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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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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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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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운명

DUMMY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토끼 귀를 단 미소녀의 얼굴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 위로 나를 덮치듯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내 몸을 깔아뭉개고 한 손으론 내 입을 막고 있었는데...


어엇. 이거 아니지...?


이런 건 어린 델리시아의 성적 가치관 형성에 좋지 못해...! 라는 생각과 동시에 루나가 검지를 자기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건대 절대 성적인 해프닝은 아니었다.


그때 깨어난 델리시아가 루나를 보고 기겁했다.


- 후아암, 히익. 이, 이 언니 왜 이래요? 서, 설마 그렇고 그런 금단의 취향이...!


'그런 거 아니야.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그나저나 룰루는...'


룰루는 영체화 상태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정신파의 상태를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는데 이걸 깨워야할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 같다.


도대체 뭐때문에?


나는 루나의 눈을 바라봤다.


숨길 수 없는 동요와 긴장, 공포의 색채가 묻어나는 눈동자... 그녀는 지금 겁에 질렸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목도할 수 있었다.


우리를 가려주는 나무들 사이로 스산하고 푸른 귀화를 내뿜는 스켈레톤들이 우릴 지나치며 끝없이 행군하는 모습을.


얼핏 보기에도 우리 옆을 지나가는 놈들만 해도 수십 마리였으며 내가 알고있던 보통의 스켈레톤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다.


1층의 스켈레톤은 그냥 멍청한 뼈다귀 수준이지 무슨 소름 돋는 푸른 귀화를 휘감고 있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심지어 놈들은 그리 느리지 않은 속도로 숲속을 행군하면서도 별다른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마치 유령의 군세 같달까.


오싹.


숲 바닥엔 나뭇잎이며 가지들이 잔뜩 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지?


내가 헛것을 보고있는 건가? 그건 아닐 거다.


우리가 숨을 죽이고 있는 동안 놈들은 우리 근처를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상태로 끝없이 지나쳐갔다.


수십 마리 수준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수백마리는 될것 같았다.


그리고...


아아아아악...!


왠지 저 멀리서 누군가의 희미한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다.


운 나쁘게 자는 동안 이 스켈레톤들을 마주한 희생자들의 비명인가...


저 희미한 비명이 들릴 때마다 루나의 귀가 움찔거리는걸 보면 환청같은 건 아닌 듯하다.


'델리시아, 혹시 축복이나 기원을 준비할 수 있겠어? 일 전에 약탈자들과 썼던 그걸로. 아니면 언데드를 물러나게 하는 축복이라거나? 만약 들키면 죽어라 뛰어야겠는데.'


- 조금 무리하면 될거예요. 준비할게요.


하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나는 루나와 밀착한 채 숨소리조차 죽이고 놈들이 우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길 기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면으로 싸워서는 그냥 개죽음 뿐이다.


쿵쿵! 쿵쿵! 쿵쿵!


어디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격렬한 심장 소리, 동시에 제어할 수 없는 몸의 떨림이 느껴진다.


이건... 나와 몸을 맞대고 있는 루나의 것이었다.


바들바들.


나를 내려다 보는 루나의 얼굴을 보니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보인다. 그리고...


눈물?


그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방울진 눈물이 내 얼굴에 한 방울씩 떨어져 내렸다.


"......"


그런가.


약탈자를 무자비하게 때려죽인 전사였지만 그녀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필시 선명한 죽음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기분이겠지.


수백 몬스터들의 행군을 고작 엉성한 나무들 사이에 숨어 모포를 뒤집어쓰고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기도하는 꼴이다.


들키면 도망칠곳도 없이 수백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를 지배하고 있을 터.


나는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여 한 손으론 루나의 귀와 머리를 쓰다듬고 한 손으론 그녀의 등을 쓸어줬다.


그녀는 움찔 놀란 듯 했지만, 이내 내게 몸을 맡겼다.


수인의 귀를 쓰다듬어도 진정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저 비명소리에 집중하느니 내 손길에 집중하는게 나을것이다.


이럴 땐 어른인 내가 다독여 주고 안심시켜 줘야 한다.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루나가 주저앉아선 안 된다.


나는 헛된 희망 앞에서도 끝까지 투쟁해 줄 동료가 필요하다.


만약 들키더라도 최선을 다해 함께 활로를 뚫어 줄 그런 동료가.


나라고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다르다.


나는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죽는 것이 가장 두려울 뿐이다.


어쨌든 나는 나무틈 사이로 푸른 귀화에 휩싸여 유령처럼 행군하는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루나를 쓰다듬고 다독여줬다.


다행히 조금씩 그녀의 떨림과 고장 난 것처럼 쿵쾅거리던 심장 박동이 찬찬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더 이상 우리 옆을 지나가는 스켈레톤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도 한참, 나는 부드럽게 루나의 이름을 불렀다.


"루나. 이젠 괜찮아. 다 지나갔어. 놈들은 나타나지 않을거 같아."


루나는 울음기 섞인 잠긴 목소리로 애원했다.


"미, 미안. 그래도 조금만... 조금만 더 쓰다듬어 줄래?"


못해 줄것 없지.


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녀를 다독였고 그녀는 조금 힘을 주어 나를 껴안아 왔다.


꾸욱.


원래도 밀착된 가슴과 탄탄한 허벅지가 더더욱 밀착되고 후끈한 열기가 전해져 온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땀에 푹 절은 체취도 느껴졌다.


다만 딱히 거부감 드는 냄새는 아니었다. 베이비 파우더 같은 느낌이랄까.


- 이건 좀 부러운데...


대체 뭘 부러워하는 거니.


어쨌든 다행히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고 내게 아이처럼 울며 안겨 있던 게 부끄러운 듯 괜히 먼산만 쳐다 봤다.


르와는 내게 호감을 지닌 사람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기원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루나는 이제야 내게 호감을 지니게 된 건가?


어쨌든 모래시계를 보니 시각은 던전에 들어온 지 10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나는 다시 3/6시간을 뒤집어 세팅하고 루나를 불렀다.


"루나, 이리 와볼래? 우선 땀을 좀 말리자."


나나 루나나 서로가 흘린 땀으로 아주 범벅이다.


나는 루나가 앵긴 덕에 좀 더워서 흘린 거지만.


맘같아선 샤워하고 싶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니 무사히 아침을 맞고 해도 되겠지.


나는 우선 루나에게 룰루에 대한 비밀을 밝혔다.


룰루가 정령이라는 사실과 지닌 여러 놀라운 능력들에 대해.


황도천 입구까지 사이좋게 껴안고 다녀온 사이에 못밝힐 비밀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루나의 심신을 달래줄 목적이기도 하다.


룰루는 귀엽고 신비하며 사랑스러우니까.


공포물을 봤으면 힐링물을 봐줘야 한다.


어쨌든 내 설명을 들은 루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정령이라고? 물의 정령? 정령은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어때? 귀엽지 않아? 이름은 룰루야. 그리고 룰루는 엄청 신기하고 대단한 능력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봐봐. 룰루야, 우릴 좀 말려줄래?"


[ 응...! ]


비록 나와 델리시아를 제외하면 룰루의 정신파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룰루는 진지하게 대답하며 힘을 쓰기 시작했다.


슈르르륵.


"어???"


룰루가 힘을 쓰자 루나와 내 몸을 푹 적셨던 땀들은 순식간에 저들끼리 뭉치더니 어디론가 천천히 날아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와... 정말 신기하네. 화창한 햇빛에 뽀송하게 말린거 같아.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정령은..."


"아침엔 더 신기한걸 보여 줄게. 아, 그보다 땀을 많이 흘렸으니까 물을 좀 마시자. 룰루야, 물도 좀 부탁해."


슈와아악.


룰루는 순식간에 내가 들고 있는 물주머니를 가득 채워줬다.


"우선 물을 좀 마셔 루나. 아마 엄청 놀랄거야. 룰루가 만든 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거든."


"응. 고마워... 그럼..."


꿀꺽꿀꺽.


물을 마신 루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을 흘렸다.


"하아아앗. 이, 이게 뭐야? 이게 진짜 물이라구? 물이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게다가 엄청 시원하고... 살면서 이런 물은 처음 마셔봐. 이, 이런걸 공짜로 마셔도 될까...?"


루나는 한참 동안 물을 음미하며 마셨고 이후 내게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 델리시아... 그리고 룰루도... 정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진정이 좀 되는거 같아. 고마워..."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레 나를 껴안았다.


흠. 나쁜 건 아니다. 동료간에 친밀도가 올라가는 건 환영할 일이니까.


근데 이거 너무 올라간 거 아니야...? 기원의 영향인가?


아니면 내 기원의 힘으로도 죽음의 공포는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한 건가?


혹은 역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기원의 주체인 나에게 더 의지하게 되었다던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우선 지금 상황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나눴다.


일단 스켈레톤들이 행군한 방향으로 가는 건 당연히 기각.


새로운 은신처를 찾는다?


이 야밤에 소리 없이 행군하는 위험한 놈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는데? 이것도 기각.


결국 별다른 뾰족한 수 없이 동이 틀때까지 지금의 은신처에서 대기 후 동이 트면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만 혹시 모르니 은신처를 조금 보강하기로 하고 우린 위장을 위한 나뭇가지등을 챙기기 위해 움직였다.


"룰루야, 미안한데 조금 수고 좀 해 줄래? 근처를 가능한 크게 돌아보면서 방금같은 녀석들이 나타나면 바로 알려 줘. 너무 넓은 범위에 소리도 없이 나타난 놈들이라 룰루도 당황했었구나. 앞으론 바로 깨워서 알려주면 돼."


룰루는 조금 의기소침한, 그러나 결연한 정신파를 보내곤 표표히 날아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했다.


짐작컨데 루나도 룰루처럼 너무 광범위하고 조용한 놈들이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게 아닐까.


동이 틀때까지 무사히 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씨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1층에 내려올 짬인가?"


"닥쳐,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냐? 그런 지랄 할 시간에 힘이나 더 보태라. 마력제한 때문에 통제가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야. "


"씨발... 4층 멤버를 1층으로 돌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라고. 3층, 아니, 2층 놈들한테 맡겨도 충분하잖아. 안 그러냐 제이크."


다 같은 검은색 로브를 입은 다섯 명의 사내 중 제이크라 불린이가 대답했다.


"나도 동의한다, 마커스. 그래도 전혀 위험할 건 없는 임무니 그냥 공적치 채운다 생각 해라. 여기가 숲이라 다행이지 동굴이나 카타콤에 떨어졌으면 언데드 군대를 만들지도 못하니 몇 배는 위험했을 거다. 로우드, 넌 뭔가 들은 게 없나? 넌 나름 아는 게 많지 않나."


로우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말 좀 그만 시켜. 통제권이라도 받아가던가... 나도 잘은 몰라. 다만 최근 저층에서 약탈자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거 같다. 무슨 엘프들이 범인이라는 거 같기도하고... 이번에 받은 아이템들 수준을 보니 약탈자들을 죽이는 그 정체불명의 놈들을 처리하라는 그런 거 아니겠나."


"쯧, 그러면 그런갑다 이유를 알려주면 되는데 윗선은 '그냥 명령이니 묻지 마라' 매번 이따위니 짜증이 날 수밖에."


"하아, 저층에서 힘을 쓰려니 여간 거북한 게 아니야. 코어를 세 개나 돌려 쓰는데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게 이러다 괜히 성기사라도 만날까 봐 걱정되는군."


"뭐, 그럴 일은 없을 거다. 1층이라도 던전은 던전. 구역도 여러 개로 나뉘니 그 규모를 생각하면 만신전의 정규 순찰자들을 마주치는 건 기적에 가깝다. 무슨 교단의 성기사들을 전부 1층에 투입한 게 아닌 이상 마주칠 일은 없을..."


"제이크? 왜 말을 하다 마는..."


로우드와 제이크는 그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확률로나 마주칠 수 있는 자들을 마주쳤기 때문이다.


저 멀리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은 빛을 뿜어내는 백색의 갑주를 두른 기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더러운 악신 숭배자 놈들을 유독 많이 보는구나..."


조금 거리가 있음에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준엄한 목소리에 검은 로브를 입고 있던 자들은 경악했다.


그 중 로우드가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통제권 풀고 전부 폭주시켜..."


"뭐..."


"뭐라고...? 놈들은 고작 넷인데..."


"닥치고 전부 폭주시키라고!!! 스켈레톤 오백기 따위론 절대 못 막는다!!!!! 씨발, 싹 다 폭주시키고 뛰어! 살고 싶으면!!!"


로우드가 발작적으로 스켈레톤을 폭주시키고 도망치자 나머지도 어쩔 수 없이 남은 스켈레톤을 폭주시키고 임시 리더인 로우드를 따라 뛰었다.


'씨발, 씨발...!!! 귀환석, 무작위 귀환석을 쓸 시간을 벌어야 해. 스켈레톤 따위론 절대 못막아. 성기사는 그냥 몸으로 밀면서 뚫어버릴 거다. 시간을 벌려면...'


흘깃.


로우드는 뒤따라 달려오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한 명이라도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너흰 성기사를 만나 본적 없잖아. 그러니 나라도 살려면...'


로우드는 빠른 판단으로 뒤따라오는 자기 동료들을 향해 공격 마법을 발동했다.


체인 라이트닝의 열화판 마법으로 한꺼번에 많은 이들을 공격하는 마법이었다.


"미안하다!"


파지지직!


"아악!"


"로우드으으!!!"


"크악!"


"이 미친 새끼가!!"


로우드가 쏘아낸 흑색의 번개줄기에 직격당한 넷은 볼썽사납게 지면을 굴렀다.


본래 중등급 공격 마법에 직격당하면 형체도 남기지 않고 터져 나가야 했지만 1층의 마력제한에 의해 그들은 큰 충격만 받고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로우드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들을 버려 둔채 전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저, 개, 씨발, 롬. 동료를 공격해?"


"크헉. 미친 새끼, 차라리 같이 싸웠어야지! 쓰레기 같은 배신자놈!"


"죽인다! 저새낀 반드시 죽인다!"


"씨발! 다들 마법부터 준비해! 성기사부터 치운다!"


남은 넷은 이를 부득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감히 같은 조직의 동료를 배신해?


성기사 놈들이 얼마나 강하건 놈들은 소수다.


저 수백의 스켈레톤들을 금방 뚫어내긴 어려울 거다.


그러니 미리 공격 마법을 준비하고 성기사놈들이 나타나면 바로 쏴 갈기는 거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마, 말도 안 돼..."


"어, 어떻게 벌써..."


공격 마법을 준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코앞에 나타난 성기사들을 보고 그들은 경악했다.


***


"흐흐학. 하학. 하하학. 살았다. 살았어...! 성기사를 마주치고도, 살았다고...!"


로우드는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4층에서 만나도 버거운 상대가 성기사인데 1층의 성기사는 그야말로 대적 불가능한 재앙이다.


층계 마력제한이라는 페널티는 마법사나 기사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적용되지만 그중에서도 마법사들의 페널티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마력제한의 영향으로 약해진 마법은 성기사들의 갑옷조차 뚫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원래도 온갖 좋은 재료는 다 처박아 만드는 갑옷에 신의 권능까지 더해지면 성기사들은 그야말로 인간사이즈의 오우거가 된다.


애초에 고행이니 뭐니 하며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하는 이들이기에 마력이 제한되어도 그들의 전투력은 마법사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제아무리 지급받은 마력코어를 통한 꼼수로 마력제한을 최대한 우회해 스켈레톤을 강화시켰다 한들 그냥 성기사들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개박살이 나버릴 것이다.


그는 4층에서 성기사를 만나고도 운 좋게 살아남은적이 있다.


당시 4명을 상대로 10명중 9명이 죽고 겨우 얻은 승리였다.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동료들은 성기사를 만나본적 없는 새로운 녀석들이었으니까.


지금쯤 저승에 갔을 동료들도 기꺼이 이해해 줄것이다.


게다가 그는 '망령의 발걸음' 이라는 마법을 사용해 몸을 매우 가볍게 만들어 달렸기에 발자국도 남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이딴 개 같은 곳은 이제 안녕이다.


그는 자기 조에 불출된 무작위 귀환석을 꺼냈다.


원래는 5명이 사용하라고 내준 것이지만 알바냐. 성기사가 자기 존재를 확신하고 쫓아오는데?


"이제 이 개 같은 던전 따위, 영영 안녕이다... 숨어살자. 조직의 눈에 띄지 않게. 나 같은 어중간한 말단따위, 그냥 운 나쁘게 뒤졌다 생각 하겠지. 하지만 난 살아남았다. 난 정말 운이 좋은놈이야."


"아닌데?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흐어억!"


로우드는 바로 뒤에서 난데없이 들려온 어린 여자의 목소리에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본능적으로 비명이 올라왔지만 곧 목덜미에 닿은 칼날을 느끼고 원치 않게 입을 다물었다.


"쉿... 조용. 내가 자다 깨서 심기가 좀 불편하거든? 그러니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허튼수작 부리고 싶으면 부려 봐. 내 식칼보다 빠를지 한번 대결해 보자고. 알겠으면 '네' 라고 대답해."


"네, 네...!"


"내가 궁금한 게 좀 많아서 말이야... 솔직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약속해 줄 수 있지?"


"예...! 뭐든 물어보십시오...!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로우드는 조금이라도 살아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의문의 여자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든 협조하는척 시간을 끌면 지친 몸을 회복하고 역공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4층 약탈자인 그가 고작 1층에서 죽을 수는 없다.


기필코 빈틈을 노려 자신을 얕본 그 건방진 목을 비틀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여자의 말에 로우드는 절망했다.


"아, 대답 하는데 손가락은 따로 필요 없지?"


그녀의 식칼이 서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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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폐허도시 24.09.10 12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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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물컹 끈적 미끌 24.09.07 13 0 15쪽
32 던전이여 우리가 왔다 24.09.06 14 0 16쪽
31 자신있어 24.09.05 16 0 15쪽
30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3) 24.09.04 15 0 15쪽
29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2) 24.09.03 15 0 15쪽
28 우리는 모험을 떠날 거예요(1) 24.09.02 16 0 17쪽
27 델리시아의 꿈 24.08.30 22 0 15쪽
26 일어나세요 24.08.29 26 0 17쪽
25 더티 파이트 24.08.28 25 0 18쪽
24 호의 24.08.27 23 0 17쪽
23 경력 있는 신입 24.08.26 23 0 16쪽
22 휴식 24.08.23 25 0 18쪽
21 탐험가 24.08.22 24 0 17쪽
20 짐승들 24.08.21 25 0 14쪽
19 예측불가 24.08.20 26 0 17쪽
» 야속한 운명 24.08.19 27 1 18쪽
17 루나 24.08.16 30 0 19쪽
16 삼위일체 24.08.15 29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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