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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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작품등록일 :
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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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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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안 보이는 것 (1)

DUMMY

“156, 157, 158...”


언제나와 같은 오후.


나는 의자에 눕다시피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164, 165...!”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마지막 숫자를 소리 내어 말했다.


몇 십 분 째 천장을 바라보던 나.

그 몇 십 분 간의 사투 끝에 나는 드디어 알아내게 되었다.


...천장 벽지의 작은 네모 한 칸에는 자그마치 165개의 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근데 모든 칸에 점이 165개일까?


‘세 칸 정도 세어보고 평균을 낸 다음 그걸 전체 네모의 개수만큼 곱하면...’


지극히 이과다운 발상이 이어지고.

나는 이제 옆칸의 점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1, 2, 3...”


띠링


10개도 채 세지 못했을 때, 휴대폰에서 문자 메세지 음이 들렸다.


[깡태! 뭐해?]


하윤이었다.


[열심히 진료 보고 있지.]


[구라ㄴㄴ 공보의가 무슨 열심히 진료 ㅋㅋ]

[천장에 있는 점이나 세고 있는 거 아냐?]


어떻게 알았지.


진료실에 CCTV라도 달려있나 살펴보던 와중 사진 하나가 날아왔다.


띠링


[귀엽지?]


사진은 동물병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찍은 하얗고 복슬복슬한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고객님임?]


[ㅇㅇ 방금 진료 본 고객님이시다.]

[화이트포메라니안이래!]


자세히 보니 강아지의 다리에 부목이 감겨져 있었다.


[fracture(골절)?]


[ㅇㅇ 강아지 부목은 첨 보지?]


나는 강아지용 부목은커녕 개가 골절되는 것 자체를 처음 본다.


사람은 두 발 동물이라서 그대로 엎어지기만 해도 팔이 골절되곤 한다.

근데 개는 네 발 동물이 아니던가.

엎어져도 다리에 충격이 가진 않을 것 같은데.


[어쩌다 골절된 거래?]


[의자에서 떨어졌대. ( ´△`)]


[글쿠만...]


의자에서 떨어지는 걸로도 골절될 수가 있구나.

하긴 개의 키를 생각하면 거의 자기 키의 두 배는 되는 곳에서 떨어진 거니.

사람으로 치면 3~4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셈인가?


하윤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던 나는 사진을 한 장 전송했다.


띠링


[귀엽지?]

[얘는 고객은 아니고 그냥 똥개야!]


[(ꐦ ¯−¯ )]

[똥개라니 사월이잖아!]


[그니까 똥개 맞네.]


나는 킥킥거리며 답장하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오후 6시 05분.


진료실 밖을 쳐다봤다.


‘아무도 없네.’


항상 유한아 주무관님이 짐 싸는 걸 보고 6시인 걸 알 수 있었는데 오늘은 문자를 주고 받는다고 미처 못 봤나보다.


마지막으로 EMR(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의 진료예약 칸을 새로고침 해봤다.


예약환자 칸에 한 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51/M 윤성덕


‘음, 이제 놀랍지도 않다.’


여기 대철면 보건지소에는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저절로 예약되곤 한다.

어떻게 등록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번이고 겪은 일이니 이제 익숙해졌다.


나는 이름을 더블클릭해서 의무기록지를 열어봤다.



==========

C.C(주호소증상)>

pain(femur, Rt)

통증(대퇴골, 오른쪽)


ROS(문진)>


P/E(신체검진)>


==========



이제 성의도 없네.


C.C(주호소증상) 말고 아무것도 안 적어주잖아.


C.C(주호소증상)을 통해 보건대 이번 환자는 OS(정형외과)적 환자.


사실 정형외과 환자라면 이런 의무기록도 이해는 간다.


정형외과 질환은 대부분 다른 질환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가 적고 살펴볼 부분도 적다.

게다가 병력청취를 통해 충분히 질환을 예상할 수 있어서 아예 검사를 안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엑스레이도 없는 이곳 대철면 보건지소지만 진료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의무기록을 닫고 집에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띠링


다시 문자 메세지 음이 들렸다.


[깡태 깡태!]

[내일 주말이자나!]

[내일 머함??]


[천장에 있는 점 셀 거임.]


[( -᷅_-᷄)]

[할 거 없으면 등산 가자!]


뜻밖의 제안이 날아왔다.


‘원래 등산을 좋아했던가?’


옛날 기억을 더듬어봤다.


좀 활발하긴 했지만 등산을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성인 되고 나서 자주 갔나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하윤이에게 답장했다.


[ㄴㄴ]


그러자 바로 회신이 왔다.


[그럼 내일 아침 9시에 금문산으로 ㄱㄱ]


내 대답은 관심이 없구나.


근데 9시는 좀 힘든데.


[10시]


내가 답장하기 무섭게 회신이 왔다.


[( -᷅_-᷄)]

[ㅇㅋ 10시]


나는 마저 짐을 챙겨 집으로 출발했다.



***



<산불주의>


금문산에 도착하자 커다란 현수막이 나를 반겨줬다.


시간은 9시 30분.


잘 모르는 길이었기에 빨리 출발했지만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다.


금문산 등산로 입구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어제 집에 가서 자기 전에 검색해본 바로는 이곳은 꽤나 유명한 관광지라고 한다.

영화 촬영지로도 몇 번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등산 코스도 쉽고 중간 중간 있는 촬영 장소가 예뻐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서 멀지도 않은 곳인데 이런 관광지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


어릴 때는 동네를 벗어날 일이 없다보니 주변에 있는 관광지에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서울로 학교를 진학해 고향과 멀어졌다.

그리고 다시 고향에 내려오니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이네.’


등산로 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으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등산을 많이 할 것 같은 아저씨, 아주머니들.

어린 아이들과 같이 나온 젊은 부부들.

SNS에 나올 것 같은 딱 붙는 등산복을 입은 20대 커플들까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보니 활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음 근데 저건 레깅스 아닌가? 요즘은 저런 걸 입고 등산을 하냐...’


내가 시골에 살다보니 요즘 트렌드에 어두워진 건가.

왠지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하며 젊은 여자 무리를 향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태호야, 와 있었네?”


어느새 하윤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펑퍼짐한 등산복을 입은 하윤이.


‘그래 이런 옷이 등산복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야? 방금 실례되는 생각했지?”


하윤이가 잠깐 노려보더니 이내 자기가 입은 등산복을 한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음... 역시 촌스러운가?”


나는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흠... 괜찮으면 다행이고...”


하윤이가 목 카라를 쭉 당기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는데.


“그 가방은 뭐냐?”


하윤이는 등에 자기 몸집만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


“군장 싸왔냐?”

“아니!? 등산하려면 짐이 많이 필요하거든?”


나는 주변의 다른 등산객들을 둘러봤다.


책가방보다 작은 백팩이 대부분.


이런 뒷동산 같은 곳에 오면서 무슨...


“야!”


하윤이가 내 고개를 잡고 정면을 향해 돌렸다.


다시 시야에 커다란 군장에 가까운 가방이 들어왔다.


“그래서 뭔데?”

“어... 먹을 거?”

“뭔 소리야. 모포에 침낭까지 다 넣어도 그것보다 작겠다.”


군대는 안 갔다왔지만 이래뵈도 얼마 전에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몸.

그 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완전군장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그것보다 아득히 크다.


아니 그럼 저거 엄청 무겁지 않나?


어차피 하윤이는 내용물이 뭔지 가르쳐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나는 천천히 고민해봤다.


‘이런 작은 산에 등산용품을 챙겨왔을 리는 없어.’


등산용품이라면 책가방에도 다 들어갈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관광지 구경용인가?’


아니, 관광지를 어떻게 구경하면 저런 짐이 있냐고.


해봐야 넓은 풀밭이랑, 풀어서 키우는 말 정도밖에 없는데...


아.


순간 깨달았다.


‘드라마 촬영지로 이용됐던 승마 세트장이 있었지. 말도 있었고.’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하윤이는 다급하게 내 손을 잡아 끌었다.


“하, 하하... 일단 등산부터 시작해볼까?”


나는 하윤이의 뒷모습을 향해 외쳤다.


“너 일하러 왔지?”


우뚝


서둘러 앞장서던 하윤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쯧.”


어, 지금 혀 찼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애는 싫다니까.”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등에서 커다란 가방을 내려놨다.


절그럭


등산 가방에서 나기 힘든 소리가 났다.


이어서 하윤이가 가방을 풀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건 진료복이고, 이건 수액세트고, 이건...”


쉴새 없이 나오는 진료도구들.


그럼 그렇지.

밥도 잘 안 먹고 진료하러 다니는 애가 무슨 등산이고 무슨 관광이겠냐.


그렇게 주섬주섬 진료도구를 꺼내던 하윤이가 이윽고 직사각형 물체를 꺼냈다.


“이건 뭐야?”

“portable X-ray(이동형 엑스레이)!”


빔프로젝터처럼 생긴 작은 물체.

아마 엑스선을 발산하는 물체인가보다.


그리고 하윤이가 커다란 판 모양의 물건을 꺼내서 보여줬다.


‘이건 디텍터인가?’


‘엑스레이(X-ray)’는 정확히는 엑스선, 즉 특정 파장을 가지는 빛의 일종일 뿐이다.

이 파장의 빛이 뼈를 제외하고는 투과하는 성질이 있어 진료용으로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엑스레이’는 정확히는 ‘엑스선을 이용한 촬영’을 말하는 것이다.


촬영하고 싶은 신체의 뒷면에 ‘디텍터’를 놓은 뒤 엑스선을 조사시키면 뼈가 있는 부분은 통과를 하지 못해 디텍터에서 하얗게 표시가 되고, 그 외의 부분은 통과를 해서 디텍터에서 검정색으로 표시가 된다.


이를 통해 뼈를 자세하게 볼 수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뼈가 아닌 다른 장기도 통과율에 따라 상태를 파악할 수도 있다.


‘동물용 엑스레이 촬영기는 되게 작구나.’


병원에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 침대까지 직접 가서 찍는 이동형 엑스레이 촬영기가 있다.

중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에서 주로 보유하고 있다.


근데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이걸 어떻게 큰 병원도 아닌 수의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 보건지소에도 없는데.


“음... 진료에 필요하니까 샀지?”


하윤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비싸지 않아?”

“비싸다구... 한 달 수입 다 쏟아 부었어.”


하윤이가 힝힝 하며 투덜거렸다.


“...얼만데?”


내 질문에 하윤이가 손짓을 했다.


가까이 가니 하윤이가 작게 속삭였다.


“음...”


그러니까 그게 한 달 수입이라는 거지?


“실례가 안 된다면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하윤이가 풉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진료 도와주면.”

“당연하지!”


나는 하윤이의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었으니까.


“근데 뭐 때문에 엑스레이까지 필요한 거야?”

“위에 목장에 말이 있는데, 다리를 절뚝거린다고 해서.”

“fracture(골절) 의심?”

“응.”

“stress fracture(피로골절) 같은 건 엑스레이로 잘 안 나오지 않아?”

“자알~ 맞춰서 찍으면 보인다구~”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양 손의 엄지와 검지로 직사각형의 사진기 모양을 만들어냈다.


“아, 근데 납복은 무거워서 안 가져왔어.”


순간 오싹했다.


엑스선은 진료를 위한 촬영에도 쓰지만 동시에 조사된 인체의 유전자를 파괴시키고 세포를 변형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발암물질로 취급한다.


물론 세포 변형의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불필요한 사용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나 세포분열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골수나 생식기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촬영 시에도 납으로 된 엑스선 방호복을 입고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그게 없다고?


좀 찝찝한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하윤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불알 잘 지켜!”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한 뒤 하윤이에게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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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무기록 +1 24.08.26 1,250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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