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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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작품등록일 :
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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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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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DUMMY

빙글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천장을 바라보며 의자를 한 바퀴 돌렸다.


빙글빙글


다시 의자를 몇 번 돌리기를 반복.


빙글빙글빙글


‘아 어지러...’


나는 이제 반대 방향으로 의자를 돌렸다.


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빙글


‘이제 안 어지럽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의자를 돌리려는 찰나.


띠링


문자메세지가 왔다.

휴대폰을 열어봤다.

문자가 아니라 입금 안내 알림이었다.


[FBS입금 월급여]


나는 휴대폰을 다시 덮었다.

그리고 의자를 한 바퀴 돌렸다.


‘개꿀...’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 위에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환자가 거의 오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 보건지소.

그곳에서 나는 의자를 돌리면서 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 어지러...’


나는 다시 반대 방향으로 의자를 돌렸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돈을 받아도 딱히 쓸 곳이 없잖아?’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했던가.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겪으며 많지 않은 돈이지만 꾸준한 급여를 받아왔다.

그러나 수련 받을 땐 심하면 일주일에 병원 밖을 한 번밖에 못 나갔을 정도로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월급을 받아도 그것으로 무언가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다.


그 상태로 몇 년이 지나 지금의 상황.

이제 와서 돈을 받은들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도 재밌게 돈 좀 써보고 싶어...’


내 인생에서 모처럼 시간이 넘쳐흐르는 시기가 왔는데 즐기지 못하면 손해인 것 같았다.


빙글


의자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그래, 오늘 하루만 부자가 되어보자... 근데 부자들은 어떻게 사는 거지?’


나는 곰곰이 부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TV 드라마 속의 부자 캐릭터들을 떠올려봤다.


야경이 비쳐 보이는 커다란 유리 창문으로 된 집에서 얼음 띄운 양주를 한 모금 하면서 야경을 바라보고... 다음 날 아침엔 가족끼리 모여서 회장이신 아버지와 경영에 대해 토의하고...


‘음... 부자이기 이전에 재벌2세여야 가능한 거 아닌가?’


나는 다시 다른 캐릭터들을 떠올려봤다.


빙글


의자를 다시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렇게 얼마간 생각하고는 나는 곧바로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검색.

나는 몇 개의 홈페이지를 둘러본 후,


“이거다!”


손벽을 짝 치며 말했다.


“으엑!”


진료실 밖에서 주무관님이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찌릿


주무관님은 나를 노려보더니 다시 엎드려서 주무시기 시작했다.

나는 꾸벅 죄송하다는 표시를 하고는 인터넷 창을 다시 바라봤다.



***



다음 날.

토요일 오전.


나는 정갈하게 머리를 묶은 여성분 앞에 앉아있었다.

여성분은 나에게 우아하게 팜플렛 책자를 건네줬다.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목록들입니다. 천천히 골라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팜플렛을 천천히 살펴봤다.



뽀르쉐 199

뽀르쉐 949

람보루기니 머라시엘고

람보루기니 아라칸

뻬라리 248

뻬라리 448

...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팜플렛을 여성분에게 밀고선 양손으로 손깍지를 낀 채 말했다.


“빨간색 스포츠카, 뚜껑열리는 걸로...”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성분께서는 빙긋 웃으시며 말했다.


“아하, 그거라면 여기 이 차가 좋을 것 같네요. 가격은...”


여성분이 가격표가 적힌 페이지를 보여주셨다.


‘스포츠카는 대여만 해도 이렇게 비쌌어?’


나는 가격표를 찬찬히 훑어봤다.

어차피 오늘 하루만 빌릴 생각이었지만 궁금해서 일주일 대여 가격도 슬쩍 봤다.

일주일만 빌려도 한 달 월급이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루만... 대여 부탁드립니다.”



***



부우웅


빨간색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가 해운대 해수욕장 옆을 지나갔다.

나는 준비해온 선글라스를 낀 채 왼팔을 자동차 문 위에 걸친 채로 오른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었다.


‘크으~ 이게 부자의 모습이지~’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신기한 듯 스포츠카를 쳐다봤다.

내 주변의 자동차들은 혹시라도 스포츠카에 부딪힐까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고 있었다.


해수욕장을 바라봤다.

백사장 위로 부부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고 있었다.

다들 행복해보였다.

마치 이 세상에 아무런 갈등도 문제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가속 페달을 슬며시 밟았다.

뚜껑이 열려있는 터라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한동안 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빵!


뒤에서 경적을 울려왔다.


‘아닛? 누가 감히 스포츠카에 경적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초록불이었다.


나는 뒤를 향해 꾸벅 죄송하다는 표시를 보내고는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 드라이브를 한 후.


‘근데 이제 뭐하지?’


하고 싶은 일이 바닥나버린 나는 도로 한 켠에 차를 주차해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 부자 캐릭터들을 떠올렸다.


‘음... 부자들은 빨간색 뚜껑열리는 스포츠카를 타고 선글라스 낀 채로... 옆에는 여자친구가 있었나? 근데 여자친구는 없으니 생략... 아니 여자인 친구로도 가능한가?’


나는 상상속의 부자 캐릭터를 완성해보기로 했다.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통화를 걸었다.


“어, 깡태! 무슨 일이야?”


하윤이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너 점심 먹었어?”

“방금 먹었지~ 왜? 같이 먹으려고 했어? 나 토요일은 원래 일하는 날인데...”


“지금 병원이야? 너 동물병원 위치가 어디랬지?”

“응? 오게? 문자로 위치 보내줄게.”


“오케이. 점심시간 몇 시까지야?”

“한 시~”

“지금 갈게.”

“그래 심심한가보네~ 도착하면 전화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뒤 문자로 동물병원의 위치가 도착했다.


나는 곧바로 스포츠카를 출발시켰다.


‘근데 이거 다른 사람들은 부아아앙 소리 내면서 가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나는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소리가 날 것 같아 깊게 페달을 밟아봤다.


차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무서워서 바로 속도를 줄였다.



***



뚜루루


송신음이 몇 초간 이어지더니


“왔어?”


하윤이가 전화를 받았다.


“야! 병원 밖에 나와봐!”


나는 그렇게 말하곤 바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병원 밖으로 하윤이가 나왔다.


빠앙


나는 경적을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김하윤.

이쪽을 빤히 보더니 피식 웃었다.


“야 이거 뭐야?”

“오빠 차 뽑았다.”

“뭐래, 공보의 월급으로는 기름값도 못 내면서.”


하윤이는 내 사정을 너무 잘 알았다.


“쯧, 일단 타! 한 시까지 돌아다니자.”


나는 하윤이에게 손짓했다.

하윤이가 킥킥거리며 조수석에 탑승했다.

병원 쪽을 바라보니 직원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훗, 다들 스포츠카가 신기하신가보네.’


부우웅


나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는 바다가 보이는 근처 국도를 달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그 바다 전체가 햇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바다냄새가 강하게 풍겨왔다.


“으음~ 좋다~”


하윤이가 바다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김하윤.

잠시 후 하윤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갑자기 왜 이런 스포츠카를 빌리셨을까?”

“어제 월급 받았거든.”

“그래서 오늘 하루 플렉스? 하루만 빌린 거 맞지?”

“응, 공보의 월급으론 하루밖에 못 빌리겠더라.”


나와 하윤이가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그래서, 타보니까 어때?”

“좋긴 하네.”

“한 대 사줄까?”

“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아니, 이거 뽀르쉐 아니야? 나 일 년 정도만 모으면 살 텐데?”


하윤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얘 돈 엄청 벌지...’


순간 하윤이라면 실제로 사버릴 것 같아 나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야 그렇게 아무나한테 돈 뿌리는 거 아니다, 너.”


하윤이는 그 말을 듣고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아무나한테냐...”


그대로 하윤이는 바다를 바라보며있었다.


몇 분간의 정적 후.

하윤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레지던트 중간에 그만뒀댔잖아... 왜 그만둔 거야?”


하윤이의 입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주제가 나왔다.


“추궁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내가 지금까지 본 너는 그냥 하기 싫다고 중간에 그만둘 애가 아니거든.”


하윤이가 시선을 바다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잠깐 고민했다.


지금까지 웬만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송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말했다.

그냥 힘들어서 때려쳤다... 정도로만 말했던 것이다.

그야, 의료소송이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결과는커녕 첫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왠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소송에 대한 것들은 숨겨왔다.

하윤이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차만 운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윤이는,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뭐,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분명 그게 정답이었을 거야.”


그렇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하윤이를 쳐다봤다.

의심의 눈초리라곤 하나도 없는, 그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는 눈.

하윤이의 그런 눈을 보니 왠지 용기가 났다.


하윤이만큼은 나를 손가락질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모든 것들을 말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아성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것들을 하윤이에게 모두 털어놨다.

소송의 내용까지 모두 포함해서.


그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하윤이.

하윤이는 내 말이 끝나자 나지막히 말했다.


“고생했겠다.”

“...”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한 시간 가까이 심장압박을 하던 순간에도, 땀에 젖은 채 사망선고를 하던 순간에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아무도 나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의사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

다들 그렇게만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제서야 듣네.’


나는 피식 웃었다.

순식간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지만 그 때의 보답만큼은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았다.


부아아아앙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야야야야야야! 멈춰! 멈추라고!”


하윤이가 겁에 질린 채 내 어깨를 탁탁 쳤다.


“뽀르쉐 절대 안 사줄 거야아아!”


하윤이의 외침이 도로 위에 울렸다.



***



털털털


스포츠카를 반납한 후 나는 원래의 고물차를 끌고 집에 돌아왔다.

마당에 주차한 후 집으로 들어가려니


“월!”


사월이가 우리집 마당에 있었다.


“사월이 너는 니네 집에 안 가고 왜 여깄냐?”

“월!”


‘월’이라는 말에 반응해서 무의미한 대답을 하는 사월이.

나는 피식 웃으며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이웃집에 놀러가셨는지 안 계셨다.


‘배고프네...’


나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부여잡으며 찬장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꺼낸 것은 라면.

라면 끓이기만큼은 자신 있었던 나는 재빠르게 한 그릇 끓여내었다.


그렇게 식탁으로 이동해서 라면을 한 젓가락 하려는 순간.


“월!”


마당에서 사월이가 내 모습을 보며 마루를 벅벅 긁었다.


“야 너 줄 거 없어!”


그렇게 말했지만 사월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뭐 줄 거 있나?’


나는 식탁 위를 뒤적거렸다.

육포가 있었다.


나는 사월이의 눈앞에 육포를 흔들었다.

사월이가 육포를 보더니 혀를 내밀고 헥헥거렸다.


“야, 앉아! 앉아봐!”


사월이는 계속 헥헥거리기만 했다.


“그래, 그럼 이거 주면 앉아야 된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육포를 던졌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육포를 보기 좋게 받아먹은 사월이.

나는 대가를 요구했다.


“야, 이제 앉아!”


사월이는 육포를 꿀꺽 삼키고는 입맛을 다시더니


“월!”


한 번 짓고선 이내 유유히 마당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선 피식 웃었다.


“바보 같은 똥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있는데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저 내일은 대철면 보건지소가 출근지입니다. 미리 연락드려요.“


보건소 관리직이신 이영화 주무관님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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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안 보이는 것 (3) +2 24.09.07 816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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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주 오시네요 (2) +2 24.09.03 960 27 11쪽
9 자주 오시네요 (1) +1 24.09.02 1,024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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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담배 끊으세요 (2) +1 24.08.31 1,092 25 11쪽
6 담배 끊으세요 (1) +1 24.08.30 1,216 37 12쪽
5 오랜만이야 (2) +1 24.08.29 1,229 37 12쪽
4 오랜만이야 (1) +3 24.08.28 1,309 37 12쪽
3 보건지소 +2 24.08.27 1,348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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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향 +3 24.08.26 1,606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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