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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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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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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DUMMY

93. 전쟁


시칠리아 섬 북부의 대도시, 팔레르모는 마피아들의 항쟁이 마무리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울려퍼지는 총성과 함께 엉망이 되었다.

카파블랑카의 지시를 받은 수십 명의 병사들이 난입해,

자신들이 일으킨 총격전의 현장을 수습하던 마피아들을 무참히 쏴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을 관리하던 마피아 간부, 지오반니는 급히 비탈레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마레! 팔레르모 거리의 소속을 알 수 없는 무장 세력이 들이닥치더니

우리 조직원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훈련된 외국의 용병으로 추측된다.

적에게 맞서지 말고, 남은 조직원들을 모아 도시에서 빠져나와라!]


경찰 병력이 무력화된 도시에서, 그나마 무장을 갖춘 마피아들이 빠져나가자,

카파블랑카의 병사들을 막을 자는 더 이상 팔레르모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루미나티의 병력이 시칠리아의 핵심 도시, 팔레르모에 무혈 입성했다.

병력을 이끌던 카파블랑카는 어디선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나더슈디 부인을 불러들였다.


“네에~ 카파블랑카 니임~ 왜 부르셨나요오~?”

“이제 한 시간 내로, 정부에서 보낸 진압 병력이 팔레르모에 도착한다고 한다.

우리 병사들을 마피아로 위장시켜서 정부 측 병력과 충돌을 일으키도록”


카파블랑카의 명령을 받은 나더슈디 부인이 물러가자,

카파블랑카는 시가를 한 대 꺼내 불을 붙였다.

곧 있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탈리아 반도를 남북으로 찢어놓을 동족 상잔의 비극이 말이다.


시가를 한 모금 빨아들인 뒤 길게 한숨을 뱉으니,

길다랗게 늘어난 시가 연기가 화산재로 뒤덮인 어두운 하늘에

회색빛 구름 하나를 더했다.


머지않아 에트나 산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떨어져있는 팔레르모에도 화산재가 눈처럼 소복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북쪽 해안가 지역에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 슬슬 병력을 보충할 때가 되었나?”


카파블랑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한 줌 가득 꺼냈다.

얼핏 보면 불규칙한 형태의 흰 색 도자기 구슬처럼 보이는 물건이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도자기보다는 상아와 비슷한 재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물건의 정체는 바로 짐승의 이빨이었다.


카파블랑카는 주머니에서 꺼낸 이빨을 주변의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흩뿌렸다.

그러자 그 이빨들이 스스로 땅 속으로 파고들더니,

그 자리에서 완전 무장을 한 병사 스무 명 가량이

땅바닥에 구멍을 만들며 기어나왔다.


이 병사들은 그리스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페니키아의 왕자,

‘카드모스’의 신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페니키아의 왕자였던 카드모스는 동생 ‘에우로페’가 제우스에게 납치당하자,

그녀를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운명이 가리키는 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받게 되었고,

고난 끝에 도착한 곳에서 용을 물리치고 도시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용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부하를 모두 잃게 된 카드모스는

아테나 여신의 지시에 따라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게 된다.


그렇게 용의 이빨로부터 태어난 부하들은

파종된 자들이라는 뜻의 ‘스파르토이(Σπαρτοί)’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파르토이들과 함께 ‘테베’를 건국한 카드모스는

여신, 하르모니아와 결혼하였는데,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자식인 이노와 세멜레를 시작으로,

자손 대대로 그리스 신화 속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물론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부부 역시

아레스 신의 자식인 용을 죽인 업보로 인해

용이 되어 여생을 마무리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런 카드모스의 신화를 계승하여

이번에는 카파블랑카와 일루미나티가 스파르토이를 이끌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리라.


신화 속 신들마저 수족으로 부리는 위대한 철인,

‘위버멘쉬(Übermensch)’가 지배하는 완벽한 세계.


일루미나티와 위버멘쉬에 의해 하나로 통일된 세계가

더 이상의 전쟁도, 폭력도, 갈등도, 분쟁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카파블랑카와 일루미나티가 꿈꾸는 이상향, ‘이데아’인 것이다.


현재의 이탈리아를 남과 북으로 찢어놓는 이번 전쟁이

바로 그 위대한 계획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티폰의 힘을 빌린 남이탈리아의 쿠데타였다.

그리고 이번 쿠데타가 이탈리아를 남북으로 갈라놓는 순간,

언제나 반란군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티폰은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일루미나티가 내세우는 위대한 독재자, 위버멘쉬 역시

반역의 신격을 지닌 티폰에게는 무너뜨려야 할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카파블랑카의 마음을 알고 있을 리 없는 티폰은

이탈리아의 중심 로마를 향해 그 거대한 몸뚱아리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화적 정체성에 따라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북으로, 북으로 나아가는 티폰의 모습을

카파블랑카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94. 정치


시현은 놀라운 치유력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불과 3일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이야, 의사 생활을 10년이 넘게 하고 있는데 이렇게 치유가 빠른 사람은 처음봅니다”


신기한 것을 보는 것 같은 반응을 보이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시현은 그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에트나 산에서 낙오되었던 아일라와 라포트 또한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에 의해 이틀만에 구출되어, 시현과는 다른 병실에 입원했다.

그들은 아일라의 능력 덕택에 심한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긴 시간동안 화산재 무덤 속에서 고립되어있던 탓에 탈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병원 밖으로 나선 시현은 양 팔을 하늘 위로 쭉 펴 올리며,

오랜 시간 움직이지 못했던 몸을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있는 아테나를 향해 질문했다.


“그래서 현재 티폰의 상황은 어때?”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네, 몇 시간 전, 시칠리아 북쪽 해협을 건너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했다고 하는군”


시칠리아의 에트나 산에서 몸을 일으킨 티폰은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지나는 길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본래 티폰은 신화 속에서도 폭풍에 종종 비유되고는 했다.

티폰과 같은 신으로 여겨지는 이집트 신화의 세트 신 또한 혼돈과 폭풍의 신이었다.


이탈리아의 국민들은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인해 등장한 거대한 폭풍과 더불어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카파블랑카가 이끄는 병사들은 마피아로 위장해,

정부에서 파견한 경찰 특공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 병력 2명이 사망했다.


그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확실한 무력 진압을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는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시칠리아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 같은 정부의 결정에 분노했다.

애초에 카파블랑카의 병사들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았고,

오히려 화산 폭발이라는 재난 상황에 필요한 음식과 생필품들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민심을 샀다.


이러한 상황을 전해들은 시현이 한숨을 쉬자,

옆에 있던 마리오가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래도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장미십자회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 주기로 했으니

머지않아 티폰 사태도 해결이 될 거야”

“장미십자회에서요?”

“그래, 예전에 있었던 카파블랑카의 테러 탓에 로마에 있던 본부는 초토화되었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회원들이 의견을 모으는 위원회가 있거든”


시현도 그 위원회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그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 중 한 명이 바로 볼로냐 지부의 정신적 지주, 푸코 교수라는 것도.

그러나 여전히 시현에게 위원회는 머나먼 존재였다.


“그 동안 눈도 깜짝 안하더니 이제 와서 수습하려는 모양이네요,

진작에 병력을 파견해서 카파블랑카를 막았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것도 아니었는데”


시현이 냉소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자

마리오가 다급하게 해명했다.


“장미십자회 각 지부에서 나온 대표자들이 회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만큼, 위원회라는 조직이 꽉 막힌 부분이 있긴 하지.

다른 대륙의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미국 지부나,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건에만 관여하는 교황청 소속도 있고.

특히나 규모가 큰 지부에서 한 명씩 전투요원을 파견해달라는 푸코 교수님의 의견에

영국 지부가 결사 반대를 하고 나섰거든”

“영국 지부가 전투요원 파견을 반대했다고요? 이대로 가면 유럽 전체가 위험에 빠질텐데 왜요?”


시현은 영국 지부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마리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현의 생각과는 상황이 달랐던 모양이었다.


“아니, 반대야. 영국 지부에서는 다른 지부의 관여 없이 영국 지부 소속 인원 다수로 지원 병력을 파견하겠다고 나섰대”

“네? 그건 또 뭔 생각이래요?”


시현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의외로 장미십자회 수뇌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아테나였다.


“영국 지부 녀석들의 의도는 티폰 사태를 영국에서 단독으로 해결하는 대신,

이번 사건에 의해 발생한 피해를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시칠리아에 눌러앉을 생각일걸세”


영국 지부의 주장에 대한 아테나의 해석을 따르면 시칠리아 섬은 그리스∙로마, 이집트, 히타이트, 우가리트, 메소포타미아 등등 여러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기에,

다양한 신화에서 기원한 유물을 확보하기에 유리하고,

이를 통해 지부의 영향력을 전 유럽에 퍼트리기에 용이하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계략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뛰는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위에 앉아서 펜대나 굴리는 꼴이 우습네”


옆에서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아트리체의 분노 섞인 발언이었다.

베아트리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본 시현이 그녀를 달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각 지부에서 유능한 사람들이 올 테니, 곧 티폰을 무찌를 수 있겠다 그치?”

“어휴 답답해. 너는 왜그렇게 속이 없니!”


그저 베아트리체의 기분을 풀어주려던 시현은 갑자기 베아트리체에게 혼이 났다.


“위원회 늙은이들이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니가 다쳤잖아 이 바보야!”


다행히도 베아트리체의 분노는 시현을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에는 본 적 없었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지레 겁을 집어먹었던 자신이 우스웠던 시현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뭐야, 뭐가 그리 우스워?”


베아트리체가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자,

시현이 한 가지 제안을 던졌다.


“오늘 하루, 나랑 여기저기 둘러보러 다니지 않을래?”

“뭐?”


베아트리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그러자 시현은 특유의 능청스러움을 발휘해 다시 한 번 말했다.


“데이트 하러 가자고, 나랑”


베아트리체가 잠시 굳어 있다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두 남녀의 대화를 옆에서 고스란히 듣게 된 마리오는 시현의 정수리에 꿀밤을 먹였다.


“이 새끼가 감히 내가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그딴 망발을 지껄여?!”


그래도 가볍게 꿀밤 한 방으로 넘어간 것은 마리오도 내심 시현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정수리에 불룩하게 혹이 솟아오른 시현을 바라보며 베아트리체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비탈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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