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급 소시민은 탑 공략이 즐거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새글

프롱골
작품등록일 :
2024.08.01 18:32
최근연재일 :
2024.09.16 23:16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66,145
추천수 :
1,310
글자수 :
275,190

작성
24.08.31 23:20
조회
1,228
추천
24
글자
13쪽

031화

DUMMY

031.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다. 그런 건가요?”

“알 파치노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죠. 보셨나요?”

“아뇨. 인터넷 짤로 그 장면만 알고 있습니다.”


여유로운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설유라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무슨 제안을 하시든 미리 답변 드리겠습니다. 거절합니다.”

“들어 보시지도 않구요?”

“들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요.”


상대는 고레벨 랭커이자 초라는 글자가 몇 개나 붙어도 될 정도의 유명인이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깽판 쳐봤자 내 입지만 곤란해질 거 같아서 따라온 거지 큰 의미는 없었다.

겸사겸사 오늘 이후로 쓸데없는 관심을 차단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러자 설유라는 한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연희 여사, 어디에 입원중인지 아시나요?”

“···뭐?”


우리 엄마 이름이었다.


“주민아 학생은 이번 학기 장학금 획득에 실패해서 등록금이 필요한 참인데 연락 받으신 거 없으시죠?”

“······.”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민아는 내 친동생의 이름이었다.


“안심하세요. 김연희 여사님은 1인실로 옮겨드렸고, 주민아 학생 역시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해드렸으니까.”


이건 내게 환심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네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으니 말을 따르라는 협박이었다.

이성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근본적으로 소시민임을 자각하고 있다.


조금 특수한 힘을 얻었다곤 해도 이걸로 전국, 전세계와 대적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단,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체고 뭐고 애들 죄다 이끌고 다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는 건 아닐 거고, 협박인가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싸늘한 목소리였다.

가슴 속 불덩이가 공기중에 풀려난 듯 뜨거운 공기가 펜트 하우스를 가득 메웠다.

설유라는 조금 주춤했지만 곧장 원래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조금 이야기를 돌려볼까요? 민혁씨 영화는 좋아하시나요?”

“······.”

“히어로 영화 아시죠? 슈O맨이나 배O맨 등으로 유명한 장르.”


너무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나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히어로와 대적하는 빌런들이 시민들은 건드려도 히어로의 가족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나요?”

“아뇨.”


잘 모르겠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그런 장르는 잘 안 봐서.”

“일반인이라면 가족이 인질로 잡힌 순간 전의를 상실하고 제 목숨과 가족의 목숨, 둘 다 잃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범죄자에게 부탁을 하게 되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간격을 두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히어로라고 할 정도로 고결한 사람은 다릅니다. 정의, 신념, 계산. 뭐가 되든 그들에게 가족을 인질로 잡는 건 파워업 이벤트나 다름없죠. 가족을 죽인다? 일반인이라면 전의와 삶에 대한 미련도 사라질지 모르지만 고결한 신념을 지닌 인간에겐 오히려 복수심이라는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마련이에요.”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주민혁씨는 무척이나 고결한 사람이죠. 그런 사람에게 인질? 저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진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 우리 가족을 거론하면서 협박을 해놓고?”

“협박이 아니라 당신의 환심을 사기 위한 소소한 선물이었어요. 서프라이즈로 드리고 싶었지만, 기분 나쁘게 해드릴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그녀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아씨.

이러면 화도 못 내는데.

아니, 나중에 말을 바꾼 걸 수도 있다.

내 반응을 보고 언제든 편의적으로 수작 부리는 걸지도.


그리고 내 가족을 내게 말도 없이 병실을 바꾸고 학비를 주는 따위의 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불쾌함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상대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와버리면 세게 나가기 미안해진다.

상대가 좀 더 알기 쉽고 확실하게 잘못했다면 그냥 저질러버렸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선을 잘 탔다고 해야 하나.


“내 가족에 관한 일, 마음대로 하지 마세요.”

“다음부터는 꼭 사전에 말을 드리도록 할게요.”

“다음은 없어요. 하지 마요.”

“그건 거절하죠. 만약 민혁씨가 탑에 들어갔는데 병원에 위기가 발생하면? 민아 학생이 길을 가는데 무차별 범죄자가 나타난다면? 제가 가진 모든 병력으로 그들을 구할 예정입니다.”

“대체 저한테 집착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슈퍼 뉴비는 한창 핫한 존재니 영입하려고 그러겠지.

그래도 방식이 이상했다.

플레이어 길드의 스카우트 방식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저는 회귀자입니다.”

“네?”


진지한 얼굴로 뭐라는 거야 이사람.

뜬금없이 회귀자라니.


“이전 생에서는 평범한 플레이어였어요. 그러다 멸망의 순간을 맞이하고 무력하게 죽어버렸지만요.”

“당신 저랑 얘기를 할 게 아니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눈을 떴을 때 타워가 솟아나고 있었죠. 말씀하신 정신과는 그때 이미 다녀왔답니다. 저도 제가 미친 건가 하고 의심했으니까요.”


아, 의심은 해봤구나.


“결과는 냉혹할 정도로 정상. 예지몽으로 취급해도 좋겠지만 제가 겪은 경험들은 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리얼했어요.”

“그래서, 예전 생에서도 제가 슈퍼 뉴비였나요? 그래서 찾아온 거고?”

“아뇨. 주민혁이라는 플레이어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땐 슈퍼 뉴비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죠.”

“설정 재밌네요.”

“원리는 모르지만 저는 다시 한번 삶을 반복했다는 걸 깨닫고 제가 아는 미래 지식을 이용해 전생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니 무심코 믿어버리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번거롭게 여기까지 사람을 불러놓고 설정 놀음를 하고 싶은 건 아닐 거다.

난 기왕 장단 맞춰주기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이어갔다.


“그 말씀대로라면 무척이나 이례적인 상황이군요. 그래서요?”

“민혁씨가 예상하신대로 협력을 바랍니다. 그저 그런 동맹이나 길드원이 아닌 등을 맡길 수 있는 진정한 파트너로 계약을 맺고서요.”

“거절합니다. 저는 적당히 벌고 끝내고 싶어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한 것도, 미지의 계층을 등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기선 솔직하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적당히···. 번 그 돈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 확실히 그렇네요. 당신 설정대로면 멸망의 때가 온다고 했죠? 한국은 언제 망하나요? 그 전에 돈 벌어서 다른 나라로 가게.”


다른 곳으로 갈 생각 없었지만 저 사람한테는 최대한 비호감 작업을 해놔야 앞으로가 편할 거 같았다.


설유라는 오른손 검지 하나와 왼손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6년?”


도리도리.


“설마 6개월은 아니겠죠.”


끄덕.


그녀가 입술을 떼자 무척이나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년 5개월. 멸망의 순간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입니다.”

“17개월···.”


절대로 길다고 못할 기간이었다.


타워 공략을 일정 기간 이상 실패하면 타워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범위는 대략 한반도 정도의 크기.

타워가 출현했을 때, 나를 비롯해 전세계 사람들의 머릿속에 보여진 영상은 훗날 멕시코 등지의 나라에서 실제로 증명되었다.


“그래요. 말씀해주셔서 고마워요. 최대한 많이 벌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그 전에 누구든 막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근거도 없이 내가 할 수 있을 거란 주인공 병에는 걸리고 싶지 않았다.

그게 뭐가 되든 언제나 위기를 대비하고 냉철 해져야만 이길 수 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설유라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조금 전까지 늘 여유로운 웃음기를 머금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왜요. 감금이라도 하시려고?”

“그런 건 의미 없어요.”

“그렇죠.”

“아뇨. 1년 5개월 뒤엔 그 무엇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그녀의 말을 이해하자 순식간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1년 5개월 뒤인 1월 31일.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니까요.”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농담, 아니 반쯤 진담으로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어떤 식으로 멸망하는지 리얼하게 그려지자 현실감이 달랐다.


뇌리에 또렷하게 박혀 있는 타워의 폭발.

핵폭탄을 따위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인류가 본 적 없는 강렬한 폭발이었다.

그게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계에서 펼쳐진다면 그야말로 지구 자체가 거대한 불꽃놀이 재료가 될 거다.


“제 태도가 기분 나쁘셨다면 다시 한번 사과드릴게요. 하지만, 제가 하는 행동은 전부,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에요.”


머릿속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나 혼자서 시간 안에 탑을 다 등반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례적인 건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게다가 나만 가능한 특별한 능력들.


정말로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녀가 회귀자라는 것부터 의심해야 했다.

전부 거짓말이면?

혹은 진심이라 해도 미친 사람이라 허상을 현실로 믿는 거라면?

안타깝게도 내 무의식은 그 의견을 기각했다.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짙은 호소력과 여러 정황들이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그녀는 미래를 알고, 본인도 공동 2위의 랭커였다.

재력이나 권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협력을 얻는다면 주인공 병에 걸리는 게 아니라 진짜로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해야만 하는 거 아닌가?

안 하면 전부 죽는다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한순간이지만 설유라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수심 어린 그녀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지만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느껴진 감각.

그건 마치 승리를 확신하는, 계획대로 되고 있다 생각하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감각과 비슷했다.


“당신, 거짓말쟁이군요.”

“···네?”


이번엔 정말로 당황한 얼굴의 설유라.


“대단하시네요. 나름대로 심리전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마터면 그대로 당신 말대로 따를 뻔했어요.”

“자, 잠깐만요. 민혁씨. 믿기 힘든 이야기인 건 인정하지만, 진짜에요! 아니라면 다른 예시를 들지 굳이 제가 회귀자라는 소리를 할까요?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에요!”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만난 건 이번이 두번째지만 이렇게까지 흐트러진 건 처음 봤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었고, 그건 사실일 거다.


“아뇨. 당신이 거짓말한 건 거기가 아니에요.”

“네?! 그, 그게 무슨···.”

“17개월, 거짓말이죠?”

“······.”


침묵.

조금 전까지 진심으로 당황하며 자신의 진실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던 그녀는 다시금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아셨죠?”

“기업 비밀이에요. 그래서, 실제로는 언제인가요? 아, 물론 당신 설정대로라면. 말이죠.”

“말씀드린 거 보단 길지만 그리 여유 있는 기간은 아니에요.”

“당신은 멸망을 막기 위해 파트너가 필요한 거고.”

“네.”


조금 전까지는 미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상할 정도로 보이는 집착도 무섭고, 사고 방식도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파악한 게 있었다.


여기서 어설프게 거리를 벌려봐야 이 사람은 끝까지 접근할 거란 점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단,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하죠. 파트너 계약.”

“네? 아, 탁월한 선택이에요.”


그런데 왜 갑자기? 같은 의문스러운 표정.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말했다.


“타워 안에서 계약은 해보셨나요?”

“영혼의 계약이요? 물론이죠.”

“그럼 길게 말할 필요 없겠네요. 타워 안에서 뵙죠.”

“무척이나 고대하던 말씀이지만 갑자기 그러시니까 너무 수상한데요. 다른 조건은 없는 건가요?”

“당연히 있죠.”


내 말에 그녀는 되려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지. 나라도 그랬을 거야.


“유감이지만 저는 설유라씨가 말하는대로 해줄 생각은 없어요. 그렇지만 계약이라는 건 꽤나 좋은 제안인 거 같군요.”

“···?”

“그러니까 이렇게 하죠. 타워 안에서 진 사람은 이기는 사람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영혼의 계약을 맺는 걸로.”

“···진심이에요?”


내 말을 들은 설유라의 눈빛에 욕망이 번들거렸다.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초월급 소시민은 탑 공략이 즐거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예정 -> 초월급 소시민은 탑 공략이 즐거움 24.09.10 124 0 -
공지 수정 사항 안내 (10, 39, 40) 24.09.09 337 0 -
47 047화 NEW 11시간 전 162 8 12쪽
46 046화 24.09.15 351 13 14쪽
45 045화 24.09.14 436 15 12쪽
44 044화 24.09.13 492 16 11쪽
43 043화 24.09.12 587 17 13쪽
42 042화 +1 24.09.11 661 21 12쪽
41 041화 24.09.10 737 18 13쪽
40 040화 +1 24.09.09 762 20 14쪽
39 039화 24.09.08 799 21 13쪽
38 038화 +2 24.09.07 870 25 12쪽
37 037화 24.09.06 890 27 13쪽
36 036화 +1 24.09.05 947 26 14쪽
35 035화 +1 24.09.04 992 25 13쪽
34 034화 +1 24.09.03 1,039 25 13쪽
33 033화 +1 24.09.02 1,092 26 14쪽
32 032화 +1 24.09.01 1,193 24 16쪽
» 031화 +1 24.08.31 1,229 24 13쪽
30 030화 +1 24.08.30 1,325 25 13쪽
29 029화 24.08.29 1,303 29 12쪽
28 028화 24.08.28 1,330 29 12쪽
27 027화 24.08.27 1,338 26 13쪽
26 026화 24.08.26 1,359 29 13쪽
25 025화 24.08.23 1,371 29 11쪽
24 024화 24.08.22 1,404 29 14쪽
23 023화 +1 24.08.21 1,451 25 13쪽
22 022화 +2 24.08.20 1,480 25 14쪽
21 021화 24.08.19 1,479 30 14쪽
20 020화 +1 24.08.18 1,517 2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