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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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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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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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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시네요 (1)

DUMMY

“파스 하나 주십시오.”


진료실을 방문한 60대 남자 환자는 진료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다부진 체격의 환자.

겉보기에는 그다지 아파보이는 곳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어디가 아픈지는 제쳐두고 대뜸 파스를 달라니...

이런 경우는 보통 상비약 용도로 받으러 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진료실에서 흔하게 보는 광경이다.


“김갑환 환자분? 어떤 것 때문에 파스를 받으시려는 건가요?”

“내 무릎이 아파서 파스가 좀 필요합디다.”

“상비약 목적으로 받으러온 건 아니고요?”

“상비약이라고 하면 안 주더라고요.”


잘 알고 있네.

몇 번 시도해봤나보군.


나는 EMR(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에서 환자의 이름을 더블클릭해서 이전 의무기록을 펼쳐봤다.


약 3년 전의 기록이 떴다.



==========

C.C(주호소증상)>

arthritis(관절염)


Present Illness(환자 호소 증상)>

파스

==========



너무나도 간단하게 적힌 의무기록.

그러나 무엇을 원했던 건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3년 전에도 똑같았구만.


스크롤을 내려 3년 전보다 더 과거 기록을 보니 2주, 4주 정도 간격으로 똑같은 의무기록이 반복되고 있었다.



‘2~4주마다 파스만 받으러 보건소에 왔던 거야?’



보통 이런 경우는 환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처방받아왔고, 크게 위험한 약도 아니기 때문에 대충 똑같이 의무기록을 써넣은 뒤 파스 몇 장 쥐어주고 보내면 그만이다.


물론 상비약 목적으로 처방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면밀한 진찰이 없이는 처방을 써주는 것도 지양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파스 몇 장으로 서로 피곤해지기 싫어서 그냥 환자의 요구에 응해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피차 피곤해지는 상황은 질색이다.


하지만 이날은 무엇 때문일까, 문득 환자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차피 공중보건의라 시간도 많고.


“이전에도 파스 처방 많이 받으셨네요?”

“네, 이전에 보건소 열려있을 때 자주 와서 받아갔습죠. 몇 년 동안 닫혀있어서 못 받았는데, 이번에 다시 열려서 왔습니다.”


환자는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파스만 받으시려고요?”

“예, 사실 뭐 별로 많이 안 아프니까 파스만 주시면 됩니다.”


환자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예전에는 그냥 주시던데...”라고 중얼거렸다.


역시 이전 공보의 선생님은 그냥 달라는 대로 다 주셨구나.

하지만 나는 아니지.


나는 이어서 환자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혹시 어느쪽 무릎이 어떻게 아픈지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겠어요?”

“어... 오른쪽? 아니 양쪽 다요.”


내가 본격적으로 진료를 시작하자 환자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마 이전 공보의처럼 그냥 파스만 주고 보낼 줄 알았나보다.


“무릎 한번만 봐도 될까요?”

“어... 그러쇼.”


그렇게 말하며 환자는 양쪽 바지를 걷어 올려 무릎을 내게 보여줬다.


겉보기에 이상은 없다.


나는 이어서 환자의 무릎 옆면을 주먹으로 가볍게 통통 두드려보았다.


“어이구... 어이구...”


두드릴 때마다 표정을 찡그리는 환자.


“아프신가요?”

“좀 울리는 것 같은데요.”


흠...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아픈 건가?


연기하는 표정은 아닌데...


사실 60대면 무릎이 정상일 가능성이 더 적긴 하지.


60대 남자에서 무릎이 아픈 경우는 거의 대부분 osteoarthritis(골관절염)이다.

그냥 흔하게 관절염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사람에서 생기는 대표적인 퇴행성 질환이다.


사람은 다리를 움직이며 femur(대퇴골)와 tibia(경골)가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생기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둘이 만나는 무릎 관절에는 연골이 존재한다.

이 연골이 나이가 들어 닳거나 없어지면 완충작용이 없어져 지속적으로 무릎 관절에서 통증이 느껴지게 된다. 이것이 골관절염이다.


“혹시 아침마다 좀 뻣뻣하다거나 그런 느낌 없어요?”

“있죠. 그런 건 오래됐습디다.”

“어디가요?”

“그냥 여기저기요. 무릎도 그렇고 손가락 팔꿈치...”

“허리는요?”

“허리는 안 아픕니다.”


아픈 곳도, 증상도 전부 퇴행성 골관절염에 들어맞는다.


나는 진단명에 osteoarthritis(골관절염)을 적고 파스 처방을 냈다.


물론 골관절염으로 확진을 내리려면 엑스레이 장비로 관절 사진을 찍어야 하지만 이곳 보건지소에는 그런 간단한 장비조차 없기에 증상과 정황 증거만으로 진단하는 수밖에 없다.


“환자분 관절염 있는 거 같아서 파스 드릴 거구요.”

“아 관절염 있습니까? 하긴 내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관절염 당연히 있겠지.”

“이전에는 관절염이란 얘기 못 들었어요?”

“어... 그런 말 못 들었고 그냥 파스 주던디?”


역시 그냥 대충 달라는 대로 뿌리셨구나 이전 공보의 선생님.


“아무튼 관절염 있으니까 알고 계시구요. 파스 드릴 테니까 가져가시고. 혹시라도 더 필요한 거,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방문해주세요.”

“허허, 예~ 알겠습니다.”


환자는 그렇게 웃으며 일어나서 떠나는가 싶더니


“아, 이거 선생님도 좀 드소.”라고 말하며 들고 온 가방에서 비닐뭉치를 꺼냈다.

“이게 뭔가요?”

“감입니다. 집에 좀 남아가지고.”


환자가 꺼내준 비닐뭉치를 들여다보니 주황색의 감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허허, 이전에 계셨던 의사 선생님은 무뚝뚝하셨는데 이번에는 친절하시네. 번창하소. 진료 잘 받고 갑니다.”


환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파스를 흔들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환자분, 저는 월급쟁이라 번창하면 안 좋습니다...


환자가 나가고 나는 곧바로 접수 환자 목록을 더블클릭했다.


비어있었다.


‘그럼 바로 감이나 먹어볼까?’


진료 책상 뒤쪽에 마련된 싱크대에서 칼과 접시를 가져왔다.


사각사각


감을 깎아서 먹기 좋게 썰어 한 입 먹었다.


맛있네.


‘유한아 주무관님께도 드릴까.’


나는 문을 열고 주무관님을 불렀다.


“주무관님 감 하나 드실래요?”

“예? 허하후효?”


주무관님은 이미 입안 가득 감을 쑤셔넣은 상태였다.


“아니에요 맛있게 드십쇼.”

“예~”


나는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서 남은 감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감이 들어있던 비닐봉지를 다시 쳐다봤다.


‘저거 언제 다 먹지?’



***



“파스 하나 주십시오.”


2주일 쯤 지났을까.


이전에 파스를 받아갔던 김갑환 환자가 다시 방문했다.


“벌써 다 쓰셨습니까?”

“예, 내가 관절염이 있으니까 빨리 씁디다.”


예전에도 2주만에 받아가곤 했던 환자인데 관절염이 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이제 당당하게 진단명을 언급하며 파스를 받으러 왔다.


나는 환자의 의무기록을 열어 처방 내용을 확인했다.


‘분명 지난번에... 한 팩에 다섯 장 들어있는 파스를 세 팩 드렸지?’


보통은 두고두고 한 달은 쓸 텐데.


“매일매일 붙이시나봐요? 15장은 됐을 텐데.”

“예, 효과가 참 죽여줍디다.”


환자는 그렇게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쓰면서 불편한 부분은 없으셨나요?”

“예, 아주 좋습니다.”

“이번에도 그럼 똑같이 드릴게요. 먹는 약은 필요 없으신가요?”

“붙이는 게 시원하니 좋지. 파스만 주소.”

“예, 똑같이 드릴게요.”


골관절염의 치료는 기본적으로 진통제를 통한 대증치료다.


보통 교과서에서는 경구(먹는)약을 우선적으로 쓰라고는 하지만, 먹는 약의 경우 나이가 들 수록 부작용의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만 불편하지 않다면 먹지 않고 붙이거나 바르는 형태의 진통제를 쓰는 것이 확실히 안전한 편이다.


게다가 어르신들은 저런 시원하거나 후끈거리는 느낌을 좋아하시기도 하고.


파스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게 좀 단점이긴 하다만.


“허허, 감사합니다. 의사선생. 고생이 많소.”


환자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건네는 파스를 받아들고는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이것 좀 먹고 일하소.”


감이 가득 들어있는 비닐을 건넸다.


‘아이고 이거 또 받으면 언제 다 먹냐.’


비닐봉지를 보며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을 하던 중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환자분, 저는 공무원 신분이라... 이렇게 주시면 곤란합니다.”


내가 애둘러 거절의 의사를 밝혔지만 환자는 아랑곳 않고 비닐봉지를 책상 위에 쿵 놓고서는 말했다.


“그럼 나는 이거 그냥 여기다 버리고 갈 테니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인 걸로 합시다.”


그러고서는 허허 웃으며 상쾌한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갔다.


나는 그저 그 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언제 다 먹냐고.’


환자가 떠난 뒤 나는 조용히 진료실 문을 열어 유한아 주무관님을 봤다.


주무관님은 입안 가득 감을 쑤셔넣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위에는 감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가 올려져 있었다.


혹시 주무관님은 감을 좋아하시는 걸까?


나는 감이 든 봉지를 든 채 주무관님께 가서 말을 걸었다.


“주무관님 이것도 드실래요?”

“그것까지 어떻게 먹어요. 이것도 다 못 먹겠는데.”


주무관님은 책상 위에 놓인 감 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선생님은 거절하는 것 좀 배우셔야겠네요.”

“그러게요...”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감도 감인데, 저 환자분 파스 자꾸 받으러 오는 거, 저거 자기가 쓰는 거 아닐 거예요.”


주무관님이 무표정한 채로 컴퓨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엥, 근데 진짜 아픈 거 같긴 하던데요?”

“파스 냄새 안 났잖아요. 매일 쓴다면서.”


듣고 보니 그렇네.


순간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던 순간이 생각났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가 처방한 파스는 박하 향이 아주 강하게 나는 파스였다.


파스를 붙였다면 주변에서 파스 향이 날 수밖에 없다.

몸을 씻더라도 옷에 베여 다음 날까지 냄새가 날 정도로 향이 강한 파스.

더군다나 매일 쓴다면 냄새가 안 나기가 힘들다.


그래도 냄새가 안 난다고 거짓으로 파스를 받으러 온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도 어제만 안 붙였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항변 아닌 항변을 하자 주무관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지금까지 보건소 근무하면서 저런 사람 많이 봐요... 저렇게 자주 받으러 오면 거의 집에 쟁여놓거나, 남한테 나눠주거나, 심하면 되파는 사람도 있거든요.”

“되팔아요?”

“보건소에서 받으면 천원도 안하잖아요. 약국에서 사면 5천원이거든요. 그 사이 가격에 되파는 거죠.”


순간 아차 싶었다.


보통이라면 몇 천원 안 되는 돈 벌려고 그렇게 번거로운 일을 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생각도 안 해본 일이었다.

그저 상비약 목적으로 쓰는 양보다 많이 받아가는 줄로만 알았다.


‘보건소에서 받은 약을 되파는 경우도 있구나.’


사실이라면 당연히 불법이었다.

처방한 의사로서 그런 행위는 막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고 있자 주무관님이 말했다.


“뭐, 진상은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다음에 오면 제대로 한 번 물어봐요. 대답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며 주무관님은 다시 입안에 한가득 감을 쑤셔 넣었다.


나는 얼마간 고민한 뒤 진료시로 들어가 EMR(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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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무기록 +1 24.08.26 1,248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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