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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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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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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삼남매 첫 나들이

DUMMY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어색한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 고작 한 달이 채 안된 시간이지만, 고립된 산간생활만 해오던 우리 공남매에겐 사람냄새가 더욱 컸던 것이다.


나조차도 어색한 집안 분위기를 느꼈다. 이 참에 분위기도 전환할 겸, 며칠 뒤 동생들 손 붙잡고 마을에 내려가보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을에 내려간 지도 오래되었고, 봄준비도 하면서 겨우 내 떨어진 생필품과 양식들도 채워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내 결정에 동생들은 소풍 전 날, 잠 못 드는 아이가 되어 부산하게 그 날을 준비했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심경의 변화가 컸던 듯 하다.


마을에 내려가기 전날, 동생들은 예린과 이화에게서 배운 생활 예절들을 점검하는 역할놀이에 빠져있었다. 나는 목재창고에서 꺼내 온 박달나무를 단검으로 다듬었다.


이제는 완숙해진 검기로 다듬으니, 원하던 모양새로 깎아내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검기 개꿀. 동생들이 평상 시 쓰던 목검보다는 조금 짧은 몽둥이었다.


아무래도 목검같은 것은 눈에 띄일 것 같고, 이 정도가 호신용으로 적당한 것 같다. '사랑의 매' 라고 이름 지은 곤봉 두자루를 동생들의 손에 쥐어준다. 부디, 산짐승 외의 대상에게 쓸 일이 없기를.


아침이 되고 산에 내려 갈 준비를 했다. 나는 지게에 등짐을 메고, 동생들도 손에 작은 짐을 들었다.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작과 각종 가죽, 약초, 산 채로 묶어 온 토끼 등 장에 내다 팔 것이 꽤 되었다.


저잣거리 입구의 객잔에 먼저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면서, 장작이 부족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가 혼자 고생한다면서 늘 인심 좋게 대해주신 분이었기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들을 인사시켜 드리니, 화하둥이는 준비된 자세로 배꼽인사를 했다. 아들만 있다는 아저씨였기에, 소화를 특히 예뻐하셨다. 손님이 제법 있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장작을 부엌으로 옮겨드리면서 주인 아저씨만 잠시 사각으로 불렀다.


그리고 등짐에서 성인 머리크기 만한 암염 덩어리를 몇 개 꺼내서 내밀었다. 그동안 신경써주신 답례였다. 주인 아저씨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는 산속에서 동생들이랑 쓸 것들을 빼고 드리는 거라고 괜찮으니 받아달라고 했다. 덕분에 소면과 만두를 공짜로 먹었다.


저잣거리를 깊이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수칙을 점검했다. 미아가 되지 않도록 화하둥이는 항상 손을 붙잡고 다닐 것. 나와 다섯 보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 혹시라도 미아가 될 경우, 기감으로 나를 찾을 것. 그 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아까 들렀던 객잔에서 나를 기다릴 것.


삼정촌은 작은 마을이라서 장터 정도 범위는 동생들의 기감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잔걱정이란 것을 잘 알지만 그동안 살아온 성격이 쉽게 바뀌진 않았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처음 장터에 와보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의를 준다.


시기가 좋았던 건지, 대부분 좋은 값을 팔고 처분했다. 도시도 아닌 변두리 마을이다 보니, 겨울을 지내는 동안 무엇이든 간에 유통이 적었기 때문인 듯 했다.


봄만 넘어서도 토끼고기는 제 값 받기는커녕, 판매 자체가 힘든 편인데 푸줏간에 꺼내놓자마자 겨울 산토끼 답지 않게 살이 잘 올랐다면서 좋은 값에 매입하셨다.


무엇보다 약재들이 비싸게 팔렸다. 아무래도 난방시설이 거의 없는 이 시대의 촌민들은 겨울에 병치레가 많았다. 특히 이렇게 환절기 때가 심했고, 약방은 늘 약재가 부족했다. 준비해온 짐을 모두 팔고나니 철전 스무 냥이 넘는 돈이 생겼다.


동생들이 계속해서 두리번 거리는 것이 당과를 찾는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이 시기에 당과를 팔지 않는다. 대신 월병이 파는 곳이 아직 있어서 내가 뒤에서 기다리고 동생들이 직접 돈을 내고 사는 것을 지켜봤다. 생에 처음 화폐 거래에 성공한 동생들은 무공경지가 올라갈 때보다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주인 아주머니가 덤으로 양갱을 하나 넣어주셨다.


넉넉하게 벌었지만 나가는 돈도 많았다. 가져온 돈도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옷감으로 쓸 원단이 가장 돈이 많이 들었고, 양곡점에 산 종자들도 돈이 꽤 나갔다.


양곡점 주인은 무슨 씨앗들을 그리 많이 사냐길래, 겨울동안 일이 없어서 품값받고 더 아랫마을에 심부름을 해드리는 것이라고 잡아뗐다.


사치를 각오하고 가장 많은 돈을 쓰려고 했던 설탕이 생각보다는 저렴했다. 이 시기에 볼 수 없을 뿐 저잣거리에서 당과나 당호로도 사먹는 걸 떠올려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가난했을 때는 당연히 생각할 수 없었고, 전생을 기억하고 나서는 시대에 대한 편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현대에서처럼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돈을 많이 아꼈다. 덕분에 또 다른 사치로 참기름도 한병 살 수 있었다.


동생들도 미아가 되지 않았고 성공적인 상행위를 모두 마쳤다. 무공을 익힌 탓에 귀가 밝아져서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리가 잘 들렸는데, 며칠 전 하산한 예린과 이화에 대한 소문이었다.


위풍당당하게 서안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그들은 하산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서 새로운 별호가 생긴 듯 했다. 적을 제압하되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는 무정불살(無情不殺) 연이화, 그녀가 제압한 적의 단전을 미소지으면서 모두 부쉈다는 파전미봉(破田美鳳) 백예린이란다.


뭔가 정파답지 않은 게 껴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지만, 무사하다는 소식이 듣기 좋았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면 될 거 같다.


어쩐지 너무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백예린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생들과 처음 한 마을행이라는 굵직한 행사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나 보다.


마을 끄트머리 좁은 길에 오니,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 밖에 없었고 자라나는 흑도꿈나무, 청소년 왈패들이 등짐을 진 우리 앞을 막았다. 아니지, 이 것도 좋은 일이구나!


"이봐, 산골 약초꾼. 올 겨울은 뭐 재미좋았나봐, 어디서 비싼 약초라도 캤나? 한동안 안보이더니 뭘 그렇게 푸짐하게 장을 보셨나?"


평화로운 삼정촌이지만 어디가 되었든 사람사는 곳에는 늘 엇나가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다. 호탕하게 입을 터는 대장녀석은 나도 잘 아는 인물로, 강호의 은원을 거부하는 일류고수 공도유님의 유일한 원수되시겠다.


운이 더럽게 없는 녀석이다. 삼년 전쯤 녀석에게 한 닢 정도 뜯겼던가? 오늘은 그 삼백 배인 삼십 냥어치 맞을 예정이시다. 백예린의 별호가 웃으면서 패고 또 팼다였나? 뭐 비슷하면 됐지. 여유있게 웃어본다.


"실실쪼개는 거 보니 같이 살림살이 나눌 생각에 기분이 좋은가봐? 길게 말할 거 없이 가진 거 그대로 다 내려나봐."


내가 말 없이 웃고만 있자, 애써 살기를 다스리던 동생들이 먼저 나선다.


"오라버니, 어떻게 할까요?"

"형아, 멧돼지 머리치기 절반쯤이면 괜찮아?"


아니아니, 그럴 수야 없지요. 어찌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화하둥이는 가만히 지켜볼 것."


목을 좌우로 꺾으면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서자, 지놈도 같잖다는 듯이 웃으면서 내게 다가온다. 뭐 몸집차이로만 보자면, 갓 어린이 티 벗은 나와 다 큰 어른과 비슷한 녀석은 차이가 꽤 났다. 자신감이 있을 법 하지. 우리 주변을 둘러 싼 아이들이 키킥대며 구경한다.


"표정이 좋은데? 어디서 좋은 거 먹고 수련이라도 했나봐? 근데 이게 또 실전이랑은 달라요. 오늘 형님이 현실을 알려줄게. 뭐, 동생들도 있으니 적당히 해줄.."


퍼엉!


길 가장자리, 누가 치워둔 것인지 소 머리 만한 돌이 보여서 내공을 잔뜩 담아서 발로 후려깠다. 돌은 폭음과 함께 먼지가 되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놀란 녀석을 포함해서 흑도꿈나무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말한다.


"꿇어."


망 보듯이 주변을 둘러쌌던 놈들은 죄다 무릎꿇고 손을 들게 했고, 대장놈은 엎드리게 하고 그 등을 깔고 앉았다. 삼십 냥 어치는 때려야 하는데, 잘 먹지도 못하고 살 게 뻔한 뒷골목 놈을 때려봤자 골병만 들 거 같아서 그만뒀다. 소화와 도화는 사랑의 매를 손에 쥐고 내 양 옆을 경호했다.


"우리 대장나으리 이름이 어떻게 되시지?"


"대.......대길입....니다."


"그래, 대길이. 우리 대길이 형님께서 나보고 방금 전에 뭐라고 했더라? 현실을 알려준다고 했나?"


"하....하하, 처음 보는 동생분들을 모셔왔기에, 마을에서는 이런 일도 있다고 제가 실감나게 연극 한편 짜봤습니다요."


"오, 그래도 대장자리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봐. 이렇게 순발력있게 대꾸도 하고 말야."


"하하, 제가 그래도 눈치랑 임기응변은 제법 됩니다. 오늘 한 번만 봐주시면, 앞으로 쓸모가 있을 겁니다."


"오, 척하면 척! 그래 내가 원래는 몇 년전에 한닢 뜯긴 거대로 한 삼백 대만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마음이 약해지네. 전보다는 자주 내려올 거고, 동생들도 종종 내려올 거니까 알아서 잘하자? 무슨 말인지 알지?"


"그, 그러믄요. 찾아만 주신다면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그래, 참고로 말하자면 동생들이 나보다 쎄. 못 믿겠으면 나 없이 동생들만 내려온 날 개겨보면 돼. 우리 대길형님 좋아하는 현실적으로 말야."


"미..믿죠, 당연히. 앞으로 약초꾼 형님이나 동생분들 보이시면 꼬박꼬박 인사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대길이 등짝에서 내려왔다. 전부 일으켜 세우고 짧게 말했다.


"우리 계속 웃으면서 볼 수 있도록, 잘하자?"


묵은 원한도 풀고 상쾌한 마음으로 흑도꿈나무들을 해산시킨 뒤, 다시 짐을 메고 돌아가려고 하자 소화가 내게 묻는다.


"오라버니, 우리도 다음에 저 사람들 만나면 아까처럼 해야 해?"


애들 앞에서 조금 과했긴 했다. 그래도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이런 면도 알아둬야 하긴 했다. 정리해서 말했다.


"예린아가씨, 이화 소저 앞에서는 격식을 차렸듯이, 저런 왈패놈들 앞에서는 왈패답게 쎄게 나가야 할 때가 있어. 어떤 경우든지 그 사람의 하는 행동거지를 보고 비슷하게 맞춰주면 돼. 그래도 좋은 모습은 아니니까, 조금 전 오라버니 모습은 너무 마음에 담지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앞으로 왈패대장 대길이를 어떻게 써먹을 지 궁리해본다. 잘 써먹으면 꽤 쓸만 하겠는데? 봄준비도 다 마치고, 마을에서 써먹을 부하도 생기고. 알찬 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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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37 13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691 15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681 16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678 14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2 24.08.28 675 14 11쪽
19 19. 호구조사 +3 24.08.27 685 14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24.08.26 704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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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가족 +5 24.08.25 700 1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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