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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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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최강의 빈객이 제발로 굴러왔다.

DUMMY

녹림왕은 나와의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바로 떠났다. 실무자들을 이끌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녹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하자, 정파의 명숙인 제갈상현과 신개는 좋지 않게 여겼다. 추가로 지원온 사천당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내가 녹림왕과 나눴던 대화내용들을 구구절절히 설명해봤지만, 오히려 그들의 걱정은 깊어졌다.


정파와 대립선상에 있는 사파무림 중에서도 규모로 최대세력인 녹림, 심지어 당대의 총채주인 위무겸은 천하십대 고수에 이름을 올린 화경의 고수로 녹림의 전성기를 이룩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내가 말한대로의 개혁마저 성공한다면, 이후 세력간의 균형이 크게 무너질 수 있다.


아예 무림맹에서는 당장에라도 우리 삼정공가를 무림공적에 올리고 멸문시킬 수도 있는 일이란다. 협력관계의 가문들로서는 갑작스럽게 불편한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 맞다. 모두가 같은 의견으로 내가 번복해주기를 요청했다. 이 일로 녹림이 보복한다면 무림맹이 총력으로 보호해주겠다면서 말이다.


그들의 의견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지만, 번복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음만 답답해졌다.


"참으로 답답들 하십니다. 제가 투자한 일들이 언제 실패하는 것 봤습니까? 왜 이렇게 보는 시야가 좁으십니까? 제가 설명드린 내용들 이해하신 거 맞습니까?


제가 설명해드린대로 녹림이 변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사파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고 정파가 되는 것도 아니지요. 계획대로만 흘러가면 녹림은 사파에서 제외되고 상계와 같이 중립세력으로 변화될 겁니다. 그렇게되면 결국 사파세력은 규모에서 가장 큰 축을 잃는 것이구요.


그 전까지 우리 공가가 오명을 뒤집어쓰긴 할테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겁니다. 정파무림의 공격이요? 해보라지요. 정파무림이 우리 가문을 적대시하는 그 날, 가문사람들 다 이끌고 녹림에 투신할 겁니다. 제가 그동안 보여드린 발상과 지혜들이 이것 뿐일까요? 삼정공가가 뒤에 붙은 녹림이랑 시원하게 정사대전 한번 붙어볼까요?


당분간 정파의 협객들이 대의를 표방하면서 저를 암살하려 들테니 본가의 진법 안에서만 활동 해야겠네요. 진법 파훼하고 저를 때려 죽이려면 현경의 고수라도 끌고 와야할텐데, 삼존은 모두 은둔하셨다지요? 해볼테면 해보라지요.


대신 저를 죽이지 못한다면 제대로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당가도 못 고치는 역병을 만들어서 정파세력권에 뿌려버릴 거니까.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저를 처단하시겠습니까? 그러시겠다면 뭐, 살아날 방법은 없겠군요. 제갈신혜 소저께 제 최후를 거두셨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어주십시오."


내가 언성을 높이자 밖에서 놀던 동생들과 도구가족이 모두 접객당으로 들어왔고 나를 보호하는 진형을 갖췄다. 예순을 훌쩍 넘긴 그들이, 가족을 지키겠다고 뭉친 어린이들을 보면서 착잡한 표정만 지었다.


"신개께서는 지금 제가 말씀드린 내용들을 무림맹에 잘 전달해주시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일 겁니다. 녹림이 사파에서 빠지고, 중립세력이 되는 절호의 기회인데 무림맹에서는 오히려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제갈 태상가주께서는 그동안 저를 믿어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제발 넓게 좀 봐주십시오. 협력관계의 가문들이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천이나 호북에도 녹림이 영역잡은 산채들이 몇 있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빨리, 관이나 땅주인을 만나서 알짜배기가 될 토지를 매입하십시오. 녹림왕보다 빨리 합법적으로 토지를 취해야만, 앞으로 자리잡을 녹림 유통에 한 숟가락 얹을 거 아닙니까?"


내 마지막 말에 눈이 휘둥그래진 제갈상현과 당가 무사들은 그순간 인사도 생략한 채로 쏜살같이 하산을 시작했다. 그들도 직감한 것이다. 지금 적법한 땅주인이 되는 게 얼마나 큰 기회가 되는 지 말이다. 어차피 진법 통과하려면 본가 사람들과의 접촉이 필요한 것도 잊은 모양인 듯 했지만.


결국 진법 경계까지 찾아갔다.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당가무사들과 제갈상현이 전력을 다해 각자의 가문으로 복귀했다. 남은 신개도 빨리 무림맹으로 돌아가서 내 의견을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똑같이 진법 밖으로 안내해드렸으나, 신개는 떠나지 않고 머뭇거렸다.


"이보게, 공 공자. 돈 좀 빌려줄 수 있는가?"


중원 거지들의 수장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대륙전장의 전표를 넉넉히 챙겨드렸다. 한순간 고조된 위기가 모두 사라졌고, 긴장했던 나는 초옥의 마루에 드러누웠다. 동생들은 내게 물을 떠다주고 나서, 사당에 잠시 들르더니 중촌으로 놀러갔다. 정착민이 늘면서 드디어 그들의 자녀들인 또래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조용해진 본가에서 편히 쉬는데, 도구와 희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급하게 소리가 나는 곳에 갔더니, 처음보는 중년남성과 어린 소년이 보였다. 그들이 보이는 곳은 놀랍게도 진법의 안 쪽이었다. 처음으로 진법이 파훼된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정파 어른들께 날선 채 쏟아냈던 말처럼 현경의 고수라도 찾아온건가 싶다.


도구가족들이 모두 으르렁거리면서 두 사람을 경계했고, 그들은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는지 그 자리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도착하자 중년 남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뜻하지 않게 실례했네. 손자가 며칠 전에 이 곳에서 먹은 건락전이라는 음식이 그리도 맛있었다기에, 다시 한번 얻어 먹을 수 있을까해서 이렇게 결례를 범하면서 찾아왔네. 귀한 음식인만큼 값이 비쌀 테지만, 돈은 충분히 챙겨왔네만 혹시 음식을 내어줄 수 있겠는가?"


직감적으로 눈 앞의 사내가 대단한 고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진법을 파훼한 것도 그렇고, 영물들이 침입자들에게 경고의 소리만 낼 뿐 덤벼들지 못하고 있던 점도 그렇다.


"이 집안을 보살피고 있는 공도유라고 합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누구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참, 다시 한번 실례했네. 강아지들이 심하게 짖어서 당황했지 뭔가? 내 이름은 적천백(赤闡魄)이라고 하네. 기문진법이 있는 동네인 줄도 모르고, 멋대로 들어와서 놀래킨 듯하니 미안하네. 진법때문에 속일 수도 없겠구만. 나는 제법 경지가 높은 무인이라네.


다만 정말로 다른 뜻은 없고 내가 음식하는 재주가 없다보니, 손자가 늘 맛없는 죽이나 먹고 살고 있었기에 맛있는 것 좀 먹이고 싶어서 방문한 것 뿐임을 믿어주시게. 그대가 삼정공가의 가장이라는 공도유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왔고."


검존(劍尊) 적천백(赤闡魄). 무림인이 아니라도 중원인들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은거중인 삼존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중원 제일 무인의 이름을 말이다. 오래 전, 연이화에게 들었던 질문을 그에게 꺼냈다.


"혹시, 반로환동(反老換童)이라도 하신 겁니까?"


삼존은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나이이다. 전원 백 세를 넘겼으니. 하지만 아무리봐도 사십 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외견이었다. 방금 전까지 머물던 제갈상현과 신개도 나이에 비해 젊은 외형이었지만, 본인이 검존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는 그들보다 나이는 한 배분 이상 높음에도 더 젊어보였다.


"아, 어린 공자라서 모르겠구만? 무림맹 아해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일인데 말야. 반로환동한지는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네. 비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지. 제갈가의 아해와 거지놈이 급하게 내려가는 것을 보긴 했는데, 그 아이들이 있을 때 올라왔으면 설명도 쉽고 좋았겠구만.


참고로 나말고 소림의 땡중도 몇년 전에 반로환동 했다네. 황색 가사입고 다니는 젊은 놈중에 성깔 더러워보이고 무공도 쎄보이는 놈을 본다면 주의하게. 땡중 주제에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가는 놈이니까. 아무튼 결례를 범하면서 방문한 김에 신세를 지었으면 하네. 여기는 내 손자일세."


제갈세가의 태상가주를 아해라고 지칭하는 중년이라니. 그 중년 앞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이 포권하며 인사했다.


"며칠 전 뵈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드시는 모습이 정말 멋지셨습니다. 저는 적현이라고 합니다."


"공도유 입니다. 제 음식들이 맛있었다고 하니 기쁘군요. 다소 놀라긴 했으나, 위협이 없다면 모두 손님이지요.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도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그들을 초옥의 마루로 안내했고 차를 내왔다. 도구와 희아가 짖는 소리를 들었는지 동생들도 중촌에서 급하게 뛰어온 듯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동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게도 오늘 하루 동생들을 여러 번 놀래키게 되었다.


제갈상현과 신개를 마주할 때도 긴장하지 않았던 동생들은 제대로 느낄 수도 없는 경지차이에 긴장을 한 듯 했다. 그들에게 적의가 전혀 없음을 확인하면서 그 긴장은 호기심으로 변했다. 화경의 경지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감흥이 없었지만,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지고한 경지는 다르게 여겨지는 듯 했다.


검존도 당연히 동생들의 무재를 알아보고 호기심을 가지는 듯 했다. 경계심이 사라진 동생들은 마치 과거 저잣거리 어른들을 대할 때처럼 검존께 편하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적천백도 흔쾌히 답을 이어갔다.


그동안 나는 시간을 들여서 며칠 전에 대회 뒷풀이때 내놓은 음식들을 재현했다. 적씨 조손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둘다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음에도, 잘 먹기로 유명한 우리 공남매보다 먹성이 더 좋았다. 동생들도 옆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나는 중간중간 새로운 음식들을 내왔다. 다섯 명이 거의 삼십 인분의 식사를 거덜내고 늘어졌다. 흡족한 식사를 마친 적천백은 대수롭지 않은 말을 꺼내듯이 내게 물었다.


"자네 집안, 혹시 빈객은 안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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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도적놈들은 따로 있었구만 NEW +6 4시간 전 75 11 9쪽
37 37. 삼정산의 정체 +12 24.09.19 230 13 11쪽
36 36. 다 떠들었냐? +2 24.09.19 214 9 12쪽
» 35. 최강의 빈객이 제발로 굴러왔다. +5 24.09.18 262 10 10쪽
34 34. 산 남자끼리의 우정 +3 24.09.18 255 11 14쪽
33 33. 천하제일 장인대회 (3) +5 24.09.18 271 13 13쪽
32 32. 천하제일 장인대회 (2) +4 24.09.17 334 11 13쪽
31 31. 천하제일 장인대회 (1) +3 24.09.17 392 14 7쪽
30 30. 올해도 감자농사는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4 24.09.16 394 12 12쪽
29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4 24.09.16 427 14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61 16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99 17 13쪽
26 26. 후추를 얻다 +2 24.09.14 524 18 8쪽
25 25. 세가들과의 인연 +3 24.09.14 540 13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81 15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730 16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722 17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722 16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3 24.08.28 713 16 11쪽
19 19. 호구조사 +5 24.08.27 728 17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 24.08.26 748 17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6 24.08.25 759 19 12쪽
16 16. 가족 +6 24.08.25 743 20 7쪽
15 15. 새봄맞이 +5 24.08.25 754 19 9쪽
14 14. 삼남매 첫 나들이 +3 24.08.25 784 21 11쪽
13 13. 혹시 반로환동 하셨습니까? +4 24.08.24 788 18 16쪽
12 12. 이다지도 찬란한 것을 +4 24.08.23 811 19 10쪽
11 11. 밥값 하셔야죠? +3 24.08.22 804 18 11쪽
10 10. 다짐 +5 24.08.21 825 17 11쪽
9 9. 백예린 +3 24.08.21 833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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