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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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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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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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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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으세요 (3)

DUMMY

나는 아저씨의 등에 청진기를 댔다.


“아저씨 제가 청진기 댈 때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청진기를 귀에다 꽂았다.


폐음을 청진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등의 왼쪽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ㄹ모양을 그리며 여섯 군데를 청진한다.


나는 아저씨의 등의 왼쪽 윗부분에 청진기를 댔다.



후욱― 후우―



일반적인 폐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오른쪽 윗부분.



후욱― 후우―



역시나 정상이다.


다음으로 오른쪽 가운데 부분에 청진기를 댔다.


그 순간



후욱― 휘으으응―



‘역시나.’


wheezing(천명음)이 들렸다.


폐도 결국은 공기가 지나다니는 통로.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인 기관지가 좁아질 경우 숨소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약 기관지가 좁아지면 공기가 드나들며 휘파람과 같은 소리가 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지금 아저씨의 폐음에서 들리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이어서 왼쪽 가운데 부분에 청진기를 댔다.



후욱― 휘으으응―



똑같은 wheezing(천명음)이 들렸다.


‘다행이다.’


천명음이 들린다는 것은 질병상태에 있다는 뜻.

하지만 한 쪽에서만 들리는 것과 양쪽 모두에서 들리는 것은 추측할 수 있는 질병이 다르다.

양쪽에서 모두 들리면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당장 죽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한쪽에서만 들리면... 폐암일 가능성이 높다.


아저씨의 경우 다행히도 양쪽 모두에서 천명음이 들렸다.


나는 이어서 왼쪽 아랫부분과 오른쪽 아랫부분을 마저 청진했다.



후욱― 후우―



정상이었다.


“아저씨 기침 심하시던데 숨도 차시죠?”

“어 예전부터 그랬는데, 뭐 문제 있는 것 같냐?”

“네, 폐 소리가 좀 안 좋아서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의 심장 쪽에 청진기를 대보았다.


정상 심음. 의무기록에 적혀 있는 대로 심장은 정상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다거나 심장 쪽이 아프다거나 하는 건 없죠?”

“그런 건 하나도 없지.”


“기침이나 숨쉬기 힘든 것 때문에 병원 가보신 적 있어요?”

“안 그래도 몇 달 전에 감기 걸리고 기침이 너무 심해서 병원 간 적이 있는데.”

“뭐래요?”

“뭐라는지는 모르겠고 검사 몇 가지 하더만 호흡기 같은 거 주더라고.”

“호흡기요?”



일반적으로 호흡기라고 하면 산소호흡기를 말한다.


하지만 아저씨가 말하는 것은 아마 ‘흡입기’일 것이다.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물질을 직접 흡입해서 호흡을 쉽게 만들어주는 기구.

보통 천식이나 COPD(만성폐쇄성폐질환)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병원에서도 COPD를 의심했나보네.’


상당한 흡연량과 만성 기침, 가래, 그리고 호흡곤란.

거기다 폐 청진에서 기관지가 좁아진 소리가 났다.


COPD에 합당한 소견이다.


다만 COPD로 확진을 내리려면 PFT(pulmonary funtion test, 폐기능 검사)를 해야 한다.


‘PFT(폐기능 검사) 하라고 큰 병원으로 진료의뢰서라도 써야 하나 걱정했는데...’


큰 병원에서 이미 확진을 받았다면 추가 검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받은 거는 써보셨나요?”

“써봤는데 효과 없더라고.”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아저씨는 방으로 들어가 처방받은 약을 가지고 왔다.


레스피맷이라는 이름의 흡입기였다.

tiotropium(티오트로퓸)이라는 기관지 확장 성분이 들어 있는 기구다.


‘역시 COPD 진단을 받으신 거구나.’


“이거 써보셨다고요?”

“처음에만 몇 번 써봤지.”

“효과는 없었고요?”

“쓰나 안 쓰나 똑같더라고.”

“어떻게 쓰라고 들었어요?”


흡입기는 사용되는 약물은 같더라도 회사마다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마다 흡입기를 조작하는 법이 모두 다르다.

만약 흡입기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한다면 약효가 없을 터.


“이거 밑에 거 한 바퀴 돌리고 입에 문 채로 버튼 누르라던데.”


아저씨가 흡입기의 몸통을 돌리고는 버튼을 누르자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냥 물기만 했어요?”

“어.”

“흡입은 안하고요?”

“입 안에 뿌리는 거 아니여?”


‘아이고, 쓰는 방법이 엉망이잖아.’



흡입기는 말 그대로 흡입하여 효과를 내는 약이다.

기관지 확장 성분을 흡입함으로 인해서 기관지를 직접적으로 확장시키고, 호흡곤란을 해소해주는 약.


먹는 약과 다르게 전신의 혈액을 타고 흐르는 것이 아닌 만큼, 부작용은 적지만 그만큼 쓰는 방법이 생소하고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정확한 약물을 처방받았더라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질병을 치료할 수가 없다.


지금 아저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단도 처방도 아닌 교육이었다.



“아저씨, 병원 갔을 때 아마 COPD라고,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라는 병명을 말해줬을 거예요. 이게 무슨 병이냐면...”


나는 아저씨에게 정확한 병명과, 경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드렸다.


아저씨는 내 말에 추임새를 넣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등 여러 반응을 보이며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을 해보였다.


“아무튼 이게 기관지가 좁아져서 기침이든 호흡곤란이든 생기는 거니까. 기관지를 확장시켜주는 게 필요한데, 그게 이걸로 하는 거예요.”


나는 레스피맷 흡입기를 흔들어보였다.


“이거 작동시키면 연기 나오잖아요? 그 연기가 폐까지 가야되는 거예요.”

“그럼 연기를 들이마시는 거여?”

“네, 그렇죠.”

“허허, 완전 잘못 쓰고 있었구만.”


아저씨가 헛웃음을 쳤다.

당황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럴 만도 하다.


나처럼 할 일 없는 보건소 의사가 아닌 이상, 자기 할 일이 바빠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세심한 설명과 교육을 해주기 어려울 수밖에.


“한 번 직접 해볼까요?”


나는 아저씨에게 흡입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저씨는 흡입기를 받아들고는 흡입기 몸통을 돌렸다.

그리고 입에 물고서는 버튼을 누른 뒤 흐읍―하며 흡입을 시작했다.


“연기를 마실 때는 마시고 나서 10초 정도 숨을 참아야 해요.”


내 지시에 따라 숨을 참는 아저씨.



후―



아저씨가 가볍에 숨을 내쉬었다.


“어때요?”


아저씨는 쓰읍 후 하면서 호흡을 크게 쉬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겠는데.”

“조금만 있어보시면 차이를 알 거예요.”

“그래? 아무튼 알려줘서 고맙구먼. 역시 가족이나 지인 중에 의사가 있어야 하는 거여.”


아저씨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담배는 좀 끊으시는 게 좋아요.”

“아니, 의사들도 다 피는 건디...”

“저는 안 피는데요?”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안 피니까 남들도 피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을까.


“담배도 안 펴본 놈이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어?”


아저씨가 킥킥거렸다.


그렇게 얼마간 있자, 하윤이가 커다란 페트병과 젖병을 들고 다시 염소 앞으로 왔다.


페트병에는 뿌연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게 수액이야? ORS(경구수액)?”

“엉.”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젖병에다 수액을 나눠담았다.

그리고는 염소의 입에다 가져다댔다.


심드렁한 염소.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심지어는 등을 보이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 염소의 코 앞으로 젖병을 들이미는 하윤이.


“안 먹으면 다시 내 다리 사이에 네 목을 끼워버릴 거야.”


하윤이가 웃으며 염소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염소가 하윤이를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는 몇 번 킁킁 냄새 맡더니 이내 젖병을 빨기 시작했다.



쭈웁쭈웁

쭈웁쭈웁



소리가 날 정도로 열심히 마신다.


그렇게 몇 번을 빨더니 순식간에 비워진 젖병.


아기 염소가 젖을 먹는 것 같았다.


귀엽네.


“나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하윤이에게 말했다.


“나도 해볼래...”


하윤이는 그런 나를 보며 쿡쿡 웃었다.


젖병에 다시 수액을 채워 나에게 주는 하윤이.


나는 젖병을 염소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다시 젖병을 빠는 염소.


염소가 젖병을 빠는 동안 나는 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가 팔랑거렸다.


“기분 좋은가보다.”


하윤이가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선 염소의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염소는 이내 젖병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선 나에게로 다가와 뿔을 비벼댔다.


‘조금 아프네...’


아까도 잡은 적이 있었지만 뿔에 직접 비벼지니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뿔로 서로 들이박으면서 싸우는구나.’


한동안 뿔을 비비고 있는 염소를 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태호야 재밌는 거 보여줄까?”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더니 염소를 향해 외쳤다.


“앉아!”


아저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염소가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우와, 염소도 훈련이 가능해요?”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면 가능하지.”

“오... 신기하네요.”

“다만 안 좋은 습관도 같이 들여버려서...”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염소가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천 원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염소가 지폐를 낚아채 씹어먹기 시작했다.


“돈을 줘야 말을 들어.”

“으음... 오히려 알기 쉽네요.”


하윤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히죽거렸다.


“태호야 너도 해봐!”

“주인이 아닌데 말을 들을까?”

“돈 주면 듣겠지!”


하윤이가 킥킥거렸다.


나는 염소를 쳐다봤다.


‘무슨 명령을 해보지?’


고민하던 중, 순간 오늘 낮에 봤던 인터넷 영상이 떠올랐다.


‘설마 알아먹을까?’


긴가민가 하며 나는 염소에게 외쳤다.


“베개!”


염소는 그 말을 듣자 옆으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오, 알아듣네?”


나는 염소에게 다가가서 배를 쓰다듬었다.


아저씨가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말했다.


“어릴 때 잠깐 교육했던 건데 아직 기억하고 있나봐.”


염소한테 뭘 교육하는 건가요 아저씨...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염소의 배를 몇 번 더 쓰다듬었다.


이윽고 염소가 나를 보며 혀를 낼름거렸다.


“아, 돈 줘야지.”


나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천 원 한 장을 꺼냈다.


도리도리


염소가 지폐를 보자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야?’


나는 천 원 지폐를 다시 지갑에 넣고 오만 원 지폐를 꺼내들었다.


끄덕끄덕


오만 원 지폐를 넣고 천 원 지폐를 꺼냈다.


도리도리


다시 오만 원 지폐를 꺼냈다.


끄덕끄덕


‘이런 미친 염소가...’


하윤이는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저씨를 바라봤다.


“허허...”


별 수 없다는 듯 웃고만 있는 아저씨.


나는 손을 부들거리며 오만 원 지폐를 꺼내 염소에게 줬다.




우물우물하며 오만 원 지폐를 씹어먹는 염소.


“푸하하하하!”


하윤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만간 염소고기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다음 날.


근무시간이 다가온 나는 보건지소로 출근을 했다.


불이 꺼진 보건지소.


나는 굳게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불을 켰다.


시계를 봤다.


8시 55분.


‘유한아 주무관님은 5분 뒤에 오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


“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이 익숙한 목소리... 사월이구나.’


사월이는 나를 알아본 건지 아닌지 모를 얼굴로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문득 어제 일이 생각났다.


나는 사월이를 향해 외쳤다.


“베개!”


내 외침에 사월이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월!”


허공에다 한 번 짖고선 이내 유유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똥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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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랜만이야 (2) +1 24.08.29 1,100 36 12쪽
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4 36 12쪽
3 보건지소 +1 24.08.27 1,208 37 12쪽
2 의무기록 +1 24.08.26 1,250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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