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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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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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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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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다지도 찬란한 것을

DUMMY

삼정산 꼭대기의 보안수준을 확인했으니, 그냥 이대로 며칠 도구가 순찰한 뒤 이상 없다면 상황종료라고 생각했었다. 무림상식1도 없는 공도유님이 크게 착각한 것이었다.


무림인들의 집착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림인들의 근성에 크게 놀라게 된다. 굳이 암살자 계통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무림인들조차 추종이 시작되면 벽곡단만 씹으면서 보름 정도는 한 장소에 은신해 짱박히는 게 기본이란다.


그 것도 혼자서도 아니고, 여럿이서 교대로 인간CCTV를 운영한다니. 소름돋는 현실 무림인의 광기에 일류무인 공도유께서 쫄아버리셨다.


현재까지 도구의 제보가 없는 것을 보면 괜한 우려일 수도 있겠지만, 고수일수록 방심하지 않는 것이라고나 할까. 안전 확보를 위한 기간을 한달로 늘렸다. 어차피 그동안 할 일은 많았다. 나는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고, 귀한 인력인 도망자들을 뽕 뽑아먹기도 하고.


두 사람의 밥값은 역시 무공관련으로 받아냈다. 이론 수업으로 기초 무림 상식 교육, 실기 수업으로 백가장의 중급무공 전수로 나뉘어졌다. 이론 교수는 이화가, 실기 교수는 예린이 담당한다.


보통 절정무사인 이화가 무공 실습지도를 하는 게 더 자연스럽겠지만, 지식기반이 먼지만큼도 없는 상태에서 무공을 접한 공씨 삼남매에겐 이론적인 전문성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적인 측면만 배우고 나면, 화하둥이들에게 입문무공 같은 것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교육 도중에 두 사람은 자주 놀라게 될 것이다.


이류의 끝자락이라는 경지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녀석들이다. 아마 구체적인 무학지도를 받는다면, 지금보다도 더 큰 성취가 있으리라. 아주 쪼오끔만 기대해본다.


두 사람은 아직 잔부상이 남아있는 터라, 교육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 자유롭게 휴식하기를 권했다. 물론 더부살이하는 입장에서 그게 편할 리는 없으니, 알아서 여기저기 필요한 일을 돕곤 했다. 미안, 이걸 노렸어.


덕분에 생활에 여유가 늘어나는 공도유는 행복하다. 숙식만 제공해주면 절정무인이 벌목부터 시작해서 정교한 목재 생산까지 해준다. 그리고 일반상식이 부족한 동생들에게는 배운 집 아가씨가 직접 과외를 해주고 말이다. 그냥 한 달이 아니라, 일 년 정도만 더 붙잡아두고 싶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무공 지도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동생들은 일류 경지에 들어섰다. 그냥 겨우 일류가 정도가 아니라, 이미 완성되어 바로 다음 벽을 바라볼 정도라고 한다.


이화가 추측하기로는 아마도 내공만 부족할 뿐, 깨달음이 부족한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원리를 깨닫고 응용하는 부분에서는 자신이 더는 가르칠 게 없다면서, 이 정도면 대종사의 자질이라고 한다.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잘난 걸 바란 건 아니었다.


동생들과 비교해서 그렇지, 나도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의 또래들과 비교하면 수재 취급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재능이라고 들었다.


인간은 비교하는 동물이기에 불행한 법이다. 분명 호신용으로만 필요를 느꼈던 무공이라, 이 정도면 만족해야 할텐데 뭔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아, 가장의 권위가 이렇게 땅에 떨어지는구나.


절망하지 않는 소년가장 공도유는 낮아지는 자존감을 핑계로 농땡이 피우지 않는다. 무공은 어디까지나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더 익혀두는 것이고 본업(?)은 생존과 육아 아니던가.


겨우 내 창고로 회수했던 대나무 수로를 다시 꺼내서 설치하고 보강했다. 아직 계곡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물길은 작았지만 문제없이 잘 흘렀다.


물이 흘러가는 수로를 바라보면서 올해는 얼마나 더 넓혀갈지 계산해본다. 왠지 올해는 꽤 넓은 삼정산 산마루를 모두 개발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진법 범위 내에서만.


신비로운 삼정산 정상은 큰 나무들로 빼곡했던 지라, 우리 공남매가 그토록 장작을 때고, 이런저런 이유로 벌목을 해대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무자비한 나무 학살자 연이화의 등장으로 인해 풍성했던 삼림이 땜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베어지고 다듬어진 목재와 합판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창고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터 한쪽에 쌓였는데, 그 부피만으로 한 채의 전각 같았다. 이 정도 목재면, 올해는 정말 제대로 세가 느낌나는 건물들을 증축할 수 있다.


역시 대박이지 않은가. 대체 무림인들이 왜 생산직에 투입되지 않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무튼 목재를 물어다 주는 은혜 갚은 연이화 까치의 존재 확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같은 바라만 봐도 설레는 여인. 아아, 이것이 첫사랑인가?


무림 벌목꾼의 가치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이들이 머무는 기간이 촉박하게 느껴졌다. 전 인원을 소집했다. 저마다의 익숙한 병장기를 들게 했다.


나는 곡괭이, 동생들은 자기들이 깎은 목검, 이화와 예린은 검을 들었다. 그렇게 준비된 인원을 바라보니, 역시 완성된 굴삭기들 그 자체다. 나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본다.


호흡을 깊게 한번 뱉고 그동안 망상에만 머물던 개발을 지시한다. 초옥과 창고들을 중앙으로 삼고, 방위별로 멀리 진법 끝에서부터 내 지시대로 땅을 다듬기 시작했다.


비탈진 곳은 계단식 밭이 되도록 모양을 잡고, 평지는 새로운 건물이나 부대시설을 세울 수 있게 사각형으로 땅을 팠다. 계곡물을 연결할 연못터도 웅장할 정도로 넓게 만들었다.


돌부리들이나 나무뿌리 같은 것들이 병장기에 걸릴 때마다 번쩍이는 검기와 함께 파쇄되었다. 흩날리는 먼지들이 지나갈 때마다 정비된 토지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넓어진 토지 대공사를 마무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닷새였다. 일류 이상으로만 구성된 무림공병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새롭게 개간한 밭에는 씨감자를 파종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땅이 넓어져서 파종이 훨씬 힘들었다. 파종을 하고도 감자가 남는 게 더 신기했다.


파종하기에 살짝 추운 감이 있었지만, 신비로운 삼정산의 정기를 믿는다. 감자를 제외하고는 남은 종자도 없고, 시기도 일렀기 때문에 밭일은 이 정도로 넘어간다.


아직 터만 잡았을 뿐인데, 넓어진 땅을 보며 다들 조금 들뜬 것 같았다. 하지만 부족하다. 전생에서 한 축구 명장이 이런 말을 했다.


'난 아직 배가 고프다.'


정진하는 자만이 공감할 수 있는 명언일 것이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감상에 빠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 내게도 이런 탐욕적인 광기가 있었구나. 하앍 기분좋아.


기세를 몰아서 넘쳐나는 목재들을 이용한 신축에 돌입한다. 미리 잡아뒀던 터에는 당(堂), 각(閣), 고(庫)라 칭할만한 건물을 세울 것이다.


백예린과 화하둥이, 이렇게 어린이 세명이 각각 지정된 곳에서 점토, 석회석, 모래를 확보한다. 그리고 도구가 순회하면서 썰매로 싣어 날랐다. 흙땅에 썰매? 이화 말로는 우리 도구 내공이 일갑자라더라. 영물의 내공담긴 썰매는 흙땅이 아무렇지 않다.


이 재료들이 한데모이면 대나무 수로에서 물이 공급된다. 마지막 단계로 절정 검사의 검 끝에서 생겨나는 검풍이 그 것들을 잘게 부수고 반죽해 나갔다. 이렇게 완성된 중원식 콘크리트는 전생 노가다 일꾼 공도유씨가 지어놓은 중목과 거푸집에 어우러져 굳혀진다.


구들과 아궁이는 엉성한 돌맹이들을 쌓아 만드는 게 아니라, 석재를 검기로 정교하게 절단해서 마감했다. 옹기를 구울 때 쓰던 귀신풀즙을 발라 모든 벽면을 방수처리했다. 열흘이 지나고 나니 가옥 형태의 건물 세 채, 창고 다섯 채가 완공되었다.


그렇다면 비로소 공도유님의 배는 꽉 찼는가?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겠는가? 아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점토를 다시 모았다. 그리고 옹기를 만든다. 초대형 물동이가 될 옹기 다섯 개, 그리고 더욱 정교해진 양변기를 완성했다. 측간 다섯칸을 짓고, 옥상에는 초대형 물동이를 얹었다.


지난 일년간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양변기는 이제 뚜껑을 제외하고는 현대에서 쓰던 것과 거의 흡사하다. 벽에는 향이 제법 좋은 약초 말린 것을 담은 면포를 걸었다.


이렇게 내가 근대식 화장실을 짓는 동안, 이화가 제법 굵은 통나무들을 뚫어 대형 배관을 만들었고, 땅까기라면 눈 감고도 십리를 균일하게 파낼 수 있게 된 우수 공병 어린이들이 하수도를 마무리했다.


사흘이 걸렸다. 이제서야 삼정공가의 대(大) 장남, 공도유의 배고픔이 사라졌다. 하얗게 불태웠어.


모든 공사가 끝나고 마당에 모여서 주위를 둘러봤다. 장관이었다. 정적 속에서 제 각각 이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화가 저 멀리 밭에 갓 돋아난 감자싹을 발견한 듯 했다.


뜬금없이 최신속의 경공을 발휘한 그녀가 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싹을 쓰다듬는다. 누가 뭐래도 이 대공사의 일등공신인 그녀는 감상이 남다를 법도 했다. 눈물을 한방울 훔치는 그녀가 혼잣말을 옲조린다.


“검 끝이 생(生)을 향할수록, 이다지도 찬란한 것을.”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주변이 환하게 빛나더니, 눈을 감은 그녀가 살짝 공중에 떠올랐다. 깨달음의 순간이다. 우리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지켜보며 주변을 지켰다.


삼정산 정상에서 봄의 시작과 함께 초절정 고수가 태어났다. 그녀가 베어 낸 나무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과연 생을 향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지만 말을 삼켰다. 아마 말하면 주화입마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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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6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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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세가들과의 인연 +2 24.09.14 502 11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8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1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4 14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5 24.08.25 715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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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혹시 반로환동 하셨습니까? +3 24.08.24 750 15 16쪽
» 12. 이다지도 찬란한 것을 +4 24.08.23 771 17 10쪽
11 11. 밥값 하셔야죠? +3 24.08.22 764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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