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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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작품등록일 :
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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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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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1)

DUMMY

“야! 힘 좀 잘 써봐!”


하윤이가 타박했다.


나는 자세를 다시 잡았다.

그리고 다시 소의 머리를 꾹꾹 밀었다.


“으응...”


하윤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야 자리 바꿔!”


그렇게 말하며 축사 울타리 위로 올라갔다.


“야 잘 봐! 이렇게 하라고!”


하윤이가 우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프레임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야 그러다 부러지겠다!”

“안 부러져!”


그렇게 외치더니


“으읏...! 됐다!”


순식간에 마무리했다.


나는 진이 다 빠진 채로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철제 프레임으로 된 작은 우리 속에 커다란 소가 꽉 끼어있었다.

소는 아직도 저항하려는 듯 덜컹거리며 반항했지만 철로 된 우리를 부수고 탈출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야 너는 진료 볼 때마다 소를 이렇게 고정시켜놔야 하냐?”

“안 그러면 발에 차인다고. 너 발에 차여봤어?”

“살아있는 한우 자체를 처음 본다 나는.”

“발에 차이면 갈비뼈 나가.”


그렇게 말하며 하윤이가 우리 측면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철제 우리가 옆으로 회전하더니 소가 반듯하게 누운 모양이 되었다.


‘와 신기하네. 소를 눕히는 기능도 있는 거야?’


나는 신기한 마음에 소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소의 배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야! 나와! 거기 있으면 소한테 차이잖아!”


하윤이가 소리쳤다.


하윤이는 진료 대상의 덩치가 클수록 성격이 날카로워졌다.

아마 조그만 실수에도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그런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런 타박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할 터.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왠지 수술방에서의 집도의를 보는 것 같아 충분히 이해가 갔다.


‘CS(흉부외과) 배장식 교수님이 생각나네. 그 분도 참 수술방만 들어가면 사람이 변했는데...’


나는 인턴 때 일을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 사이 하윤이가 구석에서 작은 낫을 가져왔다.


“잘 봐, 이게 소 발굽이야.”


하윤이가 그렇게 말하며 소의 발 끝에 낫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낫으로 슥슥 한 꺼풀 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헉, 이거 그냥 잘라도 돼?”

“사람으로 치면 이거 발톱이야.”


그렇게 말하며 계속 벗겨냈다.


슥슥

슥슥

슥슥


그렇게 얼마간 벗겨내자


“자 봐봐, 이거 보여?”


하윤이가 낫 끝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까만색의 길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이게 뭡니까 교수님?”

“철사.”


그렇게 말하며 하윤이가 펜치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철사를 잡은 뒤 쑥 뽑아냈다.


소의 발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윤이가 갈색의 액체를 쏟아 부었다.


‘포비돈인가? 대동물한테는 저렇게 그냥 들이붓는구나.’


나는 신기하게 쳐다봤다.


하윤이는 상처에 붕대를 감싼 뒤 그 위를 청테이프로 감았다.


‘낫으로 베고 펜치로 뽑은 다음 마무리는 청테이프인가...’


나는 사람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재료들을 쓰며 치료하는 하윤이를 재밌게 바라봤다.


그렇게 치료가 끝난 소.


우리를 다시 돌려 소를 세워둔 뒤 고정시킨 철제 프레임을 모두 해제했다.


음메~


우리에서 해방된 소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온순해졌다.

불편한 다리가 치료돼서 그런 걸까.


그런 소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하윤이가 옆에서 여물을 들고 왔다.


눈 앞에서 여물을 흔드는 하윤이.


소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우물우물


맛있게 여물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이렇게 순한데 말이야. 아까는 왜 그렇게 날뛰었니?”


하윤이가 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도 옆에서 여물을 주워왔다.


흔들흔들


하윤이처럼 소의 눈 앞에서 여물을 흔드니


우물우물


역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나는 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가 다가와서 팔을 핥았다.


“으악... 기분 이상해.”


미끈거리는 느낌이 이상했다.


그 모습을 보여 하윤이가 풉 하면서 웃었다.


“아, 소가 머리 핥으면 왁스로 고정한 것처럼 세팅되는 거 알아?”


하윤이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엥, 진짜?”


나는 신기해서 되물었다.


“엉, 한번 해봐.”

“아니... 해보고 싶진 않아...”


빠르게 포기했다.


그렇게 얼마간 소를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아이고 벌써 끝났습니까?”


농장주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저 걸어다니는 거 보니께 치료 자알~됐구먼. 속이 다 시원해.”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며 외투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는 꽤나 두둑했다.


“여기 치료비요. 치료 잘해주셨으니까 좀 더 넣었소. 남자친구랑 맛있는 거 드시러 가소.”


하윤이가 봉투를 받으며 말했다.


“아이고 예, 감사합니다~”


하윤이가 꾸벅 인사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저 봉투에 내 몫도 있는 거겠지? 어시 서줬으니까.’


나는 속으로 내일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다.


‘내일 저녁은... 마늘족발... 그래 마늘족발을 먹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다짐했다.


‘어쩌면 이렇게 계속 하윤이 옆에서 부업으로 어시 좀 서면 벌이가 괜찮을지도...? 그럼 직업이 뭐가 되지? 의사 겸 수의사 보조? 근데 동물 진료는 수의사 면허 없이 보조 서도 되는 건가?’


그렇게 실없는 망상을 이어가던 중.


“아저씨 저 왔어요.”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커다란 건초더미를 실은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오, 그래 규철아 건초는 저기저기...”

“아 예, 놓는 곳 알고 있어요.”


규철이라고 불린 사내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농장 구석에 건초더미를 쏟아놓은 뒤 다시 돌아왔다.


“오, 뭐야 6번 소 결국 수의사 불렀어요? 며칠 못 걸어다닌다더만.”

“어, 아무래도 그냥 둬서 될 게 아닌 거 같아서 불렀지. 근데 확실히 부르니까 딱 보고 고쳐주시더만.”

“그래요? 이분들이 수의사 선생님들이신가봐요?”


사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6번 소는 왜 저랬던 거예요?”


사내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하윤이를 쳐다봤다.


하윤이가 대답했다.


“발굽에 철사가 박혀있었어요. 지금은 빼낸 상태고요.”

“오우, 아팠겠다.”


사내가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의문이 해결되어 상쾌해진 듯한 사내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건초값은 아버지 계좌로 주세요~”


그렇게 말하지며 멀어지는 사내.


그 모습을 보며 농장 주인 아저씨가 말했다.


“선생님들은 쟤 처음 보는가? 쟤가 그 건초업자 하는 박 사장 아들래미여.”

“박덕상 아저씨 아들이요?”


하윤이가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하기 싫다~ 하기 싫다~ 하더만 결국 아버지 일 이어받는구먼.”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뭔 서울 가서 연예인 한다던가 뭐 한다던가 깨작거리다가 마음대로 안 됐는지 결국 얼마 전에 내려와서 아버지한테 일 배우고 있는 거여.”

“아하, 그래서 제가 처음 뵙는 거네요.”


하윤이가 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와 하윤이는 이후 진료장비를 정리하고 짐을 싸서 자동차에 실었다.


“점심 뭐 먹을까?”


하윤이가 말했다.


“...소고기?”

“왜 하필 소 진료 보고 나서 소고기를 먹는 건데?”


하윤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둘이서 메뉴를 고민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통기타 소리였다.


멀리서 들어도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훌륭한 연주.

그리고 이윽고 그 연주를 완성하는 듯한 노랫소리가 덧붙여졌다.


나와 하윤이는 잠깐 마주본 뒤 바로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방금 만났던 박규철이라는 사내였다.


사내는 트럭에 벽돌처럼 각이 맞춰져 쌓여있는 건초더미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밀짚모자를 쓰고선 눈을 감은 채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들으니 더욱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사람 일반인 실력은 아닌데?’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비전문가 수준에서 바라본 바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노래를 잘하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채로 보지도 않고 연주하는 기타.

그러면서도 음 이탈 같은 실수는 하나도 없는 깔끔한 연주.

거기에 마이크 하나 쓰지 않았지만 넓은 농장에 울려퍼지는 듯한 공명감을 가득 지닌 보컬까지.


나와 하윤이는 넋을 잃고 사내를 바라봤다.


경쾌한 리듬으로 연주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픈 멜로디가 점점 고조되었다.


그렇게 1절의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가는 순간.


“그 끝이 없는 시간 속에~~~~~ 쿨럭쿨럭.”


사내가 최고음으로 추정되는 구간에서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쿨럭

쿨럭쿨럭

쿨럭쿨럭


그렇게 심하게 기침을 연신 하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에 물었다.


“쓰으읍!”


사내는 흡입기로 보이는 것을 흡입했다.


모양을 보니 벤토린(salbutamol 성분의 기관지 확장제) 같았다.


약물을 흡입한 사내는 후~하면서 깊은 숨을 내쉬면서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우리를 보더니


“우아아아악!”

“우아아아악!”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나도 같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왜 여기계세요?”


사내가 말했다.


“아뇨, 뭐... 노랫소리가 들려서요.”


나는 머쓱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노래 엄청 잘하세요.”


내 말에 이어 하윤이도 호들갑을 떨며 질문했다.


“맞아요! 웬만한 가수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요? 프로죠? 데뷔는 이미 하신 거죠?”


사내는 씁쓸한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하하, 데뷔해서 망한 거면 차라리 다행이네요. 저는 데뷔조차 못해봤어요.”

“왜요? 일반인이 봐도 프로급 실력인데요?”


하윤이가 질문했다.


“뭐, 아까 보셨다시피 천식이 심해서요. 노래를 끝까지 부르기도 어려워요.”


사내가 흡입기를 흔들며 말했다.



천식.

쉽게 표현하면 기관지에 생기는 알러지 같은 것으로, 기관지가 특정 물질이나 상황에 예민해서 쉽게 기침이 나오거나 심하면 호흡까지 힘들어지는 질환이다.


주로 미성년자 때부터 시작되지만 나이가 들 수록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으며, 알러지와 마찬가지로 유전적 경향이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오디션 보러 다닐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는데 요 근래 점점 심해지더라고요. 이젠 한 곡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것도 잘 없어요.”


사내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뭐, 노래는 취미로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가끔 날 좋을 때 이렇게 트럭 짐칸에 앉아서 통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면 기분은 좋잖아요?”


나는 순간 의문이 들어 사내에게 질문했다.


“천식 치료제를 더 강한 걸로 쓰면 되지 않나요?”


본래 천식의 치료는 저렇게 증상이 나타날 때만 기관지 확장제를 흡입하는 것이 아니다.


스테로이드 성분의 기관지 안정제를 꾸준히 흡입해서 호흡곤란이나 기침 같은 증상이 애초에 나타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치료.

즉, 증상이 나타나는 순간 이미 치료를 실패한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왜 더 강한 단계의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일까.


그 의문에 사내가 대답했다.


“병원에 여러 번 가서 치료제 농도를 계속 올리면서 썼는데도 효과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쓰라고 이걸 받았어요.”


사내가 가지고 있는 흡입기를 쳐다봤다.


‘흠... 여기 내려온 지 얼마 안 됐다면서 그 짧은 기간에 고농도를 써도 차도가 없을 정도로 천식이 악화됐다고?’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사내의 천식은 일반적인 천식의 진행과 다르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성인 되기 전에는 천식 없었어요?”

“네.”

“가족 중에 천식 있는 사람도 없고요?”

“네.”

“추운 겨울이나, 찬 바람을 맞으면 천식이 심해져요?”

“아뇨?”


사내가 그런 건 왜 물어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사내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천식 아닌 거 같은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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