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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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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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DUMMY

최근 대주교의 기분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성녀가 기행아닌 기행을 일삼기 때문이다.


특히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아예 밥도 물도 입에 대질 않으니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다.


기어코 위험한 칼을 받아내질 않나 무슨 윌슨인지 월슨인지 하는 감자를 고급 화분에 잘 키워달라질 않나 밖에서 쇼핑을 하겠다며 누가 봐도 떠날 사람처럼 각종 여행용품을 구매하는 둥 대주교의 심신은 도저히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자신이 입을 옷과 신발을 요청한 건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라면 의복과 치장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나잇대엔 누구나 공주처럼 대접 받기를 꿈꾼다.


공주대접? 못해 줄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해주고 싶다!


그런데...


'왜 더 수수하게 바꾼거지...?'


여자들은 보통 화려한걸 좋아하지 않나?


기껏 외형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는 최상급 치장 아이템을 구해다 줬더니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수녀차림으로 바꿔놨다.


그러다 문득 불길한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칼을 차고, 감자를 키워달라하며, 여행용품을 구매하고, 화려한 옷을 수수하게 만들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성녀가 자기 지위따위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을 자유로이 활보한다?


찬란하고 고귀한 신분을 내버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범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동화 속에도 나오지 않을 웃긴 이야기다.


모든 것이 손에 있는데 대체 왜 고행길을 자처한단 말인가?


그런 일은 악몽 속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때.


콰앙!!!


주교실의 문짝을 박살 내며 등장한 기사단장을 보며 대주교는 쓰러지지 않게 이를 악물어야 했다.


"서, 성녀님이 사라지셨습니다!!!"


휘청.


쿠당탕!


"대주교님!!"


대주교 안드레아, 쓰러지다.


***


- 우와 룰루는 엄청 대단해! 그런 신기한 것도 할 수 있어?


[ 응! 룰루! 대단해! ]


델리시아는 룰루가 성장한 이후 얻은 아공간 능력을 신기해하며 연신 룰루를 띄워주고 있었다.


성장한 룰루는 자기 몸속에 아공간을 만들고 물건을 보관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상태로 실체화와 영체화를 자유로이 오갈 수도 있다.


물론 실체화화 영체화 사이에 몇 초 정도의 텀이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능력이 매우 유용하다는 거다.


덕분에 우리는 큰 수고 없이 무사히 교단에서 탈주할 수 있었다.


'정령으로 진입석을 회수할 줄은 몰랐겠지.'


물론 이곳저곳을 뒤지다 보면 진입석이 사라졌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내가 룰루의 정체를 밝히기 전까진 절대 알 수 없겠지.


그렇게 룰루를 통해 진입석을 회수한 우린 화장실에서 1층 던전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었다.


화장실에서 시도하는 거라 될지 안 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최고급 화장실이라 꽤 넓어서 그런지 포탈은 정상적으로 열렸다.


진입석은 귀환석과 마찬가지로 일회용이었는지 사라져 버렸지만 우린 주저 없이 포탈 너머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잠궈놓긴 했는데... 별로 큰 의미는 없겠지.


그저 포탈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만 끌어 주면 좋겠다.


포탈에 몸을 맡기자 짧은 부유감과 시원한 느낌이 스쳤고 우린 새로운 공간에서 눈을 떴다.


"여긴 고블린 구역이 아니네? 숲이라... 숲에서 뭐가 나온다 했더라. 스켈레톤이었나."


- 맞아요. 1층의 숲에선 스켈레톤들이 나온대요. 걸어 다니는 해골이라니! 믿을 수 없어...!


진입석으로 들어온 던전은 생소한 곳이었다. 1층도 여러 구역으로 나눠진다고 했지.


고블린 구역에서 얻은 진입석이라고 해도 반드시 고블린 구역으로 가는 건 아닌가 보다.


어쨌든 그 음침하고 어두컴컴한 곳보단 훨씬 낫다.


빽빽하고 울창한 숲이 아니라 햇빛이 여유롭게 들어와 화창하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장검을 휘두르기에도 별로 무리가 없는 수준.


이제 길만 찾으면 된다.


숲에서 길을 찾는 법이라...


'몰라.'


- 저도 몰라용.


[ 나도! ]


오케이. 어쩌면 우리 세 명의 아이큐를 모두 모아도 200을 넘지 못하는 거 아닐까?


어쨌든 고민은 짧게, 잘 모르겠으면!


"해 뜨는 대로 가자."


그렇게 우린 무작정 해가 떠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


대체 왜!


해 달란 거 다 해줬잖아!


모든 걸 최상급으로 아낌없이 다 해줬잖아!


근데 왜 사라져! 딸랑 편지 하나만 놓고!


[ 바람 좀 쐬고 올게용. 여긴 너무 답답해용. 월슨을 잘 부탁해용. 월슨 보러 다시 올게용. ]


"허어어어어억...!"


대주교는 뻣뻣하게 굳어가는 뒷목을 부여잡고 기사단장을 불렀다.


"성기사와 성전사들... 싸그리 풀어서 성녀를 찾게. 교황성하가 오기 전까진 반드시 찾아야 해. 만약 그때까지 찾지 못하면 나나 자네나... 하아...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이만 가보게."


지끈거리는 머리와 뒷목을 부여잡는 대주교를 뒤로하고 성기사단장은 교단의 모든 성기사와 성전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제각각 나눠 혹시 모를 교단 내부의 재수색을 지시하고 던전도시와 던전에 파견될 준비를 명한 뒤 마틴만 따로 불러세웠다.


"마틴... 혹시 짐작 가는 곳이 있다면 말해주게. 그래도 자네가 델리시아, 아니 성녀님과 가장 가깝지 않았나."


"이건 그저 가정일 뿐입니다만... 델리시아의 짐 중에 진입석이 있지 않았습니까? 혹시 확인해 보셨습니까?"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그런 위험한걸 돌려줄 리가 없지 않나. 그대로 보관하고 있네."


"혹시 모를 일 아닙니까. 한번 가서 확인만이라도 해 보시죠."


기사단장은 마틴의 굳은 표정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확인만 하는 것이니까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없다.


"끄응, 알겠네. 가세."


그렇게 그들은 없어진 진입석을 통해 델리시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전원, 1층으로 간다."


그날, 던전의 약탈자들은 뜻밖의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


"분명 금방 쫓아올 텐데 말이지..."


그들은 내가 1층 진입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곧 그게 없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겠지.


그럼 분명 던전으로 우르르 몰려올 것이다.


아무리 던전이 넓다고 해도 쪼렙 사냥터에 고렙들이 우르르 몰려와 깽판을 치면 잡히는 건 시간문제겠지.


그리고 성기사나 성전사가 끝일까?


어쩌면 대대적인 수배 전단 같은 게 붙을지도 모른다.


금발 금안의 미소녀 찾음. 자기 키만 한 칼을 지니고 있음. 사례금 많음.


그렇다면...


'1층 보스를 잡고, 2층으로 간다. 혹은 정예를 사냥해 던전 밖으로 나가 숨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되려 다시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들킬 확률이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둘 중 하나 외에는 방법이 없다.


만약 잡히게 된다면 이젠 정말 화장실 안쪽까지 따라오려 하겠지.


얼핏 듣기로 성녀가 직접 칼을 들고 전투하는건 일종의 기행에 가깝다.


교단 이미지도 있고 하니 그런 꼴을 두고 볼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세상이 나를 탈주 성녀로 만든 거야.


어쨌든 델리시아와 룰루가 함께하니 지루할 틈도 없고 그냥 걷기만 해도 즐겁다.


특히 델리시아는 나에 대해서도 궁금한 게 아주 많았는데 내가 온 세상에 대해서도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가 내가 세상은 둥근 구체 모양이라고 하니 말도 안 된다며 자기는 바보가 아니라더라.


- 오빠 무슨소리예요. 세상은 평평하잖아요. 세상이 왜 둥근데요?


- 신들이 만든 거 아니예요? 세상은? 누가 따로 만든 게 아니라구요?


- 오빠는 그럼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요?


아냐고? 그야 당연히...


'...뭐지?'


비누도 못만드는 내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주를 떠다니던 행성의 재료가 되는 입자가 모여서 별이 되고 그 별이 막 빙빙 돌다가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크아아악! 나는 문과라고!


그것도 심지어 고1때 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각성하면서 공부할 시간에 괴수들 써느라 뭐 빠지게 뛰어다녔다.


일단 우주부터 설명을 못 하겠다.


어째 내가 중세인들보다 더 멍청한 거같네.


심지어 여긴 비누도 있었지...


어쨌든 그런 식으로 재밌게 만담을 나누길 한참,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왜 몬스터가 안 보이는 거지? 고블린 구역은 정예방도 있고 하던데...


숲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 걸까.


싶은 순간 저 멀리서 미약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느낌상 뭔가 사람 같은데...


'룰루야 한번 보고 올래?'


[ 응! 룰루! 갈게! ]


룰루는 영체화 상태로 변해 스윽 날아가더니 잠시 뒤 다시 날아왔다.


[ 저기! 인간! 네 명! ]


'네 명이라...'


확률적으로 약탈자를 만날 타이밍이 되긴 했다.


세실, 르와 라스 같은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물게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렇다면 역시...


'돌아가자.'


- 음, 착한 사람들일 수도 있는 거 아니예요?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곤 하는 게 던전이야. 특히 내 세계에서도 그런 경우는 아주 많았어.'


특히 총을 든 약탈자들은 저등급 헌터들의 악몽이었다.


총을 막을 능력이 안 되는 딱 애매한 수준의 헌터들은 약탈자들에게 기습총격을 당하면 그냥 그대로 전멸한다고 보면 된다.


- 생각해 보니 던전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들도 약탈자였죠. 그때의 기억은 좀 흐릿해서 이제야 생각났네요. 그럼 조심히 돌아가야겠네요.


앞으로도 한동안 사람들은 미리 피해가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선 차라리 몬스터가 낫다.


몬스터는 고민 없이 후드려 팰 수 있지만 사람은 까다로운 피아식별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그렇게 우회하기로 결정하고 얼마 안 가 나는 룰루에게 근처를 한번 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약탈자 놈들은 사람의 흔적만 발견하면 눈이 돌아가는 놈들이다.


혹시나 우리가 남긴 흔적을 발견했고 혼자라는걸 알게 되면...


[ 움직여. 사람들. 여기로. ]


바로 먹이를 향해 달려들 준비하겠지.


'델리시아, 축복을 준비해 줘. 체력을 향상시키는 축복으로, 오래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게. 가능하겠어? 전투가 시작되면 바로 사용해야 해.'


- 가능해요. 준비할게요.


'룰루는 혹시나 뭐가 날아오면 그걸 막아줘. 엄청 빠르게 날아올 수도 있어.'


[ 응! 막을게! ]


사냥꾼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본인이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사냥감이 될지 한번 지켜보자고.


***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거 다 안다. 나와라."


씁. 이거 아주 작정하고 파티를 짠 놈들 이구나.


어떤 식이든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놈이 있는 거다.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약탈자들의 말을 따를 이유는 없는데."


"약탈자라니, 오해가 있군. 우린 그저 사람을 찾고 있을 뿐이다."


"사람? 무슨 사람을 찾는다는 거지?"


"우린 토끼 수인을 찾고 있다. 네가 그 토끼 수인이 아니라면 모습을 드러내면 될 뿐이다."


"그 토끼 수인은 뭐 때문에 찾는 거지?"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 지금 나오지 않는다면..."


토끼 수인이라... 이놈들이 쫓고 있던 사냥감인가? 어쨌든 난 놈들의 면면을 보기 위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하? 이 새끼들 보소.'


이놈들은 네 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명이 빈다는 건?


'뒤치기를 준비 중이겠군...'


한 놈은 본대와 거리를 두고 움직일 정도면 절대 어중이떠중이들이라고 볼 수 없다.


나는 룰루에게 측후방의 경계를 부탁하고 말을 이었다.


"자, 됐나? 난 토끼 수인이 아니다. 순혈 인간이야. 그럼 됐지? 이제 더 이상 쫓지 말고 물러나줬으면 하는데."


"킥, 어린애? 하, 변신 마법이라도 쓰는지 어떻게 알지? 가까이 와라.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군."


역시. 토끼수인이 중요한 게 아니었군. 이놈들은 사냥감을 가리지 않는 놈이다.


나는 엘프제 직검을 뽑아 들고 준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그 이상 다가오면... 벤다."


"뭣... 크, 크하하하하하학!"


놈은 배를 잡고 자지러질 듯 폭소했고 나머지 두 놈도 꺽꺽거리며 날 비웃었다.


"하하하! 그 이상 다가오면... 벤다! 아이고! 형님, 조심하십쇼! 단칼에 베이면 어떡합니까!"


"푸흐하하하하. 자기 몸보다 큰 검을 다루는 위대한 애새끼 검사라니!! 아아, 신이시여! 우린 다 죽었구나!"


빠직.


이 새끼들이...?


놈들을 방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웃긴 대사를 골랐는데 생각보다 열 받는 반응이 돌아왔다.


하긴, 지금의 내 키는 150cm 정도의 단신이다.


그런 꼬맹이, 그것도 여자애가 날 길이만 100cm 즈음 되는 장검을 들고 3대 1의 상황에서 위협하는 꼴이라니.


웃음이 나올 만도 하겠지.


하지만 무림 격언에 괜히 노인과 여자,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셋 중 하나만 해당돼도 방심해선 안 되거늘 나는 심지어 여자면서 아이다.


즉, 두 배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이야기.


놈들은 그런 나를 얕본 대가를 치를 것이다.


바로... 이렇게!


[ 왔어! 지금! ]


나는 룰루의 신호에 맞춰 순식간에 뒤를 돌며 수평 베기를 전개했다.


촤학! 후두두둑.


"끄아아악!!!"


세 놈이 시간을 끄는 동안 멀리 돌아 내 바로 뒤까지 조용히 접근하던 놈이 기습적인 참격을 맞고 순식간에 피와 내장을 쏟으며 쓰러졌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체 절명했다.


역시 명검은 명검인가. 옷과 피부, 내장을 가르는 느낌이 장난이 아니다.


"......"


놈들은 충격을 받았는지 웃음을 잃고 얼굴을 굳혔다.


아무런 기척이나 소리도 없이 다가오던 걸 보면 확실히 룰루가 없었다면 아주 위험했을 것이다.


무슨 마법이라도 썼나? 소음을 없에주는? 어쨌든 그건 당장은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있어라 병신들아."


나는 벙쪄있는 놈들에게 왼손 중지를 한번 올려주고 검을 집어넣은 뒤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략적 후퇴다.


정면 삼대 일은 무리니까.


놈들은 고블린 구역에서 마주쳤던 약탈자 삼인조보다 훨씬 윗단계의 약탈자다.


한 놈이 따로 움직이는 전술부터 추격 능력과 소리를 죽이는 능력, 지닌 무장부터 남다르다.


남은 놈들 중 한놈은 검과 활을 지니고 있고 형님이라던 리더는 검과 방패, 나머지 한 놈은 검과 창을 가지고 있다.


주무장과 부무장까지 알찬 놈들이다. 내가 죽인 놈은 단검을 가지고 있던데 당장은 도주가 우선이다.


'고맙다 룰루! 델리시아, 놈들이 쫓아오면 축복을!'


- 맡겨줘요!


계획은 간단했다.


안쫓아오면? 축복을 아끼고 그냥 그대로 도망간다.


축복은 정말 중요한 순간을 위해 아껴야 하니까.


쫓아오면? 축복의 힘으로 도망가며 싸운다.


놈들의 선택은...


"이런, 씨발련이...! 잡아! 잡히면 팔다리를 잘라 돼지 먹이로 던져 주마!!!"


이런 흉악무도한 중세인 새끼.


사람이 무슨 특제 비밀사료도 아니고 말본새 보소.


놈들이 격분해 쫓아오기 시작하자 델리시아는 지체 없이 새로운 축복문을 읊었다.


-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달리고 또 달려도 결코 멈추지 않으리.


- 프레시아의 축복.


이번 축복엔 이전처럼 눈이 부실듯한 폭발적인 광휘는 없었다.


그저 은은한 황금빛이 전신을 한번 부드럽게 휘감았다 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아주 뛰어났다.


내면에서 차오르는 따뜻한 축복의 힘!


수십 분은 거뜬히 달릴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다.


난 조금 더 속도를 올렸다.


"형님! 저년이 무슨 수작을!"


"하! 마도구!?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저거 제가 잡으면 보너스 주십쇼!!"


놈들은 프레시아의 축복을 어떤 마도구로 인한 효과같은 걸로 착각하고 되려 의욕을 불태웠다.


약탈자 이 미친 새끼들.


대체 남의 물건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룰루야! 감자!'


[ 응! ]


룰루는 영체화로 배낭 속에 들어가 감자를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아아, 이 익숙한 그립감.


휙! 빡!


"억!"


달려오며 활을 조준하던 놈이 얼굴에 감자를 맞고서 눈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역시 감자는 배신하지 않아.


- 와! 한 번에 맞췄네! 오빠 칼질만 잘하는 거 아니었어요?


'한국인 기본소양이야.'


비상식량 겸 투척 무기 대용으로 가져온 감자가 쏠쏠한 전공을 올렸다.


덕분에 한 놈은 크게 뒤처진 상황.


나머지 두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왔다.


이런 동료애도 없는 새끼들.


어쨌든 체력적 여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보폭이다.


열심히 달리는데도 놈들은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12살 소녀와 성인남성의 보폭 차이는 쉬이 극복하기 어렵다.


'잘 먹어야겠네. 작은 키로 뚜방뚜방 뛰어서는 속도가 부족해.'


- 큼, 더 클 거예요. 그런데 어떡하죠? 거의 다 따라잡혔는데... 무리해서라도 더 강하고 빨라지는 축복을 준비할걸 그랬나 봐요...


델리시아의 자책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결정하고 지시한 건 나였어. 네 책임이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 그래도 체력은 아직도 충분해. 아주 훌륭한 축복이야. 어쨌든 놈들도 조금 지쳤을 테니 이제 승부를 봐야겠네.'


나는 뒤돌아서 검을 빼 들었고 그걸 본 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좌우로 벌어지며 나를 압박했다.


시발, 뭔 1층 약탈자들이 이렇지?


약탈만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약탈의 달인이라도 된 건가?


어쨌든 길게 고민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전장에서의 판단은 빨라야 한다.


한 놈은 창, 한 놈은 검과 방패.


나는 주저 없이 검을 든 놈에게 뛰어들었다.


이렇게 되면 창을 든 놈이 반드시 후방을 노리고 찔러 들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룰루가 있다.


'룰루! 녀석의 눈에 물의 화살을 쏴버려!'


[ 응! 나만! 믿어! ]


그렇게 어떻게 행동할지 판단하고 달려드려는 순간 창을 든 놈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악!! 어어어억! 억! 컥!"


빡! 빡! 빡! 빡! 빡!


놈은 순식간에 튀어나온 무언가에게 덮쳐져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기 시작했는데 난데없이 튀어나온 그것의 정체는...


'토끼 귀?'


토끼 귀를 달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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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24.09.13 12 0 15쪽
36 보물 사냥 24.09.12 11 0 15쪽
35 폐허도시 24.09.10 13 0 17쪽
34 맑은 눈의 무투가 24.09.09 13 0 15쪽
33 물컹 끈적 미끌 24.09.07 14 0 15쪽
32 던전이여 우리가 왔다 24.09.06 15 0 16쪽
31 자신있어 24.09.05 17 0 15쪽
30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3) 24.09.04 16 0 15쪽
29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2) 24.09.03 16 0 15쪽
28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1) 24.09.02 17 0 17쪽
27 델리시아의 꿈 24.08.30 23 0 15쪽
26 일어나세요 24.08.29 26 0 17쪽
25 더티 파이트 24.08.28 25 0 18쪽
24 호의 24.08.27 24 0 17쪽
23 경력 있는 신입 24.08.26 23 0 16쪽
22 휴식 24.08.23 26 0 18쪽
21 탐험가 24.08.22 25 0 17쪽
20 짐승들 24.08.21 25 0 14쪽
19 예측불가 24.08.20 27 0 17쪽
18 야속한 운명 24.08.19 27 1 18쪽
17 루나 24.08.16 31 0 19쪽
» 삼위일체 24.08.15 30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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