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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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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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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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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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1)

DUMMY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보건지소를 나와 자동차에 탔다.


‘걔 집이 분명...’


기억을 더듬어 하윤이의 집을 떠올리며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찰나.


띠링


문자 메시지 음이 들렸다.


[깡태! 내려왔다면서!]

[지금 어디야?]


하윤이였다.


[나 지금 일 끝났는데.]

[너는?]


[나도 방금 일 끝남!]

[ヽ(・∀・)ノ]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놀러와!]


안 그래도 가려고 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 자판을 두드렸다.


[ㅇㅋ 지금 출발할게.]


[기다리고 있을게!]

[(≧∇≦)/]


[30분 쯤 걸릴 듯?]


[위치 알고 있지?]


하윤이와는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다.

집 위치 정도야 눈 감고도 찾지.


[당연하지.]


나는 그렇게 답장하고는 곧바로 차를 몰고 출발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후.


나는 차로 마을을 세 바퀴 정도 돈 뒤 하윤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 감고도 찾는다는 말은 취소.

걸어서 갈 때와는 다르게 차로 가니까 익숙한 길도 쉽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하윤이 집을 바라봤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평수의 주택과, 취미로 가꾸는 텃밭이 조금 갖추어진 전원주택.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한 번도 놀러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있으니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호야아!”


하윤이가 멀리서 손을 격하게 흔들며 뛰어왔다.


“30분이면 도착한다면서,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오랜만에 오니 마을이 좀 복잡하더라고...”

“하여간 길 못 찾는 건 여전하구나.”


하윤이가 킥킥거렸다.


“그보다, 명절에 너 내려 올 때마다 놀러오라고 연락 했는데 그걸 다 퇴짜 놓더니 오늘은 용케 왔네?”

“그땐... 좀 바쁠 때여서.”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당시의 나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의대를 진학한 이후로 이어지는 치열한 나날의 연속.

의대생, 인턴, 레지던트 어떤 과정 중에도 숨 돌릴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 중에 가끔씩 주어진 명절이라는 휴일.

그 몇 안 되는 휴일은 아버지 얼굴을 뵈러 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 보니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은 친구는 하윤이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하윤이를 따라 들어간 집은 내가 기억하던 예전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 집에 들어서면 보통은


“월!”


약간 갈색의 털을 가진 진돗개처럼 생긴 똥개, 사월이가 맞이해준다.


사월이는 4월에 태어나서 사월이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무슨 이름을 그렇게 대충 지었나 싶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하윤이 아버지의 성격 답다고 생각했다.


사월이의 귀여운 점은 이름을 부르면 바로 반응해준다는 점이다.


“사월아!”

“월!”

“사월아!”

“월!”

“오월아!”

“월!”


사실 그냥 월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따라서 외치는 거지만.


“아직도 자기 이름 구분 못하는구만.”

“아냐, 너한테 어울려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하윤이는 사월이를 껴안으며 “힝, 형이 너 무시해~”라고 했다.


“털 색이 좀 옅어졌네?”

“노견이니까. 나이는 어쩔 수 없다구.”

“10살 쯤 됐나?”

“응, 여기저기 몸도 안 좋은 거 같구.”


하윤이가 사월이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하윤이를 따라 사월이의 눈을 쳐다보니 수정체가 약간 뿌옇다.


“cataract(백내장)?”

“오, 그건 어떻게 알았어? 동물 진료도 볼 수 있어?”

“때려 맞춘 거지.”

“pirenoxine(피레녹신, 백내장 치료제) 넣어주고 있는데 별 차도는 없네...”


하윤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된 약물 이름을 말했다.


하윤이는 마을 근처에서 동물병원을 개원한 수의사이다.

의사와 수의사는 진료 대상만 다를 뿐, 구조가 비슷한 학문을 배우기 때문에 전문용어들이 대부분 통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윤이와 대화에서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하윤이는 사월이의 볼을 가지고 장난치다 “아!”하며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나중에 사월이 새끼들 보여줄게! 가끔 우리 집에 오거든!”

“가끔?”

“응, 가끔 와있던데?”


시골 똥개들은 풀어놓고 기르기 때문에 누구랑 가족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면 아, 가족인가보다 하는 거지.


“다음에 꼭 보여주는 거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사월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하윤이 집에 들어갔다.



집 안에는 하윤이 부모님이 미리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태호야 왔구나. 이게 얼마만이냐.”

“하윤이한테 미리 들어서 준비해놓고 있었단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오랜만이에요.”


나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인사했다.


“그래 일단 와서 앉거라.”


아저씨가 의자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주방 구석에서 슬그머니 술병을 꺼내왔다.

필기체로 휘갈겨진 이름이라 글자는 읽을 수 없었지만 어쩌고 21년산이라고 적힌 양주였다.

술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21년이나 숙성시킨 것이면 분명 비싸리라.


아저씨가 싱글벙글 웃으며 술을 까기 시작했다.


“술 좋아하시는 건 여전하시네요.”

“하하, 너가 왔으니까 좀 마셔줘야 되지 않겠냐?”


그러자 아주머니가 눈을 흘기며 “쯧.”하며 혀를 찼다.


평소였으면 들볶았을 텐데 오랜만에 맞이하는 손님이 있어서 허용해주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 우리는 그간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지금은 보건지소에서 일하는 거네?”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 대철면 보건지소요. 저기 도시고속도로 올리는 곳에 있는 거요.”

“점심은 어떻게 먹어?”


이어지는 질문은 지극히 주부다운 질문이었다.


“음... 간단하게 싸가서 먹죠.”

“아이구, 아이구, 제대로 못 챙겨먹겠네~”


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며 플라스틱 통에 반찬들을 담기 시작했다.


“너 좋아하는 거 위주로 담을 테니까 가져가서 먹어.”


나는 망설임 없이 반찬통을 받아들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양을 보니 거의 한 달은 반찬 걱정 없을 것 같았다.


아싸.


나는 반찬 통들을 한 쪽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근데 두 분은 요즘 몸 불편하고 그런 거 없으시죠?”

“응? 딱히 불편한 거 없지.”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아저씨를 쿡 찌르며 말했다.


“여보 그 얼마 전에 건강검진 한 거 그거 한 번 물어봐.”

“엉? 아 그거 별 내용 없댔잖아. 뭘 또 물어봐?”

“아이고 참, 바로 옆에 의사 놔둬서 뭐하게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방에서 봉투를 가지고 오셨다.


“이거 얼마 전에 건강검진 한 건데 이것 좀 봐줘봐.”


아주머니가 주신 봉투 겉면에는 ‘좋은강산병원 건강검진과’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봉투를 받아들어 내용물을 펼쳐봤다.


아저씨의 이름이 적힌 국가건강검진의 기본검사 결과지였다.

종이에는 여러 가지 검사의 결과들이 나타나 있었다.



==========

빈혈

■정상 □이상 의심


당뇨병

■정상 □이상 의심


이상지질혈증

■정상 □이상 의심

==========



‘음... 다 정상인데?’


딱히 문제되는 부분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살펴보던 중



==========

간기능

□정상 ■이상 의심

==========



간기능에서 이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시선이 간기능 칸에 멈춘 것을 확인한 아주머니.


이내 재판이 시작되었다.


“간기능 이상이라고 나왔는데 이거 술 그만 마셔야 되는 거 맞지?”

원고측 심문이었다.


“아니 별로 높은 것도 아닌데 뭘 자꾸 마시지 마라는 거야.”

피고측 반론이었다.


“흠...”

판사는 수치를 봤다.



==========

검사항목 / 검사치 / 정상수치

AST(SGOT)(IU/L) / 34 / 33이하

ALT(SGPT)(IU/L) / 39 / 38이하

γ-GTP(IU/L) / 57 / 56이하

==========



수치들이 다 1씩 높았다.


어떻게 딱 1만 높을 수가 있지.


‘흠... 이 정도면 정상 아닌가?’


나는 두 분을 바라봤다.


“비정상이지?”

“정상이지?”


각자의 바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누구 편을 들어줘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다 내 옆구리를 쳐다봤다.


반찬통이 쌓여 있었다.


“흠... 수치가 비정상이긴 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식탁을 쳐다봤다.


어쩌고 21년산 양주가 따라져 있었다.


“흠... 근데 문제 될 정도로 높지는 않네요...”


하윤이를 쳐다봤다.


하윤이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간수치는 비정상인데 간기능은 정상이겠네요...”


애매한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두 분은


“거 봐 수치가 비정상이라잖아!”

“거 봐 기능이 정상이라잖아!”


각자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셨다.


하윤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킥킥거렸다.


“쯧, 하여튼 술 좀 끊어야 돼.”


아주머니가 한탄했다.


“거 남자가 사회생활 하면 술 좀 마실 수도 있는 거지.”


아마 아주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눈을 흘기다 이내 하윤이를 보고선 말했다.


“하윤이 너는 건강검진 안 받냐?”


갑자기 하윤이에게 튀는 불똥.


“아 엄마! 나 아직 20대인데...”

“20대는 다 건강한 줄 아냐? 맨날 밥도 제대로 안 챙겨먹으면서.”


아주머니가 핀잔을 줬다.


“하윤이가 밥을 잘 안 먹나요?”

“말도 마라. 얘 무슨 일을 하루 종일 하는지,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맨날 바쁘다고 못 먹었대.”

“바쁜 걸 어떡해!”


하윤이가 항변했다.


나는 이번에는 아주머니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밥은 잘 챙겨먹어야지. 이건 의사 말이니까 잘 듣도록.”


나는 엣헴, 헛기침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점심 부실하게 먹는 사람한테 들을 말은 아니네요.”


하윤이가 눈을 흘겼다.


“이제 아닌데?”


나는 반찬통을 끌어안고 대답했다.


“야!”


하윤이가 소리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저씨가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그렇게 얼마간 얘기를 나눈 우리는 이내 식사 자리를 정리했다.


식탁을 정리하던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자고 갈 거냐? 이불 깔아줘?”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내일 출근해야 되니까요.”

“그래? 그래도 언제라도 자고 가고 싶으면 말하렴.”

“네.”


나는 하하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식탁을 정리하고 나니,


“야 강태호 일루 와봐!”


하윤이가 방 안에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또 뭔데?”라고 말하며 하윤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방 안.


그곳에는 커다란 스크린 화면과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스피커들이 주르륵 설치되어 있었다.


“오.. 오우...”


내 기억 속의 그 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 모습에 감탄사가 저로 흘러나왔다.


“이제 돈 버니까 취미활동에 좀 썼지.”


하윤이가 헤헹 하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윤이는 중학교 시절부터 영화 매니아였다.

대중적이고 유명한 영화들도 많이 봤지만 주로 찾아보는 것들은 B급 감성의 고전 영화들.


“표현의 자유가 살아있단 말이지.”라고 말하며 제목도 이상한 영화를 찾아보던 하윤이는 언젠가 본인 방에 영화관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아마 이 방은 그 말의 실현물인 것 같았다.



하윤이는 무릎을 꿇은 채 침대 밑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얼마 전에 구한 영화가 있는데, 이건 너도 좋아할걸?”


그렇게 말하며 DVD 박스를 찾아 들고선 번쩍 일어나 TV 앞으로 갔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휘청거리거니


털썩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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