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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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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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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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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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으세요 (1)

DUMMY

한가로운 오후 시간.


나는 휴대폰으로 대형견이 애교를 부리는 영상을 시청 중이었다.


“베개.”

“멍.”


영상 속의 개는 주인이 ‘베개’라고 말하자 주인의 머리맡에 엎드려 자세로 누웠고 주인은 그 개를 베개 삼아 누웠다.


‘대형견은 이런 훈련도 시킬 수가 있구나.’


대형견은 덩치가 큰 만큼 뇌의 용적도 커서 소형견에 비해 다양한 훈련을 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똑똑한 대형견의 경우 3~4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간단한 수준의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도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월이는...’


나는 순간 대형견에 속하는 사월이를 떠올렸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걘 이 세상을 두 가지로밖에 구분하지 않잖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심지어는 주인은 팽개쳐 두고 먹을 것을 주는 사람만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는 걸 보면 주인이 누구인지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떤 애교를 부리면 간식거리를 던져주는지는 기가 막히게 알고 있던데...’


어쩌면 훈련을 안 시켜서 그럴 뿐, 사실 엄청 영리하다던가?

방금 본 유튜브에서도 대형견은 훈련이 잘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에 만나면 사소한 훈련이라도 시켜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5시 50분이었다.



퇴근시간은 오후 6시 정각.

10분만에 환자가 찾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했다가 10분 사이에 아픈 사람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안 되니 가능한 미적거리다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다.


나는 진료도구를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예약환자 리스트를 다시 조회해봤다.


오늘 예약된 환자는 다 왔던 걸로 기억하니 당연히 안 뜨는 게 정상...이지만


‘이 사람은 뭐야?’


예약환자 리스트에 갑자기 한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63/M 박칠수


느닷없이 등록된 예약환자에 나는 진료실 밖에 있는 유한아 주무관님에게 말을 걸었다.


“주무관님 이거 예약환자 등록된 거 주무관님이 등록한 거예요?”

“예에~?”


유한아 주무관님은 느긋한 말투로 무슨 소리냐는 듯 예약환자 리스트를 조회해 보더니


“뭐예요 이거~?”


전혀 모른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튼 주무관님이 등록한 건 아니란 거죠?”

“그럴 리가요.”

“그쵸? 주무관님은 5시 50분에 환자 예약 받으실 분이 아니잖아요.”

“예에? 제가 그래도 오는 환자 집 가라고 하진 않는데요~?”


주무관님이 가방을 싸며 말했다.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하긴 하죠.”

“그게 그건데?!”


나는 실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아무튼 주무관님이 받은 예약은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면 그건가?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환자 의무기록이 등록되는 그 현상.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도 등록하지 않은 예약환자가 갑자기 뜨면 조만간 진짜로 환자로 만나게 된다.

배종득 아저씨도 그랬고 하윤이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컸다.


‘아무도 등록하지 않은 의무기록이 뜬다니... 공포영화 소잿거리잖아...’


생각하고 보니 섬뜩한 사실이지만 나는 이전처럼 의무기록을 더블클릭해서 열어보기로 했다.



==========

C.C(주호소증상)>

dyspnea(호흡곤란)


ROS(문진)>

c/s/r +/+/-

(기침 있음, 가래 있음, 콧물 없음)


P/E(신체검진)>

normal heart sound w/o murmur (심잡음 없는 정상 심음)

==========



역시 이번에도 엉망진창으로 대충 적은 초진 기록지가 떴다.

다만 이번에는 신체검진 항목도 채워져 있다.


작성자는 역시 내 이름.


‘이번에는 어려운 환자를 던져주는구만...’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환자는 추측 가능한 질환도 너무 많고 중환이 섞여 있을 확률도 높아 까다로운 환자로 분류된다.

호흡곤란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내과 의사 말고는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할 정도로...


그래도 다행인 점은 신체검진에서 힌트를 줬다는 것.


호흡곤란이면 순환기계 질환, 호흡기계 질환을 우선 생각하게 되는데 심음이 정상이면 심부전 같은 어려운 환자일 가능성이 적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거 혹시 어려울까봐 일부러 힌트 던져준 거야?’


의무기록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생기고 누가 적은 건지도 알 수 없지만 왠지 내 수준에 맞춰서 퀘스트를 던져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의대생 시절에 학생 수준에 맞춰서 환자 케이스를 지정해주던 교수님처럼...


‘근데 의대생 때 호흡곤란 케이스 발표를 어디서 했더라? 호흡기내과였던 거 같은데. 그때 받았던 질환이...’


모처럼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자니 유한아 주무관님이 “그럼 이만!”이라고 외치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시계를 바라보니 6시 정각이었다.


나도 짐을 정리해서 퇴근하기로 했다.



***



“개도 호흡곤란이 와?”


선지해장국 집에서 주문을 끝마친 나는 하윤이에게 질문을 했다.

하윤이의 빈혈을 확인했던 그날 이후로, 하윤이 혼자 두면 식사를 자꾸 거를 것 같아 자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것도 가능하면 철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음식으로 먹자고 생각한 결과, 오늘은 선지해장국이었다.



“개도 당연히 호흡곤란 생기지.”


하윤이가 대답했다.


“간단하게는 열사병일 수도 있고, 심부전이거나...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도 있고...”

“엥, 개도 COPD가 생겨?”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는 호흡기 유해물질에 의해 만성 기관지염이나 폐기종(폐의 폐포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은 변화가 생기고 이것으로 인해 간단하게는 기침, 가래부터 심하게는 폐 기능이 떨어져 호흡이 어려워지기도 하는 질환이다.


보통은 거의 대부분이 흡연에 의해서 생기기 때문에 ‘담배 피면 생기는 병’이라고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와 COPD의 연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개도 생기지. 사람이 걸리는 거 대부분 다 걸려.”

“...개도 흡연 해?”

“주인이 하지.”

“아하...”


흡연의 무서운 점은 흡연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도 간접흡연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간접흡연의 대상은 사람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기하구만...”


나는 개가 담배를 피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 웃었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 걸까


“어때? 재밌지? 신기하지? 동물의 세계가 더 알고 싶지?”


하윤이가 ‘흐흥~’ 하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아니이~ 너 어차피 시간 많잖아? 일 끝나면 놀아줄 친구도 없을 거고!”

“나 게임 하러 가야 돼.”

“너 게임 안 좋아하잖아.”


하윤이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내가 살 테니까 나 일하는 데 같이 가자. 응?”

“이 가게 선불이야. 내가 아까 전부 결제했거든?”

“어머나~”


하윤이는 흠흠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이내 다른 조건을 제시했다.


“그럼 다음 번에 내가 살게. 마늘족발 대짜로. 원하면 술도 가능.”

“...오케이. 콜.”


마늘족발은 못 참지.


“그럼 가는 거다?”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사진 속에는 흰색의 어려 보이는 염소 한 마리가 있었다.


“귀엽지~?”


하윤이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늘 말이야, 낮에 박칠수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아, 박칠수 아저씨 기억 나? 참외농장 하던 아저씨. 우리 초등학생 때 가끔 참외 얻어먹고 했었는데...”


...솔직히 기억 안 난다.

참외까지 주셨는데 죄송해요 아저씨.


“아무튼 그 아저씨가 키우는 염소가 설사를 심하게 한다고 오늘 진료를 봐달라고 해서.”

“그래서 지금 진료 보러 가는 거야?”

“응, 낮에는 다른 진료가 있었거든.”


낮에도 진료 보고 저녁에도 진료를 보는구나.

이런 스케쥴로 살아왔으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니지.


진심으로 하윤이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던 찰나에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박칠수 아저씨면 아까 예약 접수됐던 분 아니야?’


내 기억이 맞다면 하윤이가 말한 사람과 예약이 접수되어 있던 사람은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흔한 이름도 아니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하윤이에게 한 가지 확인 질문을 했다.


“박칠수 아저씨 말이야,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음... 몇 년 전에 환갑이셨으니까 아마 예순~ 둘? 셋? 쯤일걸?”


하윤이의 말에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흔하지 않은 이름에 나이까지 거의 비슷하다. 이 정도면 동일인물이라고 봐도 되겠지.’


하윤이가 말하는 아저씨가 예약환자로 등록된 환자와 같은 사람이 맞다면 아마 진료가 필요할 것이다.

누구인지 잘 몰라서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하윤이가 찾아갈 사람이랑 같은 사람이라니, 여기저기 찾으러 다녀야 할 수고를 덜어서 좋구만.


그렇게 생각한 나는 하윤이에게 말했다.


“마늘족발 꼭 사라.”



***



덜커덩


하윤이의 SUV가 시골길을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박칠수 아저씨의 집.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무와 풀밭 뿐이다.

도로도 제대로 포장되지 않아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으으, 토할 것 같아.’


익숙하지 않은 시골길 운전에 구역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얼마간 이동했을까.


도착해서 내린 곳은 평범한 시골집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창고로 보이는 작은 오두막 앞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남자는 담배를 피다가 우리를 보더니


“하윤이냐?”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윤이가 말한 배칠수 아저씨였다.


이름만 들어서는 몰랐는데 얼굴을 보니까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오느라 고생했다.”


아저씨는 담배를 한 모금 피고선 말했다.


“그래, 밥은 먹었고?”

“네, 방금 먹고 왔어요. 히히.”


아저씨는 으레 하는 인사치레를 하고는 이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는 어... 태호 아니냐? 강태호?”


어렴풋이 기억난다는 듯한 표정.



“어, 저 기억하세요?”

“하윤이가 끼고 다니는 애면 태호겠거니 하는 거지.”

“아저씨, 저 얘 말고도 남자 많거든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아저씨가 낄낄거렸다.


“어릴 때도 붙어 다니더만 요즘도 붙어 다니냐? 얼마 전에 내려왔다믄서?”

“네, 졸업하고요, 여기 근처에서 일하고 있어요.”

“의대 졸업했으면 이제 정식 의사 선생님 아니여? 대단한 일 하고 있구만. 고생이 많아.”


아저씨는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여기 서 있지 말고 일단 들어가자.”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고선 피던 담배를 끄고 쿨럭쿨럭― 가래 섞인 기침을 했다.


아저씨를 따라 들어간 집에서는 아주머니가 TV를 보고 계셨다.

하윤이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 뵙는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간단한 차를 내온 아주머니와 우리는 간단하게 근황을 주고 받았다.


“...그래서, 전문과는 내과라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 내과 전공하다 왔어요.”


전문의 자격까지는 없지만.

전공은 맞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아이고 좋은 과 했네. 내과 했으면 끝났지.”

“내과면 웬만한 병은 다 볼 수 있는 거 아녀. 여기 마을엔 의사가 아예 없으니 내과 의사 한 명 있으면 얼마나 든든혀.”


아주머니의 말에 아저씨가 맞장구를 쳤다.


“호호,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야겠네. 일하는 데가 어디라고? 보건소?”

“대철면 보건지소요. 도시고속도로 올리는 곳에 있어요.”

“아아―! 거기구나. 가깝네. 그래 내 자주 찾아갈 테니 잘 좀 봐줘.”

“허허 거, 의사 얼굴 많이 봐서 뭐가 좋다고.”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맨입으로 잘 봐달라 하지 말고 애들 좀 챙겨주고 말해.”

“아, 맞다맞다.”


아주머니가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방에서 커다란 박스를 가지고 왔다.


“이거 한 박스 씩 가져가서 집에서 나눠 먹어.”


노랗게 잘 익은 참외였다.


하윤이와 나는 웃으며 박스를 받아들었다.


“하하, 잘 먹겠습니다.”

“히히, 감사합니다.”


배칠수 아저씨는 그런 우리를 보고선 허허 웃더니


“염소 진료 봐야 되니까, 애 좀 밖에다 꺼내놓으러 갈게.”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그러던 중, 아저씨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쿨럭쿨럭

쿨럭쿨럭

쿨럭쿨럭


그렇게 얼마간 연신 기침을 하고 나서는


허억―


숨이 찼는지 힘들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저씨의 호흡소리가 이상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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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주 오시네요 (2) +2 24.09.03 848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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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담배 끊으세요 (3) +2 24.09.01 935 2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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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4 36 12쪽
3 보건지소 +1 24.08.27 1,209 37 12쪽
2 의무기록 +1 24.08.26 1,250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9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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