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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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작품등록일 :
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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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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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DUMMY

“선배 진짜로 가는 거예요?”


의국에 있는 짐을 정리하고 있으니 후배가 말을 걸어왔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이미 얘기도 다 끝냈어.”

“선배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렇게 쫓기듯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한 것은 나의 레지던트 1년 후배인 안지나 선생.

눈매가 조금 매섭지만 동그란 안경을 껴서인지 조금은 귀엽게 보이는 그 얼굴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내과 레지던트 2년차가 끝나는 날, 나는 3년차가 되는 것이 아닌 수련을 포기하고 사직서를 냈다.


생각보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병원 근무자라면, 아니 서비스직에 있다면 한 번은 생길 법한 일이었다.



“기계 달아놓고 약 쓰고 그랬으면 살려놔야지.”


응급실 당직 날 심정지 상태로 집에서 발견되어 병원으로 실려온 환자에게 50분 동안 심장 압박을 하며 각종 약물을 때려붓고 소생하길 기대하며 최선을 다한 내게 보호자가 외친 말이었다.


요는 왜 치료는 치료대로 하고도 환자가 죽었냐 그런 말이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기본적으로 소생 확률이 높지 않다.

특히 이번처럼 몇십 분 지체되어 발견될 경우는 사실상 사망한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로.

그러나 보호자 입장에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순간 의사가 환자를 살려낼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만약 환자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환자의 허탈감과 슬픔은 그대로 의사에게 날아와 꽂힌다.

의료진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 때문에 사망 초기의 비난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환자가 사망하고 며칠 뒤, 의국에 내 이름으로 우편이 왔다.



‘손해배상(의) 청구의 소’



내 이름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장이 날라왔다.


의사로서 환자 치료에의 주의 의무를 위반하였다, 환자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았다, 과다 치료를 하였다 등의 말이 적힌 소장에는 ‘피고는 원고에게 3억 5천만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못해먹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안 선생,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은 알지만 본인의 선택은 존중해줘야지?”


김성태 교수님은 그렇게 말하며 남산만한 배를 팡팡 두드리며 호쾌하게 웃었다.


김 교수님은 작년에 신규 임용된 분으로, 교수님이라기보다는 형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젊고 유쾌하신 분이다.

그런 교수님의 놀림에 지나는 한숨 섞인 핀잔을 주며 말했다.


“교수님 다음 주부터 주2회 당직인 건 아시나요?”

“뭐? 처음 듣는데?”

“태호 선배가 빠지는데 주1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지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당직표를 치켜들고는 팔락거리며 교수님에게 보여줬다.


“강태호 선생, 사직하는 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안 되겠나?”


당직표를 확인하고는 돌변한 교수님의 태도에 나는 하하 하고 웃음을 보내며 남은 짐을 마무리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선배 아무튼 혹시라도 다시 수련할 생각 있으면 우리병원 꼭 와야 돼요! 그때는 제가 선배니까 잘 챙겨줄게요!”


“맨날 IV(정맥내주사)를 SC(피하주사)로 오더 내다가 꿀밤 맞는 애가 선배라니 아찔한데?”

“담에 오면 제가 선배니까 꿀밤 놔드릴게요.”

“절대 안 와야겠다.”


나와 지나는 서로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실없는 농담을 하고 있자니 김 교수님이 답지 않게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태호야 미안하다.”


미안하다.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뭐라고 대답할지 말을 고르던 와중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갈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봐요.”


나는 황급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며 멋없는 마지막 인삿말을 보냈다.


병원 출입구인 회전문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한 나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병원 전경을 눈에 담았다.


아성병원.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병원.


‘들어갈 때는 학점이니 국시 성적이니 봉사시간에다 면접까지 챙겨 어렵게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순식간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소박한 내 전공의 생활의 모든 짐을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있을 때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그러고 보니 발표가 오늘이었나?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알림의 내용을 확인했다.


‘귀하는 국방부 역종분류 결과 공중보건의사로 분류되었습니다.’


대학병원 레지던트를 관둔 나는, 공중보건의사가 되었다.



***





자가용 문을 닫고 눈 앞에 있는 집을 바라봤다.


작고 초라하지만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그리운 내 본가.


“8년만인가?”


의대 다닐 때는 공부한다고 바쁘다는 핑계, 전공의 때는 일한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을 제외하면 거의 내려온 적이 없다.

혼자 계신 아버지께도 가끔 전화를 드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이제는 최소 3년 간 나는 본가에서 거주해야 한다.


이 동네가 내 근무지니까.




공중보건의사는 병역 대체복무 중 하나로, 의사들 중 병역 대상자들을 선발해서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의사 면허만 있다면 대상자가 될 수 있어서 의과대학만 졸업한 사람, 인턴까지만 한 사람, 레지던트를 하다가 그만둔 사람, 레지던트가 끝나고 전문의까지 된 사람 모두 구분 없이 공중보건의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고, 대상자 중 일부는 군의관으로 분류되고 일부는 공중보건의로 분류된다.



공중보건의로 결정이 되면 약 4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근무지를 결정하게 된다.


근무지는 기본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근무지로 지원하는 형태지만 경쟁이 심한 지역은 추첨을 통해 선발이 된다.


나는 내 고향이 있는 지역에 지원을 했고, 인기가 없던 탓인지 추첨도 없이 바로 이곳 대철면 보건지소에 공중보건의사로 선발이 되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디지털 도어록이 아닌 아날로그 철제 자물쇠가 걸쳐져 있는 철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다.


자물쇠가 안 잠겨 있길래 아버지가 계신가 했더니 잠깐 어디 나가신 모양이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에서는 외출할 때마다 자물쇠를 꼬박꼬박 채우고 다니지는 않는다.


익숙한 집안 구조를 훑고 지나가니 거실 탁자 위에 메모가 놓여져 있었다.


‘마트에 잠깐 다녀오마. 저녁 전에 돌아올 테니 밥은 같이 먹자.’


아버지가 남긴 메모.

장을 보러 가셨나보다.


가끔이지만 집에 내려오기라도 하면 매번 진수성찬을 차려주신다.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도 음식을 준비하시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 보여 자식으로서 마냥 매몰차게 거절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거실에 벌러덩 누웠다.


“조용하네.”


도시와는 다르게 시골에 혼자 누워 있으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창문 밖에 지나다니는 차 소리도

현관문 밖에서 가끔 들리는 말소리도

아무것도 안 들리는 적막함.


서울에서 고향까지 장거리 운전이었음에도 이상하게 피로감은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


연락 0건


“흠...”


반쯤 강제로 워커홀릭이 되다시피 한 삶.

일을 그만두니 절망적인 수준의 아싸가 되었구나.


“워커홀릭에는 워커홀릭만의 삶의 방식이 있지.”


아무 용무가 없는 휴대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봐야 적막감만 지속될 것 같아 나는 곧바로 일어나 가져온 짐을 정리했다.


그 후 다시 차에 탑승해 내비게이션에 ‘대철면 보건지소’를 입력한 뒤 출발했다.



***



보건지소는 보건소보다 작은 보건기관으로, 보건소가 설치되지 못하는 곳에 설치되어 해당 지역의 보건 업무를 담당한다.


보건소와 다르게 보건지소는 작은 지역을 담당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근무자가 많지 않다.


심한 곳은 고정 근무자가 아예 없어 다른 보건지소에서 근무자가 순회하며 근무하기도 하며 어떤 곳은 의사와 보건 공무원이 모두 있어 원활한 업무가 가능한 곳도 있다.


그리고 또 어떤 곳은 의사 없이 보건 공무원만으로 운영되어 의료행위 없이 보건 사업만 하는 곳도 있다.


내가 근무하게 될 이곳, 대철면 보건지소도 아마 그렇게 운영되어왔던 것 같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의과 진료 가능합니다.’


진료 시작일을 알리는 안내문이 보건지소 문 앞에 붙여져 있었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다.


나는 조용히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기름칠이 되지 않았는지 문이 닫히며 덜컹 하는 소리가 나자 안쪽 사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금연사업은 다음 주에 의사 선생님 오시면 그때부터... 어머”


금테 안경을 쓰고 파마머리를 한 중년의 여성이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나를 보고서는 하던 말을 멈추고는 눈을 끔뻑끔뻑 떴다.


“안녕하십니까, 다음 주부터 근무하게 될 공중보건의사 강태호라고 합니다.”

“아! 공보의 선생님이셨구나 근데 근무는 다음 주부터인데 여기는 무슨 일로...?”

“근무 전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왔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반갑습니다. 일단 거기 서 있지 말고 사무실로 들어오세요.”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근무자분을 따라 들어간 사무실은 파티션으로 나뉜 두 개의 책상과 구석의 회의용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조촐한 모습이었다.


근무자분은 나를 회의용 테이블 쪽으로 안내한 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서 건네주었다.


“의사 선생님인데 이렇게 변변찮은 거 줘서 어째. 그래도 촌동네니까 이해해줘요.”


근무자분이 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소개 및 보건지소에 대해 설명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근무자분은 이영화 주무관이라고 하며 보건지소 관리 및 보건사업을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지소가 아니라 상위 기관인 보건소 소속이라 해당 보건소에 속한 여러 보건지소를 순환하며 근무한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공중보건의사가 없어 다른 지역 보건지소에서 의사가 순회하며 진료 보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대철면 보건지소에 고정근무자가 생겨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수도권에서 먼 지역이고 깡촌 중에서도 깡촌이니 선호하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나는 고향이니까 온 거지만.


“아무튼 뭐 궁금하거나 문제 있는 거 생기면 나한테 언제든 말해줘요.”

“하하, 보건지소 근무는 처음인데 주무관님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뿐만 아니라 다음 주 월요일 진료 시작일부터 근무 시작하는 기간제 간호 공무원도 있으니까 힘들 일은 없을 거에요.”

“간호 공무원이요?”

“네, 공보의 선생님 혼자서 진료 보기는 힘드니까요. 저는 순환근무라 없는 날도 있고...”


그렇게 말하며 이영화 주무관님이 본인의 책상으로 가서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보건지소 근무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도움도 될 거에요.”

“진짜 다행이네요.”

“이력서 보니까 나이대도 비슷한데 젊은 사람들끼리 잘 해봐요. 아줌마는 사무실에 빠져있을 테니까요.”


주무관님은 그렇게 말하며 호호 웃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보건지소에 대한 소개를 듣고 진료실을 둘러봤다.


책상 하나와 컴퓨터 한 대.

진찰용 침대 하나.

약장과 약 포장기 하나.


의약분업 예외지역이라 약 포장기가 있구나...

처음 보는데 신기하네.

나중에 이것저것 눌러봐야겠구만.


대철면처럼 심각한 깡촌은 병원은 물론이고 약국도 없는 경우가 있어 병원에서 처방전을 써줘도 약을 구할 약국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병원도 약국도 없는 지역을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지정해서 병원에서 약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가 그 정도 깡촌이란 말이다.


물론 깡촌답게 그 흔한 엑스레이조차 없다.

첨단 의료기기의 혜택을 전혀 볼 수 없는 지역.

이것저것 검사를 마구 긁어 대서 이상한 결과 하나라도 나오면 진단해내는 그런 식의 진료는 불가능.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다.


진료실에는 별로 볼 게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켰다.


‘EMR(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이라도 익숙해져야지.’


전원이 들어가자 윈도XP 로고가 떴다.

언제적 컴퓨터냐고.


한참을 기다린 뒤 EMR 프로그램을 켜 모니터 밑에 붙여진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로그인을 했다.


나는 V/S(활력징후) 확인창, 묶음 처방 등록창, 알러지력 등록창 등의 각종 기능을 확인했다.


‘음, 구식 인터페이스지만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추고 있는 것 같네.’


대학병원에서 쓰던 EMR은 이것보다 확실히 기능이 많긴 했지만 그 중에 필요한 건 몇 가지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점이 독이 됐었다.

찾기만 어렵지.


나는 환자를 볼 때 필요한 기능만 골라서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며 여러 기능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


예약 대기 창을 들어가 보니 오늘 날짜로 예약 환자가 한 명 등록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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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자주 오시네요 (1) +1 24.09.02 907 27 11쪽
8 담배 끊으세요 (3) +2 24.09.01 934 29 11쪽
7 담배 끊으세요 (2) +1 24.08.31 970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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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3 36 12쪽
3 보건지소 +1 24.08.27 1,208 37 12쪽
2 의무기록 +1 24.08.26 1,250 40 12쪽
»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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