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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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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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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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DUMMY

75. 헤파이스토스


아테나는 동굴 안쪽으로 바람과 같이 빨려들어가는 안개를 쫓아 달렸다.

사실 아테나의 입장에서 헤파이스토스는 같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동지이면서도,

직접 대면해야한다고 생각하면 달갑지 않은 존재이기는 했다.


신화의 시대, 트로이 전쟁을 앞둔 시절,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에게 찾아갔다.

신들마저 두 파벌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상황이었기에

전쟁에 대비한 무기를 제작하기 위해서였으나,


아내인 아프로디테가 못생긴 헤파이스토스를 외면하고

아레스와 불륜을 벌이는 동안

욕구불만이었던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대장간에 찾아온 아테나의 아름다움에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그렇다 한들 한낱 대장장이의 신이 전쟁의 여신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아테나 강간 시도는 미수에 그쳤으나,

대장장이의 정액이 튀어 아테나의 허벅지에 묻었다.


아테나는 혐오감을 느껴 양털로 그것을 닦아 땅에 버렸으나,

땅에 떨어진 신의 정액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부터 아들을 얻어냈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아들을 외면했고,

가이아는 의도치 않게 낳은 아들을 아테나에게 떠넘겼다.

아테나는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를 가엾게 여겨 양자로 삼았다.


아버지를 닮아 다리에 장애를 가진 아이, 에릭토니우스는

아테네의 왕이 되어 멍에, 쟁기, 은 제련법의 발명자로 여겨졌다.


이후, 아테나는 자신을 강간하려 하고,

아들을 유기한 헤파이스토스를 증오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과거의 감정은 잊고,

위험에 빠진 헤파이스토스를 구하기 위해 두 다리를 재촉했다.


구불구불한 동굴 속, 깊숙한 곳에서

어슴푸레한 불빛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머지않아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 도달할 것이었다.


아테나가 마지막 코너를 돌아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헤파이스토스와 흡혈귀는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대장간 안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망치를 내리치는 노인의 공격을 안개로 변하며 흘려낸 나더슈디 부인은

노인의 등 뒤에서 나타나 방아쇠를 당겼다.

그 사이에 나타난 아테나가 방패를 들고 헤파이스토스의 등 뒤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 총알은 헤파이스토스의 등을 꿰뚫었을 것이다.


헤파이스토스는 갑자기 나타난 소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대장간의 불빛과 열기에 희뿌옇게 된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어떻게 여기에 온 겐가? 분명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건만”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는 적을 물리친 후에 하게!”


신으로서 숭배받지 못한 지 천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에트나 화산에 갇혀 티폰의 부활을 홀로 저지해왔던 헤파이스토스는

지난 세월의 고독을 그대로 담은 듯 늙고, 허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적은 두 신의 해후를 가만히 지켜봐 줄 정도로 자비가 넘치지 않았다.


총알이 막히자 나더슈디 부인은 다시 안개로 변해 헤파이스토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단검으로 헤파이스토스의 가슴께를 찔러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나더슈디 부인은 손에서 느껴지는 찌르르한 통증에 단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헤파이스토스의 상체를 감싼 앞치마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나더슈디 부인의 단검은 헤파이스토스의 방어구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아테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내질렀다.


물론 나더슈디 부인 또한 안개로 변해 창을 흘려냈다.


직접적인 전투에 약한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신의 발명품이 쌓여있는 잡동사니 무덤으로 달려갔다.

아테나는 사방에서 기습해 들어오는 흡혈귀의 공격을 방패로 쳐내며

헤파이스토스를 엄호했다.


힘겹게 자신의 발명품 더미에 도달한 헤파이스토스는 청동 재질의 인형을 끄집어냈다.

그는 인형을 내세우며 목이 쉬어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크레타의 수호자여, 너의 창조자가 명한다. 너의 의무를 다하라!”


그러자 사람 크기의 청동 인형이 스스로 그 몸을 일으켰다.

아테나는 그 인형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봤다.


“탈로스? 헤파이스토스 자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 꺼냈어야지!”

“적이 쳐들어올 줄 내가 알았나! 쿨럭쿨럭!”


나더슈디 부인은 갑작스러운 새 적의 등장에 경계심을 품고,

섣불리 다가서지 않았다.


“크레타 섬의 수호자인 청동 거인이라··· 나름 스스로를 지킬 수단은 있었던 모양이군요오”


헤파이스토스가 꺼낸 비장의 무기, 청동 거인 탈로스는

크레타 섬 선주민들의 신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크레타 방언으로 탈로스(tallôs)는 그리스어로는 헬리오스(hêllios)로 번역된다.

즉 태양의 신인 것이다.

크레타 섬의 주민들을 수호하는 태양의 신인 탈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이르러

헤파이스토스가 발명한 청동 거인으로 각색되었다.

그러나 태양의 신격을 지닌 존재로서의 모습은 그의 전투 방식에 남았다.

그 전투방식이란 바로 몸을 뜨겁게 달구어 적을 끌어안아 죽이는 것이다.

원래의 신화에서 아르고 호의 선원들을 괴롭히던 30m 크기의 거인과 달리

지금의 탈로스는 좁은 동굴의 크기에 맞춰 새로 만들어진 개량품이지만,

태양처럼 밝게 빛나도록 달궈진 육중한 청동 덩어리는

공기 중의 수분이 응결되어 만들어지는 안개 따위는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릴 수 있었다.


나더슈디 부인은 아테나의 창날과 청동 거인 탈로스의 뜨거운 열기에 쫓겨 점차 구석으로 몰아붙여졌다.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공수가 뒤바뀐 상황,

나더슈디 부인은 품에 숨겨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


나더슈디 부인은 망설임 없이 카파블랑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지?]

“네에 카파블랑카 니임~ 타겟을 발견했고, 장미십자회 측과 전투 중입니다아.

지원군 좀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오?”

[지난 번 작전에서 합류한 신입 단원을 보내도록 하지]


뚝.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동굴 한 쪽에 통로가 열렸다.

그 통로에서 걸어나온 것은 아테네에게는 이미 익숙한 얼굴,

장미십자회의 뒤통수를 때리고 일루미나티로 전향한

배신자, 정필호가 권총을 겨누며 걸어나왔다.


76. 배신자


“이런 이런, 익숙한 얼굴이 하나 있군요”

“네 이놈! 어찌 감히 내 앞에 다시 그 뻔뻔한 얼굴을 들이미느냐!”


아테나는 필호를 향해 화를 내는 시늉을 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군은 자신과 헤파이스토스 뿐,

신을 죽이는 무기인 미스틸테인을 지닌 필호와는 최악의 상성이다.

심지어 상대는 신을 죽이는 권능의 발동 조건, 신의 이름 또한 알고 있었다.


아테나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헤파이스토스! 이 쪽으로 와라!”


아테나는 헤파이스토스를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인 뒤,

권능을 발휘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문 후에야 그 날개를 편다”


아테나가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희미한 조명이 밝히고 있던 동굴 안에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헤파이스토스의 손목을 붙잡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려 하였으나,

그보다 빨리 날아드는 물체가 있었다.


시간의 신, 카이로스의 권능으로 가속된 겨우살이 가지, 미스틸테인은

헤파이스토스의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둠으로 뒤덮인 동굴 속, 아테나의 빛나는 눈만이

무너져내리는 헤파이스토스의 신형을 포착할 수 있었다.


헤파이스토스는 힘없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아테나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죽음을 목전에 둔 탓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 입모양을 읽어 낸 아테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하다”


수천년 동안 세상을 멸망시킬 괴물의 봉인을 지켜 온 신의 유언이었다.


아테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취했다.


헤파이스토스의 등에 정확하게 꽂힌 미스틸테인을 강하게 비틀어 뽑아 냈다.

미스틸테인을 붙잡은 손에 불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도 신을 죽이는 무기를 붙잡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가면서도 미스틸테인을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이 것은 적의 손에 있을 때, 어떤 신의 권능이든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최악의 무기이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이 무기가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아테나는 미스틸테인을 들고, 헤파이스토스의 시체를 뒤로 한 채로 시현과 베아트리체를 향해 달렸다.


한편, 뒤에 남겨진 필호는 어둠이 걷히자 드러나는 풍경을 보고 실소했다.

항상 승리의 여신 니케와 함께한다던 아테나는 패배하여 도주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나더슈디 부인을 압도하던 적들은

필호가 등장한지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무참히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그나마 우뚝 선 채로 일루미나티의 단원들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치는 것은

헤파이스토스의 보잘것없는 발명품, 청동 거인 탈로스 뿐이었다.

필호는 탈로스의 발뒤꿈치를 겨냥하고 총을 발사했다.


탕!


단 한 발의 총격에 청동으로 된 못 하나가 떨어져나갔고,

그 구멍으로 황금빛 액체가 흘러나오더니 탈로스가 동작을 정지했다.

필호는 나더슈디 부인을 비웃었다.


“후후, 당장이라도 죽을 듯 도와달라고 전화를 걸더니 결국 이 정도였나?”


자존심에 깊게 스크래치가 난 나더슈디 부인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릴 뿐,

필호를 향해 그 어떤 불만의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등장과 동시에 그리스∙로마 신화의 최고위 신, 올림포스 12주신 중 둘을 박살내버린 필호는 감히 나더슈디 부인 따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였다.

나더슈디 부인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필호의 압도적인 무위에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은 어쩌지 못한 아테나를 도망치게 하고,

탈로스는 겨우 총 한 발로 제압해 버리는 모습은,

지금껏 카파블랑카 이외에 볼 수 없었던 위압감이 느껴졌다.


필호는 멈춰버린 청동 거인 탈로스를 살피며 나더슈디 부인에게 말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결국 신화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기 뒤져서 널브러져 있는 헤파이스토스라고 하는 녀석도 마찬가지지.

이 탈로스를 봐라. 뻔히 발뒤꿈치의 못이 약점이라고 신화 속 아르고 호 원정대에게 공략당해놓고는 똑 같은 약점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은가?”


나더슈디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호는 한 마디 더 덧붙이며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신화를 공부해라. 웬만한 신들은 신화 속에 그 약점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그 입만 곱게 썼으면 매력적인 사람이었을텐데 말이지요오~”


나더슈디 부인은 능청을 떨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자니,

발 밑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음, 아무래도 헤파이스토스가 죽었으니 티폰의 봉인이 풀리려는 모양이로군”

“그럼 저희도 이제 안전한 곳으로 피해 볼까요오?”

“그 전에 챙겨야 할 게···”


필호는 헤파이스토스의 시신 곁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멈췄다.

나더슈디 부인이 물었다.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신가요오?”

“음, 아테나에게 한 방 먹었군.

신을 죽이는 성질의 물건이라 가져갈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용케도 그걸 가져간 모양이다”


필호는 아테나가 가지고 도망간 미스틸테인이 꽂혀있었을,

헤파이스토스의 등에 난 구멍을 손으로 한 차례 문질러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필호는 동굴 한 구석에 있는, 자신이 들어왔던 통로로 다시 몸을 집어넣었다.

나더슈디 부인 또한 그 뒤를 따라 사라졌다.

그러자 통로는 애초에 그 곳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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