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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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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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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예린

DUMMY

잠시 집안이 어수선했다. 지켜본 바, 두 사람을 경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동생들을 불러왔다. 해독중인 여아를 방으로 옮기고, 소화를 통해서 나머지 부상들도 씻어내고 약을 바르는 치료를 했다.


도하는 데운 물과 천을 몇 차례 날라줬다. 호위라는 호칭답게 연 호위라는 여인은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나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더 이상 서로를 경계하진 않았고, 그저 아이의 회복 경과를 지켜보는 정도였다.


동생들은 지금 상황을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낯선 객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자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살피는 것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화전민촌에서 피난 온 이후로 동생들은 어려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으니까. 수 년만에 만나보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니 신기할 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미안하고 짠하고. 호기심 넘치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가운데 두고 있어서 조용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이가 깨어나고 두 사람이 모두 회복할 것을 가정하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다. 일단 짧은 시간에 파악한 바로는 우리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인물들이라는 점. 회복한 이후로 돌변해서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진 않을 것 같다.



둘째로 사례를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점. 전투로 인해 둘다 의복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한 눈에 봐도 비싼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치료비를 먹튀 당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풀었지만, 그래도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시선은 그녀의 손이 쥐고있는 검에 고정된다. 너무 노골적인 시선이었는지, 그녀가 먼저 어색한 웃음을 짓고 검을 내린 채로 내게 말한다.


"은인께 결례를 범했습니다. 제 검을 은인께 맡기겠습니다. 조금은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헛,흠...오히려 실례는 제가 범했을 지도요. 하지만 검은 받아두겠습니다. 이 부분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것을요. 정황 상 은인께서 첫 만남 때부터 경계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큰 은혜를 입었을 뿐입니다."


객으로서 주인을 안심시키는 언변과 지극히 공손한 자세. 그녀는 그렇게 내게 칼을 건넸다. 방금 전 말에서 그녀가 삼정공가의 비밀을 얼추 파악한 듯 싶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어린 아이만 있는 집에 다짜고짜 무림인이 상처입은 아이를 안고 처들어 왔는데도 나타나는 어른이 한명도 없었으니까.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곤란한 표정으로 내가 말을 아끼고 있을 때, 아이가 깨어났다. 연 호위가 바로 부축했다. 같은 편이라고 둘은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비슷하다. 아이는 아직 기운 없는 몸으로도 부축받으며 나를 향해 섰다.


"구명지은(救命知恩)을 입었습니다. 저는 서안 서쪽에 자리한 백가장의 장녀 백예린이라 합니다. 은인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부축을 받은 채로 내게 절을 올렸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놀라서 맞절로 답했다. 아무래도 귀한 집 딸래미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산촌아이에게 인사가 과합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처음에 상황을 피하고자 했던 점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행히 해독은 문제없 어보이니, 잠시나마 정양하시길 바랍니다."


전생의 사극 본 짬밥과 현생의 산촌사람1의 경력을 모두 담아 제법 그럴 싸하게 답했다. 이 정도면 나도 제법 있어보였겠지?


"죄송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도 의식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던 지라, 은 호위처럼 정황이 짐작됩니다. 소중한 귀 가옥에 함부로 발걸음하여 폐를 끼친데다가, 더해서 은혜마저 입었으니 깊이 갚을 것만 생각하겠습니다."


백예린은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귀한 집 많이 배운 아이 냄새를 말 끝마다 뿜뿜 뿜어냈다. 적당히 끊지 않으면 밤새 감사인사를 받을 것 같은 불안이 들 때, 구세주 소화가 등장했다.


'꼬르르르르륵'


자기 뱃 속에서 나는 소리에 부끄러워졌는지, 소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엔 눈물까지 맺혔다.


"오...오라버니.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해? 해요? 아니 해야 합니까?"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예린의 언행이 충격적이었나보다. 역시 삼정산에서 최고로 귀여운 우리 소화둥이였다.


"지금 경우가 특별한 거고 소화는 평소처럼 말하면 돼. 그래도 혹시 여기 예린아가씨처럼 격식있는 말투를 배우고 싶다면, 직접 친해져서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 그건 그렇고 밥 때를 놓쳐서 배가 고프네요. 두분도 시장하시진 않습니까? 불편하시지 않다면 함께 식사하시겠습니까? 산골살림이라 입에 맞으실 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두 손님에게만 보이게끔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응해달라는 신호였다. 이 어색한 분위기는 나도 더 이상은 어려웠고 말이다. 눈치좋은 두 사람이 빙긋 웃더니, 무림인의 인사 포권을 취하면서 답해줬다.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폐를 끼치겠습니다."

"폐는요, 동생들이 모처럼의 손님들께 관심이 많은 듯 하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치레를 마치며 빠른 걸음으로 부엌에 갔다. 휴, 드디어 끝났네. 이 시대 사람들 대단하다. 땡큐 유얼웰컴을 이렇게 길게 나누다니.


점심을 거르고 하는 이른 저녁식사가 된데다가, 손님까지 늘었으니 푸짐하게 차리기로 한다.


삼정공가 최대치를 해본다. 먼저 훈연했던 돼지고기를 소채와 볶아낸다. 축사에서는 지난 번 사냥 때 살려둔 꿩을 두 마리 꺼내와서, 바로 잡은 뒤 고기채로 육수를 내고, 며칠 전에 신년을 기념하며 빚었던 만두를 같이 끓인다.


마지막엔 최고사치 계란 지단을 부친 뒤 채썰어 고명을 완성한다. 김이 없는 게 조금 아쉽군. 여기에 공가에서 가장 귀한 쌀을 섞은 보리밥. 그리고 감자전에 간장까지 내왔다. 이게 바로 주부구단 공도유느님의 솜씨다.


상을 모두 내오니 두 사람의 놀란 표정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아무래도 감자 몇 알 나눠 먹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으...은공!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너무 무리하신 것이 아닌지요? 폐 끼친 객이 얻기엔 과한 저녁입니다."


"무슨 짐작을 해서 부담스러워 하시는 줄 알겠으나, 부담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 맘 편히 드십시오. 밖에서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셔도 없는 살림에 무리한 게 아니란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동생들도 있는 자리니 부디 무거운 격식은 이제 내려놓고 편하게 어울리셨으면 합니다. 무림인들은 다른 대감댁들과 달리 분방한 부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형아, 그냥 우리끼리 먹을 때 처럼 먹어도 돼?"


"당연하지, 우리가 이 집 주인인데 편하게 먹어. 형도 이제 평상 시 처럼 먹을 거니까."


더 반응해주다가는 모처럼 힘 쓴 밥이 식을 것 같다. 이 정도면 진짜 할만큼 했기에, 더는 신경쓰지 않고 마이페이스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막내도 편하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소화는 겉으로는 신경 안쓰는 척 했지만, 중간 중간 곁눈 질로 예린의 모습을 따라하는 거 같았다. 뭐, 배워둬서 나쁠 건 없겠지.


조용하지만 전투적인 우리들의 식사를 보면서, 두 사람도 편하게 식사를 했다. 예의 상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음식솜씨도 칭찬하면서 말이다.


물론 타인의 인정은 이미 큰 의미없다. 전생은 독거청년이고, 현생은 소년가장인 주부구단 나님 공도유는 요리에 자신이 있으니까.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는 동생들에게 맡기고, 약차를 끓여와 마시면서 셋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이 이미 눈치챘듯이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어린 동생들과 셋이서 살고 있는 것과, 보기보다 여유롭게 살고 있음을 밝혔다.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그들도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털어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를 진전시키면서 처음부터 계속 궁금했던 올라오는 길에 있다던 진법에 대해서도 물어야 했고 말이다.


연이화. 배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 호위는 평범한 농가 출신으로, 어릴 때 무재를 알아 본 백가장의 현 가주에게 거둬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절정이라는 경지에 도달했으며, 그때부터 가주의 독녀인 백예린의 전담 호위무사로 배정받았다. 백예린의 말로는 무림인들 사이에서는 별호도 있고, 나름 잘 알려진 검수라고 한다.


백예린의 가문인 백가장은 서안에 위치했는데, 서안은 구파의 일원인 종남파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다. 의외로 종남파와는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무가와 달리 백가장의 사업영역이 표국이나 상단이 아닌 야장, 철장들을 육성하는 대장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지역 패권 다툼이 아니라, 백가장의 특출난 야장기술에 있었다. 전년에 중경에서 중소무관들의 경연이 있었는데, 비슷한 경지의 검사들이 맞붙을 때마다 백가장의 검을 사용한 무인들이 전승한 일이 생겼다.


절정 이상 경지의 무인들에게는 의미가 없었으나, 일류 이하 무인들에게 백가장의 검은 기의 수발에서 훨씬 효율적이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정파측에선 백가장과의 거래를 트려고 왕래가 많아지는 정도였지지만, 사파나 흑도에서는 아무래도 거래 자체가 가망이 없으니 가문의 영애를 볼모 삼으려는 시도가 갈수록 빈번해졌다.


처음에는 백가장의 힘으로만 충분히 막아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있는 집단이나 이름있는 사파 무인들의 습격이 늘었다고 한다.


결국 지역 중소무가 하나 때문에 정사대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니, 무림맹과 사황련이 함께 중재하여 정상적인 계약이라면 사파도 백가장의 무기를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사건은 나름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사황련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작은 사파집단들이 자신들을 무시한 협의안이라며 분풀이로 백가장을 습격했다.


다행히 습격은 실패로 끝났지만 당분간의 안전이 염려된 가주가 전대의 인연이 있는 곤륜으로 딸을 피신시켰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곤륜에 도착하지 못하고 잔존세력의 기습을 받아서 피신한 것이 그들의 현 상황 전부였다.


역시 이 놈의 무림세계는 좋게 봐줄 수가 없다. 신외지물 무가지보도 아니고, 일류무인들을 위한 무기류 때문에 서슴없이 납치와 살인이 일어난다니. 더 악화되었다면 전쟁도 날 뻔 했단다.


이런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니...마음이 착잡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런지. 그리고 아직 쫓기는 처지의 둘을 이대로 둬도 괜찮을지. 복잡하다. 어떤 식으로는 결정을 빨리 해야겠지.


삼정공가 처음 방문한 손님이 우환거리 객이라니.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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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천하제일 장인대회 (2) +4 24.09.17 334 11 13쪽
31 31. 천하제일 장인대회 (1) +3 24.09.17 392 14 7쪽
30 30. 올해도 감자농사는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4 24.09.16 394 12 12쪽
29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4 24.09.16 427 14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61 16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99 17 13쪽
26 26. 후추를 얻다 +2 24.09.14 524 18 8쪽
25 25. 세가들과의 인연 +3 24.09.14 539 13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79 15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730 16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721 17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722 16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3 24.08.28 713 16 11쪽
19 19. 호구조사 +5 24.08.27 728 17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 24.08.26 748 17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6 24.08.25 759 19 12쪽
16 16. 가족 +6 24.08.25 743 20 7쪽
15 15. 새봄맞이 +5 24.08.25 754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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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 다짐 +5 24.08.21 825 17 11쪽
» 9. 백예린 +3 24.08.21 833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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