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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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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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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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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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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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행

DUMMY

위지천은 표국 안에서 녹의를 입은 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정갈한 가운데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운 면이 있어, 말을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용문표국의 소국주 위지천이라고 합니다. 사천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맡기실 표물이 있으신지요?”


눈썹만 하얗게 세고 팔이 긴 자가 앞으로 나섰다.


“저는 당가 외당의 당주인 당원평입니다. 가족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길 듣고 왔습니다.”


위지천은 결국 이들이 당아삼을 찾아 강서까지 도달했음을 알았다.


아삼이 거지 생활까지 해가며 숨겼었지만, 호남을 돌아다니며 암기를 뿌려대고 수령독을 뿌려댔으니, 아마 어디서라도 꼬리가 잡혔으리라.


다른 곳에서 행적이 노출됐을 수도 있고.


‘당가 같이 큰 세가에서 아삼을 여태 잡지 못 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당원평은 표국을 훑어보며 누군가를 찾는 눈치였다.


“가족이라 하심은?”


“당아삼이라는 아이인데, 몇 년 전부터 마을을 빠져나와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혹시 여기 머물고 있습니까?”


위지천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여기 머문다고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아삼이 나에게 실망할 수도 있겠군.’


위지천은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삼이 뭐라고 실망하든 화를 내든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해준 것도 고마워해야지.


식객으로 받아주어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받아야 할 일.


이제 집에서 어른들이 찾아와 가야 한다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다.


위지천이 고민하고 있자, 당원평은 자신과 같이 온 당가 외당의 당원들과 눈을 마주쳤다.


-당주님, 필시 이곳에 있거나 저 소국주가 아삼을 본 것이 틀림없습니다.


-잠시 기다려라. 무슨 말을 할지 들어보고 다음을 생각해도 될것이니, 성급하게 나서지 마라.


위지천은 당가의 무인들이 서로 전음을 주고받는 동안, 나름 결단을 내렸다.


“사실 아삼은 저의 친우입니다.”


위지천의 말을 들은 당가의 무인들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아삼의 친우셨구려. 잘됐소이다!”


“안 그래도 집에서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을 알고 저한테 미리 말한 적이 있었는데, 행적을 말한다면 아삼의 신의를 어기는 모양이라 조심스럽습니다.”


당원평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우리 당원들이 꽤 오랫동안 아삼을 찾아 다녔지만, 이번에는 꼭 찾아와야 했기에 당주인 제가 직접 나서게 됐습니다.”


실제로 당원평은 꽤 오랫동안 아삼을 찾아다녔는지, 아삼이 여기 머문다는 이야기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삼을 악적이나 원수의 손에 넘기는 것이 아닌, 집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친우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위지천이 난처해하다가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아삼은 현재 어딜 간 것이 아니라 저희 용문표국에 식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아마 약초를 캐러 산으로 올라갔으니, 해가 지기 전인 신시에는 돌아올 것입니다.”


당가의 사람들은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위지천은 아삼이 당가 내의 지위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아삼이 당가 안에서도 꽤 지위가 있나 보군. 외당의 사람들이 직접 찾아 올 정도라니. 이 정도면 적장자는 아니더라도 후계자 중 한 명이겠군.’


위지천이 아삼이 그렇게 얘기해도 궁금해하지 않던 집안 이야기를 살짝 떠올렸다.


당원평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표국 앞의 객잔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삼이 돌아온다면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당원평은 용문표국에서 당가의 무인들과 나왔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데 외당의 무인들이 당원평에게 물었다.


“당주님. 왜 표국에서 기다리지 않고 나오셨습니까?”


당원평은 슬쩍 뒤를 돌아 멀어진 용문표국을 보았다.


“저 오래되고 작은 표국이 보고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느냐?”


무인 중 하나가 고개를 외로 꼬고는 물었다.


“이상한 점이요?”


“그래.”


“소국주가 나이는 어린데 표국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옆에 거대한 건물도 새로 짓고 있고.”


“그것도 그렇지만 표국의 표사들의 무위가 나보다 아래가 아니다.”


“네?”


“걸음이 안정되었고 호흡이 일정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특급 표사라 부르는 뜨내기가 아니다.”


“그럴 리가요. 저희와 비슷한 실력이라니, 무엇인가 잘못 본 것 아닙니까?”


“아니다. 그리고 표국 앞에 앉아 있던 거지를 보았느냐?”


무인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길가의 거지까지 언제 신경을 쓰고 걷는단 말인가.


“나는 그를 알고 있다. 후순개. 개방에서도 당주를 맡았다가 방주와 싸우고 매듭을 두 개 풀어버린 자다.”


“후순개라고요? 방주에게 대들었다가 본 방에서 호남으로 쫓겨난 거지 아닙니까.”


“그래. 나는 예전에 낙양에서 본 적이 있어서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입술 두꺼운 거지.”


“그런데 그게 표국을 나온 이유가 됩니까?”


“심지어 그 소국주는 내 무위를 상회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무인들은 너무 황당한 말에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당주가 아삼을 찾아 기분이 심히 좋은가 보군. 우릴 놀리려 하다니. 어린 절정 고수가 운영하고 표사가 우리와 같은 무위인 표국? 그랬다면 진즉에 중원에 이름났을 것이다.’


“하하하. 당주님도 농담이 심하십니다.”


무인의 웃음 섞인 대꾸에도 당주는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일류 무인만 스무 명이 넘는 데다가 절정고수도 있다? 소국주가 절정고수라면 국주라는 작자는 어떻겠는가.”


‘설마 국주가 초절정고수? 중원의 손꼽히는 자가 이 작은 표국의 국주 노릇을 하고 있다고?’


무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모두 침묵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아삼을 잡아가겠다고 버텼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일단은 본가에 전서구를 날려 우리 행적을 보고 한 후에 움직이는 것이 옳다.”


“설마 아삼이 이곳에 잡혀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주님 말씀이 맞다면 표국은 위장이고 다른 문파가 뒤에 있을 것입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당가의 무인들이 표국의 면면을 보고 착각을 하는 사이 아삼은 거리에 숨어서 자신을 쫓아온 당가 무인들을 먼저 알아보고 숨어 있었다.


당가의 무인들이 지나치자 바로 용문표국으로 뛰어 들어갔다.


표국에서 위지천이 부친인 위지 국주와 함께 새로 들어선 건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 큰일 났어.”


“무슨 일이야?”


“우리 집에서 잡으러 왔어!”


위지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그래도 방금까지 여기 있었다. 너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여기 있다고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짓이야!”


아삼은 위지천이 자신의 위치를 말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소면도 갖다주고 쥐도 갖다주고 영약도 줬는데, 나를 배신하다니!”


“아니, 배신이라니. 나도 집에 돌아왔듯이 너도 집에 돌아가야 할 것 아냐? 누가 물어보면 친구 팔아먹은 것처럼 얘기하네.”


위지 국주가 끼어들었다.


“그럼, 아삼은 당문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냐.”


아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들어가면 최소 삼 년은 못 나온다고!”


‘성년이 되어야 밖으로 나올 수 있나 보군.’


위지천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심드렁하게 말했다. 어차피 집 가는 것이니까.


“그래. 삼 년은 금방 지나가니까, 너무 낙심치 마. 내가 그전에라도 그 근처에 간다면 당가에 놀러 갈게.”


아삼은 위지천이 뭐라고 하건 바닥에 주저앉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갈 수 없어.”


위지천은 슬쩍 자기 방으로 가려고 했다.


“천아. 친구가 사천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너도 같이 가거라.”


위지천은 뜬금없는 말에 깜짝 놀라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매번 쥐를 잡아 키우고 있는 환절사 암수 한 쌍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셈이냐. 이 기회에 사천 구경도 하고 표행도 마무리하거라. 우리 표국의 기치를 잊지는 않았겠지?”


위지천은 난데없는 불똥에 정신을 못 차렸다.


“갑자기 지금 말입니까?”


“네가 열심히 표국을 기반을 다지는 동안 많이 고생했으니, 쉬는 시간도 필요한 게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잘 쉬는 것도 필요하다.”


“사천 표행은 쉬는 게 아닙니다.”


위지 국주는 위지천이 어느 정도 안정된 표국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천이는 아직 어리니 경험을 더 쌓고 오는 것이 옳다. 표국에 앉아 명만 내리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으니.’


아삼은 위지천이 같이 가게 됐다는 말에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래. 위지천. 너만 혼자 있을 수는 없지. 너도 가야 한다. 하하하.”


“잠, 잠깐.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아직···”


위지 국주가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이제 총표두와 총관이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네 놈이 있어 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다녀오너라.”


위지천은 부친의 말에 거역할 수 없음을 알았다.


‘총표두와 총관이 알아서 하니, 나는 수련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굳이 나를 보내려 하는 건가. 여기서 버는 돈으로 영약만 구하면 되거늘.’


위지천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기치.


소국주로 환생한 후 어떤 불만도 없었지만, 표국의 대대로 내려오는 철칙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표국 앞에서 구걸하던 후순개가 표국 안으로 들어왔다.


“아흠. 이제 다시 떠나는 게냐. 안 그래도 나도 돌아갈 때가 됐는데, 잘됐구나.”


“영감님은 왜 끼어드는 겁니까.”


“왜? 이 중원 땅에서 내가 못 갈 곳이 어디 있단 말이냐. 어차피 호남이 사천 가는 길인데.”


위지천은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 어느새 표국 앞에서 기다리던 당원평 무리가 방문했다.


“아삼! 드디어 찾았구나!”


아삼은 당원평을 보자마자, 울상을 지었다.


“저는 안 갈 겁니다! 찾지 말라고 했잖아요.”


“가주님이 너를 꼭 데려오라고 하셨다.”


“아버님이요?”


“그래. 이제는 속 그만 썩이고 따라오너라.”


아삼은 당가의 가주가 직접 데려오라는 명을 내렸다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아삼은 위지천을 보고 소리쳤다.


“그렇다면 이 친구와 동행해도 되겠지요?”


“소국주와? 그것은...”


“어차피 천이도 사천을 가야하니, 길이 같아요.”


당원평은 고민했다.


‘이놈이 또 몰래 도망간다면 다시 찾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차라리 어르고 달래서 가는 게 조금 더 돌아가더라도 낫겠지.’


당가의 둘째인 아삼은 방계인 당원평이 강제로 데려가기 껄끄러웠다.


게다가 아삼은 독에 관해 당가 안에서도 천부적인 재능을 자랑했으니, 더 조심스러웠다.


위지천은 아삼을 이들에게 말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자신도 어차피 사천으로 가게 생겼기에 살짝 거들었다.


“제가 같이 간다고 해서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당원평은 표국이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개방이 사특한 무리와 어울리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신 사흘 안에 출발해야 한다. 더 이상 늦어지는 것은 곤란해.”


아삼이 위지천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띄었다.


‘단순한 놈. 이제 가면 성년이 될 때까지 몇 년은 못 나올 터인데, 가는 길에 잘해줘야겠군.’


위지천은 내색하지 않고 아삼에게 같이 웃어줬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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