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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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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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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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2)

DUMMY

“1호선... 1호선... 1호선...”


시골 청년 박규철은 서울역에서 방황 중이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서울지하철 1호선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규철이 KTX를 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역.

처음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압도적인 역 크기와 인파에 박규철은 압도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이로운 감상도 잠시.

박규철은 등에 맨 기타를 고쳐맨 뒤 본인의 손에 들려있는 메모지에 집중했다.


‘오디―숀 열리는 곳에 갈라믄... 어... 우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지하철역을 찾기를 반복하다 포기.

결국 박규철은 안내센터에 가서야 지하철로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쉬―불 무슨 길을 미로 같이 만들어놨어.’


박규철은 그렇게 궁시렁거리며 기차역을 나간 후 한참을 걸어가 지하철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지하철도 서울역처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고향에서도 근처 대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것을 경험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쉴새 없이 전철 안으로 몰려드는 인파 속에 박규철은 진이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있는데 전철 문에 본인의 얼굴이 비쳐보였다.

그러자 순간 본인의 상황이 실감이 났다.



아버지가 어릴 때 사다주신 통기타.

처음엔 마냥 신기한 마음에 몇 번 줄을 튕기며 놀았던 박규철이지만 이내 빠른 속도로 기타 연주를 배워나갔다.

별다른 레슨 같은 것도 받지 않았으나 어쩐지 남들은 어려워하는 코드나 리듬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손에 익어갔다.


그렇게 기타에 흥미를 붙이던 박규철은 곧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잔치 수준의 기타 연주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들었던 한 마디.


“뭐 가르쳐준 것도 없다믄서? 근데 저 정도면 신동 아니여 신동?”


신동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인터넷을 보며 배웠던 기타였기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넘쳐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동이라는 단어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꼬마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울림이 아니었다.


박규철은 그 후로도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동이라는 소리도 좋았지만 그냥 기타를 연주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나누어 준 장래희망 조사표.

막연하게 기타를 치는 것이 즐겁기만 했던 박규철은 며칠간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는 가업인 건초 판매 사업을 이어받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것은 기타를 치는 것.


하지만 박규철 본인도 알고 있었다.

본인의 실력이 음악으로 밥 벌어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박규철은 고민 끝에 결론을 냈다.


‘한 번. 따악― 한 번만 해보자.’


그렇게 생각한 박규철은 곧바로 오디션 프로그램 일정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일정에 맞추어 KTX 표를 예매.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후...”


박규철은 돌연 긴장감이 몰려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지하철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다음 역은 구일, 구일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위화감이 들었다.


‘어어? 다음 역은 가산디지털단지 아니여?’


본인이 무언가 착각한 건가 싶어 지하철 노선도를 다시 한 번 살펴봤다.


1호선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씻팔...”



***



“야 잘했냐?”

“몰라 시발 맥주나 한 잔 고?”


기타를 맨 남자 둘이 방송국 앞을 지나갔다.


“후...”


박규철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방송국 앞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결과는 이틀 뒤에 통보.

그러나 박규철은 오디션이 끝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조졌네, 쉬―불.’


평소와 다르게 긴장해서였을까.

아니면 곡 선정이 문제였을까.


‘분명 요즘 제일 인기 있다는 밴드 노래였는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뚜렷한 답을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실패했다는 그 결과만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박규철은 휴대폰을 들었다.


잠시 망설인 후.


그대로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도저히 부모님께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기타를 맨 사람들이 저마다 인사를 나누거나 전화통화를 하기 바빴다.


‘어쩌지...’


그렇게 멍하니 있기를 잠시.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휴대폰으로 ‘홍대 인디밴드’라고 검색해봤다.


할 것이 정해졌다.


박규철은 곧바로 일어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역을 향해 갔다.



그렇게 도착한 홍대.


박규철은 필기체로 휘갈겨져 이름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라이브 클럽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부우웅― 쟝―

쟈가쟈가쟈쟝


귀가 괴로울 정도의 음압을 지닌 밴드 음악이었다.

밴드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저 신기했다.

처음으로 겪는 전자악기의 실제 연주에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며 순식간에 노래가 끝나고.

박규철은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해보겠심더.”



***



“야야― 우리는 펑크롹!을 하는 밴드라니까~”


박규철에게 김시우가 웃으면서 말했다.


“펑크롹에는 세븐스 코드 같은 더 다 빼고! 엉? 디스토션 이빠이 멕이고 파워코드로 긁으면 되는 거야!”


김시우가 박규철의 이펙터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시끄러운 노이즈가 잔뜩 낀 메탈 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규철이 그 상태에서 기타줄을 긁었다.


좌아앙―


일그러진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인디밴드에 들어온지 한 달 째.

박규철에겐 아직도 일렉기타의 소리가 익숙하지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 방송사에서만 하는 게 아니니까.’


박규철은 그런 생각으로 몇 개월 간 열리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놀고먹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그 동안 나도 밴드에 가입해서 음악을 해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한 박규철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 한 인디밴드에 가입했다.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잘 모르는 박규철을 잘 배려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기타도, 이펙터도 무엇도 없는 박규철을 위해 악기까지 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 규철이 너는 솔직히 기타 실력만 보면 프로 해도 돼, 인마.”


본인의 기타 실력을 인정해주는 부분이 좋았다.


비록 통기타만 쳐오던 터라 일렉기타 음악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밴드 음악 자체는 흥미가 있어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냥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규철은 즐거웠다.


한 차례 합주가 끝난 후.


“야, 담탐 고?”


리더인 김시우가 다른 인원을 데리고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그 순간.


띠링.


문자가 도착했다.


박규철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읽어나갔다.


‘안녕하십니까, 위넷 엔터테이먼트입니다. 귀하가 응시하신 리얼스타 예선전에서 귀하는 선발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 기회에 함께 하지 못한 것에...’


“쒸불, 이번에도 불합격이네.”


박규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 긴장은 별로 안하는데.

역시 곡 선정이 문제였을까.

인기 있는 노래를 다시 찾아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박규철은 기타 스탠드에 놓아둔 본인의 통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밴드 음악도 좋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건 통기타 음악이다.

요즘은 본인이 직접 작곡한 어쿠스틱 음악을 즐겨 부른다.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그저 혼자서 듣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예선은 10월... 추석 때 고향에 한 번 내려갔다와서 마지막으로 참여해보고 이제 깔끔하게 포기하자.’


그렇게 생각한 박규철이었다.



***



“언제까지 할 셈이냐?”


박규철의 아버지 박덕상이 건초를 묶으며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더...”


박규철도 아버지를 따라 건초를 묶으며 대답했다.


“후회 안 남을 것 같으냐?”


박덕상이 건초들을 수레에 실으며 말했다.


박덕상은 아들의 꿈을 말렸던 적이 없다.

오히려 아들이 즉흥적으로 서울에 올라갔을 때도, 그리고 1년 가까이 거주한다고 갑자기 결정했을 때도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모두 해주었다.


‘후회 남지 않도록 해보거라.’


그렇게 말하며 아무 말 없이 지켜봐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규철은 더 이상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

무엇보다 잦은 실패 끝에 자신감 또한 많이 사라진 터.

만약 이번에 오디션에서 떨어진다면 아버지의 일을 이으며 음악은 취미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후회 안 남을 것 같습니더.”


박규철도 아버지를 따라 건초를 수레에 실으며 말했다.


“그래.”


박덕상은 그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건초들을 묶으러 가기 시작했다.



***



“쿨럭쿨럭”


박규철이 기침을 했다.


고향에 갔다 온 뒤 몸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통, 근육통, 오한 같은 게 있어서 몸살감기인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기침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거, 혹시 예술가들이 걸린다는 결핵...? 나도 예술에 빠져 살다가 결국 피 토하면서 단명하는 거여?’


박규철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


“천식입니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더니 어렵지 않게 병명을 말해주었다.


“이 병은요, 기침도 많이 나고 호흡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흡입기 하나 드릴 텐데, 숨쉬기 힘들면 이거 흡입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흡입기를 처방해줬다.


처방 받은 흡입기는 별 다른 효과가 없었다.

흡입해봐야 증상이 좋아지진 않았다.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니 노래도 부르기 힘들었다.


그렇게 오디션 날이 되었다.


“하...”


마지막 오디션을 보고 나온 박규철은 방송국 앞에 주저앉아서 한 숨을 쉬고 있었다.


‘조졌네, 쉬―불.’


이번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합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천식인지 뭔지 병이 생긴 이후로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힘들었다.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고 고음을 만드는 압력을 만들기 힘들었다.


결국 오디션에서도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호흡이 다 깨지고 고음에서 음 이탈이 생겼다.

이게 통과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리라.


박규철은 깔끔하게 서울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를 도와 몇 번 해본 일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번듯하게 만들어둔 사업이라 본인은 숟가락만 얹으면 됐다.


업무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많았다.

쉬는 시간에는 틈틈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즐거웠다.


사람도 잘 없는 깡촌이라 눈치 안 보고 길가에 트럭을 대놓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간혹 농장 주인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이 박규철의 자작곡을 감상하고 가곤 했다.

처음에는 자작곡을 들려주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모두들 칭찬해주었다.


그렇게 오늘도 일을 끝내고 한 곡 뽑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손님이 있었다.

젊은 수의사 커플이었다.

아니 어쩌면 부부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커플도 박규철의 음악을 듣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의사들이라 그런지 이상한 질문들이 많았다.


노래가 아니라 무슨 천식에 대해서만 질문을 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이어가더니 남자 쪽 수의사가 말했다.


“그거 천식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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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이야 (1) +2 24.08.28 1,173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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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무기록 +1 24.08.26 1,248 40 12쪽
1 귀향 +2 24.08.26 1,44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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