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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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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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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새봄맞이

DUMMY

이제 삼정공가는 완전히 원래의 분위기를 찾았다. 일찌감치 파종했던 감자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빈 밭에 파종도 준비한다. 마을에서 구해 온 종자들의 종류가 많다.


배추, 무, 대파, 양파, 당근, 참깨, 들깨, 대두, 씨앗은 아니지만, 마늘과 고구마까지···.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고추가 없는 것이 아쉽다.


필요량과 수확량을 고려해서 파종량과 범위를 나눴다. 간단하게 생각했었는데, 농사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생각과 달리 꽤 어려운 일이었다.


별수 있나? 느낌대로 해야지. 구획을 모두 나누고, 파종은 동생들에게 맡겼다. 모종삽을 든 2인 1조의 환상적인 경공술로 전문성을 보여줬다.


그동안 나는 약초와 나물, 버섯 등을 채집했다. 나 또한 일류 무림인답게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산속을 누볐다. 제법 수확이 좋다.


푸짐하게 채집해 온 냉이와 달래, 버섯을 씻어두고 점심을 준비하려니까, 알아서 제 밥값하는 공도구가 부엌 앞에 꿩 세 마리를 잡아두고 갔다. 한량없는 삼정공가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오랜만에 싱그러운 봄나물 냄새를 맡으니, 대충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조미료들도 생겼겠다, 달래장을 했다. 알싸한 달래향과 짭쪼름한 전통간장, 고소한 참기름 맛으로 감자도둑이 될 반찬이다.


냉이는 모아둔 감자전분을 꺼내와서 얇게 입힌 뒤에 튀긴다. 짚신도 튀기면 맛있다는 농담이 있듯이, 얇은 튀김옷이 향을 잡아두니 입안 가득 봄향기가 채워진다.


버섯과 남은 냉이를 된장찌개에 넣으니, 쌀밥 없는 식단이라는 것이 슬퍼진다. 도구가 잡아 온 꿩고기는 달래장을 하고 남은 양념간장을 발라가면서 직화로 구워냈다.


맛있는 냄새가 널리 퍼질 때쯤, 동생들이 파종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마 일반 농부들이었다면 며칠을 걸렸을 것 같은데, 어린이 무림 농부들에게는 반나절 일과밖에 되지 않았다.


압도적인 효율 때문에, 점심 이후의 시간은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 중에는 내 개인연구를 위한 약재당(藥材堂)이 있다.


이 곳은 이름만 약재당이고, 현대인 시절에 쓰던 소재들을 대신할 수 있는 무림 재료들을 연구한다. 무림 세계만의 고유 광물과 약재들을 배합하면서 연구일지를 남기고 있다.


현재 약재당 연구주제는 고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료수집은 주로 도구가 해주고 있다. 오늘은 나물을 뜯다가 발견한 탄괴버섯과 즐겨쓰는 귀신풀을 고아냈다.


탄괴버섯은 가까이 가면 눈이 따가운 독기를 내뿜는 독버섯인데, 그 특유의 탄성이 좋아서 고무대용품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가공과 제형이다. 열에 닿으면 돌처럼 딱딱해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첨가제를 찾는 중이다. 귀신풀은 아니군. 언젠가 성공하리라.


연구를 마치고 나오니, 동생들은 마당에서 운기조식 중이었다. 실내는 답답하다면서 늘 밖에서만 운기조식 하곤 했다.


우리 삼남매는 일전에 이화와 예린으로부터 백가장의 중급무공을 전수받았었다. 나는 백가장의 독문심법인 금혼생공(金混生功)을 익혔다. 삼재심법보다는 훨씬 축기효율이 좋았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다.


나와 달리 동생들은 백가장의 무공을 쓰지 않는다. 무공 원리에 대한 공부가 깊어지면서, 자기들만의 독문무공을 쓰고 있다.


이화가 말하기를 백가장 중급무공보다는 몇 수 위의 상승무리를 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담비 뛰기’, ‘호두나무 날숨’, ‘멧돼지 머리치기’ 등 그 이름이 수준에 비해서 너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담비뛰기는 도약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배워보고자 질문한 적이 있다.


“오라버니, 담비 뒷다리 근육에 힘을 주고, 요추는 가볍게 힘을 빼고, 용천혈에서부터 내기를 호두나무가 숨을 쉬듯 끌어 올려봐요.”


“형아, 다람쥐랑 헷갈리면 안돼, 꼭 담비 뒷다리 근육이어야 해.”


이거 무공맞지? 화하둥이의 설명 한마디에 포기했다. 다음 날은 뒤뜰에 만든 연못터에 대나무수로로 물을 이었다. 나름 멋스럽게 꾸몄지만 실제로는 수산자원 양식장이 될 것이다. 생각해둔 것도 몇 가지 있었다.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는데, 배고픈 어린이들이 물고기 잡이를 안해봤을까? 초옥살이 초기에는 여러 번 시도해봤다. 결과적으로 꽝이었다.


허접하게 만든 나무 작살로 날랜 고기들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어렵게 성공해봤자 주린 배를 채우기엔 그 씨알이 작은 편이었다. 차라리 땅에서 잡을 수 있는 것들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포기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이야기가 다르지. 동생들을 이끌고 계곡 깊은 곳에 왔다. 내 목표는 민물새우 생포. 연못에서 양식되어 미래의 새우젓이 되실 귀한 몸들이다.


이 작고 빠른 새우들을 잡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 삼정공가에서는 그물이나 통발같은 것도 필요없는 이야기다. 동생 둘을 물에 풀어두니, 자기들끼리 신나서 물장구치면 생태계를 정복해버렸다.


항아리 가득 담긴 어자원들을 여러 번 연못으로 옮겼다. 저수지처럼 갇힌 구조가 아니라 물길이 다시 계곡 중간으로 이어지게 설계했기 때문에, 일부는 다시 계곡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다시 계곡으로 흘러갈지, 연못에 정착할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도망쳐봤자 화하둥이 한번 풀면 다시 잡혀 올 일이기도 해서 별 생각은 없었다. 잡아 온 것중에 씨알이 굵은 송어를 소금을 뿌려 구워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생선이었기에, 소금만 뿌렸을 뿐인데도 맛이 기가 막혔다. 새로운 맛에 눈을 뜬 동생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삼정산 계곡 생태계를 위해 미리 주의를 줬다. 멸종위기는 막아야 했기에.


생활의 여유도 생기고, 안전도 확보된만큼 마을에 오가는 일을 늘렸다. 약초팔이보다는 주로 여기저기 품을 팔고 다녔다.


품값이라고는 대부분 일하고 얻어먹는 새참 정도라서 돈도 안 되는 일 이지만, 농사라거나 목공이라거나 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을 받았다.


품 파는 날이 아니면 동생들도 종종 데리고 내려왔다. 동생들은 저잣거리에서 잡일을 돕고 간식을 얻어먹거나, 글을 모르는 어른들께 읽고 쓰는 일을 대신해드렸다.


글을 아는 것을 밝힐까말까 고민했지만, 동생들이 자신들을 귀여워해주시는 어른들께 도움이 되고싶다기에 허락했다. 그렇게 우리 화하둥이는 삼정촌 저잣거리에서는 꽤 사랑받는 재간둥이가 되었다.


오며 가며 만나게 되는 대길이도 은근히 챙겼다. 아직도 왈패짓을 끊지 못했기 때문에, 발견하는 때마다 대가리박기 교육을 시켜줬다.


열악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청소년들이겠지만, 꼬꼬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급자족하는 내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가끔씩 품을 팔 때마다 끌고 가서 일해서 먹고 사는 법을 가르쳤다. 일터의 어른들은 처음에는 좋게 보지 않았지만, 내가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천천히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일 없는 날에는 내가 채집해온 버섯이나 약초들을 직접 저잣거리에 판매시키고 수익 일부를 나눠줬다. 가지고 도망가거나, 값을 삥땅치면 어떻게 되는지, 유형화 한 권기(拳氣)를 보여줌으로써 기강을 다시 한번 잡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세상 소식을 전해주면 몇 푼씩 정보값을 줬다. 이게 가장 쓸모가 있었다. 덕분에 백가장의 소식도 꾸준히 접할 수 있었다.


백가장은 안정을 찾는 정도를 넘어서 성업중이라고 한다. 무정불살(無情不殺) 연이화가 소요를 모두 잠재웠고, 사황련과 무림맹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습한 덕분이란다.


그를 계기로 백가장은 꽤 많은 지역에 진출하여 지부도 설립중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무가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아예 야장(冶匠) 가문으로서 중원제일가(中原第一家)가 되기 위해 쇄신 중이라고도 한다. 괜찮은 방향 같다. 이 소식을 전했을 때는 대길에게 제법 많은 철전을 쥐어줬다.


순조롭게 마을에서의 일을 마치고, 객잔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소면을 다 먹어가던 때, 허름한 차림의 소녀와 그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객잔에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소면 한 그릇을 시켜서, 둘이 나눠 먹으려는 듯 보였다. 과거의 내게도 그러셨듯이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는 두 그릇을 내어주셨다.


“아저씨, 감사하지만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고 받을 수는 없어요. 이미 두 그릇을 주셨으니, 먹고 그만큼 일을 하겠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세요.”


제법 지조있게 말하는 여자아이는 허름한 차림과 달리, 기품이 있었다. 뭔가 내적친밀감을 느끼면서, 쳐다보지 않고 귀만 열어뒀다.


아저씨는 이미 여자아이의 성품을 알고 계셨는지, 식사를 마치면 이층 객잔에 올라가서 청소를 해달라고 하셨다. 궁금증이 생겼지만, 말 안해봐도 불편해할 게 뻔해서 접근하지 않고 일어섰다. 나중에 아저씨께 여쭤봐야지.


낮이 길어졌고, 경공으로 산을 오르니 해가 지기도 전에 집에 도착했다. 축사를 청소하던 동생들이 나와서 반겨준다. 마을과의 왕래도 안정이 되었고, 삼정공가의 살림들도 청신호만 보이니 그야말로 푸른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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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3 24.09.16 392 13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25 15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6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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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세가들과의 인연 +2 24.09.14 501 11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7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0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3 14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5 24.08.25 713 1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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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새봄맞이 +3 24.08.25 711 1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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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백예린 +3 24.08.21 792 18 11쪽
8 8. 무림인과의 조우 +5 24.08.20 803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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