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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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박이
작품등록일 :
2024.08.2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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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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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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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DUMMY

33화


'천호?'

누가 봐도 나를 부르는 말이다.


이 한반도에 남은 천호라면 나밖에 없으니까. 구미호라면 찾으면 있다. 하지만 천호는 아니다.

여우라는 존재가 천 년을 수행하며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그 전에 죽던가, 아니면 인간의 간을 먹으며 구미호로 변질된다.

그리고 인간이 되어버리지. 아니면 다른 퇴마사들에 의해서 소멸 되어버리던가.


꿈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이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처음 보는 여인이 서있었다.

'누구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치매가 오거나 기억 상실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력이 좋아 잊어본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기억도 나지 않는 여인이라니.


하지만 내 기억에도 없는 이 여인은 나에게 웃으며 다가 왔고, 나 또한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더 의문이었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 그것도 이 시절에?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더욱 머리가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한 번 불러봤어요."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내가 봐도 예쁜 얼굴인데, 내가 다른 일반인도 아니고 이런 사람을 잊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내 생에 인간들과 보낸 시간이 짧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는데.


복잡한 나의 머리와는 달리 꿈의 나는

"그러느냐. 이리 내 옆에 서 많이 보거라."


?

?

?

?????????

이거 설마 내가 한 말인가?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가 맞다.

하지만 내가 저딴 말을 한다고?


손발이 오그라 드는 것은 둘째치고 내가 저딴 쓰레기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이 머리의 생각이 멈춰버렸다.

속에서 욕이 난무하며, 죽고 싶었다.

인간이 되는 것은 그냥 버리고 죽고 싶어졌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나에게 이딴 광경을 보여주는 지 꼭 내가 잡아 소멸시킬. 아니 죽고 싶어질 정도의 고통을 줄 것이다.

내가 벌써 죽고 싶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리 자괴감에 빠져, 서로 무슨 대화를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대화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집중하고 싶어 다른 생각을 버리고 집중하려 해도 방금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니 아무리 해도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이지만, 충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저런 모습을 보인다고?

말 뿐만 아닌 행동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내가 보이지 않을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인간을 어찌 저리 챙긴다는 말인가.


얼굴이 예뻐서?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살 때 더 많은 여인들이 나에게 왔었으니까.

그런 나에게는 그냥 수 많은 예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내가 어찌 저런 모습을 보인 다는 것이냐.

먹고 싶다는 것을 사주고 열심히 챙겨주려 하는 모습.

그리고 나는 그런 적 없다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차단하려 하며 여인과 눈을 마주치면 무 표정을 짓거나 시선을 돌리지만 어찌 여인을 혼자 바라볼 때는 이리도 행복하게 웃는 것이냐.


도대체.

도대체....


이게 무슨 광경인 것인가.

오히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분명히 그것이 맞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건 내가 겪은 일이 아니다.

근데 꿈을 통해 들어오는 이 감정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저 여인에 대한 감정이 계속해서 꿈을 통해 이 몸을 통해! 나에게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필요도 없는 감정이.


인간들과 어울리며 많은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 닳아버린 감정들을 그들을 보며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이란 저런 것이었구나. 라는 그런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지만, 사랑이란 감정 만큼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니.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정이었지만 천호가 되고 나서 많은 인간들이 사랑에 무너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했던 이가 며칠 뒤에는 무너져 내린 경우도 많이 보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 등 안 좋은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되었다.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게 된다면 인간들은 그 만큼 좋아진다.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서 말이나 행동 등 모든 것을 조심하게 되며 인간 자체가 바뀌게 되는 모습도 많이 보게 되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큰 위험이 있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잃게 된다면 강했던 이도 무너지는 데. 그리고 그건 인간 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존재들 또한 감정이 있으며 인간들과 사랑에 빠진 경우도 보게 되었다.


그런 이들도 사랑하는 존재를 잃으니 무너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으니, 나에게는 이런 감정 따윈 필요 없다.

절대로 받아서도 나에게 이런 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


내가 느끼는 이 따위 감정은 어떻게든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 꿈의 나는 저 여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여태 보인 적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아서.

나는 눈을 감고 싶었다.


더 이상 보게 된다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으니.

그냥 시선을 돌려버리고 싶었다.

나지만 내가 아닌 존재.


'이만 꿈에서 깨어나자.'

오랜만에 꾼 꿈은 이것으로 되었다.


나 또한 이곳에 더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버려버린 감정을. 감정이 다시 꿈을 통해 들어온다니.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나는 무너질 수 없다.


사랑 따윈 하지 않는다.

"허어.."

숨을 고르며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직 새벽인 듯 밖은 어두웠고, 내 몸은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도대체 꿈을 하나 꿨다고 내 상태 또한 이리 이상해 지다니.


손가락을 튕겨 식은 땀을 모두 날리고, 옷을 다시 정리 하고 다시 침대에 누울 수 있었지만, 다시 잠을 잘 수는 없었다.

그 꿈을 다시 꾸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꿈에서 나를 계속 붙잡았다.

나를 나가지 못하게.


내가 나가고 싶지 않게 계속 나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쉽게 나올 수 있었지만, 그 다음에도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손으로 얼굴을 쓸며,

"이래서 감정 따위는 그냥 인간들이 느끼는 것을 보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내가 감정에 동화 된다면 나 또한 인간들과 다를 것 없고, 과거에 무너진 것들과 다른 것이 없으니.

나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고 감정에 휩쓸려 효율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머릿속을 정리하니 더욱 편해졌고, 드디어 걱정이 사라졌다.

꿈에 관한 생각 또한 줄어들었고,

'꿈은 그저 꿈이다.'


꿈은 그저 내 과거의 기억들을 조합하여, 아니면 나도 알지 못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지.

달빛이 방을 비추며 나는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구 나일! 빨리 안 일어나!"

"시끄러."

"곧 퇴실 시간이라고 당장 일어나!"

"하.."


민이가 소리 지르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벌써 퇴실 시간이라니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이미 모두 준비를 끝내었는지, 나를 보고 있었고 귀찮지만 화장실까지 들어가 준비를 끝내고 나왔다.

이제 휴가도 끝나 다시 서울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다들 들고 온 짐이 적으니 그냥 숙소에서 나오자 마자 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배에 올라타 멀어지는 제주도를 바라보며

"더 놀고 싶다."

하람이는 더 쉬고 싶은 듯 보였고, 나도 저 말에는 동감하는 편이었다.

또 서울로 돌아가면 귀찮게 일을 하게 되니.


우리는 생각보다 빠르게 서울로 도착했고, 바로 미르를 만나러 올라갔다.

하지만 미르는 반갑지 않은 듯

"너희는 할 짓 없으면 왜 계속 여기로 오는 거야?"

"의뢰 줘야지."


그 말에 미르가 들고 있던 펜이 두 동강 나며, 나를 노려봤다.

"저 밑에 가면 다 알아서 줄 것인데 나에게 와야 해?"

"네가 편하니까 이러지."


내 말에 민이도 동의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맞지. 우리 다른 회사원들이랑 어색한데."


어쩔 수 없다.

15 팀은 우리가 오기 전에는 화사 내에서 왕따였고, 우리가 온 이후로는 따로 다른 직원들과 말을 할 틈이 없었고 계속 미르를 통해 받았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이건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하..."


미르가 한숨을 내쉬며 할 말이 없는 듯 그냥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나는 웃으며

"그래서 의뢰 있어?"

불난 집에 부채질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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