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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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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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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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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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것 (3)

DUMMY

‘끄응...’


풀이 우거진 산 한복판에서 윤성덕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정신을 잠깐 잃었던 탓인지 머리가 멍했다.

시야에는 나뭇가지와 그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휘잉


순간 살짝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봄바람이 불어왔다.

그 한기에 멍하던 정신이 일순간에 깨어났다.


넋이 나가 있던 시야가 명확해졌고 정망스러운 현실이 윤성덕의 눈 앞에 펼쳐졌다.


손은 여기저기 상처 입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다리 맡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높이를 가늠하기도 힘든 바위가 우뚝 솟아있었다.

그리고 그 바위의 아래쪽에 듬성듬성 등산스틱 따위의 등산용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하나의 사실들을 종합해보고 있는데 순간 미간 사이로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닦아보고 확인한 그것이 피라는 것을 안 순간 윤성덕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실감했다.


‘떨어졌구나.’


머리가 완전히 깨어난 윤성덕은 한순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윤성덕이 금문산으로 떠난 것은 그날 이른 아침.

오랜만의 산행이었지만 윤성덕은 가족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문득 산으로 향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곳 금문산은 사람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다.

높이가 높은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 그저 그런 뒷산.

그러나 그만큼 길이 닦이지 않은 이곳은 소수의 등산 매니아들만 오는 곳이었다.


그런 금문산에 30여년 만에 찾아온 윤성덕이 본 것은, 옛날이었으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의 많은 등산객.


게다가 캠핑용품인지 커다란 배낭을 메고 투닥거리며 산을 오르는 젊은 커플들까지 보고 있자니 이곳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쓸쓸한 마음도 스쳐지나갔다.


어찌됐든 아침 일찍 출발한 윤성덕은 순조롭게 금문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이 닦여서 예전보다 오르기 편했던 것일까, 윤성덕은 순식간에 절반을 오를 수가 있었다.


‘나도 아직 안 죽었네...’


그렇게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산행을 계속했다.

오늘따라 유독 컨디션도 좋았다.


그러나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50세가 넘은 윤성덕에게 30여년 전과 똑같은 30kg의 배낭은 이전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 체중을 잘못 실은 순간 윤성덕은 배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지금과 같은 상황.


윤성덕은 어느 정도의 경과를 떠올린 뒤 신체를 살펴봤다.


손을 움직여봤다.


뻣뻣했지만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다리를 구부려봤다.


‘으윽...’


처음 겪어보는 격통이 엄습해왔다.


겨우 고개만 들어 다리를 바라보니 오른쪽 허벅지가 퉁퉁 부어 있었고, 정강이부터는 정상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굽어있었다.


‘부러진 건가...’


윤성덕은 다시 고개를 털썩 떨구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숨이 나왔다.


‘역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순간 배낭 안에 든 휴대폰이 생각났다.


배낭을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살아서 뭐하려고?’


머리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그대로 몸이 굳었다.


‘하하... 맞는 말이야...’


윤성덕은 배낭을 향해 뻗은 손을 다시 되돌렸다.




20대의 윤성덕은 등산을 좋아했었다.


특히 고향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곳 금문산은 적절한 난이도 탓에 자주 오르곤 하던 곳이었다.

그만큼 등산은, 금문산은, 윤성덕에게 활기를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월급을 받는 입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산 근처에도 갈 일이 없어졌다.

등산의 여유는커녕 매일매일 화물차 운전을 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그렇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가정이 생긴 윤성덕은 더욱 일에 매진했다.

가족들 얼굴을 보는 날보다 화물차 안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았다.


솔직히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했다.

윤성덕은 가족들을 위해서, 라는 변명으로 가족들에게서 더 멀어졌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삶의 연속.


그렇게 쫓기고 나서 돌아보니 어느덧 지천명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받은 것은 아내로부터 건네 받은 이혼서류.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래도 실제로 이런 결과를 보고 나니 나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나왔다.


우스꽝스러운 마음은 이내 비참한 마음으로 변했고, 윤성덕은 그렇게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이곳 금문산을 찾은 것이다.




휘잉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유독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몸의 떨림은 없었다.

왠지 졸리기까지 했다.


‘이럴 운명이었던 거겠지...’


회색빛이었던 인생의 마지막이 그토록 좋아했던 금문산이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윤성덕이었다.


여기는 정상적인 등산 코스가 아닌 곳.

예전부터 금문산을 찾았던 근처 고향 사람이 아니라면 있는지도 모르는 길이다.


이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을 리가 만무했다.


윤성덕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부스럭

부스럭


나뭇가지를 헤집는 소리가 들렸다.


‘죽기 전에 들린다던 환청인가.’


윤성덕은 그렇게 생각하며 옛날 일을 떠올렸다.


20대 때, 딱 한 번 이곳 바위절벽 아래에 내려와본 적이 있다.

젊을 때였어도 무척이나 가팔랐기에 내려오는 데 고생했었지.

하마터면 넘어질 뻔 해서 소리를 질렀다.


“우아아아악!”


내가 냈던 소리도 저런 소리였다.


‘마지막으로 들리는 환청은 어릴 적 추억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윤성덕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의 머리맡에서는 또렷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




아주머니를 따라 달려간 곳은 매우 가파른 경사길이었다.


딱 봐도 정상적인 등산로처럼 보이지 않는 곳.


그곳에서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어~기 밑에 등산용품들 보이지?”


바위로 된 경사 아래를 바라보니 등산스틱을 비롯한 등산용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사람처럼 보이는 게 있는데.”

“저 사람 죽은 거 아녀?”

“내가 들을 때 분명 끅끅 하는 소리가 들렸다니께.”


아주머니 말에 따라 가파른 경사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바라보니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었다.


정말 추락한 것이 맞다면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주머니, 119 신고는 했어요?”


한 아주머니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이고 맞다, 의사 선생님 부르러 간다고 119는 생각 못했디야.”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들어 전화하는 아주머니.


나는 주변을 살폈다.


‘분명 저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거야.’


저 멀리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 순간


“아이고 위험혀.”


한 아주머니의 말이 들려 뒤를 돌아봤다.


하윤이가 경사길의 나뭇가지들을 옆으로 제끼며 다리 한 쪽을 내밀더니


툭툭


몇 번 짚고는 한 걸음씩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 위험하니까 조금 돌아가자. 너도 떨어져.”

“저 사람 위급할 수도 있잖아. 이 정도는 내려갈 수... 있다고!”


하윤이가 돌부리를 짚으며 한 걸음 더 내려갔다.


그 순간


“우아아아악!”


하윤이가 그대로 경사 아래로 쭉 미끄러졌다.


아래를 봤다.

구르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야! 괜찮아?”


내가 소리쳤다.


하윤이는 양 손으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보냈다.


‘저 바보 같은 게...’


나는 하윤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아까 전 발견한 완만한 내리막길로 달려갔다.




내려간 곳에서 발견한 것은 반듯하게 누워있는 50대 정도의 남성.

그러나 반듯한 자세와는 다르게 몸 곳곳에는 여기저기 피투성이였다.


“태호야, 아직 의식은 있고 호흡은 정상인데 맥박이 약해.”


먼저 상태를 봤던 하윤이가 중요한 정보들을 말해줬다.


응급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ABC.


A(airway, 기도)

B(breathing, 호흡)

C(circulation, 순환)


세 가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응급처치 중 하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간혹 눈에 펜라이트를 비춰보며 동공반사를 먼저 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뇌손상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

ABC보다 후순위의 일이다.


나는 하윤이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환자의 상태를 평가했다.


경동맥을 촉지해봤다.

약하고 빠르게 뛰었다.


‘hypovolemic shock(저혈량성 쇼크)!’


출혈에 의해 저혈압이 유발되고, 그로 인해 목숨이 위험해지는 상태이다.

출혈을 멈추지 않으면 점점 저혈압이 심해지고, 결국엔 죽을 수도 있다.

어쩌면 119가 도착하기 전에 사망할 수도 있는 상황.


‘출혈점을 찾아야 해!’


나는 일단 최대한 남자의 옷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으윽... 아픕니다... 아파요...”


남자가 고통에 신음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지금 아픈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의사예요?”


남자가 나를 보며 물었다.


“네.”

“하핫... 이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상태를 확인했다.


머리부터 살펴봤다.

두피가 찢어져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대량의 출혈은 보이지 않았다.


몸통과 팔, 손을 확인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피가 난 부분은 있었지만 출혈이 심하지 않았다.


골반부를 확인했으나 역시나 이상이 있어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보니 왼쪽 다리는 비교적 멀쩡했고 오른쪽 다리는 정강이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일단 fracture(골절)는 있는 것 같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양쪽 다리를 앞뒤로 쓸어보며 출혈을 확인했다.


“으윽...”


환자가 다시 한 번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양쪽 다리를 모두 확인한 뒤 멈칫했다.


‘출혈이... 없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쓸면서 구석구석 확인해봤다.

분명 대량 출혈이 있다면 손에 흥건히 피가 묻어나올 터.

그러나 내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바닥을 살펴봐도 피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hypovolemic shock(저혈량성 쇼크)가 생길 정도면 피웅덩이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ABC에서 A, B는 정상... C가 문제야.

순환에 문제가 생기는 건 심장의 문제 혹은 혈액의 문제...


혹시 neurogenic shock(신경성 쇼크)인가?


neurogenic shock(신경성 쇼크)는 척수에 문제가 생김으로 인해 자율신경이 마비되어 생기는 저혈압 증상이다.

외상으로 인해 척추가 손상되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외상 후 저혈압에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응급상태다.


하지만 신경성 쇼크는 저혈압과 함께 맥박이 느려지는 것이 특징.

분명 경동맥을 촉지했을 때 맥박은 빨랐다.


‘대체 뭐야?’


혼란스러웠다.


남자가 눈을 감으려고 했다.

의식 상태가 drowsy(기면) 상태로 빠지고 있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나는 다리를 달달 떨었다.


하윤이는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정강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정강이가 반대로 꺾여있었다.


‘골절...’


순간.


‘아...’


나는 남자의 오른쪽 dorsalis pedis artery(발등동맥)를 촉지해봤다.

그리고는 내가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안에 있는 물건을 뒤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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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4 36 12쪽
3 보건지소 +1 24.08.27 1,208 37 12쪽
2 의무기록 +1 24.08.26 1,250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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