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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DUMMY

99. 기사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 두 명의 여자친구가 생겨버린 시현.

그는 두 애인 중 하나인 베아트리체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아일라와 라포트가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현은 병실 문 앞에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들어가서 아버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설마 우리 아빠 앞에서 두 명과 동시에 연애하게 되었다고 곧이곧대로 말하려고 했어?

그냥 아무일도 없었던 척 해야지 뭐 어쩌겠어”


시현과 베아트리체의 사이에 대해서, 그리고 비탈레가 끼어들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아일라의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안에서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당신 누구야?”

“기사단에서 왔습니다. 비앙코 비탈레 씨, 당신은 저희 바티칸에 반드시 필요한 분입니다. 저희와 함께 갑시다”


비탈레를 데리고 가겠다는 말에 시현이 참지 못하고 병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쾅!


“지금 어디서 누굴 데려가겠다는 소리야!”


병상에 누워 있는 아일라와 라포트의 주위에 둘러앉은 채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시현을 향했다.

아테나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고, 마리오와 비탈레, 그리고 모르는 남자 하나가 있었다.


“아 반갑습니다. 이시현씨 되시죠? 꼭 뵙고 싶었습니다. 장미십자회 바티칸 지부, ‘마르코 체사레’입니다. 편하게 체사레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시현은 손 내밀며 인사를 하는 상대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머리를 깔끔하게 포마드로 정리하고 안경을 쓴 차분한 분위기의 미남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비탈레는 해맑게 시현에게 달려와 말했다.


“귀염둥이! 나 스카우트하러 오셨대. 이제 나도 장미십자회 되는건가?”


비탈레가 자신에게 들어온 스카웃 제의에 기뻐하며 자랑하는 것을 보고서야

시현은 상대에게 괜히 날을 세울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마리오가 체사레를 대신해서 시현에게 설명을 진행했다.


체사레 씨는 장미십자회 바티칸 지부, 통칭 ‘기사단’에서

이번 티폰 사태 해결을 위해 파견 보낸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비탈레를 발견한 그는, 비탈레가 기사단에 필요한 인재라고 확신하고,

그녀를 영입하기위해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시현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체사레에게 직접 물어봤다.


“그래서 비탈레가 기사단에 필요한 인재라고 확신한 이유가 뭐죠?”

“저희 기사단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시현은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기사단은 바티칸 지부의 별명으로,

장미십자회의 총의 보다도 교황청의 의사를 우선시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딱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체사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사단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기사단은 기독교와 교황청의 명령을 따르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다른 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신들의 유물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시현은 의아함을 느꼈다.

신은 오로지 야훼 하나뿐이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유물 없이 신화 속 존재들과 싸운다는 것인가?

체사레는 바로 그 해법을 들려주었다.


“그래서 저희가 사용하는 유물은 기독교 성인들의 유해와 성유물 뿐입니다.

이러한 성유물들은 그 것을 사용할 주인을 스스로 선택하죠”

“그 선택은 예언의 형태로 저희 기사단에게 내려옵니다”


체사레의 동그란 안경알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기사단에 내려온 성유물의 예언에 대해 말하는 체사레의 모습은 마치 광신도 같았다.


“이번 예언에는 시칠리아에 나타난 뱀에 맞설 여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기사를 만나게 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요.

그 예언에 의하면 비앙코 비탈레 씨가 바로 성유물의 선택을 받으신 분입니다”


시현은 비탈레를 데려가려고 하는 체사레에 대해 왠지 모를 꺼림칙함을 느꼈다.

그런 시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탈레는 자신도 장미십자회에 정식으로 입단할 수 있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듯 했다.

시현은 비탈레가 어째서 장미십자회에 들고 싶어하는 지 궁금했다.


“비탈레 씨는 어째서 장미십자회에 들어오고 싶으신 건가요?”

“이봐 귀염둥이, 내가 장미십자회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너를 여러모로 도와줄 수 있지 않겠어?”


시현은 비탈레의 발상에 놀라 이마를 짚었다.

시현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비탈레의 마음만은 갸륵하였으나,


“그럼 그냥 우리 볼로냐 지부에 들어오면 되는 거 아니야?”


비탈레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깨달음의 탄성을 질렀다.


“아~! 그럼 날 볼로냐 지부에 받아 줄 수 있어?”

“그건 일단 나중 일로 미뤄두자고”


시현은 비탈레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며 체사레에게 그녀의 의견을 대신 전달했다.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비탈레 씨는 바티칸 보다는 볼로냐행을 원하시는군요”

“음, 뭐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중이 된다면 아마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체사레는 몸을 돌려 밖으로 사라졌다.

시현은 떠나는 체사레를 배웅하지 않았다.

대신, 마리오에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다.

마리오는 왠지 위압감이 넘치는 시현의 추궁에,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몰라, 저 사람도 비탈레 씨가 데리고 온 거야”


시현이 시선을 자신의 등에 붙어 있는 비탈레에게 돌리자 비탈레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등에서 떨어졌다.


“뭐, 아까 전에 성당에 잠깐 들어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이었어.

그리고 말 몇 마디 나누고 헤어진 게 끝.

이 병원에 와서 다시 만나서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시현은 비탈레의 말을 듣고 수상쩍은 부분을 느꼈다.

성당에서 만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비탈레를 미행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탈레는 들뜬 기분으로 마리오에게 물었다.


“마리오 씨, 저 장미십자회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저를 받아주실 건가요?”

“어··· 이번 일이 끝난다면 교수님께 말씀드려서 들어올 수 있게끔 노력해 볼게”


노력해 보겠다는 마리오의 말에 비탈레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오른다.

그런 비탈레에게 시현이 찬물을 끼얹었다.


“그런데 우리 장미십자회는 따지자면 학자들 모임인데, 비탈레 씨 공부는 좀 하시나요?”


시현의 무심한 발언에 비탈레가 차갑게 굳어버렸다.


“나··· 장미십자회에 들어가려면 공부해야돼···?”


공부는 자신이 없는 비탈레였다.


100. 해적선


시현은 이 자리에 없는 아테나를 찾았다.


“마리오 씨, 혹시 아테나 님은 어디 가셨나요?”

“아, ‘기사단’에 소속된 녀석들은 다들 야훼 외의 신은 악마로 여기고 토벌하려 들어서 말이야. 여신님은 근처 어딘가에 숨어 계실거다.”


시현이 아테나를 찾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테나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낱 인간이 두려워 몸을 피한 것에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것은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다. 내 힘을 모두 되찾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복수하리라”


잔뜩 뿔이 난 듯한 모습이 마치 하악질하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마리오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 든 마리오의 표정이 곧 순식간에 굳어졌다.

전화가 끊어지자, 마리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국 측에서 보낸 사람이 곧 온다는데, 상대가 좋지 않다”

“상대가 누구인가요?”


시현의 물음에 마리오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해적왕, ‘프란시스 드레이크’”

“제가 아는 그 드레이크 선장인가요? 칼레 해전에서 무적함대를 박살내버린?”

“그럴 리가 있냐? 이 놈은 드레이크 선장을 너무 좋아해서 머리가 홱 돌아버린 미친놈이야”

“그 정도인가요?”


마리오는 잠시 숨을 고른 뒤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미친놈은 진짜로 자신이 영국 여왕의 허가를 받았다는 망상에 빠져서 해적질을 한다니까?

같은 장미십자회에서 운반 중인 유물도 습격해서 훔쳐간다고.

이게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야!

우리 회사의 화물을 실은 배도 몇 차례 당해서 영국 지부에 항의를 했는데,

드레이크 선장은 영국 지부의 지시도 들어먹지를 않는 망나니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마리오의 불평불만을 들어 보니 영국에서 그런 망나니를 왜 보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시현이 아테나를 바라보자 아테나도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아테나는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애초에 이번 사건을 단독으로 해결해 시칠리아를 식민지로 삼으려던 게 영국 지부 아닌가?

아마 드레이크 선장을 통해 시칠리아 인근의 제해권을 가져오려는 심산이지 않을까 하네”


아테나의 지혜를 빌려도 드레이크 선장을 파견한 영국 지부의 속내를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볼로냐 지부 일행은 드레이크 선장과 만나기로 이야기했던 약속장소,

‘마리나 디 라구사’로 향했다.


‘마리나 디 라구사’는 라구사 남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 마을이다.

특별한 관광지도 없고, 큰 호텔이나, 유명한 맛집도 그다지 없어서 관광객은 한 명도 발견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시골 마을이었다.

그나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다른 지역들과 달리, 흰 색 위주의 밝은 색으로 칠해진 건물들과 탁 트인 남쪽 항구의 모습이었다.


평상시에는 관광객 한 명 없이 그저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을 이 도시는,

오늘따라 항구를 가득 메운 사람들로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이지?”

“뭔가 사건의 냄새가 나는데?”


그러나 소란스러운 마을 주민들 틈바구니로 끼어들어간 일행들은

곧이어 눈 앞에 보이는 광경에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이야···”

“이게 무슨···”


그 와중에 마리오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진짜 미친놈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정도까지 미친 정신병자인줄은 내가 몰랐지 어휴···”


일행이 탄식을 내뱉게 한 것의 정체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 한 척이었다.

다만 그 배의 모습은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한 17세기풍의 대형 범선이었다.

21세기의 어느 날, 어느 시골 마을에 등장한 대형 범선은 확실히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당길 만한 대형 이슈였다.

그래서 이런 정신나간 배의 주인이 누구냐,

그 것은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뻔하디 뻔한 일이었다.


“크하하하하! 거기서 우물쭈물하지 말고 어서 올라타게나!”


딱 봐도 제 정신은 아니겠구나 싶은 빅토리아 시대 옷차림의 대머리 아저씨가

어서 배에 타라며 손짓했다.

벌어진 입 안으로 앞니 하나가 빠진 것이 보였다.


시현, 마리오, 베아트리체, 비탈레, 그리고 아테나까지, 다섯으로 이루어진 볼로냐 지부 일행은

자칭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의 호의를 받아들여 낡은 범선 위에 올라탔다.

대머리 해적선장은 앞니가 하나 빠져 뻥 뚫린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환영했다.


“크헤헤! 나의 배, ‘골든 하인드 호’에 어서오시게! 크하하!”

“아, 예에 반갑습니다, 볼로냐 지부의 마리오 루소입니다. 드레이크 경”


마리오는 한 쪽 손을 가슴에 얹은 뒤,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드레이크 선장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해포석 파이프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크하하하, 오랜만에 손님을 태웠으니 ’골든 하인드 호’의 출항을 보여주어야겠군. 크헤헤헤!”


그리고 드레이크 선장이 주문을 외우자, 배가 흔들리더니 스스로 바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출항이다!!! 크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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