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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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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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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로 떠나다

DUMMY

동정호로 가는 청파채의 거대한 배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취영루 무인과 수적이 서로 내력을 아끼려 노를 천천히 젓기 시작했으니까.


결국 배가 눈에 띄게 느려지자, 위지천은 배 밑으로 내려왔다.


“자는 거야? 설마 밑에서 노닥거리는 것은 아니지?”


청파채 채주인 수란이 코를 찡긋하며 위지천에게 교태를 부렸다.


“소협, 연약한 저에게 노를 젓는 거친 일은 가혹합니다.”


그 말에 위지천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배 뒤쪽에 잡혀있던 사람들 앞에서도 연약하다고 해보시지.”


그 말에 수란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노를 저었다.


어쭙잖게 노 젓기 지옥에서 벗어나려 했던 수란을 노려보던 취영루의 무인이 나섰다.


“소협! 저희는 소협과 같이 온 취영루의 무인입니다. 소협이 먹고 마시고 자는 그 취영루 말입니다.”


무인은 유난히 취영루를 힘주어 말했다.


위지천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 그냥 편하게 가고 싶다?”


위지천의 말에 취영루 무인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청파채 쪽이 사색이 되었다.


수란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거래할 때 소협들만 남겨두고 배로 가시지 않았나요? 아마도 취영루의 무인들은 소협이 죽고 나서 나설 생각이었을 테니, 안 그런가요?”


취영루의 무인들은 그 말에 숨도 쉬지 못했다.


‘지부장님께서 분명 어린 나이라 성취가 아직 모자랄 거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 완전 꼬였다.’


말을 꺼냈던 무인 뒤에서 앉아 있던 네 명의 무인은 이를 악물고 다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내공이 약한 편이었던 한 무인은 팔과 다리에 통제되지 않는 경련을 일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안돼. 쓰러지면 안 돼!”


무인들은 쓰러진 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빈자리를 두려워했다.

노를 젓던 이들의 표정은 까맣게 죽어갔다.


위지천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선상으로 올라왔다.


아까와 같이 속도가 줄지 않고 일정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선상에 풀려난 사람들은 여자들과 대부분 몸값을 지불하면 풀어줄 상인들이었다.


“감사합니다. 소협.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놈들이 밥도 주지 않고. 흑흑흑.”


말을 한 자는 한 달 밥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풍채가 좋았다.


위지천은 고맙다고 하는 그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굳이 이들을 구하려고 청파채의 배를 접수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풀려난 이들은 위지천이 대답하지 않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고 기뻐할 따름이었다.


아삼이 뒤늦게 나타났을 때는 옷이 터질 듯이 불룩했고, 뒤에는 커다란 행낭을 메고 있었다.


“뭘 그렇게 챙긴 거냐?”


“많이 안 챙겼어. 짐 중에 약초가 좀 있어서.”


“근데 이놈들 하는 것을 보니 아까 수적 놈들을 다 죽여버릴 걸 그랬어. 사람을 납치하다니.”


아삼이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흠. 이 형님은 이미 그럴 줄 알고 그놈들에게 진작에 손 봐줬어.”


“뭐?”


“그놈들에게 이미 수령독을 뿌려놨거든.”


“물안개에 섞여 있던 독? 근데 그거 헛구역질만 하고 다들 멀쩡하던데.”


“맞아. 수령독에 당하면 헛구역질하지.”


“그런데?”


“그런데 그 독을 묻힌 채로 물에 닿으면 온몸이 마비되거든.”


위지천은 호수로 뛰어들던 수적들이 기억났다.


“그럼, 그놈들은···”


“그래, 팔다리 안 움직이고 수영할 재주가 없다면, 모두 호수 바닥에 가라앉았을걸.”


위지천은 다시 한번 독의 무서움을 느꼈다.


‘차라리 수영을 못해서 선상에 남아 있던 수적 놈들이 목숨을 건진 격이잖아.’


아삼과 한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선상의 사람들이 술렁댔다.


“살았다. 나루터야!”


“죽지 않고 돌아왔어!”


“와아아아!”


선상에 나와 있던 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배가 정박하여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나루터에는 한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청파채의 배가 나타나자 겁을 집어먹고 들어간 것이었다.


수적들이 아닌 잡혀갔던 사람들이 내리자, 여기저기서 몰려나왔다.


위지천은 나루터에서 느긋하게 나오는 백익편복을 발견했다.


백익편복은 위지천을 보고 걸음을 내딛다가 살짝 멈칫했다.


‘저 배는 청파채의 배가 아닌가? 어떻게 된 거지? 수적들은 어디 가고?’


백익편복이 실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위지천과 아삼 뒤로 기다시피 내리는 수적과 취영루의 무인들, 마지막으로 평소의 단정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너절한 모습의 수란까지.


‘소교주가 이미 천마신공을 사 성이상 익혔구나. 아무리 기재라지만 역대 교주 중에서도 이 정도는 없었다.’


백익편복은 소교주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도팔가와 소교주라.’


마도팔가는 자신의 일족을 위주로 돌아갈 테지만, 기반이 없는 소교주 편에 지금 선다면 위험할지언정 얻는 것은 많을 것이다.


높은 위험, 높은 이득!


마도팔가 편에 선들 백익편복은 얻을 것이 없었다. 지금처럼 똑같이 착취를 당할 뿐.


백익편복 영종산은 생애 처음으로 모험을 하기로 했다.


백익편복은 위지천이 계단을 다 내려오기도 전에 경공을 펼쳐 날듯이 쫓아갔다.


위지천이 나루터에 한 발짝 남았을 때, 이미 백익편복은 부복하고 있었다.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백익편복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소교주라는 말은 안 했지만, 누가 봐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하는 자세였다.


“루주. 나름 준비한 선물이 재밌던데.”


‘어린 놈의 속에 능구렁이가 열 마리는 넘게 들어있다. 이럴 때는 담백하게 나가야 한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밑에서 공을 세워 과를 덮을 기회를 주십시오.”


위지천은 백익편복의 자세에서 전생의 교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충성을 맹세했던 놈들이 어떻게 했더라.


모두 배신했지.


“그래.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백익편복은 위지천의 말에 움찔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이 많아서 믿을 사람이 루주밖에 없군.”


“저, 영종산. 앞으로 소나 말처럼 일 할테니, 시켜만 주십시오.”


“좋다. 믿어보지.”


백익편복은 천천히 일어났다.


“배의 노획물과 수적을 취영루로 가져가자.”


그러자 아삼이 나섰다.


“여기 잡혀있던 사람들에게 여비로 은자 한 냥이라도 챙겨주는 게 어때? 수중에 아무것도 없는데.”


위지천은 원래 자기 것이 아니라, 쉽게 생각했다.


‘그래, 내 돈도 아닌데. 상관없지.’


“들었지? 어차피 줄 거, 은자 열 냥씩 나눠줘.”


“존명!”


‘빌어먹을, 은자 열 냥? 교주 제자 아니랄까 봐 씀씀이까지 닮았군.’


그러나 백익편복은 자신의 노선을 확실히 정하고 나서는 미련을 버렸다.


어차피 소교주와 얽힌 이상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소교주가 교주가 된다면 나 또한 본단의 고위인사가 될 것이니, 돈 벌어오는 짓은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소교주가 마교를 탈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백익편복은 속으로 되뇌었다.


‘동정호의 마교 지부를 맨손으로 일군 사람은 누군가?’


백익편복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나다.’


다시 물었다.


‘이만큼 운영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역시 알고 있었다.


‘그것도 나다.’


백익편복은 소교주가 실패한다해도 자신은 어디든 숨어서 잘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다 잃고 도망간다 해도 내 능력이면 어딜 가서도 먹고 살 수 있다.’


백익편복은 나루터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기 청파채에서 풀려난 자들은 취영루 앞으로 오시오.”


그러자 나루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를 질렀다.


위지천은 수란과 탈진한 수적들을 돌아보았다.


얼굴에 핏기가 가신 것이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나랑 싸우고 나서는 멀쩡했던 것 같은데?’


“수란. 너는 나와 같이 강서로 간다.”


수란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왜 강서로 가야 하죠?”


“가서 네 놈들이 휘주 상인들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을 증언해야 하니까.”


“호호호. 소협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요. 저도 청파채의 채주. 그렇게 끌려가서 수모를 당하느니, 여기서 소협과 겨루다가 죽겠어요.”


“뭐?”


수란의 말은 거짓이 아닌지,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달랐다.


위지천은 죽음을 각오한 자들의 눈을 많이 봐서인지, 진심임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소협의 표국을 털은 것은 저희가 아니라고요. 교영채 놈들인데.”


‘그래, 수란도 교영채에게서 넘겨받았다고 했다.’


수란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소협의 적은 교영채 놈들 아니겠습니까? 제가 교영채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겠어요.”


“왜 그걸 알려주는 거지? 같은 수로채 아닌가?”


“그자들은 여자가 총채주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거든요.”


‘수로채 파벌 싸움이었나. 뭐든 상관없다. 수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교영채가 벌인 짓이라면 대가를 치뤄 줄 테니까.’


“좋다. 네가 나를 이용해 교영채를 제거하고 싶은 거로군. 그렇다면 강서까지 와서 교영채 짓이라고 증언해야 한다. 그게 공평하다.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를 쓰려면 그 정도는 해야겠지.”


수란은 코를 찡그렸지만, 곧 눈웃음을 쳤다.


*


백익편복 영종산의 집무실인 취영루의 오 층.


위지천이 강서로 떠나기 위해 백익편복을 찾았다.


“소교주. 지금 떠나시려고 합니까?”


“그래. 이제 가야지. 표물도 되찾았고. 더 이상 꾸물거릴 이유가 없지.”


영종산은 자루 안에 환절사의 먹이를 넣어주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저희 지부 무인들을 좀 데려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호남지부 무인들? 생각보다 그렇게 쓸모 있지는 않던데.”


“강서의 표국에 자리를 잡으셨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다면 쓸만한 표사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영종산은 속으로 생각했다.


‘소교주 바로 옆에서 수행한다면 그게 바로 호위대지.’


“그래? 그렇긴 하지.”


“저에게 주신 노획물은 어찌할까요?”


위지천은 모두 가져가려고 생각했다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중에야 어찌 됐든 지금 당장은 이놈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허덕이고 있을 때 내가 도와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 재물은 호남지부에서 알아서 써라. 교주가 많이 쓴 탓에 마교가 모두 힘들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하하. 그것은···”


“변명할 필요 없다. 얘기를 들어보니, 교주님이 심했던 것은 맞으니까.”


백익편복 영종산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혼자서 발버둥 쳐야 했던 호남지부의 초창기 시절을 떠올렸다.


‘소교주의 씀씀이가 이럴 땐 또 도움이 되는군.’


“본단에서 지원이 없어 막막하던 참이었는데,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뭐, 나중에 써먹을 거니까, 괜히 그때 가서 투덜대지 말라고.”


영종산은 위지천의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호위로 보낼 자들의 무위를 상향 조정했다.


며칠 후 위지천은 잃어버렸던 표물, 은원보 상자와 함께, 강서로 출발했다.


혼자 출발했던 처음과는 달리 표사만 스무 명이 붙었는데, 모두 완연한 일류 무인들이었다.


위지천은 안가에서 마주친 자들이 섞인 것을 확인했다.


‘청파채를 충분히 압도할 전력인데, 굳이 나서지 않은 것이군.’


아삼과 수란, 위지천은 후미에서 걸었다.


가기 전 동정호의 전장에 들려 천금수가 건네준 옥패를 건넸다.


‘천금수 어르신도 표국으로 오라고 했으니, 모든 준비가 끝났다. 멀리 계신다면 시간이 안 맞겠지만, 가까이 있다면 잘 해결될 수 있겠지.’


동정호를 떠나는 날, 무리 중에 누군가가 따라붙었다.


뒤를 돌아보니 후순개였다.


“당신은 호남 분타주인데 강서로 가는 우리한테 왜 붙는 거요?”


“호남 분타주라고 호남에만 갇혀 있어야 하나?! 그리고 소협이 때린 자리가 아직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네.”


너스레를 떨며 은근슬쩍 무리에 끼었다.


‘이놈이 청파채를 괴멸시키고 사람들을 구한 위지천이란 놈이군. 처음 비무할 때는 무공만 강한 놈인 줄 알았는데, 협행도 할 줄이야. 재밌어.’


위지천은 굳이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신경쓰지 않았다. 대신 아삼이 개방 거지가 따라붙자 불안한지, 위지천에게 속삭였다.


“칠보단혼산이라도 뿌릴까?”


“그럼 너는 집에서 쫓아오는 것보다 거지들한테 먼저 잡힐 거다.”


위지천의 대꾸에 아삼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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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악인궁과 구야문 24.09.03 581 11 12쪽
11 다시, 의춘 +1 24.09.02 623 13 12쪽
» 강서로 떠나다 24.09.01 684 14 12쪽
9 수로채와 거래하다 24.08.31 665 17 12쪽
8 칠보단혼산을 먹다 +1 24.08.30 672 16 13쪽
7 무공을 접목하다 +1 24.08.29 752 17 13쪽
6 후순개 +1 24.08.28 775 16 13쪽
5 격렬한 환영식 +1 24.08.27 831 18 12쪽
4 동정호 +1 24.08.26 877 19 13쪽
3 거지 소년 +1 24.08.25 921 17 12쪽
2 단독 표행 +1 24.08.24 1,044 23 13쪽
1 표국의 소국주 +3 24.08.23 1,369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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