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표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선공
작품등록일 :
2024.08.16 15:08
최근연재일 :
2024.09.17 11:2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6,546
추천수 :
351
글자수 :
143,927

작성
24.09.06 11:22
조회
574
추천
12
글자
12쪽

위선을 행하다

DUMMY

표국에 발을 내디딘 위지 국주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외팔이 표사 도진이 말했다.


“국주님.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 장 표사. 끝이 보이지 않아 억겁과도 느껴졌네. 사실 어느 정도 포기했지.”


위지 국주는 어느 정도 자리를 정리 한 후 위지천을 방으로 불렀다.


“천아. 아까는 정신없어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구나. 정말 고맙구나.”


위지천은 이런 상황이 어색했다.

보통은 밑에 사람들이 떠받들거나 아부하는 경우였으니까.


어렸을 때도 다른 소교주 후보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했고, 거기서 소교주 자리를 쟁취하였더라도, 교주는 폐관 수련을 하느라 잠깐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마도팔가가 위지천의 말도 안 되는 성취에 경악하는 동안에도 교주는 별말이 없었다.


오히려 위지천의 성취를 확인하면, 교주의 폐관 수련은 더 길어졌다.


덕분에 아부가 아닌 칭찬은 낯선 것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 이제 해가 넘어갔으니, 너도 어리다고 할 수 없겠지.”


호남행을 다녀온 후 신체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머리통이 하나 더 자라, 위지 국주와 나란히 서도 키가 엇비슷했으니까.


“이제 어쩔 계획이더냐.”


“아직 생각한 것은 없습니다.”


“확실히 너는 네 또래와 비교해도 남다르다. 아니, 어른이라 하더라도 그런 거금을 만들어 온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위지천은 표국을 구하긴 했지만,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지진 않았다.


맹주 놈을 잡기 위해서 일단 힘을 키워야 한다.


“우선은 용문표국이 다시 표행을 재개해야겠지요. 그러나 제가 잠깐 본 바로는 청풍표국이 운영하는 방식이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위지 국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자들의 흉계가 음험한 것이었지만, 뛰어난 상인들이라는 것 하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표국의 인원이 늘어난 만큼 본당을 새로 지을 생각입니다.”


위지 국주는 위지천이 데려온 취영루의 무인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재물이 많이 들어갈 텐데.”


“재물은 또 가져오면 되지요.”


위지 국주는 꺄우뚱하며 물었다.


“가져온다고?”


“아니, 벌어 오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위지천은 마저 말을 이었다.


“우선은 청풍표국 강서 분점 시절에 구한 자들을 돌려보낼 자는 돌려보내고, 있을 자는 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좋도록 해라. 그 일은 네가 직접 하는 게 좋겠다.”


“제가요?”


“그래. 충분한 자격이 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용문표국의 사람을 두는 일도 네가 하거라.”


“네?”


위지천은 살짝 당황했다.


“내가 국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표국은 네 위주로 흘러갈 터이니, 아예 이 기회에 네 사람들로 채워 넣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 사람들이요?”


“그래. 네 사람들. 이제부터 사람 다루는 것부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너는 크게 성장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


다음날 위지천은 마당에 청풍표국 강서 분점에 있던 자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 뽑는다는 말에 후순개와 위지 국주 등이 참관했다.


“청풍표국이 강서에서 물러난 것은 모두 알 것이다.”


불려 온 자들은 혹시 해코지당할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반수 이상은 지난밤에 표국을 나섰다.


지금 있는 자들은 아침 일찍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온 자들이거나, 표행을 끝내고 온 자들이었다.


“청풍표국에서 해주던 대우의 세 배를 주겠다. 다만 표두 자리를 원한다면 여기 앞에 있는 연운남 총표두와 겨뤄 오 초를 버텨야 한다.”


다들 웅성거렸다.


“겨우 오 초?”

“우릴 너무 무시하는군.”

“흥,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잘됐어. 총표두 실력 좀 보겠군.”


“조용.”


연운남이 앞으로 나서 기세를 뿌리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참고로 겨우 이류의 무위로 연 총표두를 상대로 운을 시험해 보진 않기를 바란다.”


다들 조용해졌다.


“우선 용문표국에 남을 자들은 이곳에 남아라 일각을 주겠다.”


주춤주춤 눈치를 보던 자들 중 한 명이 일어나자, 주위에 일어난 자들이 우루루 따라나가 표국을 떠났다.


이제는 원래의 표사들 중 사분의 일만 남았다.


“좋다. 그럼 이제 표두를 계속할 자는 일어서서 연 총표두에게 도전하라. 단 오 초다.”


그러자 표사 중 제법 강해 보이는 자가 다섯이 일어났다.


“흥. 오 초라니.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후회하게 해주겠소.”


첫 번째로 도전했던 자는 연운남의 칼을 뽑지도 못하게 했다.


칼집째 목덜미를 맞고 쓰러져 버렸다.


“씨부레! 표국에 있을 실력이 아니잖아!”

“나는 나,나가겠어.”


그 모습을 본 일어선 자들이 모두 표국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런 허접한 실력으로 표두입네 하고 다녔다니.”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후순개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니, 저 총표두란 자와 취영루에서 온 자들은 아무리 봐도 나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는 자들인데, 너무 기준이 높잖아. 마교라도 쳐들어갈 생각이야?”


“어차피 청풍표국의 표두들은 휘상의 연이 닿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표사들은 왜 남겨뒀어?”


“표사는 연이 닿아 있다고 한들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대우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라 이곳에 더 충성할 것입니다.”


후순개는 고개를 주억였다.


“하긴 은자를 세 배씩 받으면 여기 정착하겠지. 어린놈이 뱃속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는 들어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설마 반로환동한 노괴는 아니겠지?”


후순개의 말을 무시하고 위지천은 취영루의 무인들을 불렀다.


“자, 이자들이 용문표국의 새로운 표두들이다.”


새로 표두가 된 이들이 도열하자, 용문표국은 순식간에 용담호혈로 변했다.


“총표두 연운남.”


“존명!”


“앞으로 용문표국은 그대들에게 달렸다. 잘 부탁한다.”


위지천은 천금수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생에는 혼자 가지 않기로.


물론 처음부터 잘 될 리는 없다. 대신 그런 척은 하기로 했다.


속마음은 몰라도 겉으로라도.


연운남을 위시한 새로 표두로 임명받은 마인들이 크게 외쳤다.


“목숨을 다하겠습니다.”


위지천의 표국이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죽지는 말아라.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라. 실패해도 된다. 대신 살아라.”


마치 부하들을 아끼는 덕장처럼.


사람 좋은 놈처럼.


“도진.”


한 팔을 펄럭이며 도진이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용문표국의 총관이 되어 표국의 일을 맡아주게. 아무리 돈을 벌어와도 뒤로 새면 벌었다고 할 수 없으니까!”


장도진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소국주가 망하기 직전의 표국을 구했다.

그리고 자신을 잊지 않고 이렇게 중용해 주다니.


남은 팔다리를 용문표국을 위해 바친다 해도 아깝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맡겨주십시오!”


청풍표국에서 남은 자들은 표행 중 팔을 잃고,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장 표사를 기억했다.


열심히 일해봐야 상전이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의 살아있는 표본.


그러나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용문표국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표사, 표두 외에 쟁자수. 총표두, 총관은 받던 금액에 세 배씩을 받을 것이오.”


위지천의 말에 모두 환호했다.


“우아아아아!”


위지 국주는 뒤에서 위지천이 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새로 배치된 표두와 표사들이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지자, 위지 국주는 위지천을 불렀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더냐. 나보다 더 말을 잘하더구나.”


“다 아버님께서 하시던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래.”


위지 국주는 흐뭇하고 즐거운 와중에도 무엇인가 불편한 듯한 기운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척하기로 마음먹은 위지천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위지 국주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표국의 기치는 무엇이지?”


“한 번 맡은 표행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갑자기 만들어진 작은 표국이라면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삼백 년을 이어온 유서 깊은 표국이 용문표국이다.”


위지천은 속으로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지 국주에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아니, 이미 표행을 의뢰한 자도 사라지고, 대가도 없어진 표행을 억지로 하라는 것입니까?”


“그래,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단 하나. 단 하나의 신념이 우리 표국을 긴 세월 동안 존속시킨 것이다. 남들이 하던 데로만 했다면 그저 그런 표국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위지천은 코웃음을 쳤다.


‘이번에 내가 은원보 상자를 못 찾아왔다면 그 알량한 신념도 못 지켰을 거다. 부친은 정말 답답한 구석이 있구나.’


그러나 속마음과 다르게 웃으며 위지 국주가 원하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제가 조금 몸을 추스른 다음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그 표행의 조건을 잊어버리신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 기한 무한. 언제까지든 상관이 없지. 다만 네가 그것을 잊거나 우습게 여길까 하여 말을 꺼낸 것이다.”


속으로 진저리를 친 위지천은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한동안 후순개는 강서를 돌아다녔다가 표국에 들렀다가를 반복했다. 아삼은 강서를 좀 구경 다니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위지천은 표국을 정상화하는 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청풍표국 강서 분점이 맡아놓고 중간에 중단된 표행.


청풍표국이 맡기 전에 용문표국이 맡았던 표행 중 중간에 사라진 표물들.


표사와 표두의 배치.


대부분은 표사로 잔뼈가 굵은 장 총관이 처리했지만, 결국 큰 틀이나 중요한 사항은 위지천이 나서야 했다.


위지 국주도 마냥 노는 것은 아니었다.


표국이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통에 잃어버린 표물들과 중단된 표행들의 의뢰주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와 배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금수는 본당을 키우겠다는 말에 표국 옆의 땅 주인들을 설득해 주었다.


부지를 사고 악인궁과 구야문의 악인들을 굴려 본당을 짓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인원들.


남창 거리에서는 용문표국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알려주던 천금수는 바쁘다며 떠나는 길에 위지천을 불렀다.


“만금장을 너무 오래 비웠구나. 이것을 받거라.”


천금수가 건넨 것은 자그만 상자였는데, 용이 양각되어 있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것은?”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라는 것이다. 사실 강상과 휘상 사이에서 네가 고생한 것을 내가 안다.”


“만년하수오입니까?”


‘만년하수오는 내가 교주 시절에도 몇 번밖에 먹어보지 못했던 영약아닌가.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 거지?’


“그래. 네가 천부적인 무재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은 알지만, 내공이 아쉬울 것이다.”


“감사합니다.”


위지천은 천금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정말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위지천이라는 놈에게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해라.”


천금수는 만금장으로 떠났다.


모든 것이 바빴고 평화로웠다.


어느 정도 총표두와 총관이 표국의 안과 밖을 나눠서 맡자, 그제야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아삼이 말했다.


“이제 놀아도 되는 거야?”


“그래. 이제는 좀 쉴 수 있겠다.”


아삼도 표국에서 시간을 좀 지내서 그런지 답답해하던 것은 사라지고 편히 여기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오고 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본당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동안, 천금수가 건넨 만년하수오 덕분에 오 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내공이 아쉽다. 영약이 필요해.’


위지천은 뻔히 아는 길을 내공이 부족해 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심지어 교주 시절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돈을 벌어들여 영약을 사들이는 수밖에 없다. 맹주 놈에게 닿으려면 아직 멀었다.’


천마신공 대성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정진할 생각이었다.


녹의를 입은 무리가 용문표국의 문을 지키는 위사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여기가 용문표국입니까? 저희는 사천에서 온 당가장 사람들입니다.”


위지천은 그들을 맞으며 생각했다.


'백익편복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끊임없이 일이 생기는 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표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은 오전 11시20분입니다 24.09.12 174 0 -
26 암월묵검 NEW 20시간 전 254 8 12쪽
25 맹주를 보다 24.09.16 354 7 12쪽
24 중독되다 24.09.15 404 8 11쪽
23 예선 24.09.14 436 9 12쪽
22 호북 지부 24.09.13 457 9 13쪽
21 오룡과의 만남 24.09.12 500 10 13쪽
20 용봉지연 24.09.11 505 10 11쪽
19 실종 24.09.10 495 11 11쪽
18 교영채 24.09.09 499 11 13쪽
17 당아삼 24.09.08 543 13 12쪽
16 사천행 24.09.07 543 12 11쪽
» 위선을 행하다 24.09.06 575 12 12쪽
14 직시하다 24.09.05 601 13 13쪽
13 용문표국 24.09.04 567 13 13쪽
12 악인궁과 구야문 24.09.03 582 11 12쪽
11 다시, 의춘 +1 24.09.02 625 13 12쪽
10 강서로 떠나다 24.09.01 684 14 12쪽
9 수로채와 거래하다 24.08.31 665 17 12쪽
8 칠보단혼산을 먹다 +1 24.08.30 673 16 13쪽
7 무공을 접목하다 +1 24.08.29 753 17 13쪽
6 후순개 +1 24.08.28 777 16 13쪽
5 격렬한 환영식 +1 24.08.27 832 18 12쪽
4 동정호 +1 24.08.26 878 19 13쪽
3 거지 소년 +1 24.08.25 921 17 12쪽
2 단독 표행 +1 24.08.24 1,045 23 13쪽
1 표국의 소국주 +3 24.08.23 1,371 2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