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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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po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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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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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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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DUMMY

91. 폼페이


유럽 최대의 화산이 에트나 화산이라면,

이탈리아 본토 최대의 화산은 그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이다.


이 베수비오 화산은 서기 79년, 대규모 분화를 일으키며

인근에 있던 도시 하나를 통째로 화산재 밑에 매장했다.

그 도시는 이름하야 비극의 도시 ‘폼페이’.

로마 건국 이전부터 존재했던, 그리스인들의 식민지로써

이집트인, 인도인, 유대인 등이 거주하며 자신들의 종교를 퍼트리는

세계 여러 신화의 각축장이었다.


이후, 로마에 통합된 폼페이의 주류 신앙은 점차 로마 신화로 변화했는데,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서기 79년 8월 24일,

불카누스 신을 모시는 축제 날,

화산에 대장간을 차리는 불카누스 신의 영향이었을까?

폼페이에서 불과 10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베수비오 화산이 대규모 분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 때 베수비오 화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화산쇄설류에 휩쓸린 폼페이 시는

3m 두께의 화산재에 뒤덮여 도시의 주민들과 함께 생매장당해 멸망했고,

그 이후로 1500년간 땅 밑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유럽 최대의 화산인 에트나 산의 대규모 분화가 일어나며,

가장 가까이 있는 도시인 카타니아 시 또한

일찍이 폼페이가 맞이했던 최후를 똑같이 마주하게 되었다.


다행히 도시의 주민들은 평상시에도 지역 주민들과 상생의 노선을 걸어왔던

지역 마피아 조직, 비탈레 파밀리아의 재빠른 대처로

화산쇄설류가 도시를 덮쳐오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런 비탈레 파밀리아의 보스, 비탈레는

여전히 격렬하게 용암과 화산재를 뿜어올리는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무언가에 눈을 크게 떴다.


고민에 빠져 있던 비탈레는 파밀리아의 간부들을 불러모은 후 말했다.


“시민들의 대피 행렬을 인솔하는 것은 너희에게 맡기겠다”

“코마레, 저희를 두고 혼자서 어딜 가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간부들의 질문에 비탈레는 씩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의리를 지키러 가는 거야”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마피아들은 자신들의 보스를 붙잡을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비탈레는 자신의 빨간 스포츠카에 올라타 서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방금 전 목격한 장면,

에트나 산 꼭대기 언저리에서 사선으로 추락하는 부엉이가 착지할 지점을 향해서.


도시에서 빠져나오는 피난 행렬을 거슬러

카타니아 시 방향으로 한참을 질주하는 비탈레의 눈에

피난 행렬의 끝이 보일 때쯤,

비탈레의 멋진 빨간 스포츠카는 도로를 뒤덮은 화산재에 쭈우욱 미끄러졌다.

그러자 비탈레는 차에서 내려 카타니아를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도시가 화산재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자,

비탈레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함께 했던 모든 추억들이 담긴 도시의

황폐화된 폐허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두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내는 손등에

회색의 화산재 얼룩이 묻어나왔다.


비탈레는 위험을 무릅쓰고 카타니아 시의 시가지였던 곳으로 뛰어들었다.


화산쇄설류라는 이름의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도시는,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화산재 더미로 뒤덮였다.


비탈레는 아직 식지 않은 섭씨 100도 이상의 뜨거운 화산재의 늪을 통과하기 위해서

카타니아 소방서의 소방장비를 강도질했다.

그녀는 아무도 없이 텅 빈 소방서에서 방열복을 훔치면서 혼잣말로 용서를 구했다.


“뭐 어찌됐든 사람 구하는데 쓰는 거니까 우리 야박하게 굴지 맙시다”


용서를 구한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였으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나름 범죄 조직 두목인 비탈레 또한

이런 가벼운 범죄행각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드디어 방열복까지 챙겨입고 화산재로 뒤덮인 카타니아에 진입했다.

방열복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나아가면서도,

무릎 높이까지 쌓인 화산재에 발이 푹푹 빠지는 탓에

나아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현 일행이 위험에 처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비탈레는 초초하게 혼잣말을 되뇌었다.


“자··· 이쯤 하면 나올 때가 됐잖아, 귀염둥이, 어디에 숨어 있는거야?”


그렇게 30분쯤 지나, 카타니아 시가지 한 복판에 있는 고대 로마 시절의 원형극장 유적에서,

그토록 찾았던 부엉이, 글라우쿠스를 마주쳤다.


“이봐! 부엉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비탈레를 발견한 글라우쿠스는

그녀를 향해 콩콩 뛰어오더니 반갑게 부리를 부딪혀 딱딱 소리를 내며 인사했다.


“그래 그래, 나도 반갑다. 그런데 네 주인은 어디에 있는 거니?”


비탈레가 시현의 행방을 묻자, 부엉이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한 쪽 날개를 들어 근처에 있는 건물 잔해를 가리켰다.

화산 쇄설류에 휩쓸려 기둥이 무너진 건물은

테이블과 파라솔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 식당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런데 그 폭삭 주저앉은 잔해 무더기 위에 사람 비스무리한 형태의 회색 물체가 몇 개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 민가 했으나,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살펴보니,

사람 여럿이 기절한 상태로 화산재에 뒤덮여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탈레는 발목이 푹푹 잠기는 화산재 위를 아장아장 걸어서 그 사람들에게 향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굴된 화석처럼 보였다.

겉에 쌓여 있는 화산채를 손으로 대충 걷어내자 보이는 모습은,

상처와 화상 자국으로 뒤덮인 시현의 모습이었다.


92. 패잔병


시현은 어디선가 들어오는 태양빛에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아직까지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피로에 괴로워하며 상체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전신에서 느껴지는 불타는 듯한 작열통에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윽!!”

“어? 시현! 괜찮으니까 진정해, 일단 누워 있어!”


흐릿한 시야에 비치는 여성의 실루엣이 당황하며 다른 사람을 부르러 간 사이,

시현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 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뭔가에 막힌 듯 먹먹하게 들렸다.

왜 그런지 살펴보니 자신의 입에 산소호흡기가 씌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시현은 자신이 티폰에게 패배하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로 치료를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기절할 것 같은 통증을 참아 내며 몸을 일으키자,

시현의 몸 전체에 흰 색의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머지않아 의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비탈레와 함께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 사람이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흰 가운을 입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흰 가운은 온통 회색빛 화산재와 붉은 피로 얼룩이 져 있었다.


의사는 시현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불을 비추는가 하면 손을 움직이게 시켜보기도 하고,

네, 아니오 등의 간단한 말을 시켜보기도 했다.

비탈레는 시현의 몸 상태가 걱정되어 안절부절하며 의사의 진단 결과만을 기다렸다.

의사는 한참동안 머리를 좌 우로 기울이며 생각에 잠겨 있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긴 했는데··· 쓰읍,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그 외에는 별 문제가 없네요”


비탈레가 크게 안도하며 의사의 손을 잡고 연신 감사의 말을 주절댔다.

의사는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걱정의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그래도 전신 화상은 어느 정도 흉터가 남을 테고, 호흡기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일주일만 입원해서 상태를 살피고, 별 문제가 안생기면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의사는 밖으로 나가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하고 혼잣말과 함께 떠나갔다.


시현의 몸 상태에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에 누구보다 기뻐하던 비탈레는

시현의 병상 옆에 의자 하나를 가져와서 앉았다.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온몸이 새카맣게 타서 죽은 줄만 알았는데, 억지로 차에 태워서 데리고 오는 길에 점점 치유가 되는게 보이더라고! 역시 그것도 뭔가 신의 권능인가? 장미십자회는 대단하네!”

“잠깐, 비탈레 씨, 그래서 여기는 어디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어?

여신님은? 베아트리체는? 아일라는? 마리오 씨는? 라포트는 어디에 있어?”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비탈레의 말을 중간에 끊고 다른 사람들의 행방을 물었더니,

비탈레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들 멀쩡한거지? 병원에 입원한 건 나 하나뿐인거지?”


그러나 시현의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병실 내부를 맴돌 뿐이었다.

비탈레는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이윽고, 아테나가 시현의 병실에 뛰어들어왔다.


“시현! 드디어 깨어났구나!”


아테나가 시현의 병상에 뛰어들었다.


“크헉!!”

“나의 가호를 받은 영웅이 이 정도 상처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거라!”


아테나의 말 덕분에, 시현은 티폰에게 당했을 때만 하더라도

죽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자신이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어··· 여신님, 혹시 제 부상이 이렇게 빨리 나은 게 그 가호 덕분인가요?”

“그래. 그리스 신화 속 나의 가호를 받는 영웅들은,

평범한 인간의 육신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을 상대했네.

그런 괴물들의 앞에 단신으로 맞서야 하는데, 이 정도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시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재생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시현은 자신이 기절해 있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인지 아테나의 설명을 들었다.


“자네가 제우스의 번개로 티폰을 공격하자, 티폰이 분노를 표출함과 동시에 분화구에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암석이 쏟아져 나왔네···”


그렇게 몰려드는 화산 쇄설류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시현과 마리오를 구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일라와 라포트가 화산재에 파묻히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화산재 구름을 헤치고 날아다니는 글라우쿠스의 등 위에서

아일라와 라포트를 구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맴돌았으나,

결국에는 날아드는 화산탄을 피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글라우쿠스와 함께 카타니아 시에 불시착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달려온 비탈레 덕에 살아나올 수 있었으나,

마리오와 베아트리체는 낙오된 아일라와 라포트를 찾기 위해 글라우쿠스를 타고 에트나 산으로 향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티폰의 움직임을 봤을 때, 수색 작업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걸세”


아테나의 말에 따르면 에트나 산의 분화는 잠잠해졌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시현은 티폰이 시현 일행을 격퇴한 이후, 티폰은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지 않고 잠자코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테나가 커튼을 확 걷으며 한 마디를 덧붙이기 전까지는.


“티폰이 시칠리아 북쪽 해안을 향해 이동하고 있네,

지나가는 길에 있는 모든 도시와 시설물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면서 말이지”


아테나가 열어젖힌 커튼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동쪽에 뜬 아침 해와 대조적으로

시커먼 화산재 구름에 뒤덮인 북쪽 하늘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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