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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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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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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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시네요 (3)

DUMMY

“할머니 잠깐 손가락 좀 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의 손바닥을 쭉 펼쳐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손가락의 가장 끝쪽 관절부위가 울퉁불퉁하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만져보니 딱딱했다.



Heberden’s node(헤베르덴 결절)



골관절염이 손가락에 왔을 경우 생기는 손가락 뼈의 변형이다.


골관절염으로 연골이 닳아 없어지고, 뼈끼리 마찰이 되어 자극이 지속되면 뼈의 이상 성장이 시작돼 울퉁불퉁하게 뼈가 자라게 된다.

이렇게 생긴 결절 모양을 헤베르덴 결절이라고 부른다.

부어오르거나 물이 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뼈가 자라고 변형된 것이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염증의 조절.


염증이 심할수록 뼈의 변형이 심해지고 움직임도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염증을 줄여주는 것이 우선의 목표다.


“할머니 무릎 말고 손가락은 안 아프세요?”

“아픈데 오래 돼서 괜찮아.”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했다.


퇴행성 골관절염을 앓는 많은 사람들 중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 나이가 들어서 원래 그런가보다 하며 버티다가 고통에 익숙해져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할머니도 그런 경우였다.


다만 고통에 익숙해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관절의 변형으로 기능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에 더 심해지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무릎과 손가락을 포함한 여러 부위의 관절염.

심지어 무릎은 파스 정도로 해결도 안 되는 상태.


‘시야를 넓게 봤어야 했는데.’


내가 할머니를 처음부터 진료 봤으면 파스는 쓰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아저씨가 파스를 붙여주고 있었기에 파스라는 치료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는 파스 같은 국소 약물이 아니라 경구로 복용해서 전신에 작용하는 NSAID(소염진통제)를 써야 한다.


“할머니 먹는 약으로 드릴게요. 파스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요.”

“먹는 약? 주면 고맙지. 근데 내가 약 타러 가지를 못해.”

“제가 여기로 가져올게요.”


일반적으로는 신고된 의료기관 외부에서 약을 전달하거나 하는 등의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


그러나 보건소 같은 특수한 의료시설의 경우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환자의 거주지로 직접 방문하여 진료를 봐주는 제도를 시험적으로 시행하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보건지소도 방문진료 사업을 시행하는 곳 중 하나다.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왜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써먹네.’


나는 곧장 휴대폰을 열어 메모 어플을 열었다.


“할머니 성함이랑 주민번호 말씀해주시면 제가 처방해드릴게요.”


할머니가 인적사항을 말하자 나는 휴대폰에 임시로 의무기록을 적었다.



==========

82/F 이말자


C.C(주호소 증상) >


pain, both knee, finger(통증, 양측 무릎과 손가락)


PI(환자 호소) >


젊었을 때부터 지속되어 온 관절통

Td(압통 존재)

no redness(붉은 발적 없음)

no swelling(부종 없음)

limitation of motion of fingers(손가락 관절 움직임의 제한)

Heberden's node(헤베르덴 결절)


Plan(향후 계획) >


PO naproxen bid(경구 소염진통제 1일 2회 복용)

==========



제대로 된 양식의 의무기록은 아니지만 까먹으면 안 될 필요한 내용들은 선별해서 적었다.


‘어차피 컴퓨터로 의무기록을 적으며 다시 정리해야 되니까.’


나는 그렇게 의무기록을 다 작성하고 잠깐 마루에 걸터앉았다.


끄덕이가 빈 밥그릇의 바닥을 끊임없이 핥고 있었다.


설거지 하냐...



***



다음 날.


나는 보건지소에서 어제 방문진료를 봤던 이말자 할머니의 의무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수 년 전에 감기약을 받아간 게 전부였다.


‘역시 기록이 거의 없네.’


의무기록에는 그 흔한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같은 질환의 내역도 없었다.


나이가 들면 어딘가 한 군데는 고장나기 마련.

아무런 질병이 없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무런 질병이 없다면 대부분 질병이 있는데도 검사를 안해서 진단이 안 된 것일뿐, 사실 질병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할머니처럼 거동이 불편하시다면 병원에서 건강검진 한 번 받기 힘들 테니.



물론 나이가 들어 생기는 질환은 아무래도 생활습관에 따라 유병률이 달라지는 질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은 정말 아무런 질병이 없기도 하다.

근데 그것도 검사를 해서 없다고 판정이 나야 건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검사를 안했다면 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병원으로 모셔와 이것저것 검사 좀 해드려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할머니의 의무기록에 처방 내용을 입력했다.


그리고는 처방에 입력한 개수만큼의 약들을 빈 약통에 담았다.


‘약통이 새하얀 색이라 헷갈릴 수도 있겠다.’


나는 약통에 유성펜으로 커다랗게 ‘관절약. 아침, 저녁 한 알 씩’이라고 적었다.


음... 악필이다.


알아볼 수 있겠지?


나는 포장을 끝낸 약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오늘 퇴근하면서 전해드리고 가야겠다.’


진료실을 둘러봤다.


어제 되돌려 받은 감이 있었다.


‘오늘치 분량을 해치워볼까.’


진료실 구석 싱크대에서 칼과 접시를 가져왔다.


사각사각


나는 지난번처럼 감을 먹기 좋은 형태로 깎아 한 입 먹었다.


‘맛은 있네.’


매일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감을 먹으며 접수 목록을 새로고침 해봤다.


접수 환자 0명

예약 환자 0명


역시 한산하구만.


‘잠깐 밖에서 스트레칭이나 하고 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진료실을 나가 보건진료소 앞마당으로 나갔다.


따뜻한 봄 날씨였다.


바람에 흙냄새가 묻어나왔다.


들리는 소리는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 뿐.


그야말로 시골 깡촌이구만.


나는 그렇게 멍하니 논밭을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간 있으니


“멍.”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시골 개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끄덕끄덕


“끄덕이구나.”


그러고 보니 얘 이름이 뭔지 안 물어봤네.


그냥 너 계속 끄덕이 해라.


나는 무릎을 굽혀 끄덕이를 쓰다듬었다.


끄덕끄덕


끄덕이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니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일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 진료실로 뛰어 들어가 감을 가져왔다.


깎아둔 감을 끄덕이 앞에 내려놨다.


그러자 끄덕이는 몇 번 쩝쩝거리더니 순식간에 감 하나를 해치웠다.


‘오케이 하나 처리.’


나는 가방 안에 든 감을 세어봤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안에 끝장을 보겠군.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무턱대고 감 뭉치를 통째로 물고 가져간 끄덕이.


‘그렇게 자기 집까지 가져갔지.’


끄덕이는 헥헥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료실에서 봉지 하나를 가져왔다.


할머니에게 드릴 약을 봉지에 넣고 감도 한 알 챙겨 넣었다.


‘아니다 다섯 알 가져가라.’


비닐봉지에 다섯 알의 감을 넣고 끄덕이 앞에서 흔들었다.




끄덕이가 내 손에서 봉지를 낙아채더니 도도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다.

이번에는 쫓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잘 부탁해요 택배기사님.”


그렇게 멀어지는 끄덕이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가방을 보니 감이 몇 알 남지 않았다.


흐흐흐


‘순식간에 여섯 개를 해치워버리다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남은 감 개수를 세고 있는데


“앗, 선생님 감 벌써 다 드셨소?”


어느 틈에 김갑환 아저씨가 옆에 와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하... 산책이라도 하십니까?”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그... 다름이 아니라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솔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예요. 그래도 좋은 취지로 하신 일이니까요.”


나는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내가 할머니와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된 건, 어떻게 보면 아저씨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말자 할머니는 제가 어제 그 자리에서 진료 봐드렸어요. 관절염이 심하시더라고요. 먹는 약도 드리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역시 전문가가 봐주는 거는 다르네요. 선생님이 이 마을에 오셔서 참 다행입니다.”


아저씨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파스 붙여주던 사람은 이말자 할머니 한 사람은 아니죠?”


나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분명 아저씨가 돌보던 사람은 이말자 할머니 한 사람이 아닌 눈치였다.


“예... 안 그래도 내가 그거 때문에 왔습디다.”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를 꺼냈다.


“여기 거동 불편하신 노인네 분들입니다.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이 봐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나는 아저씨에게서 쪽지를 건네받았다.


쪽지에는 대략 열 명 정도 되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병명 또는 증상이 적혀 있었다.


‘거동 문제로 제대로 진료를 못 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애초에 내가 오기 전 몇 년 간 보건지소에서 진료를 볼 수 없었다.


하루에 환자 다섯 명 올까말까 한 이런 곳에 의사를 데려다놓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

의료는 효율의 문제를 항상 생각할 수밖에 없다.

몇 명 안 되는 환자 돌보라고 깡촌에 의사 한 명 박아 넣는 것보다 응급실에 세워놓고 하루에 수십 명 보게 하는 게 국가적으로 이득이니까.


그래도 그런 효율성 때문에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생기기도 한다.


지금처럼.


‘그래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오늘 당장 방문진료 사업 계획서에 반영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쪽지를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하하, 이건 선물입니다.”


물건은 비닐봉지에 든 수 많은 감이었다.


하...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 것도 있고,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도 있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헤헤.”

“아니, 아저씨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공무원이라...”

“뭐, 진료비라고 생각하십쇼. 공무원이라도 진료비는 받고 진료 보지 않습니까?”


지난 번과 똑같은 핑계를 대려고 했으나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다른 핑계를 생각해둘걸 그랬나.


아저씨는 내 가방 속에 든 몇 안 남은 감을 한 번 슥 보더니


“선생님이 감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으면 더 가져오는 거였는데... 다음 번엔 더 많이 가져오겠습니다.”


경악스러운 말을 남기고서는 쌩하니 사라져버렸다.


나는 손에 들려진 비닐봉지를 바라보았다.


덩그러니 남겨진 감 덩어리.


음...


잠깐 생각하던 나는 곧장 보건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


유한아 주무관님이 보였다.


나는 감이 든 비닐봉지를 유한아 주무관님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러자 유한아 주무관님이 먼저 반응했다.


“으엑, 싫어요.”


주무관님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짬처리 실패.


나는 그대로 터벅터벅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책상에 감 덩어리를 내려놓았다.


멍하니 바라봤다.


“하...”


한숨이 나왔다.


“언제 다 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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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3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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