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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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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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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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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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2)

DUMMY

“야 너 왜 그래?”


나는 놀란 마음에 하윤이에게 다가갔다.


“으으...”


하윤이는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있었다.


“신경쓰지 마. 기립성 저혈압이니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응, 뭐 기립성 저혈압이야 가만 있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거잖아.”


하윤이가 아하하 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그냥 넘어가기 힘든 말을 덧붙였다.


“심할 때는 가만 있어도 핑 돈다니까.”


나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기립성 저혈압이 가만히 있을 때도 생기나?’


기립성 저혈압이란 앉아 있다가 급격히 일어섰을 때, 혈액이 순간적으로 다른 장기까지 이동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저혈압 증상이다.


이름 그대로 기립(일어섬) 일 때 한정되어 일어나는 것.

가만히 있을 때 생긴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질병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dizziness(어지럼증) 증상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할 질병이...’


나는 감별해야 할 질환을 머릿속에서 나열했다.

다만 한 가지 증상만으로는 질병 후보를 좁히기는 힘들었다.


‘다른 증상들을 캐내야 해.’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보건지소에 저장된 초진기록지가 생각났다.


fatigue (+) (피로감 있음)

palpitation (+) (두근거림 있음)


단 두 가지 증상이지만 하윤이의 상태와 연관이 있다면 중요한 힌트가 될 터.


나는 확인을 위해 하윤이에게 질문을 했다.


“요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한 적 있어?”

“흐응~? 이거 진료?”


하윤이는 씨익 미소를 짓더니 이내 답변하기 시작했다.


“뭐, 가끔씩 그런 거 같긴 한데.”

“주로 언제?”

“그건 잘 모르겠어.”


나는 하윤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손목에 위치한 radial artery(요골동맥)의 맥박을 느끼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은 두근거려?”

“잘 모르겠는데...”


하윤이가 말 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요골동맥의 맥박이 약간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벌컥


아주머니가 방 문을 열었다.


“얘들아 과일이라도 먹으면서... 어머...”



아주머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즐거운 시간 보내렴...”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문을 닫으셨다.


“뭔가 오해가 생길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


하윤이가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요즘 특별히 피곤하거나 하진 않아?”

“피곤하지 않으면 사회인이 아니지!”

“그렇긴 하다만...”


의학에서 말하는 병적인 상태의 피로는 일상생활의 피곤함과 약간 다르다.


“피곤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거나?”

“피곤하면 원래 일상생활에 지장 있지! 잠도 많이 자게 되고...”

“자고 나면?”

“그래도 피곤하지!”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피로.

질병으로 의심되는 피로감이 확실히 있었다.

즉, 초진기록지에 적힌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식사를 잘 하지 않는 젊은 여성.

dizziness(어지럼증)

fatigue(피로감)

palpitation(두근거림)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윤곽이 보였다.


‘그래도 무조건 이거다! 할 만한 증거는 없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마지막으로 신체검사로 확신을 얻기로 했다.


“잠깐 좀 볼게.”


나는 하윤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

그 거리에서 나는 양손으로 하윤이의 양쪽 눈꺼풀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눈꺼풀 안쪽의 결막을 확인했다.


‘역시...’


결막은 핏기가 없이 새하얀 색이었다.


pale conjunctiva(창백한 결막).


‘이걸로 확실해졌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벌컥


아주머니가 다시 방 문을 열었다.


“호호, 내가 과일을 안 놔두고 갔네... 천천히...”


아주머니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다시 그대로 문을 닫으셨다.


방문 밖에서는 “어머 어머 어머”라고 연신 외치며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진짜 해명해야겠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아니야?”


하윤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내왔다.


“너 anemia(빈혈) 있는 거 몰랐어?”

“anemia?”


하윤이가 흐음 하면서 턱을 만지며 잠깐 생각하더니


“그러네... 지금 생각해보니 있는 것 같기도...”


내 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빈혈.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하는 헤모글로빈이 부족하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산소를 공급하는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심장 두근거림이나 만성적인 피로감이 발생하게 된다.

출혈에 의해 혈액이 소실되면서도 생길 수 있지만 건강한 사람에서는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영양성분이 부족하면 자주 생길 수가 있다.


하윤이의 경우에는 식사를 거름으로 인해 생긴 영양 결핍에 의한 빈혈.

젊은 여성에서 자주 보이는 유형이다.


“근데 anemia(빈혈)는 CBC(전혈구검사.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를 검사하는 것.) 해봐야 아는 거 아니야?”

“나 정도 되면 눈만 마주쳐도 알 수 있지.”

“눈꺼풀 까뒤집어서 안 거면서 무슨.”


하윤이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무튼 내일 오전에 건강검진 받으러 가. 거기에 빈혈검사도 끼어있으니까.”

“결국 건강검진 얘기냐?”

“국가 건강검진은 주기적으로 받는 게 좋아.”

“힝... 바쁜데...”


하윤이가 투덜거렸다.


“넌 안 받아도 돼?”

“난 증상 없는데?”

“할 일도 없잖아.”


내일은 토요일.

공무원인 공중보건의에겐 휴일이다.

하지만 건강검진센터는 보통 토요일 오전에 업무를 보기 마련.


“...그래 같이 가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오케이 그럼 가는 걸로 하고. 일단 오늘의 영화는 해치우자고.”


하윤이가 침대 밑에서 꺼내려다 말았던 DVD 박스들을 마저 꺼냈다.


“이거 분명 좋아할 거라니까?”


그렇게 말하며 하윤이가 보여준 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지의 영화였다.


“...이게 뭔데?”


“sss급 우주 거북이가 사기급 헌터 스킬을 각성해 국가권력급 천마와 지구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내용이야.”

“거기 어디에 내가 좋아할 부분이 있는 거야?”

“천마?”

“아닌데.”

“우주 거북이?”

“그것도 아닌데. 애초에 우주 거북이란 게 뭐냐?”

“몰라 일단 봐!”


나와 하윤이는 킥킥거리며 DVD를 재생기에 넣었다.


그렇게 상영된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리고 우리는 ‘은폐천재 투명 유니콘에 빙의한 북부대공의 이야기’나 ‘이혼 후 회귀했더니 날먹 스킬로 악당을 처치하는 이세계 천재 마법소녀의 이야기’ 따위의 영화들을 보다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이미 아침이었다.


‘이불 필요 없다고 말했는데 보기 좋게 잠들어버렸네.’


옆을 보니 하윤이는 하나뿐인 이불을 혼자서만 둘둘 만 채로 자고 있었다.


‘어쩐지 춥더라.’


방을 나갔다.


아주머니께서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호호, 어제는 하윤이와 재밌게 보냈니?”라고 말하며 웃으셨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보였지만 귀찮아질 것 같아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아주머니 하윤이 좀 데려가도 될까요?”

“어머...”


아주머니는 순간 당황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주면 우리야 고맙지. 저런 선머슴 같은 애 누가 데려가나 싶었는데, 너가 좀 데려가주렴.”

“예?”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 같아 고쳐 말했다.


“어젯 밤에 건강검진 받으라고 설득했거든요. 오늘 아침에 바로 출발하려고요.”

“아하...”


그제서야 아주머니가 이해한 듯 하셨다.


“건강검진 하려면 결식해야 돼서 아침은 안 먹고 바로 출발할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에 들어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하윤이를 끌어내 차에 실었다.



***



“으어... 당 떨어져.”


하윤이가 손을 떨며 채혈실에서 나왔다.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는 좋은강산병원 건강검진과에 당일 검사를 등록했다.

다행히 혈액검사 위주로 구성된 기본검진은 당일에 바로 검진이 가능했다.


차례대로 채혈을 마친 우리는 건강검진과 대기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이거 먹어.”


나는 채혈실 출구를 나오며 미리 챙겨놨던 사탕을 하윤이에게 건넸다.


“땡큐. 용케도 챙겼네.”


하윤이가 사탕 한 알을 뜯어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너 원래 저혈당 자주 왔잖아.”

“기억력 좋구만. 괜히 의사 된 게 아니여.”


하윤이가 그렇게 말하며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하윤이의 저혈당 상태가 호전되는 걸 지켜보다 말을 이었다.


“너 배종득 아저씨 알지?”

“같은 동네 사람인데 모르겠냐고~”

“지금 여기 입원해 계신데 같이 보고 갈래?”

“엥, 진짜? 어쩌다 입원하셨대?”


뜻밖의 소식에 놀라는 하윤이.


나는 배종득 아저씨를 진료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집에서 진료보고 병명 알아내는 게 취미야?”

“그건 아니지만...”


순간 나는 보건지소에 뜨는 정체불명의 의무기록을 떠올렸다.


‘말해봐야 안 믿을 테니.’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병문안 가보자.”


그렇게 나와 하윤이는 배종득 아저씨가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와 하윤이가 인사하며 병실에 들어가니 아저씨는 주치의 보이는 의사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주치의는 나와 하윤이를 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아, 보호자분 되시나요?”


내가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아저씨가 먼저 대답했다.


“선생님, 얘가 제가 저번에 말했던 저 여기로 보낸 사람입니다.”

“아하...”


주치의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했다.


“그 천재 의사 선생님이요?”


나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해맑게 웃고 계셨다.


“천재는 아니고요... 그냥 공보의입니다...”

“에이~ 제가 CT로 봐도 애매한 정도의 케이스였는데 CT는커녕 소노(초음파)도 없는 보건소에서 피지컬(신체검사)만으로 꼴레(담낭염) 보고 트랜스퍼(전원)한 게 그냥 공보의라고 겸손 부릴 정도는 아니죠.”


...그런가?


“선생님 무슨 과에요? 이 정도면 보더(전문의)인데... GI(소화기내과)? GS(외과)?”


눈을 빛내며 질문을 이어가는 주치의에게 괜히 주눅이 들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내과 2년차까지 하고 때려친 GP(일반의)입니다...”

“허...”


의외의 대답에 주치의가 허탈감을 내비쳤다.


“혹시 수련병원이?”

“아성병원이요...”

“하핫, 던트 중포자가 어떻게 이 정도 실력인가 싶었는데 역시 아성병원 출신이네요. 저도 아성병원 출신입니다. GS 보드(일반외과 전문의)랑 간담췌 펠(펠로우. 전문의 취득 후 세부 전공을 수련 받는 전임의를 말함.)까지 아성병원에서 했죠.”


주치의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강산병원 간담췌외과장 김장성입니다.”

“대철면 보건지소장 강태호입니다.”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뭐 수련 중포한 이유는 안 물을게요. 그래도 아성병원 수련을 잠시라도 받았으니까 동생 같아서 반갑네요. 혹시라도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줘요.”


그렇게 말하며 김장성 과장님이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말했다.


“음... 명함이 없는데 그냥 홈페이지 들어가서 봐요. 내 전화번호 나오니까. 하핫!”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비급여 영양제 하나 공짜로 달아드릴게요. 퇴원은 원래 내일인데 내일이 주말이라 월요일까지 있다가 가면 돼요. 뭣하면 오늘내일만이라도 1인실 있을래요?”

“아뇨...”


나는 부담스러운 마음에 거절하려고 했으나 순간 아저씨의 표정이 보였다.

엄청나게 기대하는 표정.


“영양제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장님은 “하핫, 그래요. 받을 수 있을 때 받아둬요.”라고 말하며 쌩하니 사라졌다.


그 후 나와 하윤이는 아저씨와 안부인사를 마저 나눈 뒤 병원을 나와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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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담배 끊으세요 (1) +1 24.08.30 1,080 35 12쪽
» 오랜만이야 (2) +1 24.08.29 1,101 36 12쪽
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4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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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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