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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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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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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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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DUMMY

보통 주인없는 산은 나라의 소유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가능하다면 이 토지를 분양하거나 세를 주기를 원한다. 당연한 소리. 세수를 걷어야 하니까.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이라는 말이 있지만, 서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각 산에 자리잡은 문파들은 관할 성이나 현에 세수를 납부한다. 그것만 납부하면 무림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것이 관례이다.


문파들은 좀 덜하지만, 무림세가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분양받은 토지로 소작을 주고 더 큰 세를 받는다. 아무튼 어느 세상이든 땅은 곧 힘이요, 영향력이기 때문에 모두가 원한다. 서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삼정산은 중원 변방인 감숙성, 그 안에서도 외각 마을, 심지어 역병이라거나 안 좋은 사례가 많다보니 어느 세가도 주인이 되고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전국적으로 쇠두드리고 돈을 쓸어담는다는 백가장이 나서서 매입을 신청하니, 관은 일사천리로 허가했다고 한다.


관의 사정과 달리, 정사의 양쪽에서 보호받는 백가장이라지만 다른 무파나 철방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분타를 많이 늘렸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타 가문이나 문파가 패권을 이미 잡은 지역에서 어느 정도 상납식 납품을 하고 감시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이다.


삼정산의 위치는 변방으로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백가장은 오직 소가주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행사이며, 영정현을 포함한 감숙성 어디에도 철방이나 분타를 세우지 않겠다는 가주의 약조문까지 무림맹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 모든 절차가 끝나고나서야, 감숙성 영정현으로부터 토지문서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한다. 세수는 일 년에 은자 오십 냥.


시골이라지만, 산의 규모에 비하면 적은 액수였고 골칫거리 땅 치고는 비쌌다. 내가 약관이 될 때까지 백가장에서 낸다고 한다.


어쨌든 삼정산은 주인 있는 땅이 되었고, 수년이 흐르면 내가 그 주인이 된다. 여전히 얼떨떨하다.


사정을 듣고나서, 예린이 직접 백가장 가주의 친서를 전했다. 그 자리에서 읽어도 되는 지를 묻고 바로 읽었다. 고상한 문가가 아니라, 쇠를 두드리는 무가여서 그런지 담백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죽을 뻔한 딸을 구해줘서 고맙다. 짧게나마 여기서 지낸 일이 딸에게 큰 기연이 되었기에 또 한번 감사를 전한다. 하지만 딸은 못 준다. 연필을 받아봤다. 팔아줄게, 얼마 줄래? 언제 한번 서안에 오면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 좀 나누자. 그래도 딸은 못 준다. 내가 갈 수 있으면 가겠다. 아직 어리다고 들었다. 그래도 술은 마시자.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다. 딸은 못 준다. '


서신을 다 읽고 피식 웃었다. 대충 아버지가 무슨 말을 썼을 지 예상하는지 예린이 민망해했다.


"가주님께 전해 주십시오. 보은이라 하셨지만, 넘치는 답례를 받았습니다. 물론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대신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약한 지혜라도 귀 가문에 득이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요. 그리고...안심하셔도 된다고요."


마지막 내 대답에 충격이 조금 있었나보다. 이런 건 빨리 정리하는 것이 옳다. 사실 취향이네 뭐네 핑계댔지만, 여자가 싫은 것도 아니다. 그냥 아직 이른 것 뿐이다.


남녀가 유별하네 어쩌니 하는 세상에서는, 손 한번 잘못 잡았다가 혼례를 치를 수도 있다. 조심해야지.


"아무튼 당분간은 주인이 백가장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무단세입자가 인사드립니다."


땅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냈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눠본다. 나는 준비해둔 연필을 꺼냈다. 그들이 보았던 때보다 완성도가 올라갔다.


"완성도를 높인 연필입니다. 백가장에게 유통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납품가는 한 자루에 철전 세 닢을 받고 싶습니다. 판매가는 백가장에서 결정하시면 되고요."


"아버님도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중급 붓도 한 필에 두 냥은 받습니다. 문사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물건입니다만, 상계나 기타 실업계에서는 혁명적인 물건이지요. 사용이 붓보다 훨씬 편리한데다가, 종이를 훨씬 아끼게 될 겁니다.


폭발적인 수요가 있을 거고, 당연히 가격은 세닢보다 훨씬 높게 형성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납품가를 더 올리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본 가문은 판매를 담당하게 된다면, 저렴히 판매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가격은 귀 가문에서 정해주십시오. 널리 유통되었으면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안 되었으면 좋겠지만요."


"재고는 얼마나 보유하고 계십니까? 부피도 워낙 작기 때문에, 유통이 정말 쉽겠네요. 덕분에 우리 집안이 돈을 벌게 될테니, 미리 감사드립니다."


나는 자체적으로 소모할 것을 제외하고 만 자루만 먼저 납품하겠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선금으로 은자 삼십 냥을 받았다.


예정했던 납품가를 다 받았던 것인데, 나중에 판매가가 확정되고 실판매가 시작된 이후 남은 잔금을 치루겠다고 한다. 거절하지 않았다.


일 이야기는 잠시 멈추고, 셋이 장원을 걸었다. 린화당은 늘 청소를 했기 때문에 깨끗했다. 백가들은 행낭을 풀고 나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들의 손이 닿은 곳이었기에 감상에 빠지리라.


동생들에게 이미 수확지옥에 대한 일을 전해 들었단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무인들이라, 수확량 같은 것을 몰랐기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고 한다. 그냥 그때 심은 감자가 지금쯤 다 여물었나 궁금은 했었단다.


"정말 이 곳은 늘 발전하고 있군요. 장원의 풍경만 본다면, 백가장이 초라해질 보일 정도로요. 이 곳을 떠나고 가장 그리운 건, 측간이었지만 말이에요. 공자, 차라리 그 양변기라는 걸 유통하면 안되나요? 아니면 우리 백가장만이라도 납품해주세요. 도공들에게 설명을 해봤지만 못 알아듣더라고요."


오, 좋은 생각이다. 양변기가 보급화되는 무림세계.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장원 한 바퀴를 다 돌고나서, 초옥으로 돌아왔다. 그때 이화가 묻는다.


"공자, 그런데 어째서 초옥만은 새로 짓지 않았나요?"


응? 그러게? 듣고나서야 깨닫는다. 나도 그렇고 동생들도 그렇고 이상한 것을 몰랐다. 보수를 하긴 했지만, 허물고 다시 지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초옥은 이대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진지하게 초옥을 조사해봐야겠다. 지금은 이대로 좋으니까. 어쨌든 마당에 큰 상을 폈다. 식솔 전원이 모인다. 이미 다 안면을 텄기에 오손도손 모여서 지방방송을 켠다.


"다들 처음 오셨을 때는, 제가 실력발휘를 했었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자전분을 꺼내오자, 진남매와 화하둥이가 긴장한다. 잠시 지나간 감자의 추억이 떠오른 듯 했지만, 오늘은 다르다. 감자전분 입힌 닭튀김 맛을 제대로 보여주리라.


닭을 또 머릿수만큼 잡았다. 이제 그래도 된다. 머릿수 세어보고 이상해서 확인해보니 도구가 아직 안돌아왔네. 무슨 일 있는지 걱정이 잠시 스쳤다. 뭐 도구도 그동안 바빴으니까. 휴가를 즐기는 것이겠지. 내일까지 안돌아오면 찾아봐야겠다.


다시 점심준비에 진심을 다한다. 내장을 정리하고 피를 빼낸 닭을 다시한번 깨끗히 씻고 물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토막을 낸 뒤에 감자전분 얇게 익혀서, 그대로 커다란 무쇠솥에서 끓는 콩기름에 넣는다. 고소한 튀김냄새가 삼정산을 뒤덮는다.


반은 그대로 그릇에 담고, 반은 다시 큰 대야에 넣고 공도유 필살 마늘설탕간장참기름 조합의 양념간장에 버무린다. 밭에서 대파를 끊어와서, 길게 채썬다. 다시 버무리면 끝이다.


모두의 공포가 된 감자를 채썰어서 소금을 살짝 친 뒤에 마저 튀겨낸다. 담가 둔 백김치를 꺼내서 상을 완성했다.


모두 전투적으로 먹었다. 천대받던 감자, 제대로 튀겨내니 남김없이 먹더라. 제법 실한 닭으로 잡았는데, 입이 짧은 편인 소한이도 잘 먹었다. 결국 머릿수에 맞춰 잡은 닭은 모두 사라졌다.


앞에 놓여진 뼈를 보니, 진남매가 적게 먹고 이화가 넘치게 먹었다. 느끼한 것을 먹다보니, 잘 익은 백김치도 인기가 좋았다. 자기 앞에 쌓인 뼈가 민망했는지 이화가 과장된 몸짓으로 요리를 칭찬을 했다.


나는 검끝이 사(死)를 향했는데, 괜찮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제 익숙해졌는지 이화는 생이든 사든 자연스러운 조화라며 쉽게 받아쳤다. 재미 없어졌네.


식사를 마치고 다들 편안한 자세로 마루에 널부러졌다. 예린과 이화도 대공사 때부터 공가 안에서 격식을 포기했고, 진남매는 교육을 통해서 공가화되었다.


입가심으로 마실 것이 없어서 아쉽긴 하다. 아무튼 다 모인 자리에서, 백가장이 삼정산 주인이 되었고 몇년 뒤 내게 양도할 것임을 알렸다. 실제로는 보호자 신분인 셈이고, 이미 내가 주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다들 좋아했다.


누워있는 이화가 물었다.


"서류 상의 문제일 뿐, 그동안도 주인이나 다름 없지 않았나요? 공자께서는 앞으로 삼정산을 두고 무엇을 하실 건가요?"


그 질문에 나는 미소지은 채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난 오 일간 생각했던 것. 그리고 마당으로 나와 모두의 앞에 섰다. 누워있던 모두가 바르게 앉는다.


"약관이 될 때까지, 삼정산을 모두 개발하고 공개할 겁니다. 그 때 우리 삼정공가가 세가를 이루었음을 천하에 선포할 겁니다. 상계에 포함될 수도 있고, 무림에 한발 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더 넓은 틀 안에서의 가족을 이루고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내 영역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없는, 외면받는 약자도 없는 그런 울타리를 세우는 것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배운 자들이 말하는 인(仁)이 될 수도 있고, 의(義)가 될 수도 있겠지요. 다만 넓지 않습니다. 오직 내 품안에 닿는 사람들만을 향한, 조금은 이기적인 울타리입니다.


삶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보살피는데 애썼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묻는다면, 그저 해왔던 것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니까요. 나는 가족을 지키는 가장으로서의 삶을 쭉 가보고자 합니다. 빼앗는 자가 생긴다면 맞서 지킬 것이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신뢰로 보답할 겁니다.


그렇게 나와 우리 공가는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다들 그저 경청했다. 그저 동생들만이 먹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윽고 동생들이 내게 발걸음하더니 안긴다.


"태어날 때부터 내 오라버니셨고,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거에요. 나는 내 오라버니가 늘 자랑스러워요. 늘 내 삶을 지켜주셔서 고마운 우리 오빠, 사랑합니다."


"형이 하려는 일은 동생인 나도 같이 하는 거에요. 이제는 내가 큰형을 지켜줄게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소미, 소한이 말한다.


"세가를 이루기를 천명했음에도 가주가 아닌 가장이란 표현을 쓰는 공자를 존경합니다. 두달 전 먼저 손 내밀어 준 호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늘 신의로 보답할 것입니다.


가신으로서 충성을 맹세해야 옳겠지만, 가족이라 말씀해주셨는 걸요. 가족으로서 울타리를 함께 지키겠습니다. 황하진가(黃河眞家)의 장녀, 진소미가 맹세드립니다."


"황하진가(黃河眞家)의 차남, 진소한이 변치 않고 삶의 끝까지 함께 하기를 맹세드립니다."


예린도 이어 말한다.


"서안에서 야장의 혼을 잇는 백가장의 독녀 백예린이 오늘의 맹세를 기억하고 보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화가 말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경지를 이룩한 초절정 무인으로서 함께 보증합니다. 귀가의 무궁한 번창을 기원합니다."


나름 진지하게 천명을 마쳤다. 동생들을 토닥여주고 다시 마루에 앉았다. 이화는 도로 누웠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저 백가장나오면 가족으로 받아줍니까? 백가장엔 오늘처럼 맛있는 닭튀김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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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3 24.09.16 391 13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24 15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62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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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세가들과의 인연 +2 24.09.14 501 11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7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0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3 14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5 24.08.25 713 16 12쪽
16 16. 가족 +5 24.08.25 699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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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백예린 +3 24.08.21 791 18 11쪽
8 8. 무림인과의 조우 +5 24.08.20 803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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