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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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작품등록일 :
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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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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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3)

DUMMY

“그거 천식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중얼거리자 사내가 당황스러운 듯 되물었다.


“예? 이거 천식 아니에요?”


대중매체에서 흔히 표현하는 천식은 기침이나 호흡곤란으로 인해 숨을 못 쉬다가 호흡기를 쓰니 그제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는 질환.

실제로 천식의 대표적 증상은 그것이 맞고 사내의 증상도 천식에 합당하다.


하지만 천식을 보유하면서 겪은 과정들은 천식의 특징과는 전혀 딴판이다.


천식은 소아기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으며 유전 경향도 크다.

하지만 사내는 성인 때 걸린 것으로 보이고 가족 중에 천식 환자도 없다.


천식은 찬 바람을 쐬거나 운동을 하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내의 경우 그런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런 특징들은 모두 확률의 일환.

해당되지 않는다고 천식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성인 때 시작되고 유전이 아니며 찬 바람을 쐬고 운동을 해도 악화되지 않는 천식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흡입기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수 년 이내로 급격한 악화를 보이는 것.

이런 경우는 천식에서 거의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여긴 것은.


“천식 진단 받은 게 언제예요?”

“작년 9월, 추석 조금 지나서요.”

“그 때도 건초 일 했어요?”

“추석 때 며칠 하고, 잠깐 서울 갔다가 다시 내려와서는 본격적으로 했죠.”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 전에는 건초 일 안했어요?”

“네, 어릴 때는 안했고, 추석 때부터 아버지 일 배우려고 좀 만지작거렸어요.”

“그리고 천식은 계속 악화됐고요?”

“네.”


사내가 자꾸 뭘 그렇게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사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사내의 질환은,

hypersensitivity pneumonitis(과민성 폐렴).


천식과 마찬가지로 알레르기와 비슷한 면역작용으로 일어나는 질병이지만 기관지에 생기는 천식과 다르게 폐에 직접 발생하는 질환이다.


폐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적인 폐렴의 증상과 비슷하다.

초반에는 감기와 비슷하게 열, 오한, 근육통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가 나중에는 호흡곤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사내의 경우도 분명 처음에는 감기 기운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금처럼 호흡곤란 증상으로만 수렴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만성적인 상태에서 바라보면 호흡곤란 증상 때문에 천식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증상만 보면 다른 질병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질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병력청취 단계에서 의심하는 것이 중요한 질환.


특히 과민성 폐렴을 가장 의심해야 하는 경우는... 건초다.


과민성 폐렴을 유발하는 물질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건초에 있는 Saccharopolyspora rectivirgula라는 미생물이다.


이 미생물이 폐로 침투해서 과민 면역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폐렴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는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이 미생물에 과민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내의 아버지의 경우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아버지와 다르게 이 미생물에 알레르기 같은 과민반응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생겼을 것이다.


나는 사내에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이건 천식이 아니라 과민성 폐렴이라고, 아예 다른 질병 같거든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 어플을 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상환 건초 판매업을 하는 사람으로, 약 6개월 전 건초 가공 작업 후 발생한 dyspnea(호흡곤란), cough(기침) 증상으로 hypersensitivity pneumonitis(과민성 폐렴)으로 의심되어...’


그렇게 잠깐 메모를 작성하고 있으니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의사는 사람 질병도 잘 압니까?”


그러자 하윤이가 웃으며 말했다.


“얘 수의사 아니고 사람 의사예요.”

“예? 진짜요?”


사내가 놀란 듯 말했다.


“근데 왜 소를 주무르고 계셨대.”


사내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사내의 말을 무시하고 메모를 완성했다.


“이거 폰 카메라로 찍어가요.”

“예? 찍어서 뭐해요?”

“저어―기 좋은강산병원 같은 큰 병원 가서 보여주세요.”

“큰 병원이요?”


사내가 걱정스럽게 되물어왔다.


“뭐 위험한 병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검사는 다시 해봐야 될 거 같으니까 큰 병원 가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천식 아니라 과민성 폐렴이 맞으면 흡입기고 뭐고 아무 필요 없을 거예요. 노래도 다시 제대로 부를 수 있을 거고요.”


과민성 폐렴의 치료는 원인 물질의 회피.

건초로 인해 발생한 과민성 폐렴은 건초 작업을 피하면 과민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니 증상이 생길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는다면 생계를 위해 건초 작업을 계속 해야 할 수도 있지만...

뭐 어떤가, 요즘은 KF 마스크라고 호흡기 물질들을 잘 막아주는 보건용품들도 많이 나와 있으니 그런 용품들을 착용하면 과민반응을 크게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사내는 나의 말을 듣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내가 쓴 메모를 촬영했다.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사내가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윽고 사내는 악기를 정리해서 트럭을 몰고선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윤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소고기 고?”

“아이, 진짜!”



***



“여기 치료비예요.”


농장 주인이 하윤이에게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히히, 감사합니다~”


하윤이가 봉투를 받고선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봉투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후후후...’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료 도구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농장 밖으로 나와 하윤이.

진료 도구들을 차에 실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하윤이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은 염소 진료봤으니까 염소고기?”




하윤이가 등짝을 때렸다.

나는 맞은 부위를 매만지며 트렁크를 닫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분명 박규철 씨였다.


나와 하윤이는 이번에도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우리가 향한 그곳에는 역시나 지난번처럼 박규철 씨가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벽돌처럼 건초를 쌓아 올린 트럭 짐칸에 앉아 밀짚모자를 쓴 채 농촌을 배경 삼아 통기타를 치는 그 모습.

그 모습은 언제 봐도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나와 하윤이는 지난번처럼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역시 잘 하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역시 일반인 수준의 실력이 아니었다.


그렇게 도입부가 끝나고.

고조되어가는 노래.


이제 곧 지난번에 다 듣지 못한 1절의 클라이막스 부분이 나올 차례였다.


“그 끝이 없는 시간 속에~~~~~~ 내가 있어~”


부드럽게 넘어가는 클라이막스.


소름이 돋았다.


길게 쭉 뻗는 듯하면서도 단단한 고음.

그런 시원하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거 진짜 여기서만 듣기 아까운데. 음반 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1절이 끝나고 간주 부분을 연주하고선 이내 곡이 끝났다.


박규철 씨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리고는 우리를 보며 말했다.


“아, 의사 선생님이랑 수의사 선생님이시다.”


박규철 씨가 기타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병원에서 저 천식 아니래요. 흡입기도 빼고 그냥 마스크만 잘 쓰고 다니랬어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다행이네요. 마스크 쓰고선 좀 괜찮아졌어요?”

“네 완전요. 덕분에 노래도 엄청 잘 돼요.”


그렇게 말하며 기쁜 듯 다리를 파닥거렸다.

그때 뒤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 죄송한데요!”


남자는 셀카봉에 휴대폰을 연결한 채로 이쪽을 향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삼촌TV라고 유튜브 운영하는 사람인데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방금 연주하신 거 들었거든요!”


남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런 남자를 보며 외쳤다.


“어, 까마귀!”

“어, 의사 쌤!”


남자도 나를 보더니 아는 척을 했다.


“...까마귀?”


하윤이는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나중에 설명해주자.


“의사 쌤도 공연 보고 계셨어요? 이런 꿀잼 있으면 말씀해주셨어야죠!”


최상목 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박규철 씨를 바라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저, 혹시 가수 분이세요? 데뷔 하신 적 있으신가요? 무명가수?”

“어... 아뇨 데뷔한 적도 없고 가수도 아닌데요...”


박규철 씨는 당황한 듯 말을 흐렸다.


“어, 진짜요? 찐 일반인? 여기 마을 사람이세요?”

“어... 네... 여기 마을 사람인데요... 건초 판매업... 하고 있습니다...”


박규철 씨가 말을 더듬었다.


“저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이었는데 방금 거 다 찍었거든요! 혹시 방송 나가도 되는 거죠?”

“아 네, 뭐. 다른 사람 들으라고 밖에서 노래 부르는 건데요.”

“나중에 영상 편집본 만들 때 노래만 따로 떼서 올려도 돼요?”


그 말에 박규철 씨가 잠깐 고민하더니.


“어... 아, 예... 뭐...”


긍정...으로 보이는 표현을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노래는 처음 듣는데 자작곡인가요?”

“어... 저는 박규철이라고 하고 노래는 제가 만든 거 맞아요.”


박규철 씨의 대답을 들은 최상목 씨가 자신의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자 여러분 제가 진짜 이런 쌩깡촌 왜 다니는지 아시겠죠? 진짜 우리나라 너무 넓어서 이렇게 막... 숨겨진 보석 분들이 많다니까요?”


그러더니 휴대폰에서 짤랑거리는 효과음이 났다.


“아이고, 후원 감사합니다. 아 예, 후원금은 가수님한테 전달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짤랑거리는 효과음이 한 번 더 났다.


“아 네, 의사 선생님도 한 잔 하라고요? 네, 지금 바로 한 잔은 못하니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최상목 씨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카메라 방향을 돌려 최상목 씨와 내가 같이 나오도록 구도를 만들었다.

갑자기 한 마디 하라고 하니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 안녕하세요...”


잠시 정적.


“저희 마을 놀러오세요...”


아무 말이나 했다.

채팅창을 봤다.


[근데 방금 여자분 누구임?]

[의사쌤 오랜만이예요.]

[여자분 개예쁨 ㄷㄷ]

[놀러는 안 가고 진료 보러 갈래요.]

[여자분 의사쌤 여자친구 아님?]


여전히 착하신 시청자 분들이었다.


최상목 씨가 하하 웃으며 다시 카메라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한동안 상기된 표정으로 정신 없이 말을 쏟아내더니


“삼촌TV라고 검색해보세요! 나중에 영상 올려놓을게요. 편집 원하시면 댓글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향해 다음 촬영지로 이동하겠다고 하고는 쌩하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하윤이 그리고 박규철 씨는 잠깐 멍하니 있다 이내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 오랜만에 노래로 주목 받으니까 좀 재밌네요.”


박규철 씨가 그렇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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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3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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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무기록 +1 24.08.26 1,246 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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