. 이놈은 루나가 합류하기 전에 죽인 놈이니까.


이후로는 몬스터들을 찾아다녔는데 우린 한참을 돌아다녀도 놈들의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다.


"루나, 좀 이상하지 않아?"


"응. 몇시간 동안 한 마리도 마주치지 않은 건 말도 안 돼."


시발, 뭐지?


1층 숲에선 스켈레톤들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놈들은 고블린처럼 상당히 빈번하게 나온다고 했지.


심지어 우린 공터같은 곳도 발견했는데 여기에도 있어야 할 정예는 없었다.


뭔가 휘틀러를 만나고 나서 고블린 떼의 습격을 받았던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놈들을 찾아다닐 수도 없다.


우린 이미 전투를 치렀고 몇 시간을 걸었다.


지금 쉬어두지 않으면 중요한순간에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숲에서의 밤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야영할 곳을 찾아야 한다.


루나도 굳은 얼굴로 내 말에 동의했다.


수인이 지닌 동물적 감각일까? 어떤 불안감을 느끼는 듯했다.


우린 적당히 큰 나무가 주변을 가려주는 장소를 택해 야영을 준비했다.


다만 모닥불은 피우지 않기로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나는 백지 성유물을 꺼내 델리시아에게 부탁했다.


이 밤을 모닥불 없이 견디기 위해선 장시간 유지되는 권능이 필요하다.


르와에게 듣기로 권능은 꽤 오래 유지된다고 했지.


'혹시 이 반지에 '기원'을 부여할 수 있을까? 밤의 추위를 이겨 낼 온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 한번 해볼게요. 잠시만요. 조금 걸릴 것 같아요. 한 삼십 분 정도?


'응. 부탁할게.'


야영시에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온기다.


추운곳에서 자게 되면 컨디션이 크게 떨어지고 몸이 굳어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없게 된다.


보통은 모닥불을 지피거나 돌을 달궈 땅에 파묻거나 하겠지만 지금은 불을 피우기 꺼려진다.


새벽에 무슨 사달이 났을때 불을 켜고 있다면 우리 위치를 광고하는 꼴이 되겠지.


루나에겐 야영에 도움되는 기원을 준비할 테니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다.


루나의 표정은 반신반의. 별다른 기대는 없는듯 하다.


델리시아가 기원문을 준비하는 동안 난 모래시계를 꺼냈다.


작은 모래시계 4개가 합쳐져 직사각형을 이루는 형태.


각각 3/6/12/24시간을 나타내며 해당 모래시계의 상하단에 숫자가 적혀 있다.


3이 적힌 모래는 다 떨어졌고 6의 모래는 얼마 남지 않았다.


숲에 들어온 지 대략 6시간 정도 됐다는 것.


나는 모래시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루나랑 불침번을 서야 할 텐데 이거 지금 뒤집으면 12/24시간 모래가 꼬이게 되는 거 아닌가?


구매할 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사용하려니 조금 난해하다.


나 뭔가 바보 같은곳에 돈을 쓴건가? 그건 아닐거다.


만약 그랬다면 아저씨들이 가게를 개박살 냈겠지.


그렇다면 물건은 제대로인데 어떤 중요한 설명을 빠트렸거나 가게 주인도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흠...


나는 한동안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이리저리 들여다봤다.


그러다가 어떤 기계적인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척.


어? 설마? 이 느낌은?


큐브?


난 그대로 3과 6부분을 천천히 위아래로 뒤집었다.


착.


그러자 나머지 12와 24부분은 그대로 인 채 3과 6만 뒤집어져 다시 모래를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현대인 1승.'


중세에서 처음 1승을 거둔것 같다. 마침 델리시아도 준비를 끝냈다.


- 그럼, 시작할게요. 반지를 손 위에 올려주세요.


나는 반지를 손 위에 올렸고 델리시아는 기원문을 읊기 시작했다.


- 혹한의 땅, 죽음의 서리를 뒤집어쓰고도 이 한 몸 가뿐히 일으켜 세우리.


- 프레시아의 기원.


슈와아아.


손바닥 위에 따스한 백색의 빛이 너울 거렸고 이내 그 빛은 반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축복의 빛은 황금색, 기원의 빛은 백색인가?


- 휴, 성공! 끝났어요! 추위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주는 형태의 기원이 담겼어요. 지금은 아마 반나절 정도 지속 될거에요. 이 반지를 지니고 저 기도문을 외우면 신께서 권능을 내려주실거예요.


'고생했어. 델리시아는 정말 대단하네. 그런데 직접 외워야 해? 육성으로?'


- 네. 성유물을 통해 신의 권능을 빌려오기 위해선 필수랍니다? 성녀도 예외는 없어요. 자 그럼? 빨리해봐요!


델리시아의 닥달에 난 루나를 부르고 반지를 낀 다음 기도하듯 손깍지를 끼고서 기원문을 읊었다.


"혹한의 땅, 죽음의 서리를 뒤집어쓰고도 이 한 몸 가뿐히 일으켜 세우리. 프레시아의 기원."


두근두근. 과연 될까? 델리시아는 몰라도 나는 프레시아의 신자같은건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반지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슈와아아.


반지에서 흘러나온 은은하고 부드러운 백광이 나와 루나의 몸에 성공적으로 깃들었다.


오... 확실히, 조금 쌀쌀했나 싶었는데 한결 나아진 느낌.


"으슬으슬 했는데 하나도 안춥잖아...? 대단한데? 솔직히 기대는 안 했는데... 이게 신의 권능이구나... 놀라워."


"후후, 어쨌든 이거면 모닥불이 없어도 괜찮겠지? 아, 불침번을 서야 하는데 누가 먼저 설까?"


"네가 편할대로 해. 신의 축복도 받았는데 그정도쯤이야."


"알겠어. 그럼 내가 먼저 3시간을 잘게. 좀 피곤해서... 시간은 이 모래시계를 보면 돼. 시간이 다 되면 이렇게 3,6이 써진 부분만 뒤집어 주면 되고."


그렇게 난 루나에게 모래시계를 건내고 모포에 몸을 맡겼다.


확실히 기원 덕분인지 별로 추운 느낌은 없다.


'룰루야, 혹시 위험하거나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줘...'


[ 응! 룰루! 믿어! ]


그렇게 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을 때.


우리는 푸른 귀화를 내뿜는 수백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던 스켈레톤 들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세실리아 일러스트 (배경 미완) 입니다!! 24.09.14 4 0 -
공지 루나 캐릭터 일러스트입니다! (9월 10일 최종 완성) 24.09.07 11 0 -
공지 신규)EP.3 '빙의' 회차에 내용 일부가 추가되었습니다 24.08.14 13 0 -
공지 신규) 프롤로그가 추가되었습니다. 24.08.10 16 0 -
공지 표지 및 일러스트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24.08.06 15 0 -
공지 신규)연재일정 및 업로드 시간 공지 24.07.31 34 0 -
39 피안개 NEW 19시간 전 5 0 16쪽
38 보물상자 24.09.16 7 0 14쪽
37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24.09.13 12 0 15쪽
36 보물 사냥 24.09.12 11 0 15쪽
35 폐허도시 24.09.10 13 0 17쪽
34 맑은 눈의 무투가 24.09.09 13 0 15쪽
33 물컹 끈적 미끌 24.09.07 14 0 15쪽
32 던전이여 우리가 왔다 24.09.06 15 0 16쪽
31 자신있어 24.09.05 17 0 15쪽
30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3) 24.09.04 15 0 15쪽
29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2) 24.09.03 15 0 15쪽
28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1) 24.09.02 17 0 17쪽
27 델리시아의 꿈 24.08.30 22 0 15쪽
26 일어나세요 24.08.29 26 0 17쪽
25 더티 파이트 24.08.28 25 0 18쪽
24 호의 24.08.27 24 0 17쪽
23 경력 있는 신입 24.08.26 23 0 16쪽
22 휴식 24.08.23 25 0 18쪽
21 탐험가 24.08.22 25 0 17쪽
20 짐승들 24.08.21 25 0 14쪽
19 예측불가 24.08.20 27 0 17쪽
18 야속한 운명 24.08.19 27 1 18쪽
» 루나 24.08.16 31 0 19쪽
16 삼위일체 24.08.15 29 0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