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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DUMMY

64. 진실


시현은 눈 앞에 있는 사람이

일루미나티의 조직원, 페르소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곧바로 자신의 무기,

조립식 창을 꺼내들었다.


그러나 페르소나는 두 손을 들어올리며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 창을 내려놓지 않자

페르소나는 그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는 내가 정필호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정필호를 죽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호 삼촌을 죽인 사람을 따로 있다는 이야기인가?”


페르소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하더니

시현이 그토록 기다리던 말을 했다.


“정필호는 살아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시현의 두 번째 아버지나 다름없는 필호가 살아있다

아타튀르크 댐에서 필호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던 때

막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상상은 했지만

정말로 필호가 살아있을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극악의 확률을 뚫고 필호는 살아남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희망찬 생각을 갖고 밝은 표정으로 일어난 시현은

페르소나의 이어지는 말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정필호가 나를 죽이고, 내 유물을 빼앗아갔지”

“···뭐라고?”

“처음부터 설명을 해 줄 테니 일단 그 무기부터 내려놓고 잘 들어라”


시현은 페르소나의 말대로 창을 내려놓았다.

페르소나가 필호에게 있던 카이로스의 유물을 가져가서

시간 조작의 권능을 사용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고,

원래부터 시간 조작의 권능을 사용하는 필호가

페르소나가 가지고 있던 유물을 사용해서 마리오를 쓰러트렸다는 말이다.


시현이 대화를 받아들일 태도를 취하자

페르소나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일루미나티의 조직원으로서

상급자인 카파블랑카의 지시를 받아 아타튀르크 댐에서

1층을 수색하는 정필호를 막아 시간을 끄는 임무를 수행했다···”


페르소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접촉한 대상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필호는

총알의 속도를 빨리감기, 일시정지, 되감기 하면서 싸웠고,

방어 능력이 전무했던 페르소나는

발사한 모든 총알의 궤적 중 하나라도 닿으면 공격당하는

무자비한 권능에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 무력하게 패배했다.


“···최후의 순간에 내가 택한 방법은 변장의 권능을 사용해서

시체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정필호가 확인사살을 했다면 살아있을 수 없었겠지만,

맥박이 뛰지 않는 것만 확인하고는 내 유물

미스틸테인을 가지고 떠나더군”

“미스틸테인?”


미스틸테인은 북유럽 신화에서 속임수와 기만의 신, 거짓말의 시초

‘로키’가 오딘의 아들이자 빛의 신인 ‘발두르’를 살해하는 데 사용한 무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발두르를 상처입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너무나도 하찮은 겨우살이 하나만은 그 계약의 대상에서 누락되었다.

잔꾀에 능한 로키는 그 겨우살이를 뾰족하게 다듬어

발두르의 심장을 꿰뚫는 비수로 재창조한 것이다.

그러한 전승에 의해

불사의 존재인 신을 죽이는 권능을 지닌 유물이 된 것이 바로 미스틸테인이다.


그런 미스틸테인을 빼앗긴 로키는 그것을 다시 재탈환할 기회를 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목격한 것이다.

필호와 카파블랑카가 아무도 모르게 손을 잡는 모습을.


“정필호는 카파블랑카를 만나 일루미나티에 합류하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지, 일루미나티라고 하는 단체에게 있어서

유물마저 잃은 나는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야”


그렇게 이전까지 동료로 일했던 이들에게

토사구팽을 당할 위기에 처한 페르소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 이후로는 일루미나티의 추적대를 따돌리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며 숨어다니는 도망자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시칠리아 섬에까지 흘러들어왔다.


“이 사진이 그 증거다. 정필호와 카파블랑카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지.

이 녀석, 입에 담배를 물고 있지?

나는 천식이 심해서 담배는 입에도 댄 적이 없거든”


페르소나의 말 대로였다. 사진 속의 필호는 그가 항상 버릇처럼 입에 물던 것과

같은 브랜드, 같은 상표의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가족처럼 여겼던 사람의 배신에 대해서

시현의 태도는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따랐다.


“아타튀르크 댐 위에서 나와 목숨 걸고 싸웠던 게 필호 삼촌이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내가 마지막 한 번의 공격으로 숨통을 끊으려고 했을 때,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게 진짜 본인이었다고?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아니야,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제기랄, 그러면 도대체 나는 여태껏 뭘 위해서···”


“그래···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그래서 페르소나, 당신이 원하는 게 뭐지?”


페르소나가 굳이 시현에게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 데에는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내 요구사항은 대단한 게 아냐.

정필호가 너희를 배신하고, 일루미나티에 합류했던 것과 같이,

나를 장미십자회에 받아줬으면 한다.

물론 나를 쉽사리 믿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알아.

지금 당장은 나를 감옥에 가둬도 좋으니

일루미나티의 추적자들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


시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 이야기를 저 혼자 결정할 수는 없으니

일단은 다른 장미십자회 멤버들과 이야기를 해 봐”

“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면 되나?”


시현과 페르소나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옆에서 정체불명의 대장장이 노인과 비탈레가 듣고 있다는 것이다.


65. 아스트라페


시현과 페르소나의 이야기를 듣던 비탈레가 손을 들었다.


“저기···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

“아. 죄송해요 계신다는 걸 잠시 잊었어요”


시현은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그런 비탈레와 시현의 반응을 본 페르소나가 당황하며 말했다.


“뭐야, 그쪽 여성분은 장미십자회가 아니었어?”

“내가 이 동굴을 찾을 때 도움을 주신 분이야, 이 동네 마피아 보스지”


페르소나에게 간단한 소개 후 시현은 비탈레를 향해 몸을 돌려 설명을 했다.


“비탈레 씨, 아까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저도 어떤 조직에 속해 있어요.

얼마 전에 다른 조직과 갈등이 있었고,

여기 페르소나는 상대 조직원이었는데

지금은 조직으로부터 버려져서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거에요”

“아하? 대충 이해가 됐어. 니가 찾던 삼촌이란 사람은

너희 조직원이었다가 배신한 사람이라는 얘기지?”


가까스로 상황을 설명한 시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비탈레가 손가락으로 절름발이 노인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그럼 저 할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이야?”


순간, 이 동굴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노인을 향했다.

노인은 그런 상황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다시 들고 있던 망치로 달궈진 쇳덩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때, 페르소나가 시현의 귀에 속삭였다.


“에트나 화산의 주인, 대장장이 신 ‘불칸’이야. ‘헤파이스토스’라고도 부르지”


말없이 망치질을 계속하는 노인의 정체에 시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계약을 맺은 아테나를 제외하면,

시현이 만나본 신은 튀르키예에서 싸웠던 일루얀카 뿐이었다.

일루얀카는 억지로 봉인에서 해제되어 이성을 잃고 날뛰는 괴물에 불과했으나

눈 앞에 있는 신은 아테나처럼 이성을 유지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때, 비탈레가 돌발행동을 했다.

그녀는 헤파이스토스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우리 얼른 밖으로 나갑시다”

“난 됐다. 내가 나가면 더 위험해서 여기 있는게야”

“좀 있으면 화산이 폭발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여기를 나가면 화산이 폭발할 게다”


시현은 어째서 헤파이스토스가 여기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에트나 산에 있는 신은 헤파이스토스 외에도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에트나 화산의 분화를 설명하는 설화를 떠올렸다.

올림포스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산 밑에 봉인된 괴물.

티폰이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헤파이스토스가 함께 갇혀있는 것이었다.


“비탈레 씨. 나중에 설명할 테니 일단 우리끼리 여기서 나가죠”

“그러면 저 할아버지는 어떡해?”

“안타깝지만 저 분은 여기에 남아 계실 수 밖에 없어요”


시현이 비탈레의 팔을 잡고 끌고나가려는 순간,

헤파이스토스가 동굴 구석에 있던 잡동사니 중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절뚝거리면서 시현에게 다가와 그 물건을 건네며 말했다.


“네놈이 쓰던 창보다는 훨씬 나을게다”


헤파이스토스가 시현에게 건넨 물건은

경찰들이 흔히 사용하는 삼단봉이었다.


“스위치가 두 개가 있는데 앞의 것을 누르면 평범한 삼단봉이지만,

뒤의 것을 한번 눌러보거라”


순순히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자 평범했던 삼단봉에

눈부시게 푸른 빛을 내며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창날이 붙었다.

마치 번개와 같은 모습, 아니, 번개 그 자체였다.


“그 창은 신왕, 제우스가 휘두르는 번개, 아스트라페의 복제품이다.

내가 나름대로 쓰기 편하게 변형시킨 것이지.

원본처럼 세상을 뒤집어 엎을 파괴력은 없겠지만

네놈이 쓰기엔 아주 적절한 무기일게다”


시현이 고개숙여 감사를 표하려 하자

헤파이스토스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내가 젊었을 적에, 아테나에게 큰 죄를 지은 적이 있지.

그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은 것이니 고마워하지 말게나”


그러고 나서 대장간의 수호신은 시현을 밀어내며 동굴 밖으로 내보냈다.


그와 함께 끌려나가는 비탈레는 시현의 손에 들린 아스트라페를 보고

신의 권능이 담긴 무기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시현의 손에 끌려 나오면서도 비탈레는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동굴 속에 갇혀 있는 노인에 대한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시현은 동굴 밖으로 나와 페르소나에게 물었다.


“이봐, 계속 페르소나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좀 그런데, 본명은 뭐야?”

“’리처드 라포트’. ‘라포트’라고 불러줘”

“그래 라포트. 미안하지만 짐칸에 타 줄래? 차가 2인승이라서”


전직 일루미나티이자 변신술사 페르소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리처드 라포트는 그렇게 짐짝 취급을 받으며 산 아래로 내려왔다.

멋진 빨간색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비탈레는 선글라스를 꺼내서 쓰며

자신의 차에 동승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자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서 이야기를 계속 해 보자고

당신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당신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화산 안에 남은 그 할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야”


시현과 라포트는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비탈레에게 어느 정도는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검은 흙으로 뒤덮인 대지를 가로지르는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빨간 스포츠카에 탄 세 사람은 비옥한 화산토 위에 만들어진

광활한 포도밭을 지나서 보이는 거대한 저택을 향해 달렸다.

아마도 아테나가 시현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을 곳.

시칠리아 마피아, 비앙코 비탈레 파밀리아의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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