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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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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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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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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DUMMY

조금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일이 늘어났다. 제갈세가의 분석결과 때문이다. 먼저 상하수도의 개선. 지금의 상하수도는 필요 이상으로 물이 공급되는 상태로, 중간중간 저장 시설을 만들고, 수압과 수량을 조절하는 일이었다. 고무관련 모든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되는 모든 탄괴버섯을 투입하여 초대형 물동이를 만들었다. 무림식 물탱크다. 그리고 수량을 조절할 수 있는 꼭지를 중간중간에 달아서, 상하수도에 공급되는 수원을 절약하게 되었다.


덕분에 내년 봄에는 남촌과 그 아래 초입까지 마을을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탄괴버섯 재배장의 온도유지였다. 탄괴버섯 재배장은 다른 경작지와 달리, 공장식 건물로 되어있다. 햇빛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겨울에도 조금만 온도를 높여주면 버섯생산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문제는 그 온도를 높이는 방법인데, 제갈세가에서는 최하급 보패를 사용한 기문진법을 제안했다.


얼음이 얼지 않는 온도를 유지하는 수준의 진법이라면, 난이도가 아주 낮은 편이고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물도 최하급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다만 일정량 이상의 내공을 하루마다 주입해줘야 했다. 제갈세가에서는 제작에 실패해서 폐기물로 보관중인 보패를 염가에 판매할 수 있고, 우리 공가는 비교적 저렴한 투자로 겨울에도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서로가 좋은 제안이었다.


문제는 그 가격이다. 중턱은 산의 구조상 여기 본가가 위치한 정상보다 훨씬 큰 넓이이다. 그 곳에 건설한 재배장이 작을 리 없다. 처음부터 생산시설로만 채울 계획으로 설계된 남촌,서촌,북촌에는 각각 줄 맞춰 건축된 백 평짜리 재배장이 스무 동 씩 자리잡고 있다. 중촌에도 다섯 동의 재배장이 있기 때문에, 꽤 많은 보패가 들어간다. 거기에 진법 설치비까지. 한번 설치하면 영구적이라고는 하지만 초기 투입비가 꽤 나가는 건 사실이다.


결국 은자 백냥을 주고 전체 재배장에 설치를 의뢰했다. 한 해, 삼정산의 토지세가 은자 오십 냥이란 점을 생각하면 꽤 큰 돈이긴 했다. 어차피 내 년안에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 투자금액이다. 수레용 고무바퀴 네 개의 순익으로 은 전 한냥이니까, 바퀴만 사백 개 팔아도 회복할 수 있는 금액이다. 거기에 다른 고무제품들까지 판매하고, 지금도 공가탄이 꾸준히 백가장에 납품되면서 돈은 벌리고 있다.


올해 마지막 수확은 백예린과 연이화가 도와줘서 쉽게 끝났다. 당가주도 자기네 본가에 보낼 후추 수확을 도왔다. 이번에도 엄청난 수확량을 자랑하는 감자는 중촌의 곳간에도 가득 채우고, 본가의 곳간에도 가득 채우고, 제분도 충분히 하고도 남은 양은 양들의 사료로 쓰고 있다. 고구마도 수확량이 꽤 되는데, 감자보다 훨씬 인기가 좋아서 소비가 빠르다. 심지어 도구와 희아, 매난국죽 영물 식구들도 찐고구마에 아주 환장한다.


가장 중요한 공란과가 일반 경작지에서도 잘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덕분에 마음 편히 동굴에 가서 남아있는 공란과를 모두 수확하고, 채종까지 마쳤다. 공란과가 토마토나 고추보다 훨씬 우월한 점은 과육이 크고 두껍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고춧가루가 엄청 많이 나온다. 동굴에서 자생한 열매를 수확한 것이기에, 다른 작물과 다르게 양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공으로 건조하여 빻으니 다섯 근 정도가 나왔다. 이 정도면 소박하게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김치 아니어도 고추장도 담가야 하고, 용도가 많기 때문에 아껴써야 한다. 김치는 딱 열 포기를 담갔고, 두근은 아랫마을에서 조청과 찹쌀을 사와서 고추장을 담갔다. 곡식류가 귀한 동네다보니 꽤 비쌌다. 큰 일은 아니기 때문에, 예린과 이화만 도왔다. 예린과 이화는 내가 만드는 음식들은 모두 그 조리법을 익혀둘 생각인 듯 했다. 어차피 재료를 삼정산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건가.


아랫마을에서 조청과 찹쌀을 사면서 쌀과 밀가루도 꽤 많이 사왔다. 중촌 사람들도 우리 덕분에 제법 부유해져서, 본가에서 공급받는 감자외의 식재료를 각자가 알아서 구매해서 쓰는 듯 했다. 올라오면서 보는 초입 마을의 반점들을 구경했다. 대부분 중촌사람들이 내려와서 장사를 하는데, 파는 음식 가짓수가 다양해졌다.


중촌에는 아직 공란과는 공급하지 못했다. 나 먹기도 부족했으니까. 그래도 수유(버터)와 건락(치즈)을 활용한 새로운 먹거리들이 제법 맛있었다. 가끔씩 이렇게 초입에 내려와서 다양한 음식을 맛봐도 좋을 것 같았다. 발전하는 삼정산의 모습에 흐뭇해진다.


오늘은 사온 밀가루로 길고 굵은 면을 뽑았다. 수유와 공란과 양념에 버섯과 고기, 양파를 썰어넣고 팔팔 끓인 뒤 삶아낸 면을 넣고 볶아냈다. 다른 솥에는 수유와 양젖, 소금, 후추만을 넣고 끓여 낸 양념에도 면을 넣고 볶아냈다. 중원식 토마토 파스타와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냈다. 뿌듯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크림 파스타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여성들은 모두 좋아했다. 남자들은 토마토 파스타를 훨씬 좋아했고.


이번 월동 준비는 조금 더 특별했다. 이미 모든 영역이 공가의 최신 기술로 정비되었기에 건물 보수 등은 할 것이 없었다. 다만 제갈세가가 재배장에 설치한 진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있다. 바로 수년 간 변하지 않았던 대나무 상수도의 개선이었다. 수로의 시작점인 최상류에 거름망을 설치하고, 대나무관은 새 나무로 모두 교체하고, 그 외부를 고무로 감싼 뒤 땅에 매립했다.


그리고 제갈세가에 이 수로 영역을 정확히 계산한 보온진법을 추가로 의뢰했다. 은자가 백 오십 냥 들었다. 그래도 추운 겨울에도 양변기를 문제없이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아깝지 않았다. 다만 이 것도 재배장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공력을 주입해야 하는 구조라서, 중촌과 본가인원들중 일류 이상의 명단으로 조를 짜기로 했다. 당가의 사람만 모두 순번에서 제외하고, 대신 겨울동안 정기적으로 중촌에 진료를 나가게 했다.


그리고 겨울 전 마지막 토목 작업으로 석빙고를 만들었다. 석빙고에 대한 기술력은 의외로 당가가 뛰어났다. 저온에서 저장해야 하는 독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당천묵이 설계한 당가의 석빙고 구조를 진소한, 제갈신혜까지 참여해서 더욱 효율좋게 개선했다. 당천묵과 제갈신혜는 본가에도 이 기술을 서신으로 알렸다.


이미 개발된 중원식 콘트리트와 포장도로 건설 때 남은 모래 벽돌을 이용해 중촌과 본가에 총 여덟개의 석빙고를 만들었다. 아랫마을에 나온 김에 새끼 강아지들을 많이 입양해왔다. 순수한 의도보다는 영물 가족들의 지휘하에 중촌과 본가를 잇는 전령으로 키워내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영물인 도구네 식구보단 못하더라도, 꾸준한 훈련을 통한다면 도움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면 늘 하는 채집 행사인 밤줍기도 있었다. 처음 예린과 이화가 머물던 시기에 했던 토지공사 때에도 큰 밤나무들은 대부분 살려뒀다. 밤나무는 중턱이나 초입에도 꽤 흔해서 중턱 사람들도 밤줍기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전히 정상에서는 경쟁없이 우리끼리 밤을 모을 수 있었다. 줍고 따고 껍질을 분리하는 것까지 순식간이었다. 이백 근을 채우고 마쳤다.


겨울이 왔다. 방목중이던 닭과 토끼들은 모두 축사로 돌아왔다. 양들을 위한 축사는 한 공간에 짓기에는 부담되는 규모여서, 중턱 이곳저곳에 간이 축사를 나눠서 이동시켰다. 겨울동안 동그란 솜뭉치처럼 몸을 웅크린 채로, 배달되는 사료만 먹을 뿐 움직이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다만 젖을 짜는 일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동안은 도구나 희아가 줄을 세우면 얌전히 자기 순서를 기다려서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지금은 축사가 분산된 만큼 이동거리가 늘어났다.


올해는 눈도 제법 많이 왔는데, 피해는 전혀 없었다. 당가와 제갈세가와 달리 공가에 머물면서 큰 활약이 없던 백가장에서 강철로 제작된 공가 전용 제설장비들을 보내줬기 때문이다. 삼정산의 전역은 이미 잘 정비된 포장도로였기 때문에, 무림인 전용 넉가래와 눈삽으로 순식간에 해결했다. 특히 도구와 희아 부부가 본신의 크기(황소만 하다)로 돌아가서 전용 넉가래를 끌고 다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깨끗한 눈들은 모두 석빙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꾹꾹 눌러담으면서 고밀도의 얼음을 채워나갔다. 매립한 수로도 돈을 쏟아부은 만큼 제 값을 했다. 본가에서는 전보다는 불편하긴 해도 겨울에도 물을 충분하게 써왔었다. 그러나 중촌에서는 한 겨울에도 물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서 크게 좋아했다.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는 비밀로 해야겠다.


공가의 자랑, 온돌 욕조는 늘 여인들이 독차지했다. 그냥 씻는 게 아니라, 아예 휴식시간을 갖는 것으로 사용시간도 엄청나게 길었다. 물이 증발한다 싶으면 소화나 이화가 허공섭물(虛空攝物)로 눈을 떠와서 보충하고, 장작도 같은 방식으로 보충했다. 아예 구운달걀이나 고구마들을 욕조 위에 접시로 띄어놓고, 군것짓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였다.


덕분에 나와 도하는 한 겨울에 또 하나의 온돌 욕조를 지어야 했다. 현재 본가에 여성들은 공소화, 연이화, 백예린, 진소미, 제갈신혜 다섯 명이 전부였고, 남성은 나, 도하, 당천묵, 제갈세가와 당가 인원 각각 네 명으로 총 열한 명이었다. 어차피 경지가 높은 무림인들이라지만 우리도 온수로 씻고 싶었다.


담벼락을 높게 친 남성전용 온돌 욕조를 만들자 당가와 제갈세가 사람들은 이 또한 설계를 살피고 본가로 보냈다. 그들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겠지. 남자 열한 명이 이용하는 온수욕조가 여자 다섯 명이 이용하는 온수욕조보다 더 짧은 시간 운영되었다. 장작도 훨씬 안쓰고.


중촌에서는 여전히 고무 생산이 이뤄졌지만, 인원 대비 노동량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겨울은 늘 바쁜 삼정산이 유일하게 긴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유흥거리를 만들었다. 탄성이 좋은 목재를 활대처럼 길고 가늘게, 하지만 납작하고 만들고 그 위에 발을 고정할 수 있는 끈을 엮는다. 중원식 스키였다. 본가의 인원들은 이미 제 발에 맞는 운동화를 지급받았기 때문에,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경신술까지 익힌 무림인들의 스키는 달랐다. 진법 밖으로 나와서 심심하면 도약질을 하면서 허공에서 다양한 기예를 선보인다. 초입까지 내려가서는 장비를 등에 매고 순식간에 경신술로 정상에 도착하면 매난국죽의 안내로 진법을 통과하고 다시 내려간다. 하루종일 이 반복이었다. 아예 방위별 재배장에 공력을 투입하고 돌아오는 것을 내기삼아서 순위를 정하기까지 했다. 일과를 즐겁게 소화하는 것이니 말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오늘 처음으로 장독을 열었다. 이 날을 위해서 며칠 간 삼정산 구석구석을 수색해서 겨우겨우 발견한 멧돼지를 잡았다. 중촌 개발 이후로 삼정산 생태계에서 멧돼지를 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에 꽤 고생했다. 그래도 김치찌개에는 역시 돼지고기는 포기할 수 없지. 전생을 자각하고 거의 삼년 가까운 시간을 그리워했다.


비계가 잘 섞인 부위를 썰고 참기를을 살짝 친 솥에 볶는다. 비계가 녹기 시작하면 김치를 채썰어 넣고, 김치국물과 물을 붓고 다진마늘 조금과 간장 등 다 넣는다. 오랜만에 두부까지 만들었다. 감자채 볶음과 깻잎무침, 계란부침, 양고기찜, 포기김치를 반찬으로 푸짐하게 내놨다. 그리고 푹 끓인 김치찌개와 쌀밥을 내왔다.


새로운 음식을 낼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썼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이건 오직 배추김치맛을 아는 공도유만을 위한 음식. 비계가 섞인 돼지고기와 두부,김치를 한숟가락에 입 안에 넣고, 다시 쌀밥을 먹는다. 입 안에서 고들고들한 쌀알의 식감과 감칠맛이 베인 익은 김치와 비계가 섞인 돼지고기의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아! 이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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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올해도 감자농사는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3 24.09.16 359 12 12쪽
»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3 24.09.16 393 13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25 15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63 15 13쪽
26 26. 후추를 얻다 +2 24.09.14 488 16 8쪽
25 25. 세가들과의 인연 +2 24.09.14 501 11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7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0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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