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급 소시민은 탑 공략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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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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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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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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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27화

DUMMY

027.




보라색 포탈.

처음 보는 거였다.

이런 건 유O브로도 들어본 적 없었다.


<<주인이여.>>

“응?“


거대 삐용, 아니 백호가 말했다.


<<이 몸은 다음을 위해 돌아가고자 하네.>>

“어차피 회수 한 번 더 남았으니까 좀 더 있어주면 안 될까?”


그러자 백호는 고개를 살짝 가로 저었다.


<<이 몸은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자로서 잔존하는 힘으로 유지하고 있는 거라네. 그대에게 말한 3회라는 회수는 어디까지나 그대를 돕기 위한 힘의 분배를 통한 임의의 수치일 뿐.>>

“그럼 힘을 다 쓰면 지금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야?”

<<그렇다.>>

“알았어. 돌아가. 오늘 고마웠어.”

<<부디 무사히 과업을 달성하시길.>>


이전에 나왔을 때보다 한결 위압감이 덜한 태도였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나는 사라진 백호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들어왔던 석문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는 미노타우르스 촌장.

흑우, 츄러리, 삐용이, 달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어서 오라는 듯 떠 있는 보라색 포탈.


“뭐, 죽기야 하겠어?“

“뀨!“

“무우!“


함정이라고 하기엔 너무 번거로운 짓이다.

그리고 내심 미지의 공간에 간다는 두근거림도 있었다.

나는 소환수들의 응원과 함께 보라색 포탈에 손을 뻗었다.


슈화아악!


빛의 파도가 전신을 덮치고 눈을 뜨자 그곳은 몹시 SF적인 공간이었다.


“···여긴 뭐야.“


전체적으로 푸른색이 감도는 벽면.

창문은 없었다.

대신 푸른색 빛을 품은 벽면에는 군데군데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적힌 디스플레이들이 보였다.


앞으로도 뒤로도 길은 나있었다.

어디까지나 방금 서 있던 위치를 기준으로 구분한 거지만.


“일단 앞으로 가볼까.“

“삐용!“

“무우.“


흑우가 나를 살짝 뒤로 밀어내며 앞장 섰다.

도끼를 손에 꼭 쥔 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긴, 갑작스러운 이공간에 떨어진 거니까.

내가 너무 긴장감 없이 가볍게 생각하는 걸지도.


“그래, 앞장서. 흑우.“

“무우!“


흑우가 최전방. 츄러리는 최후방.

달묘는 내 곁에서 위쪽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참고로 삐용이는 어깨 위에서 쳐져있었다.

일한 건 거대 삐용인데 왜 네가 힘들어하냐.


저벅, 저벅.


“어째 오늘은 걷는 일이 많네.“

“뀨! 뀨뀨!“

“[많이 걸어야 건강해요!]“

“정론이긴한데 오늘은 좀 많이 걸었으니까. 좀 쉬고 싶네.”


달묘의 말을 츄러리가 통역하고 그걸 내 뇌내 보정으로 알아 듣기 시작하는 영역에 도달했다.


“오.”


뭔가 문이 나왔다.

새하얀 벽 같이 보였지만 온통 파란색 벽으로 이루어진 통로 끝에 나타난 하얀 벽.

어딘가 상징적으로 보이는 그것은 가까이 다가가자 양쪽으로 열리는 자동문이었다.


“방이라기에는 조금 크네. 연구실? 작업실?”


거대한 컴퓨터 선 같이 생긴 것들이 천장과 벽면에 엉켜 있었다.

시야를 막는 파티션 마냥 놓인 벽 너머로 모니터에서 뿜어질 법한 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흑우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끼를 든 채 조심스레 앞으로 나서는 흑우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나.


타다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딸칵, 딸칵딸칵.


마치 댄스곡, K-POP으로 대변되는 아이돌 음악 같은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였다.

한 사람이 치는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적어도 네댓 사람들이 분주하게 치는 걸로 보이는 타건음과 달리 벽 너머에 놓인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가려져서 사람이 보이진 않았지만 드문드문 옆으로 뻗어 나오는 손을 보면 사람이 있긴 있었다.

그저 내가 들어왔다는 사실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빠 보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으니까.


“저기, 실례합니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저기요.”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타이핑 진짜 빠르네.

저정도면 500타가 아니라 5000타쯤 되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 나가 의자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흘러왔는데요.”

“엄마야아아악!!!”

“으악!”

“무우!”


사람이 죽어도 이거보단 작지 않을까 싶은 비명소리가 고막을 터뜨릴 기세로 스쳐갔다.

본능적으로 양귀를 막았던 손을 천천히 풀며 자세히 보자 의자에 파묻힌 채 드러눕다시피 앉아 있는 여자가 있었다.


“···어린애?”

“···사람? 사람이예요?!”


대략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노란 머리카락의 소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외국인?

서양인도 동양인도 아닌 뭔가 만화속에서 튀어나온 거 같은 느낌의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애는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진정한 듯했다.


“원래 사람이 안 들어오는 곳인가 봐요?”

“네? 아, 네. 맞아요. 사람이 올 수 없고 올 일 없는 곳이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사람이 올 수 없다고?

그럼 나는?


“여긴 어디죠? 갑자기 여기로 날아와진 거나 다름 없어서요.”

“날아와요?”

“아, 전 플레이어 주민혁이라고 합니다. 탑 등반을 하고 있는 도중에 보라색 포탈이 열렸고 손을 뻗으니까 여기로 와졌어요.”

“플레이어? 주민혁?”


현대인이라면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모를 수 없었다.

아무리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더라도 5년 간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이슈로 이어지고 있으니까.

오죽하면 플레이어 누구가 무슨 옷을 입었고 뭘 먹었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이 특집 기사로 뜨는 시대다.


“플레이어 주민혁!?”


그녀 역시 플레이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건 아닌듯 했다.

소녀는 그렇게 내 이름을 다시 한 번 말하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와!!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예요! 반가워요!”

“···저를 아시나요?”

“물론이죠! 왜냐면 당신은, 당신이 바로.”


거기까지 말한 소녀는 ‘아.’라고 작은 소리를 내더니 눈을 굴렸다.


“아무튼 반가워요. 나는 미나. 미나라고 불러주세요.”

“당신이 바로, 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예요? 미나는 아무것도 몰라.”


갑자기 앳된, 나이대에 맞는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을 시전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블랙 미노타우르스 킹, 조로아가 한 말을 떠올렸다.


“···균형의 파괴자?”

“아, 그렇게도 불릴 수 있죠.”


그리고 나서 미나는 다시 한번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구요. 여기는 어딘가요?”

“여기는 시스템실이예요.”

“시스템?”

“타워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시스템들이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공간이요.”

“.......”


어디 살아요? 라고 물어봤을 때 아, 저는 서울 살아요. 라고 답변하는 정도의 느낌으로 미나는 말했다.


“탑의···관리자?”

“네!”


내 표정은 오랜 기간 수련한 끝에 어지간해서는 포커 페이스가 유지되지만 속으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에 내놓을 수 있는 결론은 이것 뿐이었으니까.


“그렇군요. 실제로 관리자를 만난 건 처음이네요. 목소리는 들어본 적 있지만.”

“아 진짜요? 누구요?”

“뭐였지, 베르?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아- 맞네요. 주민혁 플레이어는 확실히 베르 언니가 눈독 들이고 있었죠.”

“눈독을 들여요?”

“아, 아니. 실수. 진짜. 방금 건 없던 걸로!”


그렇게 말한 미나는 총총 거리며 뛰어가 의자에 다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탑의 관리자라는 말에 혐오감이 치솟을 뻔 했지만 눈앞에서 하는 짓을 보고 있자면 이 하찮은 중학생이 정말 내가 혐오하던 그것들과 같은 인간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관리자라고 하니 얘기가 빠르겠네요. 저는 13층을 등반 중이었는데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변했어요.”

“헤? 뭐라고 변했나요?”

“미노타우르스 10마리 처치에서 미궁의 깊은 곳을 통과하시오-로 변했네요. 이건 무언가 오류가 있던 건가요?”


나는 퀘스트창을 띄워놓고 말했다.

그러자 미나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잠시 의자 너머로 고개를 꺾었다.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내가 관리하니까 오류는 날 일이 없는데.”

“그리고 그 말대로 깊은 곳으로 내려 가니 미노타우르스들의 마을이 나왔고, 거기서 촌장에게 이 문구를 말하니 또 다시 지하로 내려갔죠.”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래서요? 더 내려간 곳에는 뭐가 있었나요?”

“거대한 미노타우르스 석상이 있었고, 거기에 66층의 지배자라는 미노타우르스 킹이 빙의 되었죠. 한판 전투를 벌이고 난 후에 석상이 사라지고 보라색 포탈이 열리고 지금 여기네요.”

“흠, 흠, 흠! 흐으음.”


타다다다다닥.


미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무언가를 타이핑하며 고개를 몇번이나 끄덕였다.

이해했다기 보다는 내 얘기를 분석하는 듯 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모르겠네요!”

“······.”

“아니- 진짜로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어떡해요?”

“그럼 두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네!”

“첫째, 저는 원래 살던 곳으로 나갈 수 있나요?”

“네!!”

“둘째, 13층 클리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몰라요!”


시스템 관리는 네가 한다며 이 녀석아.

중딩꼬맹이스러운 활기참이 지금은 몹시 거슬렸다.

그럴 의도는 아니겠지만 놀리는 거냐고.


“플레이어씨의 말을 듣고 확인해봤지만 시스템 오류는 없었어요.”

“그럼 시스템의 퀘스트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요? 관리자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인가요?”

“가능한 관리자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고 그래요.”


용의자로 떠오르는 건 아까 언급한 베르라는 관리자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 엮이고 싶진 않았다.


“포탈을 연 것도, 퀘스트를 바꾼 것도 미나씨는 아니라는 거죠?”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무지 바쁘거든요. 손이 열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그래 보이긴 한다.


“좋습니다. 그럼 저한테 퀘스트를 바꾼 사람을 연결해주실래요?”

“제가 왜요?”

“시스템 관리자께서 시스템 변경을 관리 안 하시면 누가 하나요?”

“음- 정식 절차로 변경된 걸로 보이고, 플레이어씨의 퀘스트는 제 관할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는 지금 바쁘거든요.”

“일리 있는 말이네요.”


내 관할이 아니다.

내 담당이 아니다.

내 일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연하게 쓰이는 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긴하게 쓰는 문장인 만큼 일리 있는 소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일리 있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돕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흑우야, 저거 부숴.”

“무우!”

“에? 네?! 어, 어 멈춰요!! 무슨 짓이야!”


흑우가 도끼를 크게 쳐들고 벽에 있는 기계장치로 다가가자 미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모두가 자기 일만 바라보고 살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당장 미나씨도 제 할일만으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시는 거 같으니까 제가 좀 도와드리려구요. 일 해야하는 것들이 다 부숴지면 일이 없어지는 거니까.”

“무, 무슨 미친 소리예요?!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탑의 관리자를!?”

“아뇨. 일거리 줄여드려서 관리자의 노고를 덜어드리려는 건데요? 잠시만 있어보세요. 흑우야 그거 말고 저- 옆에 좀 큰 거 있지? 응, 네가 가리킨 쪽에 있는 거. 그거부터 부수자. 관리자님 좀 쉬시게.”

“무우!”

“뀨!”

“달묘 너도 하겠다고? 그래, 너는 관리자님이 만지고 있는 거 부수자. 일만 하느라 팍팍한 현대 사회에 이런 일을 해줄 사람도 필요한 거 같아.”


달묘도 떡매 망치를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척, 척.


흑우와 달묘가 한발짝씩 나설 때 마다 시시각각 표정이 사색으로 변해가는 미나의 표정은 퍽 볼만했다.


“자, 잠깐만요!!! 아, 알아봐, 알아봐드릴게요!”

“네? 뭘요?”

“그, 그러니까 주민혁 플레이어님이 왜 여기 오게 되셨고 퀘스트는 왜 바뀌었는지.”

“아하, 괜찮습니다.”

“···네?”


미나는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이 되었다.


“늘 탑의 시스템을 관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신 관리자님을 쉬게 해드리는 게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신경쓰지마세요.”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그녀가 절규에 가까운 말을 외쳤지만 나는 일부러 무시한 채 흑우를 보고 고개를 까딱 들었다.

빨리 뽀개라는 듯이.


“자, 잠시만요. 선생님. 아저씨, 아니 오빠. 뭐, 뭐 더 해드릴까요!? 네? 제발 부수지 마세요!”

“흑우, 달묘. 멈춰.”

“무.”

“뀨.”


휴우-.

내 말에 미나는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해줄 수 있는데요?”


분명 무척이나 친절한 미소였을 거다.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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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038화 +2 24.09.07 870 25 12쪽
37 037화 24.09.06 890 27 13쪽
36 036화 +1 24.09.05 947 26 14쪽
35 035화 +1 24.09.04 992 25 13쪽
34 034화 +1 24.09.03 1,039 25 13쪽
33 033화 +1 24.09.02 1,092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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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31화 +1 24.08.31 1,229 24 13쪽
30 030화 +1 24.08.30 1,325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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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7화 24.08.27 1,339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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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4화 24.08.22 1,404 2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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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21화 24.08.19 1,479 3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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