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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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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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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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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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것 (2)

DUMMY

“허억... 엑스레이...가... 몇키로길...래... 허억... 이렇게... 무겁...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등산로를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등에 맨 가방에는 하윤이에게서 넘겨받은 엑스레이 촬영 도구들이 들어있었다.


‘혼자만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내가 오히려 불편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짐의 절반 정도, 사실상 부피의 절반을 차지하는 엑스레이 촬영장비를 대신 들어주기로 했다.


근데 설마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쟤는 혼자서 이걸 어떻게 들고 온 거야?’


순식간에 20kg 정도는 늘어난 배낭에 내 체력이 금방 바닥났다.


앞을 보니 하윤이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산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도 운동을 좀 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이어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의 중턱 쯤에 왔을까.


“잠깐 쉬다 가자!”


하윤이가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등산로 샛길로 빠지는 길.


그곳을 따라 들어간 곳은.


“이런 곳에 전망대가 있네.”

“여기가 주요 관광 포인트 중 하나거든.”


그 말을 듣고 주변을 살펴봤다.


그제서야 작게 안내 표지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좀 크게 붙여놨으면 찾기 쉬울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보니 우리 이외에도 다른 등산객들이 몇몇 있었다.


아마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인가보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라본 전망.


“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전망대에서는 주변 도시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왼쪽은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했고 오른쪽은 작은 마을과 그 너머에 넓은 바다가 보였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니 마음이 뚫리는 것 같았다.


20대가 거의 끝나가는 나이지만 이 나이 먹도록 이런 전망대 한 번 와본 적이 없었다.


‘뭐가 그리 무서워서 쫓기듯 살았는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경치를 바라봤다.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의료소송이고 뭐고 대학병원에서의 일은 이제 아무 상관 없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그 바람을 기분 좋게 느끼고 있으니 옆에서 하윤이가 말을 걸어왔다.


“너 고향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저~기 잘 모르지?”


하윤이가 고층 아파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관정 신도시인데 얼마 전에 생긴 곳이고...”


하윤이가 경치를 칠판으로 삼아 여러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생각보다 고향이 많이 바뀌어있었구나.’


마냥 시골인줄만 알았던 곳인데 도시화가 된 곳도 많았다.


‘신기하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젊은 부부가 보기 좋네.”

“여기 동네 사람이여?”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었다.


다섯 명이 무리지어 다니는 것을 보니 등산 동호회인 것 같았다.


“여기 지리를 잘 아는 거 보니 주변에서 왔나벼?”

“부부끼리 등산 왔어?”


아주머니들이 재잘거렸다.


“하하... 부부는 아니고 그냥 동네 친구예요.”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저희가 그렇게 늙어보이나요?”


하윤이는 다른 게 신경쓰였나보다.


“아니 난 뭐 거의 10년은 같이 산 사람처럼 말하길래 부부인가 했지.”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것 좀 먹을 텨?”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물들이 가득 들어간 김밥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일반 가게에서 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아마 직접 만드신 것 같았다.


“마실 것도 있어.”


다른 아주머니는 보온병을 꺼내더니 종이컵에 마실 것을 따르기 시작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하윤이와 나는 아주머니들 사이에 끼어서 간식을 얻어먹기로 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젊은 사람이 등산 좋아하나벼. 가방에 무슨 살림을 넣어 다녀.”

“아 왜 요즘 캠핑 유행하잖어. 그런 거겠지.”

“근데 여기서 캠핑 해도 돼?”

“아 그냥 하는 거지.”


한 아주머니가 큰일 날 소리를 하셨다.


‘분명 등산로 입구에 야영 금지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러나 아주머니들을 보니 딱히 야영을 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았기에 안심했다.


“캠핑은 아니구요 이게 사실은...”


하윤이가 가방 내용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수의사였어?”


우리가 금문산을 방문한 목적을 말하자 아주머니가 놀라며 대답했다.


그러자 하윤이는 기회를 놓칠세라 웃으며 말했다.


“헤헤, 네. 이 근방에 개원한 수의사입니다. 개, 고양이 말고도 소, 양, 돼지, 말도 다 보니까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24시간 언제든, 야밤에도 달려갑니다!”


그렇게 말하며 하윤이가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돌리기 시작했다.


‘저런 건 언제 챙겨왔대.’


나는 하윤이의 준비성에 혀를 내둘렀다.


하윤이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다.

대동물 수의사는 특히나 영업이 중요하다고 한다.

시골에서 주로 운영하는 특성 상 입소문을 한 번 타면 그 근방의 모든 진료가 다 자기 것이 된다나.


아마 그래서 항상 명함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나보다.


아주머니 한 분이 명함을 받더니 나를 보며 물어보셨다.


“옆에 남자친구도 수의사인가?”

“아뇨, 얘는 그냥 의사요. 근데 얘 남자친구 아니에요.”


“아이고 의사 남자친구도 두고, 아가씨가 능력이 좋아.”

“제가 능력이 좋긴 해요. 근데 얘 남자친구 아니에요.”


“남자친구 분 의사 선생님이셔? 무슨 과?”

“저는 내과 전공입니다.”

“그리고 얘 남자친구 아니에요.”

내 말에 하윤이가 덧붙여 말했다.


아주머니들이 그 모습을 보며 까르륵 웃으셨다.


분명 놀리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 일하셔?”

“대철면 보건지소에서 일해요.”

“대철면이면 근처겠구먼.”


한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뭔가 생각났는지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아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디, 나 얼마 전에 고지혈증약 먹기 시작했는데, 먹고 나서부터 머리가 아퍼. 이거 약 때문이여?”


고지혈증 약은 거의 대부분 스타틴(statin) 계열의 약을 사용한다.


그 약물에 두통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나는 아는 한도 내에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약이랑은 무관해요.”


그 대답을 듣고는 다른 아주머니들도 질문 공세를 시작하셨다.


“요즘 소화가 안 되는데 위내시경에서는 아무 것도 없대. 이럴 수도 있는 거여?”

“원래 나이 들면 그래요.”


“관절약 처방받았는데 30일치를 주더라고. 이거 계속 먹어도 돼?”

“아프면 먹어야죠.”


“우리 딸래미가 여드름 흉터가 심한디 이거 약으로는 안 돼?”

“안 돼요.”


“요즘 앞이 잘 안 보이는디 이거 백내장인가?”

“안과 가보세요.”


점점 질문들이 내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의학상식 선에서 답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대답해줬다.


그렇게 얼마간의 의료상담이 끝나자 아주머니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먼저 자리를 차고 일어나셨다.


나와 하윤이는 조금 더 여유를 가지며 경치를 구경하다 출발했다.



그렇게 다시 얼마간 올라가자


“허억... 엑스레이...가... 참 무겁...네... 허억... 몇키로길...래...”


다시 체력이 바닥난 나는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하윤이가 그 모습을 보며 히히 웃으며 말했다.


“힘들어? 손 잡아줄까?”

“허억... 아니... 엑스레이... 가져가줘...”

“싫어. 네가 반 들어준댔잖아.”

“그렇긴 한데...”


이미 뱉은 말.


이제 와서 취소하기엔 자존심이 있었다.


‘근데 절반이 꼭 엑스레이일 필요는 없잖아?’


좋은 생각이 난 나는 곧바로 하윤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엑스레이를 네가 들고 네 거 내가 들게. 그래도 절반 드는 거지?”


그러자 하윤이가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가 이겼다. 역시 난 천재야.’


나는 씨익 웃으며 엑스레이가 든 가방을 내려놓고 하윤이 가방을 들었다.


그런데,


“억...”


하윤이 가방은 내 것보다 더 무거웠다.


‘이거 들면 10분도 못 가겠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대로 하윤이 가방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냥 엑스레이 들게...”


하윤이가 킥킥거렸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하윤이에게 끌려가다시피 산을 계속 올라갔다.


‘확실히 끌어주니까 가기가 쉽네.’


그렇게 생각하며 앞을 바라봤다.


하윤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가방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몸.


‘얘가 이렇게 덩치가 작았나.’


어릴 때는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지금 보니까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렇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운동을 다짐하며 말했다.


“...일단 한 번만 더 쉬고 가면 안 될까!?”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하윤이가 생수병 뚜껑을 돌리다가 잘 안 열리는지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니 대체 목장을 무슨 산꼭대기에서 하냐?”


나는 생수병 뚜껑을 돌려서 딴 뒤 다시 하윤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직 절반도 안 왔는데 무슨 산꼭대기 소리야.”


하윤이가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에게 건넸다.


“엥? 이만큼 왔는데 아직 절반도 안 왔다고?”


나는 생수병을 받아 목을 축였다.


“한 3분의 1쯤 될걸?”

“헉 그럼 이걸 두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야?”

“정상에 가고 싶다면 그래야겠지?”


순간 내 얼굴에 절망감이 가득 피었다.


그 모습을 보고선 하윤이가 쿡쿡 웃더니 한 마디를 덧 붙였다.


“근데 농장은 정상까지 안 가도 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힘들어?”


하윤이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힘들다... 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보다 무거운 배낭을 들고도 끄떡 없는 하윤이 앞에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웠다.


“적당히 운동도 되고 좋네!”

“다행이네. 사실 차로 올라갈 수도 있긴 하거든.”

“...”


“근데 차로 가면 낭만이 없잖아?”

“하하...”


“이왕 온 거, 일 다 끝내고 정상까지도 가보자!”

“크큭...”


이유는 모르겠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산 정상 쪽을 바라봤다.


두꺼운 구름 뭉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 위를 지나쳐가고 있었다.


머리 위로 지나쳐가는 구름들 사이 때때로 끊어진 부분에서 햇빛이 비쳐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곧바로 직전의 어둑함으로 돌아가버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하윤이가 몸을 움츠렸다.


그늘에서 맞이하는 봄의 바람은 아직은 추울 법 했다.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등지고 하윤이 옆에 앉았다.


하윤이가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이내 바람이 멈추더니 찾아온 적막감.


우리 둘은 서로 아무 말 없이 그 편안한 적막감을 즐겼다.


그렇게 얼마 뒤.


“이제 일어날까?”


나는 다시 출발하려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위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요! 의사 선생님!”


멀리서 아주머니 한 분이 큰 소리를 외치며 이쪽으로 뛰어오셨다.

아까 전까지 같이 수다 떨던 아주머니들 중 한 사람이었다.


아주머니는 내 앞까지 뛰어와서는 헉헉거리며 말했다.


“저기... 앞에 큰일났으요...”


아주머니가 숨이 찼는지 기침을 콜록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사람이 바위에서 떨어졌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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