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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탱이
작품등록일 :
2024.08.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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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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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 밥값 하셔야죠?

DUMMY

약차를 끓여 상을 내오고 숯화로에도 불을 넣었다. 아직 늦겨울 밤임에도 춥다고 여겨지진 않았다. 일류고수 공도유님께는 이까짓 추위는 별 거 아닌 것이다.


서로 하늘을 보면서 말 없이 차를 마신다. 깨어있는 것이 우리만이 아니라는 듯이, 안방에서는 속닥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화전촌 시절에는 동생들이 너무 어렸었다.


아마도 소화는 생애 처음 또래와 제대로 된 담소를 나누는 중일 것이다. 이렇게 너무도 복잡했던 하루끝에서야 감사한 것들이 생겨난다.


"공자와 동생분들의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전생의 군인들처럼 다나까체를 유지하던 그녀의 어투가 조금 유해진 듯 하다. 해가 바뀌어 내가 열네 살이 되었고, 동생들은 각각 나보다 네 살, 다섯 살이 어리다고 말해줬다. 예린은 소화보다 한 살 많다고 한다.


연이화 본인은 농민인 부모님과 남매가 있지만, 백가장에 거둬진 이후로 왕래가 적어진 탓에 예린이 더 친동생 같다고 했다. 그래도 가끔 친가를 들러 가족들을 보면 어색하면서도 정겹다고도 말했다.


무가이자 대장간인 백가장은 특성 상 야장일 하는 투박한 남성들만 가득하다고 한다. 직접 교류하는 무파라고는 종남파가 전부이다보니, 예린이 또래를 만나봤자 격식이나 차리는 어린 도동이 끝이었다나.


금세 학부모의 마음이 된 우리는 그렇게 두 여자아이가 조금이나마 마음이 열리는 밤이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이화가 그를 깬다.


"공자는 특이하십니다. 열네 살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죠. 사리판별도 의지도. 심지어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은 세가의 자제도 아니고, 이런 산골에서 사는 약초꾼이라는 점이 말이죠. 그래서 빚진 마음만 가득하면서도, 앞으로의 일을 해결하실 거란 믿음이 갑니다. 말씀하신대로 믿고 따를 터이니,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나이에 책임질 가족이 있다보니까요. 살아남기 위해 애쓰다보니 이리 된 거죠.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빈곤했던 농가 출신인걸요. 으레 그런 환경의 아이가 일찍 철드는 경향이 있다지만 공자께서는 도를 넘습니다. 제가 같은 처지였다면, 이 집의 반은 커녕 어디 동굴에 들어가 풀뿌리나 캐먹고 살았을 것 같네요."


감각이 예민한 호위무사답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파악하고 감탄했더란다. 삼류심법이라지만 무공을 익힌 삼남매. 장작이 가득한 부엌과 겨울에도 따뜻한 집안 내부. 넉넉해보이는 식량.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편하고 위생적인 측간까지.

드디어 나님 공도유의 위대함을 알아주시는 외부인이 생겼다. 이 때에는 전생의 지식탓이라는 양심의 소리는 가볍게 외면하는 게 옳다.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던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입을 연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이룬 것 외에도 남아있는 지혜가 제법 됩니다. 같이 사는 강아지가 의사소통이 되는 영물이구요. 소리도 잘 듣고, 냄새도 잘 맡습니다. 어지간히 훈련된 번견 열마리 보다도 나을 겁니다. 게다가 몰랐는데 진법도 있었다하니, 은신하기에는 최적의 상황인 셈이죠. 실제로 수년간 살면서도 저를 제외한 약초꾼조차 본 적 없습니다. 인적이 없는 산 속이야말로 약초꾼의 탐험지인데도 말이죠. 이 정도면 더 없이 좋은 조건의 은신처인데 너무 겁만 먹었던 거죠. 소저께서도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강....아지 인건가요?"


보통은 영물이란 데에서 놀라지 않나? 우리 도구가 썰매를 끌고 다닐만큼 커지기는 했다. 그래도 아직 강아지 맞을 걸?


"뭐 그렇다고 해두죠. 아무튼 내일은 날이 밝는대로 진법이 어떤건지 파악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짜기로 하죠. 심란했던 마음도 다듬어진 듯 하고, 내일 할 일도 많을 것 같으니 이 쯤에서 자리를 정리합시다."


그녀도 밀렸던 피로가 찾아오는지 순응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온돌아궁이에 장작만 보충하고 바로 누웠다. 하루를 정리하며 평안해졌던 마음이 두근댄다. 고수 앞에서 점잖은 척 했을 뿐이지, 아까의 감동이 남아있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말하고 싶다.


'검기라니, 검기라니요. 저는 일류고수가 되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인간?'


어제 하루 심력을 많이 쓰긴 했나보다. 흔치 않게 늦잠을 잤다. 마당에 나와보니 이미 축사일을 마친 도하가 장작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일류고수답게 검기로 장작을 패려던 것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우리 막둥이가 형 쉬라고 일을 다했나보구나?"


"형아가 많이 피곤해보였으니까. 이제 우리도 전보단 커서 형아 하는 일 더 많이 도울거야."


기특한 막둥이 머리를 쓰다듬을 때, 뒤뜰에서 소화가 부산하게 나오며 말했다.


"오라버니, 그리고 도하! 뒤뜰 욕조쓸거니까 우리들 나올 때까지 들어오면 안 돼요!"


소화도 금세 여자들끼리 친해진 것 같다. 다 좋은데 여자 셋이 욕조를 점령하면 아무래도 제 때에 씻기는 글렀군. 아침준비나 해두기로 한다.


어제 끓였던 육수에 건나물들을 조금 넣고 푹 끓여서 국을 했다. 그리고 찐감자와 콩조림을 내는 것이 다였다. 어제는 첫 손님에 제법 열이 올라 많이 차렸을 뿐, 평상 시의 공가식단으로 돌아왔다.


상을 다 차릴 즈음 여자들도 옷을 갈아입고 상이 차려진 안방에 모였다. 예린은 소화의 여벌옷을 얻어 입었고, 이화는 새로 지은지 얼마안 된 내 옷을 받아 입었는데 그조차 조금 짧았다.


큰 변화가 없는 예린과 달리 전날과는 모습과 인상이 많이 바뀐 탓에 웃음이 나는 걸 겨우겨우 참았다. 재잘거리며 들어오던 여인네들이 나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예의를 차리려 했다.


간밤에 어땠느니 아침인사가 길어질까봐서 짧게 답하고 다같이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고나서는 도구와 동생들에게 주변 순찰을 맡기고, 다시 셋이 회의를 시작했다.


"가장 급한 일부터 짚어보자면 이곳에 유지되고 있다는 진법의 확인과 주변 경계강화, 그리고 두분의 생존을 비밀스럽게 귀 가문에 알려드리는 점인 듯 한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더불어 가문의 상황과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알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일단 진법부터 확인해보러 가시죠. 저도 어제부터 그게 가장 궁금했거든요."


진법이 정말로 있었다. 엄청 넓은 범위로 유지중이어서 우리 남매 활동반경이 거의 다 포함되어 있었다. 신기한 것이 우리 삼남매 눈에는 아무 변화가 없으나, 진법의 경계를 넘어서면 어제처럼 두 사람의 눈에는 내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소화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오라버니 바로 여기 앞에 있는데요?"라고 말해도 기감을 통해서든 육안을 통해서든 안보인다고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도하나 소화도 진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진법은 범위뿐만 아니라 그 수준도 높은 편이었는데, 절정무인인 이화가 집중해서 기감을 살펴도, 그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대충 계산을 마친 내가 이화에게 질문했다.


"쫓는 무리들 중에 연소저의 경지를 넘는 고수들이 얼마나 됩니까?"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애초에 수가 많고 암습을 노리는 경우가 대다수였을 뿐, 사황련 소속이 아닌 사파 무인들이 벌인 일인지라 대단한 경지의 인물은 없었습니다. 있다고해도 직접 움직이지는 않고 아랫사람들을 지휘하는 정도일 듯 하군요."


"쫓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범위를 넓힌다면, 이 진법을 파훼하거나 인지할만한 고수는 무림에 흔한 편인가요?"


"무림 전체로 보자면 절정 무인은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초절정 이상 경지라면, 대부분 문파의 실력있는 일대제자나 장로수준입니다. 그리고 같은 절정이라도 초입과 완숙한 경지가 수준이 다르고, 벽 너머를 보는 이들과는 차이가 커서 비교가 힘듭니다. 제가 중간 정도의 경지인데, 인지조차 불가능한 것을 보면 어지간해서는 안전할 것 같네요. 확인하니 정말 대단한 진법이군요. 어째서 이런 절진이 이 곳에 설치된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뭐 일단은 안심이다. 그나저나 이십대 초반인데 완숙한 절정이라니. 밖에서는 이름있는 무인이라는 것이 참말인 듯 하다. 흔치 않은 천재들이 지금 이 자리에는 대부분이었다. 설마 백예린도 그런가? 알고 싶지 않아졌다.


오랜만에 목재창고를 열었다. 진법의 경계가 되어주는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서다. 절정고수의 검기로 목재를 다듬으니 순식간이었다. 개부럽다.


표지판들로 경계를 정하고 동생들까지도 행동범위를 제한했다. 일단 진법의 범위가 워낙 넓었기도 하고, 두 사람의 사정도 파악한지라 기꺼이 수긍했다. 도구는 예외로 두고 오히려 밖의 상황을 살피는 정찰을 맡겼다.


"가장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안전은 꽤 확보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앞으로 전보다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밖의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는 여기서 머무시는 게 최선일 것 같은데, 아직도 떠나시는 게 낫다고 보십니까?"


"저희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려야지요. 상황이 파악되고 수습될 때까지 신세를 져도 괜찮겠습니까?"


"먹고 입는것이 불편하시지 않는다면요. 그럼 이제 두 분이 무사하다는 걸 귀 가문에 알리는 문제만 남았는데요. 걱정스러우시겠지만, 며칠간만 더 참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도구가 진법 밖의 상황을 더 지켜보고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길 때 제가 하산하여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걱정하고 있을 가족 생각이 났는지 예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것만큼은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지금 상황만 하더라도,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기에 만족해야 했다.


"네, 전적으로 공자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화매와 도하도 그리고 도구도 잘 부탁할게."


아이들답게 금방 친해진 것인지, 예린은 동생들을 편하게 대했다. 뜻 밖의 인연이었고, 뜻 밖의 위험이었지만 다 괜찮게 흘러가리라. 오히려 얼마나 되었든 이들이 머무는 동안 동생들이 밖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기회가 된 점이 다행이라 생각된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는 밥값 하셔야죠?"


어린이들 모두 일해서 자급자족하는 공가에 한량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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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천하제일 장인대회 (2) +4 24.09.17 335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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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올해도 감자농사는 내려놓지 않을 겁니다. +4 24.09.16 394 12 12쪽
29 29. 드디어 김치찌개를 먹다. +4 24.09.16 427 14 12쪽
28 28. 새 가족의 탄생 +6 24.09.16 461 16 11쪽
27 27. 중원제일 산업도시, 삼정산 +4 24.09.15 499 17 13쪽
26 26. 후추를 얻다 +2 24.09.14 524 18 8쪽
25 25. 세가들과의 인연 +3 24.09.14 540 13 8쪽
24 24. 기간산업의 변화 +2 24.09.14 581 15 7쪽
23 23. 기틀 마련 +2 24.08.30 731 16 13쪽
22 22. 세상에 오롯이 서려 합니다. +3 24.08.29 722 17 12쪽
21 21. 은혜갚은 백가장 +4 24.08.28 722 16 12쪽
20 20. 전문 행정인력 진남매 +3 24.08.28 713 16 11쪽
19 19. 호구조사 +5 24.08.27 728 17 11쪽
18 18. 삼정공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3 24.08.26 748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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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가족 +6 24.08.25 743 20 7쪽
15 15. 새봄맞이 +5 24.08.25 754 19 9쪽
14 14. 삼남매 첫 나들이 +3 24.08.25 784 2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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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밥값 하셔야죠? +3 24.08.22 805 18 11쪽
10 10. 다짐 +5 24.08.21 825 17 11쪽
9 9. 백예린 +3 24.08.21 833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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