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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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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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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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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DUMMY

일을 먼저 저질러놓고 동생들에게 물었다. 마지막 남은 신축 가옥에 새로운 사람들을 식구로 들여도 괜찮겠냐고 말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와 그 남동생이라고 했다. 동생들도 이미 저잣거리에서 본 적이 있었는지 누군지 안다고 했다. 내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좋은 사람인 걸 확인했으니, 같이 지내면 지금보다 더 즐거울 것이라고 설득해본다.


늘 그래왔듯이 따라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른 반응을 보이는 동생들에 당황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서로들만의 신호를 나누는 듯 하다. 소화는 시큰둥한 얼굴로 혼잣말을 소곤거리고, 도하는 한술 더뜬다.


"아, 이럼 완전 나가린데?"


"누나, 우리 형수님 생기는거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의지하던 하나뿐인 오라비는 외간 여자의 품에 넘어가는구나. 오호통재라!"


엥? 아니야. 동생들이 벌써부터 그런 것을 의식할 나이였던가? 당황스럽다. 별 뜻 없이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살면 의지도 되고 배울 점도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의 가장끼리 통하는 것도 있고, 분명 동생들도 겪어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나저나 저잣거리에서 뭐하고 사는거지? 순수했던 동생들이 뭔가 아주 약간 달라진 것 같다.


"양곡점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지. 사랑에 빠진 남자만큼 못 믿을 놈도 없다고. 그래서 삼정공가의 막내, 나 공도하는 다짐했다! 이 다음에 커서도 결코 사랑따위에 빠지지 않으리라. 아아, 자신의 내면만을 다스리다가 정작 눈 앞의 형을 지키지 못하다니! 한심하도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당분간 마을에 내려가는 거 금지! 대체 저잣거리에서 뭘 하고 다니는거야?"


"정작 오라버니께서는 마을에 내려가 꽃 한송이를 취해 오시더니, 이웃을 사랑하는 선량한 동생들의 마을행은 막아서는구나. 이 땅의 의(義)와 협(俠)은 모두 죽었는가? 오호통재라!"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강렬한 반대에 놀라고, 달라진 동생들의 언변에 놀랐다. 애들은 정말 하루하루 다르게 큰다더니. 마을에 가서 어른들과 상의 좀 해봐야겠다.


어쨌든! 동생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전혀 아니라고 못 박듯이 말했다. 그리고 괘씸한 마음이 들어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과거의 우리들 처지는 이제 기억도 안나는 거야? 그 사람들도 이 곳에서 더불어 살면서 더 좋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내가 동생들을 이리도 비정하게 키웠구나! 내가 죽일 놈이지. 다 내 탓이지."


가슴까지 세게 치면서 부도덕한 내 탓에 동생들이 사람냄새를 잃었다면서, 나같은 건 더 이상 동생들 돌볼 자격이 없는 놈이라면서 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자 동생들이 놀라서 울먹이며 따라나온다. 휴, 아직까진 이런 연기가 통해서 다행이다.


진소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과거의 오라버니를 보는 것 같다면서 신경써주면서도, 어른들은 은근히 나와 그녀를 붙이고 싶어하신단다.


게다가 동생 둘은 당사자인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래의 새언니(형수)로 예린을 점 찍었다고 한다. 심지어 예린도 힘 내보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백가장에선 연락도 없지 않나, 마을에서는 자꾸 딴 여자를 밀어주지 않나, 결국엔 내가 그 여자와 동생까지 새 집에 식구로 데려온다고 하지 않나, 순간적으로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방금 전의 말투는 요새 저잣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극단의 공연대사를 흉내낸 것이라고 했다.


대길이형네 일꾼들이 일 없을 때 푼돈이라도 벌려고 시작한 연극인데, 제법 이야기가 잘 짜여져 인기가 좋단다. 심지어 주인공은 어린 소녀소년 동생둘을 거느린 소년가장이라고... 조만간 대길이형을 만나봐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든다.


동생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오라버니(형)는 대(大) 삼정공가(三井 公家)를 지금보다 크게 발전시키는 것과 너희 동생들이 올바르고 건강하게 크는 것만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그동안 이 집안을 키우고 일으켜 세우려고 불철주야로 노력한 오라비의 진심을 모르겠냐고. 우리가 어떻게 일궈 낸 집과 땅인데, 오라비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약재당에서 연구하는 시간도 부족한 사람이다.


고무타이어, 고추장, 석빙고, 버터, 치즈, 마지막으로 이 빌어먹을 무림세계의 짚신과 버선을 벗어던지고 신게 될 양말과 운동화까지. 해야할 것이 투성이인데, 열네살에 무슨 여자인가? 관심도 없다.


그리고 저~~~~~엉말 굳이 여인을 만나야 한다면, 이 오라버니(형)의 취향은 연상의 여인이라고까지. 그렇기 때문에 진소민이든, 백예린이든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먼 훗날, 하화둥이 시집장가 다 보내고 나면 그때쯤엔 생각해보겠다고.


동생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것보다, 백예린에게 차기 새언니(형수님) 자리가 물건너 갔음을 어찌 알려야할 지에 고민이 깊어진 듯 하다. 벌써 이런 것들에 호기심이 생길 나이던가. 요새 애들 빠르네.


그리고 별개로 생각이 깊어지는 것이,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배움이 더 필요할 듯 싶었다. 삼정촌에 학당(學堂)이 있던가?


어쨌든 바로 내일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확정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려해주거나, 집주인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선을 정해야 할 듯 싶다. 동생들은 허망한 마음이 다 가시지 않은 듯 했으나, 그래도 새 식구를 환영해 줄 준비를 했다.


다음 날,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진남매 외의 몇몇 구경꾼들이 있었다. 늘 감사한 객잔 아저씨, 마을의 소문을 옮기시는 포목점 아주머니, 그리고 대길이형까지. 너님은 조금 있다가 보자.


동생 손을 잡고 있는 진소민은 행낭 하나를 메고 있었다. 대충 봐도 여벌 옷 정도가 살림의 전부인 듯 했다. 조금 긴장한 것 같아 보인다. 객잔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크흠, 예부터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 했고, 도유 너도 점잖은 아이니까 약관 전까지는....아니, 그래도 각자가 한 집안의 어른들이니, 조금은 일러도..."


아저씨마저!! 지켜보는 분들에게 변명하는 것부터 지칠 것 같다. 포목점 아주머니의 웃음기 띤 눈매마저 보이니 머리가 지끈하다. 그런 내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오라비는 연상의 여인이 취향이랬어요!"


내공까지 싣었는지, 크게 말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귀가 울린다. 덕분에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는지, 진소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응? 기분이 이상해지네. 어쨌든 내가 상황을 정리한다.


"사람 품이 많이 드는 산간 생활에 거들 손이 늘어난다면 좋은 일이죠. 오해하시는 것들과 다르니, 아직 방년도 못되는 어린 여인에게 해가 되는 소문은 삼가셨으면 합니다. 그냥 서로 돕고 살려고 뭉치는 게 전부에요."


믿어줄 지는 몰라도 대부분 선량한 분들이다. 어린 처자가 괜한 소문에 얽혀 좋을 거 없다는 걸 잘 아실테니까. 딱 하나 걱정되는 놈이 있는데, 역시나 흙바닥에 무언가를 쓰면서 입으로 중얼거리는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어릴 적 스쳐간 연상의 여인을 ..음 이쯤에서 추억보정을 좀 하고,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법. 어느 샌가 옆자리를 지키던 그녀에게서 여인의 냄새를 느끼게 되는거지. 음 하지만 하늘은 그들을 허락하지 않다는 듯이 남자는 징병에..."


안돼! 거기서 멈춰! 군대라니! 보법을 펼쳐 그가 흙바닥에 쓴 무언가를 밟고 흐트린다. 하, 정말 이 인간을 어찌할까.


"대길이형은 나 좀 잠깐 보지?"


아주 짧게 대길이형과 단둘이 골목에서 우정을 나누고 돌아왔다. 괜한 이야기만 길어질 듯 하니, 바로 산을 오르기로 한다. 소민은 자주 내려오겠다고 말하며, 그동안 신경써주던 어른들께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담백하게 뒤돌아섰다.


"산 속 깊이 들어가야하니, 서둘러서 가시죠. 저희를 잘 따라오세요. 일단 마을을 벗어나서, 집에 돌아간 다음 인사도 나누고 이야기하죠."


아직 어색한 사이다보니, 어린이들도 조용하다. 말 없이 걸어가며 마을이 안보이는 초입 안쪽까지 쭉 걸었다. 여자아이와 허약한 어린 남아에게는 여기까지 걷는 것으로도 꽤 지치는 듯 했다. 우리도 딱 이 정도까지만 걸을 생각이긴 했다.


"갈 길이 멉니다. 이제 걷는 것은 관두죠. 소화는 소민 소저를 업고, 도하는 소한이를 업자."


당황한 진남매, 특히 진소민이 학을 떼며 거절했다. 같은 여자라지만, 신세지려는 처지에, 한참 어린 소화에게 업히는 폐를 끼치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워낙 그런 데에서 강경하기도 해보였고.


"시간써가며 설득할 생각 없습니다. 화하둥이 제자리에서 담비뛰기 실시!"


"실시!"


구령을 외치며 순식간에 뛰어오르는 동생들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저희는 모두 무공을 익혔습니다. 그 경지도 낮지 않구요. 동생들은 재능이 탁월해서 저보다 훨씬 고수들입니다. 이제 함께 지내게 될테니, 객으로서 주인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흰 늘 이렇게 마을에서 안보이는 곳까지 오고나면 경공으로 산을 오릅니다."


크게 당황한 소민과 눈이 초롱초롱한 소한이 대답을 머뭇거릴 때, 난 고개를 제끼며 동생들에게 신호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동생들은 짧게 말하고 그들을 업는다. 허락을 구하고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바로 산으로 도약했다. 나를 배려하는 동생들이 속도를 맞춰줬고, 나도 제법 경공실력이 늘어서 빠르게 나아갔다. 동생들과 접촉한 상태라서 두 사람이 진법에 막히진 않았다.


처음 느끼는 무림인의 속도에 두 사람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내 속도에 맞추다보니 반시진 약간 안걸려서 도착했다. 멀리서 도구가 반겨주려 나왔다. 그렇게 삼정산 정상, 우리들의 집에 도착했다.


동생들이 발을 멈췄음에도 두 사람은 눈을 뜨지 못했다. 아무래도 업혀있기에는 긴 시간이었던 지라, 잠시 진정할 시간을 가졌다. 혹시 또 놀랄까봐서 도구를 잠시 안보이게 숨겼다.


"다 왔습니다. 눈을 뜨고 내리시면 됩니다."


화사한 햇볕이 밝혀주는 시야. 단정한 초옥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세워진 전각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대나무 수로. 땅끝에서 펼쳐지는 푸른 밭들. 눈 뜨자마자 보여지는 경이로운 풍경에 말을 잃은 듯 했다.


"잠시, 소개할 가족이 한 마리 더 있습니다. 집채만한 강아지이니 놀라시면 안됩니다?"


둘은 여전히 홀린 듯한 표정으로 겨우겨우 끄덕였다. 도구를 불러내니, 꼬리를 살랑거리며 슬금슬금 걸어나온다. 나름의 배려인 듯 했다. 미리 말을 해서 그런지, 다행히 겁내진 않았다. 미소지으며, 진심을 다하며 인사한다.


"대(大) 삼정공가(三井 公家)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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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63 15 13쪽
26 26. 후추를 얻다 +2 24.09.14 488 16 8쪽
25 25. 세가들과의 인연 +2 24.09.14 501 11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7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0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4 14 11쪽
17 17. 새 가솔을 거두다 +5 24.08.25 714 16 12쪽
16 16. 가족 +5 24.08.25 700 17 7쪽
15 15. 새봄맞이 +3 24.08.25 711 16 9쪽
14 14. 삼남매 첫 나들이 +2 24.08.25 740 17 11쪽
13 13. 혹시 반로환동 하셨습니까? +3 24.08.24 747 1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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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밥값 하셔야죠? +3 24.08.22 763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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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 백예린 +3 24.08.21 792 18 11쪽
8 8. 무림인과의 조우 +5 24.08.20 803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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