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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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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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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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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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시네요 (2)

DUMMY

“흠...”


나는 김갑환 환자의 의무기록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쳐다보고 있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

단지 다음 번에 만났을 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관절염이 아무리 심해도 매일매일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잘 없다.

심지어 크게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경증의 관절염 환자다.

지금 생각해보면 2주마다 파스를 받으러 오는 건 확실히 수상했다.


‘그냥 대놓고 물어볼까? 아니, 그러면 제대로 대답하겠냐고.’


이런 경우는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

아직 인생 경험이 많지 않아 마땅한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중 시계를 봤다.


6시 10분.


유한아 주무관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여기서 하루종일 고민해봐야 무슨 답이 나오겠냐.’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퇴근 준비를 하고 보건지소를 나왔다.


‘오늘은 머리도 복잡한데 걸어서 퇴근을 해볼까’


나는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날씨도 포근해서 기분이 좋았다.


주변에 보이는 모습은 전부 논과 밭, 나무와 풀이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


어릴 때는 자주 봤지만 대학 진학으로 대도시로 간 뒤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대도시의 모습은 10년이면 금방 바뀌었을 테지만 이런 시골의 모습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걸었을까.


“멍”


뒤에서 소리가 들려서 쳐다봤더니 개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사월이...? 는 아닌 것 같고... 누가 풀어놓고 키우는 개구나. 시골 개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구분이 잘 안 간단 말이지.’


나를 따라오던 개는 내가 쳐다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그래 네 이름은 끄덕이다.


풀어서 키우는 개들은 보통 이런 식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다.


주인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 없다.

어쩌면 주인도 딱히 이름을 안 지어줬을 수도 있고.


“끄덕아 무슨 볼일이야?”


내가 무릎을 꿇어서 끄덕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끄덕이는 내 등 뒤로 돌아가 가방 쪽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순간 마약 탐지견이 떠올랐다.

내 가방에 마약은 없지만.


끄덕이는 그렇게 얼마간 냄새를 맡더니 가방의 왼쪽 측면을 발로 몇 번 긁더니



끄덕끄덕

끄덕끄덕



고개를 계속 끄덕였다.


‘무슨 뜻이지?’


이럴 때 하윤이가 있었다면 통역을 해줬을 텐데.


나는 잠깐 고민한 뒤 나름대로 해답을 도출해냈다.


‘가진 거 꺼내서 내려놓으란 뜻인가?’


끄덕아 너도 꽤 날강도 같은 놈이구나.


나는 가방을 꺼내 끄덕이가 긁었던 쪽에 있던 물건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그제서야 끄덕이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게 필요했던 거야?”


나는 가방에서 감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꺼내서 끄덕이에게 보여주었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내려놓으라는 뜻이겠지.’


나는 비닐에서 감을 꺼내서 끄덕이에게 건넸다.


그 순간




끄덕이가 비닐봉지 통째로 물고 쫄래쫄래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끄덕이를 따라갔다.


‘아니 저걸 통째로 가져가? 골때리는 강아지구만.’


끄덕이는 가벼운 산보 수준의 속도로 감이 든 봉지를 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전력질주로 따라잡으면 분명 붙잡아서 감을 되찾을 수도 있는 속도다.

감을 강탈해서 독차지 할 생각이었으면 그대로 내달렸을 텐데 그건 아닌가보다.


‘그냥 자기가 익숙한 장소에 가서 천천히 먹을 생각인가. 악의가 있어보이진 않네.’


나는 시간도 많은지라 산책 겸 끄덕이를 천천히 따라가보기로 했다.


얼마간 갔을까.


끄덕이는 시골길을 요리조리 주파한 끝에 한 가정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런 끄덕이를 따라가다 대문 앞에서 멈춰섰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 집에 멋대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문을 똑똑 두드리고선 반응을 살피기로 했다.


잠깐 시간이 흐르자 예~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


나는 그 대답에 응해 집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거기에는 집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사람과... 김갑환 씨가 있었다.

마룻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아있는 할머니와 손에 파스를 들고 있는 김갑환 씨.

아저씨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의사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하하, 감을 빼앗겨서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끄덕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김갑환 씨도 끄덕이를 한 번 보더니, 끄덕이가 물고 있는 감 덩어리를 대번에 낙아채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이고, 이놈이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또 버릇없게 선생님 걸 뺏어 갔나보네요.”


아저씨의 반응을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가보다.


“그것보다, 저 분은 어머니신가요?”

“아뇨, 그냥 이웃사람입니다만...”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환자분 손에 들고 계신 건 오늘 받아 가신 파스고요?”

“허허, 여기 이말자 할머니가 무릎이 아프다고 해서, 내가 와서 파스 좀 붙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별로 숨길 거리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이전에 받았던 파스들도 이렇게 다른 분들께 붙여주고 다니셨나요?”


내가 심각해 보이는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가자 김갑환 씨는 그제서야 내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예, 뭐... 자주 그러는 건 아니고, 가끔... 여기 동네가 워낙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다 보니까요.”


보아하니 자주 그러는 것 같다.


시골 의료란 대개 카더라 식의 구전의학과 좋은 것 나눠 쓰기 문화가 들어가곤 한다.

대개는 어떤 병원이 용하더라 수준의 카더라지만 심하면 어떤 병이라더라 하면서 진단까지 척척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약도 누군가가 받아온 것들을 이리저리 나눠쓰는 경우가 많다.

감기약과 진통제가 대표적인데, 누구 한 명이 받아오면 마을 사람 전체가 나눠 쓰기도 한다.


열악한 시골 의료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당연하게도 불법의 여지가 있는 행동들이다.

그래도 보통은 남은 약들을 돌려쓰거나 하는 식이어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정도가 끝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2주마다 똑같은 약을 처방 받아간 뒤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즉, 처음부터 파스를 처방받은 목적이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요, 파스는 그냥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고 의약품이에요. 이렇게 마음대로 나눠주시는 거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요.”

“예, 예... 맞습니다. 선생님 말이 다 맞아요. 근데 다들 거동이 불편하니까 보건소까지 가기가 쉽지 않습디다...”


아저씨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러면 그렇게 사정을 말하셨어야죠. 말도 안하고 그렇게 받아 가서 맘대로 나눠주시면 어떡해요? 파스 정도는 큰 부작용이 안 생기긴 하지만 가끔 알러지가 생긴다거나, 파스를 붙이면 안 되는 상황이라던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이어지는 내 잔소리에 아저씨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 건 확실히 말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커질 수도 있어.’


파스를 처방한 의사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 나는 그렇게 한동안 잔소리를 이어갔다.


그러자 보다 못한 할머니가 끼어 들어서 말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너무 뭐라 하지 마시오.”


할머니는 에구구 하며 곡소리를 내며 일어나더니 절뚝거리며 나와 아저씨를 향해 걸어왔다.


“보다시피 이 노인네가 제대로 걸어다니질 못해서 내 부탁 좀 한 거요. 내 잘못이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소.”


할머니가 아저씨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됐다. 의사 선생님도 있으니까 너는 가보거라.”


그러자 아저씨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이내 복잡한 표정으로 “알겠습니다.”라고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뒤도는 아저씨의 표정을 보니 적당히 알아들은 듣한 모습이었다.


‘이제 똑같은 일은 안하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아저씨의 모습이 사라지고 할머니 쪽을 보자 할머니는 다시 마루로 가서 다리를 뻗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 내 파스 좀 붙여주소.”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진료라도 봐주고 가야겠다.’


나는 아저씨에게 건네받은 파스를 들고 할머니에게로 갔다.


무릎을 봤다.


겉보기에 큰 소견은 없었다.


만져보니 열감이 느껴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급성기 상태는 아니네.’


“할머니, 무릎은 언제부터 아팠어요?”

“오래됐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요?”

“젊을 때부터.”


아무튼 오래됐다는 거로군.


‘특별히 다른 질환이나 문제를 고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나는 곧바로 파스를 붙일 준비를 하였다.

무릎을 굽혀 관절부를 잘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파스의 포장면을 떼어내서 접착면을 무릎에 붙였다.


‘이런 관절부는 꼼꼼하게 붙이지 않으면 잘 떨어진단 말이지.’


나는 파스의 가장자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잘 밀착시켰다.



그렇게 마무리하던 도중


“갑환이 말이여... 자식새끼들 다 크고 나니까 외로워서 그러는 거여.”


할머니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애들 커갈 때는 할 일 많지. 먹이고 재우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데, 다 크고 나면 할 일이 없어져... 할 일 없으면 좋은 것 같은데 또 막상 없어지면 허전하거등. 지금까지 하던 게 자식 뒷바라지밖에 없는데 그게 없어지니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끄덕이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끄덕이는 할머니에게 달려와 재롱을 부렸다.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지면 사람이 비참해지는 거여. 자기가 아무 쓸모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니께.”

“음...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내가 집에 올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당신이 직접 해주려고 하셨다.


비슷한 이유 때문이겠지.


“그러니께 너무 타작하지 말어 늙은이들 기죽으니께.”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마당 한 켠에 있는 포대자루를 들었다.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포대자루.


할머니는 그걸 들고 개밥그릇 앞으로 절뚝거리며 서서히 걸어갔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보여서 도와드리려고 일어났으나


할머니가 “앉아 있어, 앉아 있어.”라며 만류했다.


개밥그릇 위로 사료가 우수수 떨어졌다.


철제 그릇인지라 땡그랑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끄덕이는 그 소리를 듣자 쏜살같이 달려가 와바바박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걸 진짜 좋아하나보네.’


나와 할머니는 끄덕이가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이렇게 챙겨주는 게 삶의 낙일 수도 있겠구나.’


자식이 있어본 적은 없지만 끄덕이를 보고 있자니 할머니의 말이 공감이 갔다.


근데 얘 이름이 끄덕이가 맞나? 뭐라고 부르는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할머니의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차 싶었다.


‘무릎에 관절염이 저렇게 심한데 다른 관절이 정상일 가능성은 적어.’


“할머니 잠깐 손가락 좀 볼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의 손바닥을 쭉 펼쳐 손가락을 살펴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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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3 36 12쪽
3 보건지소 +1 24.08.27 1,208 37 12쪽
2 의무기록 +1 24.08.26 1,248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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