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대공의 제자가 미쳐 날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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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짱조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6 20:23
최근연재일 :
2024.09.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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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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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격이 다르다.

DUMMY

서재에서 되돌아온 직후, 라온은 손에 들린 책 3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을 줄 수밖에 없는 제목.


마법이라는 것에 욕심을 느낀 라온은 당장이라도 이 책을 펼쳐 내용을 독파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라온은 책을 품속에 갈무리한 다음 고개를 돌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사무엘의 옆에는 고든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마나로 형성된 구체 안에 갇혀 있는 에드와 용병단의 두목이 있었다.


슈페르테 대공이 되돌아갔는데도 사무엘이 여기에 있는 걸 보면,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라온은 그에게 다가갔고,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사무엘은 고든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열었다.


“라온. 여기 이 친구가 앞으로 네 보좌관이 될 거야.”

“예······?”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에 라온이 두 눈을 깜빡이자, 사무엘이 설명을 이어갔다.


“넌 앞으로 전하의 제자가 되어 여러 배움을 받을 몸이지. 중요한 자리에는 함께 가야 할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때, 옆에서 잡무를 처리해줄 보좌가 있는 건 큰 도움이 돼.”


쉽게 말해, 고든을 심부름꾼으로 사용하란 뜻이었다.

라온에게는 전혀 나쁠 게 없는 이야기였지만, 대화가 왜 이렇게 흐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무엘은 고든의 무엇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고, 고든은 왜 사무엘의 말에 저항 없이 따르고 있는 걸까.


한눈에 봐도, 귀족처럼 보이는 사무엘의 말이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사무엘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라온은 똑똑히 들었다. 사무엘이 고든을 보고 몰락 귀족이라고 한 말을. 그것은 작았지만, 너무나 선명했기에, 놓칠 수가 없었다.


몰락 귀족.

파산, 혹은 죄를 지어 귀족의 기본도 지킬 수 없게 된 자들을 칭하는 단어. 아무리 배움이 없는 빈민이라고 해도, 몰락 귀족에 관해서는 모를 수가 없다.


귀족이 아무리 고귀하다고 해도, 살면서 그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는 평민들에게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아슈빌의 경우에는 잠행을 나온 귀족이 있기야 하지만, 그건 이곳에서만 그런 경우.


평민들은 귀족을 험담하며 저들끼리의 즐거움을 찾고, 그런 그들에게 있어 몰락 귀족은 좋은 이야깃거리다.


하물며 빈민들도 몰락 귀족에 관해 이야기했었으니, 라온은 고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대충 예상해볼 수 있었다.


헌데 그런 몰락 귀족에게 빈민을 보좌하게 한다?

이건 몰락 귀족의 기분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든의 표정을 보면, 기분이 나빠 보이기는커녕 절실해 보일 뿐이었다.


여전히 라온은 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사무엘이 한 말이기도 했고, 자신에게 나쁠 것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고든은 사무엘의 눈치를 살핀 다음 고개를 숙이며 라온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성심성의껏, 보필하겠습니다.”


너무나 공손한 태도에, 자신의 삶이 본격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느낀 라온이었지만, 그것을 티 내진 않았다.


그러던 그때, 귀에 걸린 무언가 위에 검지를 올린 사무엘이 작게 중얼댄 다음 라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난 당분간 아슈빌에서 머무를 예정이야. 귀족 구획에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이걸 들고 오면 될 거야.”


사무엘은 라온에게 자그마한 브로치를 건넸다.


라온은 현재 슈페르테 대공의 마법에 걸리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다.


그 슈페르테 대공의 마법이었기에, 부작용이나 혹시 모를 사태는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그밖에 다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생각해야 했다.


슈페르테 대공의 부관인 사무엘로서는 라온의 성심성의껏 살피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빈민가에 자리를 잡는 건 너무 과했으니, 아슈빌에 머무를 생각이었던 것.


라온에게 건넨 징표는 북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니, 제아무리 콧대 높은 귀족이나 그들을 지키는 호위여도 라온에게 해를 끼치지는 못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라온이 슈페르테 대공의 제자가 되었다는 걸 알리는 것이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이걸 위해서는 라온의 성장이 필수였고, 여러모로 다양한 준비도 해야 한다.


그렇게, 라온에게 징표를 건넨 사무엘은 고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준 다음 자리를 떴다.


라온과 고든은 빈민가에 그대로 남겨졌고, 에드와 용병단의 두목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고통에 익숙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온 조차 발작할 정도의 고통을 내성 없이 받았으니, 어쩔 수 없었던 일.


고든은 숨 막힐 것 같은 정적을 견디다 못해 나직이 입을 열어 라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뭐라고 부르시면 될까요······?”

“그냥 라온이라고 불러.”

“네. 라온 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고든은 고개를 푹 숙이며 라온에게 최대한의 예를 표했다.


문득, 고든은 라온이 사라진 직후 사무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네가 본 그 소년의 이름은 라온이야. 전하의 제자지.

-전하라는 분이 설마······.

-눈이 없는 게 아니고서야, 북부의 절대자를 몰라봤을 리는 없겠지?

-············!!

-몰락 귀족. 그것도 병상에 누운 막내를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는 가문. 너는, 그 고생을 한 여동생의 어깨에 막중한 짐을 얹고 싶나?

-······아닙니다.


사무엘이 말은 뼈를 때리는 것 같았다.

숨겨져 있던 본심을 툭 건드렸고, 고든으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주었다.


그간 부모의 말씀에 따라 여동생을 가문의 마지막 희망으로 여겼던 고든이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여동생이 회복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네가 라온의 옆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공적으로 그를 보좌하면, 과연 전하께서 가만히 있으실까?

-·········.


-전하는 받은 걸 더 크게 돌려주는 사람이야. 그리고 그런 전하께서 자신 이상의 재능이라 평가한 사람이 바로 라온이고.

-······!


-전하는 라온이 네게 신세를 지는 만큼, 꼭 그 이상의 것을 돌려줄 거야. 여동생이 아프다고? 엘릭서를 하사하실 수도 있지. 전하는 그런 걸 아끼는 사람이 아니시거든. 나도, 북부로 돌아간 순간 엘릭서를 받기로 했고.

-·········.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고? 북부의 절대자가 관심을 보이는 가문이라면, 과거의 영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야.

-죽을 힘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나도 종종 전하께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네가 살아야 라온이 편해져. 죽지는 않을 정도로만, 최선을 다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명심하겠습니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무엘의 말.


그것을 되새김질 한 고든은 각오를 다졌다.

가문을 위해서, 여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라은 옆에서 보필한다.


용병단에서 유능한 잡부로 여러 일을 한 몸이었으니, 할 수 있는 건 제법 많을 것이다.


고든은 그렇게 생각하며 뜨거운 눈빛을 라온에게 보냈고,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라온인 눈을 돌리며 에드와 용병단 두목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새벽녘의 어스름이 사라지고, 완연한 아침이 찾아왔다. 새들은 지저귀고, 여름임에도 아침 특유의 선선함이 살갗을 시리게 한다.


약간의 서늘함을 느낀 라온은 푹 한숨을 내쉬며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옆에서 자신을 도울 심부름꾼이 생긴 것도 좋고, 슈페르테 대공에게 책을 받은 것도 좋으나, 우선은 저놈 둘을 어떻게 처리해야 했다.


물론 그 전에, 응징을 받을 사람이 더 있나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말이다.


라온은 고든에게 저들에 관해 물었고, 모든 사실을 전해들었다.


빈민 아이 여섯을 죽인 놈은 에드 혼자였고, 용병단의 두목은 거기에 찬동해 같이 폭력을 행사하러 한 놈이었다.

나머지 용병들은 빈민을 죽일 정도는 아니라고 하니, 일단 저놈들이면 아이들의 넋을 기리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빈민들을 모은 라온은 에드와 용병단 두목을 던져준 다음 자리를 떴다.


자신의 분노는 이미 해소했다. 남은 건 다른 빈민들의 분노를 해소하는 것뿐.

저들은 맞아 죽든, 찢겨 죽든, 어떻게든 죽은 뒤 묻히지도 못하고 들짐승에게 먹혀 땅의 거름이 될 것이다.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다시 여기에 와. 피곤하니, 난 조금 쉬어야겠어.”


문득 피로를 느낀 라온은 고든을 물린 후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쉬는 시간을 보냈다.


몸에 피로가 쌓여 있던 것인지, 달라진 몸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라온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그렇게 꼬박 반나절은 잔 이후에 일어난 라온이 한 것은 슈페르테 대공의 책을 살핀 것이었다.


『마나의 정석 – 베라르트 질링거 슈페르테』


『마법의 정석 – 베라르트 질링거 슈페르테』


『마법 체계의 이해 – 베라르트 질링거 슈페르테』


모두 눈에 띄는 제목이었고, 슈페르테 대공이 집필한 책이었기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했다.


‘만약 내게 이런 책이 있다고 알려진다면, 대륙의 모든 마법사가 달려들겠지.’


7성급 마법사가 집필한 책에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고, 라온은 별을 품지 못한 존재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이 책은 어떻게든 숨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라온의 천막으로 들어왔다.


“형님. 저입니다.”


빈민가 북쪽에 자리 잡은 소매치기단의 두목. 질러였다.


라온은 당황할 틈도 없이 책을 그에게 노출했고, 질러는 라온의 손에 들린 책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형님. 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셨군요. 빨간책은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빨간책이라니?”

“에이. 한창 그런 거에 관심을 가질 나이인 거 다 압니다. 15살이면 그럴 수 있죠.”


질러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라온의 어깨를 툭 건드렸고, 그제야 라온은 질러가 자신의 손에 들린 책을 다른 것으로 오해했다는 걸 인지했다.


‘하긴. 대공도 생각이 있었다면, 이 책을 그냥 주지는 않았겠지.’


라온은 책의 정체를 노출할 위험성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후, 질러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그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고하러 왔습니다.”


질러에 말에 따르면 빈민 모두가 화를 해소할 때까지 에드와 용병단 두목을 두들겨 팬 다음, 상처를 모두 지혈해다고 한다.


그리고 팔다리를 비틀어 버린 다음 빈민가 버려진 거리에 묶어 두어 굶어 죽거나 들짐승에 뜯겨 먹도록 만들었다고.


비참한 최후였지만, 라온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제는 그놈들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조차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으니까.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러에게 물러가라 손짓했고, 그 행동에 질러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천막을 나섰다.


“너무 오래 보지 마세요. 뭐든 적당한 게 최곱니다.”


그렇게 질러가 떠나간 뒤, 라온은 3권의 책 중 하나를 골라 펼쳤다.


라온이 고른 책은 ‘마나의 정석’.

기사든, 마법사든, 용병이든, 그밖에 다른 것이든, 이 세상 모든 것에 기본이 되는 마나에 대한 책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모두 독파한 라온이 느낀 가장 큰 감상은,


‘이게 7성급 마법사가 보는 세상인 건가······.’


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7성급 마법사이자 북부의 절대자.


대륙 최강의 마법사가 집필한 책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렇게 라온은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책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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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절대 가만두면 안 될 것 같다. 24.09.11 22 1 11쪽
18 기묘한 일. 24.09.10 16 1 13쪽
17 또 다른 7성급 마법사. 24.09.09 24 0 13쪽
16 모든 것은 위대한 별을 위해. 24.09.08 22 0 12쪽
15 눈빛이 불손하다. 24.09.07 27 0 12쪽
» 격이 다르다. 24.09.06 26 0 12쪽
13 3권의 책. 24.09.05 26 0 13쪽
12 밤하늘이 추락했다. 24.09.04 25 0 12쪽
11 직접 행차하다. 24.09.03 26 0 12쪽
10 믿어 의심치 않았다. 24.09.02 34 0 15쪽
9 시체를 보면 꽤 많은 걸 알 수 있다. 24.09.01 34 0 14쪽
8 빈민가 아이들. 24.08.31 39 1 13쪽
7 상상 이상의 괴물. 24.08.30 43 1 15쪽
6 큰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24.08.29 46 1 16쪽
5 나 이상의 재능이다. 24.08.28 55 1 12쪽
4 북부 대공. 24.08.27 49 1 12쪽
3 다섯 살의 나이에 행한 일. 24.08.26 47 1 14쪽
2 빈민의 현실. 24.08.26 54 1 12쪽
1 빈민가의 어린 절대자. 24.08.26 8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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