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신비로운 도깨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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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칠
작품등록일 :
2024.08.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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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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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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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계절이 바뀌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금방 액기스만 뽑아먹고 가야지 마음먹었지만, 수련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리 훌쩍 지나있었다.

나무에서 피어난 새싹이 어느덧 커다란 이파리로 바람따라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건강해야 해~!”

“연락 주기적으로 하는 거 잊지 말고~!!”


오래 수련했던 탓일까.

다른 사형들보다 일찍 하산한다는 게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대사부의 하산 명령과 함께 수련은 끝이 났다.

더 수련하지는 않는지 매번 찾아가 보았지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이제는 집처럼 익숙해진 돌계단을 내려오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붉은 기둥과 넓은 대문. 이걸 본 게 얼마만인지.

청호는 이미 멀리 내려가고 있었고, 강준혁도 뒤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 구분이 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사형들 사이에, 백발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호미는 지금 어디래?”

“어제 시간 다 정했잖아. 정오가 될 때 숲 입구의 계곡에서 만나자고.”

“그랬나? 그럼 거긴 어딘지 알아?”

“알지. 수련 없을 때마다 이 근처 계곡에서 사형들이랑 놀았다고? 이곳 지리는 꽉 잡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어.”


청호를 따라가니 정말 맑은 계곡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강준혁은 계곡 위 큰 바위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붉은 스카프를 매고 있는 붉은 털의 여우는 우리를 몇 초간 멍하니 바라보더니 반가운 얼굴로 뛰쳐왔다.


“야!! 이것들아!! 오랜만이다!! 어떻게 잘 살아있었네?!”

“호미?! 너 호미 맞지??”

“야 이 새X들아, 내가 호미가 아니면 누구겠냐.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어떻게 숨만 붙어서 살아있기만 했지. 성과는 어때?”

“성과? 아주 좋지. 나중에 보여줄게. 보고 놀라지 마라? 그러는 너네는? 너네는 어떤데?”

“우리도 문제 없어. 어휴, 근데 다시 하라고 하면 진짜 못할 거 같애.”

“야, 그런 소리 마라. 나는 어땠는 줄 알아? 우리 사부는 죽을 때까지 혹사를 시켜. 진짜 죽을 때까지. 포기하려 주저앉으면 욕을 바가지로 쏟아붓고, 고갈돼 숨 죽어라 고르고 있으면 마법으로 회복을 시켜줘. 계속 하라고. 그게 24시간 중에 20시간을 그러고 있다니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야, 우리는 어땠는 줄 알아? 아침 꼭두각시 새벽부터 운동장을 돌라 그래. 몇 키로였냐, 10Km? 뛰어. 뛰고 씻지도 않고 밥을 먹어. 그리고 무기를 잡아. 무기 안 쓰는 나는 원하는 거 아무거나 들라 그래. 그거 잡고 이제 해가 하늘 가운데에 걸릴 때까지 휘둘러. 그러고 또 뛴다니까? 이게 말이 되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고생을 술술 풀어내는 셋이었다.

서서 이야기하다가 계곡 근처 그늘진 바위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갔고, 이야기가 마무리된 건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을 때였다.


“이제 슬슬 움직이자. 이야기 거진 다 한 것 같은데.”

“아직 이야기 할 게 산더미이긴 하지만··· 나중을 위해 아껴놔야지.”

“그러고보니, 우리 뭐 하던 게 있지 않았어?”

“아, 어제 비서분이 찾아온 거 있잖아!”


어제 짐을 싸고 있는 도중 도깨비 왕의 비서가 도장을 찾았다. 이곳에 있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지만, 청호와 강준혁에게 본질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 후 다시 돌아갔다. 청룡 대사부를 만나러 온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러네. 본질을 잊지 말라고 했었는데··· 무슨 부탁이··· 아!’

“우리 도깨비 왕한테서 부탁 받았었네. 그 뭐시기 좀 찾아달라고.”

“그 뭐시기를 찾아달라고? 그게 뭔지는 기억이 안 나? 나는 그 때 없었어서 모르니까.”


강준혁과 청호는 머리를 맞댔다. 기억이 날랑말랑한 이 느낌은 언제 와도 정말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 무슨 무기 찾아달라고 했었다!”

“그걸 까먹고 있었다니, 나는 도깨비 실격이야.”


머리를 쥐어뜯는 둘을 보며 호미는 여전하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조금이라도 움직이자는 말에 셋은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잎에 걸친 붉은 노을이 예쁜 광경을 만들어냈다.


“오늘은 일단 저기 들어가서 쉴까?”


셋은 바위 아래의 동굴을 발견했다. 고개를 들 정도로 큰 입구가 셋을 반겼다.

청호는 좋다며 만세를 했고, 강준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숲속에서 노숙을 하는 것보다 동굴 안에서 쉬는 것이 훨씬 좋아보였다. 벌레도 많으니.


“그런데 안에 어두운데 어떻게 들어가지?”

“아, 비켜봐.”


청호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리자 호미가 손에서 불을 만들어냈다. 청호의 좋은 반응은 강준혁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이래뵈도 그곳에서 불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어서 말이야. 이런 것들도 문제 없지.”

“그럼 나는 불을 지필 장작들 좀 가져올게!!”


청호는 놀러 온 것처럼 한껏 들뜬 상태로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무를 통째로 뽑아 그대로 들고 들어오다 입구에서 막혀 낑낑대고 있는 청호를 도우러 강준혁이 뛰쳐나갔다.


“너네는 어떻게 수련하기 전이랑 지금이랑 별 반 다른 게 없냐. 수련하는 동안 명상은 개나 줬나 봐?”

“그러는 호미 너는 입 험한 건 여전하네.”

“험하기는 지X. 얼마나 훈련을 느긋하게 받았으면 입에서 험한 말이 안 나오고 있냐. 나는 안 나오고는 못 배기겠던데.”

“푸하하!! 너 입 험한 게 수련 때문은 아닌 거 같던데? 이미 예전부터 입이···”


청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엉덩이에 불이 떨어진 청호는 불을 끄려고 동굴 바닥에 엉덩이를 비비며 불을 끄려는 청호의 모습에 호미는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느낀 감정에 강준혁은 소리내어 웃었다. 수련하면서는 웃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 그때 못 웃었던 걸 지금 이 순간에 다 웃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에 눈을 뜬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네도 지금 일어나냐?”

“그러는 너도?”

“하, 몸에 밴 이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늦잠 자려고 마음 먹고 누웠는데, 지금 새벽 아니냐?”

“아침이나 먹자. 아침 원래 안 먹었는데 수련하면서 다 먹어서 지금 안 먹으면 10시에 배고파.”


계곡에서 세수하는 호미에게 강준혁이 손을 털며 말했다. 호미가 고개를 하품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탓에 하품 소리가 그루브를 탔다.


근처 열매를 모아 동굴로 갖고 와 입에 쑤셔넣었다. 이곳 근처에는 다행히 사과가 열려 사과로 아침을 대신할 수 있었다.


사과를 옆으로 던지며 강준혁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응?


그리고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 뭐야?”


청호와 호미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풍선처럼 생긴 무언가는 우리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거?”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곳은 우리가 따온 사과였다. 배가 고픈 걸까?

사과를 들어보이자 풍선의 시선이 따라왔다. 호미는 사과를 들어보이며 풍선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


“장난 그만하고 그냥 줘.”

“그냥 줄까? 괜히 귀여워서. 아유, 그냥 입에 넣고 와랄랄라 해버리고 싶네.”

“너 입에는 들어가?”

“준혁아, 무슨 소리야. 호미 아까 사과 한 입에 집어넣는 거 못 봤···”


청호가 다시 엉덩이를 바닥에 비볐다.

호미의 장난을 보다못한 강준혁이 풍선에게 다가가 사과를 건넸다.

풍선은 양 옆에서 손 같은 것을 쑤욱 뽑아내더니 사과를 받아들고는 방긋 웃었다. 어린 새끼들은 전부 귀엽다더니 풍선이 귀엽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풍선은 한 입에 사과를 집어넣고 오물오물 씹어먹더니, 목구멍에 넘기고서는 동굴 안 쪽으로 총총총 사라졌다.


“야! 어디 가!!”


호미가 곧바로 움직였다. 먹던 사과를 입에 한 번에 쑤셔넣더니, 풍선이 사라진 곳으로 달려갔다.

강준혁과 청호도 이에 곧바로 반응했다. 먹다가 움직인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이런 동굴에서 호미를 놓친다면 미아가 될 가능성이 짙었다.


호미는 자신의 주변에 불덩이를 띄워놓고 동굴을 밝혔다. 불덩이들이 많았기에 동굴 내부는 조명이 켜진 것처럼 환했다.


풍선은 둥실둥실 떠다니며 동굴 곳곳으로 몸을 숨겼다. 뒤따라가면 어디론가 쏙, 또 뒤따라가면 어디론가 쏙 들어가 셋은 어느새 속도를 올려 눈에 불을 키고 있었다.

풍선이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따라간 곳은, 환하고 넓은 방이었다.

지금까지의 길은 세 사람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한다면, 이 방은 학교 운동장 크기의 넓이였다.

사방은 막혀 있었고, 건너편의 벽에는 문처럼 생겼지만 굳게 닫힌 모습이었다.

이 넓은 방 가운데, 우리가 지금까지 쫓아온 풍선이 신이 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다.

그러다 셋과 눈이 마주쳤다.


풍선은 사과를 준 호미에게 반갑다는 듯 달려왔지만, 뒤에 울린 진동에 발을 멈췄다.

어두운 곳에서 있을 수 없는 황금색 빛줄기가 한 줄기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코, 곱다 못해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름다운 황금색 털.

황금색 돼지였다.


“나는 이곳을 수호하는 자. 이곳은 무슨 일로 들어왔는가, 여행자여.”

“금으로 만든 돼지가 말을 하네? 저거 팔면 얼마 정도 할까?”


지금 그게 중요한 거냐. 그리고 저건 살아있잖아.

생각보다 중엄한 중저음의 목소리. 잘만 이야기하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딱 봐도 우리보다 몇 배는 덩치가 큰 녀석을 상대로 힘을 뺄 필요는 없으니.


“우린 그저 동굴에서 쉬고 있다가 저 작은 풍선을 따라 온 것 뿐입니다. 다른 의미는 없었구요.”

“맞아! 저 풍선이 귀여워서 그냥 따라온 것 뿐이라고! 불만 있냐?!”


금돼지의 시선이 작은 풍선을 향했다. 작은 풍선은 금돼지와 셋을 번갈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이곳은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곳. 이곳의 장소를 노출시켜서는 아니된다.”

“알겠습니다. 비밀은 지킬 테니 금방···”

“그러니 제거하겠다. 불순물은 제거해야 후환이 없다.”


금돼지의 몸에서 환한 빛이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방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거 돼지새X 뭐야? 말귀를 못 알아처먹는데? 돼지라 귓구녕이 지방으로 틀어막혔나?”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자!! 방을 빠져나가면 저 돼지도 안 쫓아오겠지!!”


강준혁의 말에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청호였다. 입구에서 제일 가깝기도 했고,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이후 둘을 빼내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땅의 진동에 중심을 잃고 엎어졌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입구가 무언가에 의해 막혀버린 상태였다.


“뭐야?? 무슨 벽이 있어!!”

“이러면 뭐 어쩌자는 거야?? 진짜 다 죽여버리겠다는 거야??”


금돼지가 있던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틀어막힌 방.

결국 호미와 강준혁의 곁으로 돌아온 청호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와중에도 작은 풍선은 재미있다는 듯 꺄르륵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시X, 저 풍선따리 터뜨려버릴까? 저거 우리 비웃는 거 아니냐?? 슬슬 짜증나려 하는데.”

“야, 애한테 무슨··· 말 좀 가려서 해라.”

“온다!!”


대화를 나눌 틈도 없이 금돼지는 셋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어금니도 없는 것이 맹렬하게 돌진해도 뭐 있겠냐 한다만은, 집채만한 녀석이다. 이런 녀석에게 치이면 멍이 아니라 분쇄골절로 죽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셋은 몸을 던져 낙법을 쳤다. 금돼지가 그대로 벽을 들이받았지만, 얼굴에는 어떤 흠집이나 상처도 나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해야하냐? 그냥 맞서 싸우는 수 밖에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오늘 저녁은 저 돼지새X 바베큐 파티냐?? X나 맛있겠네!!”

“셋이 이렇게 싸우는 게 얼마만이지?”

“청호야, 우리 셋이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어. 정신차려.”

“이놈은 수련받고 뇌세포가 뿔로 변해버렸냐? 뿔 다 자랄 때 즈음이면 유아퇴행해서 젖병 물고 다니겠다?”

“야, 호미.”

“왜?”


금돼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호미에게 강준혁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돼지는 지방 별로 없대. 그래서 귀에 지방 낀다는 건 모순이야.”


그 말에 호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강준혁을 보며 말했다.


“너 친구 없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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