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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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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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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DUMMY

67. 투항


시현 일행은 글라우쿠스를 타고 다른 이들보다 먼저 숙소에 도착했다.

시현이 글라우쿠스의 등에서 내리자 마자 옆에서 힘 없이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다.


비탈레였다.


시현은 서둘러 쓰러지는 비탈레의 한 팔을 붙잡아 부축했다.

비탈레는 방금 전,

조직의 콘실리에리 자리에 있는 카루아나의 배신을 당해 조직을 빼앗겼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마피아 조직을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 다시 부흥시키려던 그녀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다.


“안돼··· 아버지가 이끌어 온 조직이··· 수백명의 가족들이···”

“비탈레, 충격을 받은 것은 알겠으나 지금은 카루아나에 대한 정보가 먼저일세.

그는 일루미나티와 관련된 자임이 틀림없네.

카루아나가 원래부터 일루미나티 소속으로 파밀리아에 잠입해있던 것인지,

혹은 어떤 이유로 일루미나티와 손을 잡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인지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가?”


충격받아 주저앉은 비탈레에게 아테나가 강압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비탈레는 짐작이 가는 게 없는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비탈레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아테나는

이번에는 라포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페르소나, 자네가 거짓으로 우리에게 투항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겠네.

그러나 여전히 자네는 우리에게 위험요소일세.

사용하던 유물인 신살의 무기를 빼앗긴 자네가

어떻게 일루미나티의 눈을 피해 우리에게 접선할 수 있었는지

말해주기 전에는 자네를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네”


지난 밤, 시현의 꿈 속에 등장해 지도를 건네주었던 라포트.

그가 어떤 수단을 사용해 그런 접선 방식을 취할 수 있었는지는

시현에게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서야

라포트는 입을 열었다.


“그 나뭇가지가 신의 힘이 담긴 유물인 것은 맞지만,

내가 그것을 잃었다고 해서 신의 권능을 모두 잃은 건 아니지”

“그게 무슨 뜻이지?”


시현이 캐묻자 라포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라면 잘 알텐데?”

“거기까지!”


라포트의 말을 제지한 것은 아테나였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겠네.

굳이 이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시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들려오는 자동차의 우렁찬 배기음에

시선을 돌렸다.


마리오와 두 여성의 도착이었다.


차에서 내린 마리오는 자신의 별장 마당에 있는 낯선 사람 두 명의 모습에 놀란 눈치였다.


“시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말하자면 길긴 한데요···”


시현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지난 밤 꿈에서 나타난 라포트,

에트나 산으로 가기 위해 만난 비탈레,

동굴 속에서 시현을 기다리던 라포트와,

필호가 죽지 않았고, 우리를 배신했다는 이야기,

티폰이 풀려나는 것을 막겠다며 남은 헤파이스토스,

비탈레 파밀리아의 저택에서 만난 카루아나,

카루아나의 쿠데타를 피해 도망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 길지 않았던 시간 동안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대해

말하는 동안, 마리오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마침내 시현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리오는 우선적으로 비탈레를 향해 다가갔다.


“비탈레라고 했던가?”


비탈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오는 그런 비탈레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리는 너희 조직의 배신자와 협력하고 있는 일루미나티와 적대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자네가 원한다면 그들을 몰아내고 조직에 복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너희 조직에 대해서,

배신자, 카루아나에 대해서,

그리고 에트나 산에 대해서”


비탈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리오의 말에 귀기울이다가,

마지막에 덧붙인 한 마디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에트나 산에 대해서는 왜죠?”


마리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에트나 화산은 갑작스레 활발한 화산 활동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지.

우리는 그 것이 신화 속 괴물,

티폰이 봉인에서 풀려나려는 조짐으로 보고 이 섬으로 파견을 왔다.

반대로 일루미나티는 티폰의 봉인을 풀어 버리기 위해서 이 섬에 왔을 가능성이 있어.

아마 너희 조직을 장악하려는 시도 또한 그 수작질의 일환이겠지”

“그래서 그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비탈레는 드디어 마리오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저 또한 여러분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어요.

대신 여러분도 배신자 카루아나를 향한 벤데타(vendetta, 복수)를 도와주셔야 해요”

“물론이지”


마리오는 비탈레가 내민 손을 잡고 위 아래로 세게 흔들었다.

비탈레 또한 마리오의 거친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비밀결사와 마피아가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후 마리오가 향한 곳은 라포트의 앞이었다.


“페르소나라고 했던가?”

“페르소나는 일루미나티 시절의 별명이고,

지금은 본명인 라포트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마리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신님과 시현이가 너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나도 그 의견에 따를 생각이다.

다만, 이 임무의 리더를 맡은 사람으로서

너에게 물어보아야 하는 게 있다”

“어떤 질문이죠?”


배신자에 대한 불신과 편견 가득한 시선을 예상하던 라포트를 향해 날아온 질문은 의외의 것이었다.


“뭘 할 수 있지?”

“예?”

“이번 임무에서는 일루미나티와의 충돌

혹은 봉인에서 풀려난 티폰과의 전투가 예상된다.

그러한 전투 국면에 돌입했을 때,

너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너를 포박해서

장미십자회 본부로 보낼 수 밖에 없어.

제 한 몸 지키지도 못하는 반푼이를 보호하면서 싸울만큼

여유가 넘치지는 않거든”


라포트는 당황했다.

그는 이전에 몸담았던 조직을 배신하고 상대 조직에 투항하려는 신세였다.

기나긴 기간동안 서로를 적대했던 두 비밀결사였던 만큼,

그 사이 수많은 회유와 배신이 있어왔다.

라포트가 일루미나티에 몸담고 있던 동안,

그들이 포로를 어떻게 다루는지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일루미나티가 장미십자회의 포로들을 다루는 모습은

좋게 말해도 관대하다고 볼 수 없었다.

포박과 감금은 기본으로,

협박과 고문을 하기도 했다.

때때로는 유물의 권능을 활용해서 정보를 뽑아내고는

부작용으로 미쳐버린 포로를 짐승들에게 먹이로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루미나티를 배신하고 장미십자회에 투항한 라포트에게

장미십자회의 인원들이 베푼 관용은

라포트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그는 무엇이 두려워서 일루미나티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라포트는 일루미나티 출신의 도망자가 아니었다.

아직 장미십자회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협력해 원래 소속되어있던 조직에게 칼을 겨누는

일루미나티의 적이 되리라.


그렇게 결심한 라포트는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다물어져있던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입 안의 침이 말라 텁텁한 느낌이 들었다.


68. 입이 꿰매어진 신


이것은 라포트의 이야기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일루미나티의 연구시설에서의 기억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있는 좁아터진 방에는

대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 네 명이 한 방에 갇혀 살아갔다.


문에는 자물쇠가 달려 밖에서만 열 수 있었고,

창살이 달린 문을 통해 하루에 두 번

딱딱한 빵과 묽은 스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그 어린아이들 중 하나였다.

같은 방에 갇혀있던 다른 소년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몇 명이 죽어나갔고,

죽은 아이들의 빈 자리는 곧 새로운 아이로 채워졌다.


그런 아이들의 일과는 단순했다.

매일같이 세계 각국의 신화가 적힌 교육자료를 암기하고

선생이라고 하는 자들이 내는 시험지에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적었다.

만점을 맞는다고 상이 주어지는 일은 없었으나,

틀린 문제가 있으면 틀리는 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중간에 들어왔던 어떤 아이는 매 맞은 자리가 썩어 문드러져서

시설 관리자들에게 끌려간 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성적이 특히 좋은 아이들을 선별해 지상으로 데리고 나갔다.

지상으로 올라갔던 아이들은 다시는 지하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하에 갇혀있는 아이들은 매번 아이들이 지상으로 나갈 때마다

선망의 눈길을 보내며 수군거렸다.

바깥 세상에 대한 여러 소문들이 퍼졌다.


‘밖으로 나가면 굶주릴 걱정 없이 풍족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더라.’

‘바깥에는 봄이 오면 꽃이 피는데, 그것이 매우 아름답다더라’

‘오늘 같은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는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소년 또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지상으로 올라갈 만큼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식의 문제를 냈다.

이전까지의 문제는 그림을 보고 어떤 문화권의 물건인지 맞추거나

서로 다른 신화 사이의 유사성을 설명하라는 서술형 문제였다.


그러나 그 날만큼은 이전에 본 적 없는 문제가 나왔다.

문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 살아있을 것이면서도,

눈 깜짝할 새 태어났다가 수명이 다해 죽으며,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지만,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수많은 보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으나

그중 어느 하나도 그의 소유인 것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작으나,

멀리서 비춰보면 커다란 것.

그것의 이름을 적으라.


그 날, 그 문제의 정답을 적은 아이는 한 명도 없었고,

모든 아이는 매를 맞고 다시 방 안에 갇혀야 했다.


다음 날, 선생들은 같은 문제를 가져왔다.


수많은 아이들이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정답을 알아낸 아이는 단 한 명이었다.

그 아이는 정답을 제출한 즉시 지상으로 끌려갔다.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보았던 지상의 모습은 너무나도 눈부셨다.

회색빛 콘크리트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교도소나 다름없는 곳이었지만,

시설 밖의 그 어떤 곳도 알지 못하는 소년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하늘과 바깥의 신선한 공기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었다.

푸른 하늘에 넋을 빼앗겨 멍 하니 서 있던 것도 잠시,

선생들은 소년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고는 구석에 있는 어떤 방에 내던지듯이 밀어넣었다.


방 안에는 정체불명의 바윗덩어리가 있었다.

윗면이 납작한 형태로, 테이블과 비슷한 용도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은 유물이었지만,

회색빛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에 있는

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도,

그 바위의 옆면에 양각된 신의 모습은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듯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소년을 방 안으로 내던진 선생은 말했다.


“그 조각에 새겨진 신의 이름을 맞춰 보거라”


그 말을 끝으로 소년은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

소년은 앞으로 다가가 양각된 신의 형상을 바라봤다.

투박한 형상으로 조각된 신의 모습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위엄 넘치는 신의 얼굴 한복판,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실로 꿰맨 듯 X자로 매듭지어진 모습이 새겨져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문득 조각된 신의 모습이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갇혀 살아가는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그런 신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껴 무심코 그 조각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앗! 뜨거!”


신의 형상이 조각된 부분이 마치 불처럼 뜨거웠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향해 말을 걸었다.


“너도 나처럼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나”


문득 소년은 지하에서 선생이 냈던 문제를 떠올렸다.

수많은 아이들 중, 자신만이 정답을 알아낸 문제,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세상이 끝나는 순간까지 살아있을 것이면서도,

눈 깜짝할 새 태어났다가 수명이 다해 죽으며,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지만,

무엇이든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수많은 보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으나

그중 어느 하나도 그의 소유인 것은 없으며

가까이서 보면 작으나,

멀리서 비춰보면 커다란 것’


소년은 양각된 신의 수많은 이름 중 하나를 불렀다.


“불의 신, 로키”


소년이 신의 이름을 부르자,

입이 꿰매어진 신이 나타나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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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24.08.20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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