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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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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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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61. 카타니아


유럽 최대의 화산, 에트나 산.

장미십자회 일행은 마리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에트나 산이 위치한,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 시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 와중에 조수석에 탑승한 시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전날 밤,

꿈에서 만난 남자와 나눈 대화가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우린 분명히 서로 만난 적이 있다’

‘필호와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

‘종이에 적힌 장소로 와라’


꿈 속의 남자에게 받았던 종이는 에트나 산의 지도.

그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동굴 안에 있음, 혼자서 찾아올 것>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면 동굴을 무너뜨리겠다>


시현은 다른 일행을 어떻게 따돌리고

지도에 표시된 지점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꿈 속에서 만난 남자를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필호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는 이야기에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상태가 아니었다.


튀르키예 파견 임무 당시,

상황이 종료된 아타튀르크 댐에서는

필호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호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구조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시현에게는

한 줄기 동아줄과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더니,

어느새 자동차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달라졌다.

도로 양옆으로 늘어져 있던 포도밭은 등 뒤로 사라지고,

거무스름한 화산토에 뒤덮인 지대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런 검은 땅 건너편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보였다.

유럽 대륙에서 가장 높은 화산,

에트나 산이었다.


“원래는 저 봉우리 윗부분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는데 다 녹은 걸 보니,

화산활동이 활발해졌다는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이로구나”


마리오가 감상을 말했다.


그런 에트나 산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

카타니아 시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차에서 내렸다.


새하얀 대리석이나,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서

일행이 도착한 카타니아 시는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어두운 잿빛을 띠는 화산석으로 이루어진 건축물과

드문드문 있는 가로수 외에는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살풍경한 도시 전경은 너무나도 황량하고 공허해 보였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테나가 물었다.

시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견을 냈다.


“각자 흩어져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어떨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주변에서 수상한 인물이나 특이 현상을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탐문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으로 하자”


시현이 낸 의견에 마리오가 수긍해 준 덕분에

시현은 다른 사람을 따돌릴 절호의 찬스를 얻었다.


이제 혼자서 약속장소로 향하기 위해서는

아테나를 따돌리는 것만 남았다.

아테나는 시현과 계약을 맺은 덕분에,

시현이 어디에 있든 그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시현은 아테나를 설득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다른 사람들과 헤어지고,

시현은 아테나와 함께 탐문을 시작했다.


우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아테나는 영문도 모르고 일단 식당이라는 말에 좋다고 따라왔다.


시현은 테이블에 앉아 일단 아무 음식이나 시켰다.

점원이 시현의 테이블에 주문한 음식을 내려놓을 때,

시현은 점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방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았나요?

폭풍이 일어나 피해를 입혔다거나,

이상한 물건이 발견되었거나,

겨울잠을 자고 있어야 할 뱀이 땅 위로 올라왔다거나,

그런 이상한 일들 말이에요”


그러자 점원은 시현의 유창한 이탈리아어에 놀라면서도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얼마 전에 에트나 산 근처에 폭풍이 쓸고 지나가서

비탈레 씨의 포도밭 일부를 무너뜨렸다고 들었어요.

겨울잠을 자는 뱀들이 기어나오는 건,

화산이 분화하기 전에는 종종 있는 일이구요”

“그 비탈레 씨라고 하는 분은 아는 분인가요?”


시현이 폭풍의 피해를 입었다는 비탈레 씨에 대해 묻자

점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비탈레 씨는 이 근방에서 유명한 마피아 두목이에요.

어디 가서 함부로 비탈레 씨에 대해 묻고 다니면

쥐도새도 모르게 칼을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네, 조심할게요. 감사합니다”


시현은 친절한 점원의 말에 감사를 표하며

팁을 두둑하게 쥐여줬다.

점원은 팁으로 건넨 지폐의 액수를 확인하더니

신이 나서는 돌아갔다.

시현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아테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이런 짤막한 소문으로는 제대로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음, 그렇긴 하군”

“그래서 말인데··· 에트나 산으로 직접 가서 조사해볼까요?”


아테나는 남은 음식을 한 입에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현과 아테나는 다른 일행과 떨어져 에트나 산으로 향했다.


62. 마피아


시현과 아테나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서

아테나의 권능을 사용했다.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아테나의 종복이자

거대한 부엉이, 글라우쿠스.

튀르키예에서 일루얀카를 상대할 때 이후

오랜만에 불러낸 글라우쿠스는

아테나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아테나는 글라우쿠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현에게 말했다.


“시현, 자네도 글라우쿠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게.

이렇게 가끔씩 불러낼 때라도 조금씩 친해져야

자네의 명령에 잘 따라 줄 걸세”


아테나의 말에 시현도 따라서 글라우쿠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겉보기에는 뻣뻣할 것 같았던 부엉이의 깃털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부드러움을 갖고 있었다.

폭신폭신 부들부들.

시현이 그 감촉을 즐기며 쓰다듬고 있자

글라우쿠스도 시현의 몸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시현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다.


“이것 보게, 글라우쿠스도 자네를 마음에 들어 하는구만”

“하하, 이녀석 보기보다 착하고 얌전하네요”

“그래,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할까?”


글라우쿠스의 넓은 등에 올라탄 아테나가 손을 내밀어

시현이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비행 준비를 마치자

글라우쿠스는 거대한 날개를 소리없이 움직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땅 위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새카만 대지 위에 세워진

잿빛의 도시, 카타니아 시는

마치 검은 사막 위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와 같은 모습이었다.

저 멀리 있어도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에트나 산은

지금도 분화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에트나 산을 향해 날아가는 글라우쿠스의 등 위에서

시현은 아테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테나 님, 혹시 필호 삼촌이 살아있을 수도 있을까요?”

“흐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살아있다고 해도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우리가 구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죠”

“자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로구만”


시현은 한 차례 침을 꼴깍 삼킨 뒤 말을 이어갔다.


“어젯밤에, 필호 삼촌에 대해 할 말이 있다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적이었나?”

“모르겠어요. 상대는 저와 만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사람을 만난 기억이 없거든요”


아테나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러 갈 생각인가?”

“네, 의심스럽긴 하지만 필호 삼촌에 대한 단서가 있다면

포기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말인데, 아테나 님께 부탁할 게 있어요”

“어떤 부탁을 하려고 그러나?”


시현은 이제서야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 사람이 말하길,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저 혼자서 찾아오라고 했어요”

“안돼. 분명히 함정일 걸세”

“그렇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사람을 만나러 가서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른 일행들과 함께 저를 데리러 와 주세요”

“나는 동의할 수 없네”

“저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이런 부탁을 드리는 거에요.

제가 어디에 있든 아테나 님께서는 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제가 적에게 당하더라도 구하러 와 주실 수 있을 테니까요”


아테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현은 그런 아테나를 바라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글라우쿠스는

에트나 화산의 초입에 도달하여 땅 위에 착륙했다.


부엉이의 등 위에서 내린 후,

아테나는 시현에게 말했다.


“자네의 간절함은 알겠네.

그러니 자네 혼자서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허락하지.

그러나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면 바로 나를 부르게.

자네가 어디에 있든지 나는 자네의 곁에 나타날 수 있으니”


아테나의 허락이 떨어졌다.

시현은 그 동안 주머니 속에 꽁꽁 숨기고 있던 지도를 꺼냈다.


“그 사람이 말한 장소가 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어요.

에트나 산 중턱에 감춰진 동굴이 하나 있대요”

“하지만 이 지도만 보고는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들겠군”

“흠··· 이 근방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시현과 아테나는 근방에 하나뿐인 도로를 향해 걸었다.

일단 도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이 근방의 지리에 밝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황량한 검은 대지를 걷다가 마주친 도로 위에

한 여성이 통행을 막는 표지판과 구조물을 세워놓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현과 아테나를 발견한 여성은

강한 시칠리아 억양으로 소리쳤다.

다행히 시칠리아어는 이탈리아어와 그리 다르지 않아 소통이 가능했다.


“이봐!!! 거기 두 명! 이 근방은 위험하니 어서 다른 곳으로 꺼져!”


시현과 아테나는 서로 마주보고 눈빛을 주고받은 후,

그 여성을 향해 다가갔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갈색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미녀였다.


“실례지만 길 좀 물을 수 있을까요?”

“어머, 잘생긴 남자는 언제나 환영이야. 옆에 귀여운 꼬맹이는 동생이야?”


시현은 꼬맹이라는 말에 발끈하려는 아테나를 무시하고 물었다.


“혹시 이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흐음, 어디보자~”


시현이 건네 준 지도를 본 여성은 갑자기 미간을 팍 찡그렸다.


“이봐, 지금은 화산 활동이 활발해져서 산 위쪽으로는 통행 금지야”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어떻게 좀 안될까요?”


시현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부탁하자

여성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뭐, 그렇게 간절하다면 가지 못할 이유도 없겠지만,

위험한 곳이니까 그 여동생은 떼어 놓고 가야 할 거야”

“네, 그렇지 않아도 여동생은 데리고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여동생이라는 말에 아테나가 반박하려고 했으나

시현이 째려보자 이내 입을 다물고 토라져 버렸다.


시현에게 길을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먹은 여성이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자기소개나 할까? 나는 이 근방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비앙코 비탈레’ 라고 해”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이시현이라고 합니다”


시현은 비탈레와 악수를 하면서도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인 것 같은데.’


그러자 아테나가 시현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시현은 비탈레 씨의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방금 전, 식당에서 점원에게 들었던 이름이었다.

얼마 전 일어난 폭풍으로 피해를 본 포도농장의 주인,

이 지역에서 유명한 마피아 두목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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