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신비로운 도깨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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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칠
작품등록일 :
2024.08.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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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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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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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호미가 칼을 내려치는 것과 한소리가 브레스를 뿜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가까스로 몸을 틀어 피할 수 있었지만, 손이 스쳐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이 정도야 뭐. 금방 낫는다.”


언제 상처라도 입었냐는 듯 곧바로 낫는 모습.

한소리의 얼굴에는 점점 평정심이 옅어졌다.

반격으로 있는 힘껏 쏜 브레스인데, 그걸 눈앞에서 순식간에 낫게 한다?

멘탈이 어지간히 부처가 아닌 이상 흔들리기 십상이다.


“시X, 너 뭐하는 년이야?!”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에 튀어나온 본심.

그것이 호미의 입담을 자극시킬 줄 누가 알았으랴.


여행을 떠나고 지금까지 같이 지낸 녀석들은 모두 순진해빠져서 욕을 입에 담지도 않는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무어라 말을 하면 항상 눈칫밥이나 한 소리를 듣기 마련.

항상 누군가에게 마음껏 트래시 토크를 쏟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눈앞의 적이 먼저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 인지상정.

호미가 어렸을 때부터 마을의 동생들을 홀로 키워내며 배운 인생의 진리이다.


“내가 뭐하는 년이냐고? 그러게? 니년이 보기엔 어떤데? 다리도 없고 협곡이나 전전긍긍하며 떠다니는 년이 내가 누군지는 알기나 하냐?”

“뭐, 뭐라고? 이 바닥에서 기면서 사는 년이!!”

“하아~ 그래? 그러면 너는 그 바닥에서 기면서 사는 년 하나 제대로 못 잡아서 혼자 끙끙대고 있어?”

“시X, 그건 너랑 니 편드는 놈들이랑 해서 3대 1이잖아!!”

“지금 뭐 나 친구 없는 왕따 새X예요~ 자랑하냐? 아, 친구가 없어서 멀쩡한 사람들 잡아다가 장난감 삼는 건가??”

“이, 입만 뚫린 년이···!!”


양쪽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 여자들의 말싸움에 강준혁과 청호는 침을 삼켰다.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봐 조심스레 말이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한소리와는 달리 조소를 흘리는 호미.

이건 누가 이겼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봐도 알 것 같았다.


“그러면 뭐, 어쩔 건데?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너,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 내가 죽더라도 길동무로 삼아주마!!”

“녀는 냬가 뱐두싀 쥬긴다~. 푸하하하!! 진짜 딱 너 수준의 대사를 하네!! 무슨 삼류 소설 보고···”

“닥쳐어어어!!!”


방금과는 다른 규모의 브레스.

제대로 눈이 돌아간 한소리는 있는 힘 없는 힘을 죄다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호미는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브레스를 피했고, 강준혁에게 소리쳤다.


“야!! 작전은 니가 말한 거에서 변경 없지?!”

“어? 아아, 어!!”

“그러면 그대로 간다!! 구경만 하면 너부터 죽인다!! 그리고 청호!! 구름 더 깔아!!”

“아, 알았어!!”


그 말을 끝으로 호미의 신형이 구름에 묻혀 사라졌다.

강준혁은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다 눈이 커졌다.


“청호!! 내가 신호 주면 전부 감싸!!”

“감싸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뭐냐 구름 솜털처럼 만드는 거 있잖아!! 그거!!”


청호가 대답도 하기 전에 강준혁이 구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청호는 강준혁이 한 말이 뭔지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곰곰히 생각해봐야 했다.



말싸움에서 진 게 그렇게 분했을까.

한소리는 눈을 부릅뜨며 호미의 기척만을 좇았다.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곧바로 브레스를 쏘았다.

그곳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혀를 찼다.


지금!!

강준혁이 몽둥이를 고쳐잡고 휘둘렀다.

한소리의 온 신경은 지금 호미에게 향해있을 터.


뻑!!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소리가 벽에 처박혔다.

묵직한 감각이 손을 타고 흘렀지만 녀석의 숨통을 온전히 끊기 전에는 방심하면 안된다.

혹여나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벽을 통과해 도망을 칠 수도 있었지만, 강준혁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방금 호미와의 자존심 싸움에서 패배했는데, 거기에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면 그건 앞으로의 역사에 있어서 정말 수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것들이 진짜!! 정정당당하게 한 놈씩 덤벼!!”

“정정당당? 처음에 다운독들을 잔뜩 불러낸 건 어디의 누구지? 너는 자기가 한 말도 다 까먹는 붕어냐?”


구름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한소리는 전방을 향해 냅다 브레스를 쏘았다.

크게 흔들리는 탓에 강준혁도 호미도 발이 잠시 멈췄다.


지금까지 한소리가 쏘아댄 브레스만 해도 최소 5발은 넘는다.

한 방 한 방이 위력적이지는 않지만 동굴에 타격을 주는 것은 가능.

잘못하다가는 동굴이 무너질 우려가 있었다.


“호미!!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신경 끄고 일단 싸우기나 해!! 다 방법이 있으니까!!”


아니, 도대체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건지.

강준혁은 한소리가 날아간 방향을 예측해 그곳으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방금 느꼈던 묵직한 감각은 어디가고 돌이 부서지는 소리만 들렸다.

구름이 짙게 깔리면 본인의 모습을 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똑같이 상대방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된다.

이곳에 투시경이나 체온 감지기가 있었다면 충분히 구분이 가능했겠지만, 상대가 유령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강준혁이 발을 멈췄다.

처음 접근했을 때는 한소리의 위치를 기억하고 그곳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타격할 수 있었지만, 녀석이 사라진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호미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청호에게 구름을 치워달라는 방법도 있었지만, 호미가 처음에 구름을 더욱 짙게 깔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애매했다.


윽!!


강준혁의 눈앞이 섬광으로 새하얘졌다.

자동반사적으로 몽둥이를 앞으로 내밀어 피해를 어떻게든 줄일 수 있었지만, 세상이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이어 한소리의 비명이 동굴 안을 채웠다.


“딱 걸렸네?! 거기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이 년이!!”


구름 속에서 호미도 녀석을 찾아 헤메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리에도 집중해보았지만 강준혁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에 그 년의 위치를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한줄기 빛이 구름을 뚫고 지나갔다.


“너 그 브레스 계속 써도 되는 거 맞냐? 나 여기 있어요~ 광고해??”

“시끄러!! 니가 뭘 알아!!”


이번엔 소리에 류를 담아 발산했다.

소리라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니, 녀석을 잡는 것이 더 쉬워지겠지.


“청호!! 지금!!”


강준혁의 목소리에 청호가 반사적으로 구름을 전부 방어형으로 바꾸었다.

지금까지의 구름은 안개처럼 바닥에 깔아놓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방어할 때의 구름으로 바꾼 것이다.

구름이 청호를 포함해 나머지 셋도 전부 감싸안았다.


“됐어!!”


그 말에 청호는 다시 일반 구름으로 되돌렸다.

순간이었지만 동굴을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을 한꺼번에 변환시키는 건 조금 벅찼는지 거친 숨이 터져나왔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청호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다음 신호가 떨어진다면 다시 변환시켜야 하니까.


역시.

강준혁은 자신의 생각대로 된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어렸을 때 혼자 창고에서 노래를 연습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냥 부르다 보니 옆집에서 하도 시끄럽다고 문의가 들어오다 보니, 베개를 입에 갖다대고 연습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니 자연스레 옆집에서 찾아오는 것도 없어지고, 연습은 연습대로 할 수 있었다.


호미는 상당히 놀랐다.

소리라는 위협적인 공격을 이렇게 쉽게 파훼할 수 있었다니.

비록 청호의 기량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단 한 번의 기회가 찬스를 만든다.

호미는 곧바로 몸을 날려 쌍검을 쥐었다.

넘실거리는 불꽃이 날을 감쌌고, 두 개의 불꽃이 구름을 갈랐다.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호미는 때를 놓치지 않고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치 새하얀 구름 속에서 날갯짓을 하는 한 마리의 붉은 새.

그녀가 피를 토하며 익힌 수련의 결과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한소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곳에서 지고 만다면, 갈 곳 없는 그녀는 더더욱 갈 곳이 없어진다.

친구가 없다고? 맞다. 나는 친구가 없다.


‘저 한심한 계집을 당장 인계로 추방시켜야 합니다!!’

‘어쩌다 저 참한 아가··· 쯧쯧··· 나는 다 한 줄 알았는데···’


수많은 경멸의 시선들.

한소리는 고개를 떨궜다.


‘나는 알려준 대로 했을 뿐인데···’


한소리는 귀신들이 사는 나라에서도 유명했던 미인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총각귀신들에게 청혼을 받았고, 한소리는 그 중에서도 한 귀신을 골랐다.

자신이 첫눈에 반한 귀신이었다.

그렇게 둘은 나라에서도 소문 날 정도의 연인 관계가 되었고, 그걸 한소리는 매우 좋아했다.

이제 자신도 알콩달콩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꿈과 자신이 기댈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는 것.

오랫동안 처녀귀신으로 살아온 한소리에게는 더없이 귀중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한소리는 자신에게 온 편지를 보았다.

숲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자신을 만나러 오라는 것이었다.

한소리는 신이 나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것이 몰락의 시작이었다.


총각귀신의 말대로 숲에서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다가 다른 요물들에게 습격 당해 죽음의 위기를 맞았고, 한소리는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도망치듯 돌아온 그녀는 입구에서 경비병들에게 연행되었고, 모든 것이 자신을 짝사랑했던 어떤 귀신의 짓임을 알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총각귀신은 나라에 항의하다 반란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처형되었다.

모든 것을 잃은 한소리는 귀계의 존재를 함부로 해쳤다는 이유로 인계 추방을 명령받았다.


인계 추방은 중죄에 해당하는 귀신들에게 내리는 종신형과도 같은 것.

귀신들에게 인계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우주와도 같다.

류를 봉인당함은 물론, 인계에 떠도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고통을 받게 되는 곳이다.


그런 곳을 당연히 알고 있던 한소리는 분노에 눈을 까뒤집으며 그곳을 탈출했다.

어떻게 탈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친 듯이 도망쳐 자리를 잡은 동굴.

다행히 이곳은 귀신들이 찾아오지 않았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요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감히, 요물 주제에.


복수심에 눈이 먼 한소리는 자신의 힘으로 하나둘 자신의 장난감으로 만들었고, 그 장난감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이런 녀석들에게, 특히나 저 가증스런 요물 년에게 진다고?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년만큼은!! 네년만큼은!!!”


파고 들어오는 칼날에 왼손이 꿰뚫렸다.

오른손으로는 가까스로 팔목을 붙잡았다.

그제서야 보이는 얼굴.

먼지를 뒤집어쓴 잿빛의 털이 그리 반가운 적은 없었다.


온 힘을 끌어모았다.

죽어도 같이 죽지, 절대 혼자 가지 않는다.


호미는 녀석이 죽음을 각오했다는 것을 알았다.

온몸의 감각이 그걸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멘트에 파묻힌 듯 단단하게 붙잡힌 양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젠장!!”


이윽고 하얀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리! 한소리!!’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그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절대로 잊어본 적 없다.

항상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목소리.

이제는 점점 잊혀져만 가던 그 목소리.


자신의 눈앞에 그리운 얼굴이 서 있었다.


‘······정말 너야?’

‘뭐야, 벌써 내 얼굴 잊어버린 거야?’

‘아니, 아니······’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목을 죄었고, 입을 막았다.


‘왜, 왜 울어?? 내가 뭐 잘못했어??’

‘아··· 아아··· 으으윽···!! 끅!!’

‘울지 마, 뚝! 울보인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했네.’

‘으윽···!! 시끄러어!!’

‘아야, 아야. 못 본 사이에 힘은 엄청 세졌네! 아야!! 잠깐만!! 나 잘못 맞았어!! 잠깐만!!’


한참을 그리 울었다.

조금 진정되고 나자, 눈앞의 귀신은 싱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응···’

‘그럼 이제 갈까?’


자신보다 두 마디는 더 큰 손바닥.

그 위에 손을 얹자 풍경이 바뀌었다.


항상 그이와 가던 꽃밭.

눈동자를 찬란하게 채운 동백꽃이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소리는 흐르는 눈물을 숨기려는 듯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호미, 괜찮아?”

“아··· 응. 어찌저찌. 구름 덕분에.”

“녀석은?”


호미는 등을 돌렸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죽었어.”


방금까지 한소리가 있던 곳은, 한 송이 백합이 하얗게 피어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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