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최약체 소드마스터는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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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훗
작품등록일 :
2024.08.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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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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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DUMMY

검 이름을 지어준다는 아르센.


테오의 고개가 좌우로 격하게 흔들렸다.


생각을 거치지도 않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벌써 정한 거냐?"


"... 그... 검 이름은..."


남의 검을 훔쳐 온 주제에, 자식한텐 본인이 정당하게 구해온 것마냥 당당하게 건네줬던 사내.


행동만 보자면 야비하고 추잡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만큼은, 맘 편하게 그 사내를 욕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자신만큼은 그 사내를 모욕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빠르게 생각을 끝마친 소년이 여러 감정이 뒤섞인 애틋한 눈빛으로 살짝 짧은 길이의 검을 바라봤다.


"검 이름은 역시 '부정'으로 하려고요."


"부정? 무슨 의민데-?"


아르센이 가볍게 턱을 괴며 특유의 느른한 말투로 물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부정(否定) 할 수 없었기에, 부정(不正)한 방법으로라도 표현하고자 한 아비의 부정(父情)이요."


소년이 검집을 만지작거렸다.


오래된 거라 손때가 잔뜩 탄 물건인데도, 마치 소중한 새 상품을 다루는듯한 손짓이었다.


"음-. 마지막 의미가 제일 좋네. 마지막 걸로 가자, 그럼!"


"네? 그걸 왜 아저씨가 정해요? 세 가지 의미 다 쓸 건데?"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사라락 흔들렸다.


"굳이?"


기사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머릿기름으로 말끔하게 모양 잡힌 갈색 머리는 단 한올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게 맞는 것 같아서요."


"뭐... 그럴지도-."


적당히 대답한 아르센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가 아이에게 하고자 한 말은 이거였다.


"그리고 미안했다."


"뭐가요?"


'갑자기?'


테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용은 죽었다. 저자는 기사로서의 맹세를 지켜냈고, 그걸로 끝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과를?


"제대로 네 아버지를 지켜내지 못한 거."


속을 알 수 없는 암갈색 눈동자가 테오를 들여다봤다.


"이제 와서요?"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퉁명스러운 어조.


방금 전까지 배시시 웃고 있던 소년의 얼굴이 급격히 침울해졌다.


내리깐 소년의 눈이 빛을 잃고 죽어버린 걸 아르센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응. 이제 와서."


"왜 갑자기 이제 와서요?"


저자는, 그리고 기사단원들은 그 당시 최선을 다했었다.


직접 눈으로 봤기에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사과하러 왔는데 네가 먼저 맹세로 트집 잡길래 짜증 나서 그랬다 왜! 그러니까 앞으론 말도 안되는 걸로 어거지 부리지 마. 알겠냐?"


"... 근데 아저씨 여기 용 잡으러 온 거라면서요.


그러니까 굳이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너 방금 전까지는 내 탓하려 들지 않았었냐? 맹세니 뭐니 하면서?"


부러 아이한테 판을 깔아줬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남을 탓할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러면 아이가 막 우릴 원망하며 분이 풀릴 때까지 지랄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심 그러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눈앞에서 참혹하게 부모를 잃은 아이의 속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수 있다면.


아르센은 충분히 그 조그마한 주먹질을 맞아줄 용의가 있었다.


근데 예상외로 소년의 반응이 너무 차분하다.


그 아이답지 않은 행동이 오히려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아까 화를 내서 그런가?'


아르센이 내적 반성을 하고 있자,


"아저씨. 아까 어린애를 상대로 화낸 게 갑자기 미안해져서 그런 건 아니고요?"


하는 정곡을 찌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도토리만 한 게?"


아르센이 움찔거리며 오히려 큰소리를 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딱 그꼴이었다.


"그래도. 아저씨가 용을 더 빨리 잡아줬더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겠을지도 모르겠네요."


여전히 빛을 잃은 눈을 한 소년은 그리 말했다.


"그래 그랬겠지-. 그러니 네 아버지 일은 내 탓이 맞아."


딱 잘라 말하는 단정적인 어조.


기사가 갑자기 왜 이리 나오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테오한테는 왠지 그게 뭔가 우기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테오가 반대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 탓으로 해라. 우리 탓이 맞으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능글맞게 돌아온 기사가 느른하게 웃었다.


마치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기사의 저 행동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테오에 대한 측은함에서 나온 행동일 터였다.


그리고 동정이란 걸 받는 게 낯선 소년은 우왕좌왕해하며 아르센에게 그리 말하는 이유를 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런 소릴,"


"그러니까 '네 탓'이 아니라고-! 이 센 척만 할 줄 아는 멍청한 꼬맹아-!"


"어..."


테오가 무의식적으로 바보같이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분명히 내 탓일 텐데도, 내 탓이 아니라 말해주는 남자가 있다.


항상 모든 것이, 심지어 고아로 태어난 것까지도 내 탓이고, 내 책임이었던 세상이 나의 세상이었는데.


뭔가 묘했다.


말한 적이 없는데도 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그래서 그런 자신을 위로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어른이 있었다.


"응? 알겠냐?"


"..."


기사가 내뱉은 그 의미 없는 한마디에 갑자기 눈앞이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쓸데없이 시큰한 것이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 살짝 불편할 정도.


몸이 어려져서 그런가?


테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만다.


그런 테오를 본 아르센이 특유의 무감한 얼굴로 슬쩍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테오가 매번 냇가 위 공터에서 검술연습을 했던 것이 본인의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 자리에 아이가 없었다면.

그랬다면, 제물인 아이의 아버지 또한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게 오직 하나뿐이니까.


원래 사람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포기해야만 하는 것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게 한정적인 것처럼.

뭔가를 쥐고 있기 위해선 놓아야만 하는 게 생기는 것처럼.


차마 그 사실을 아이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었던 아르센은, 그저 조용히 아이를 지켜보며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실패가 소년에게 너무 큰 좌절로 남지 않길' 하고 말이다.


좌절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너무 큰 좌절은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하니까.


"야, 꼬맹아. 그리고 가끔은 애새끼마냥 응석도 좀 부려라, 응? 넌 아직 어리잖냐?"


"응석?"


대답하는 소년의 목소리에 은근한 물기와 의아함이 스민다.


'응석'.

그에게 있어선 평생 자신과는 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단어.


부모가 없던 자신에게 응석이란 건 있을 수가 없었다. 독기와 오기만으로도 살아남기 힘든 곳이 바로 자신이 태어났던 밑바닥이란 곳이었으니.


소년이 한층 더 고개를 푹 숙였다.

하얀 머리카락이 맥없이 늘어지며 붉어진 소년의 눈가를 완전히 가려줬다.


"야 우냐?"


"안 울어요!"


그리고 응석이란 단어는 아마 이번 생에도 연이 없을 것 같다 생각한 테오였다.


테오가 고개를 들었다.


아르센도 함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란히 서서 땅거미 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야. 다 울었냐?"


"안 울었다니까요!"


"자, 그럼 이제 가자!"


"?!"


아르센이 돌연 테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아르센이 소년에게 하고자 했던 말.

그 두 번째는 이거였다.


만면에 물음표를 띄운 테오가 당연히 질문했다.


"어딜?!"


"어디긴 어디야-.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자, 잠깐!!!!"


테오가 다리에 힘을 빡 주고 버티기 시작한다.

강제로 잡아끌려다가 잠시 멈춰서 준 아르센이 뒤를 돌아봤다.


"왜? 뭐가 문젠데?"


정말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말투.


"약속했으니 가주긴 할 건데 굳이 갈 필요가 있나요? 나는 사속 기사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요?!"


"아니 그러니까-. 한번 보기나 해보고 나서 결정하라니까-?"


고작 그게 문제였냐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르센이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꾸했다.

아주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


"봐도 똑같을 것 같은데..."


아르센이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정'은 1년만 지나도 네 주무기로 쓰기엔 짧아질걸? 오면 더 괜찮은 진검이랑 덤으로 방어구까지 준다니까?"


'제대로 사속 기사가 된다면'이라는 뒷말은 삼킨 아르센이 소년을 구슬렸다.


잠시 토끼 눈을 떴던 소년은 이내 드물게 두 눈을 루비처럼 반짝거렸다.


그렇다.

'부정'의 원래 용도는 주무기가 아닌 보조무기였다.


***


양아치같이 생긴 기사의 우락부락한 손길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은 다름 아닌 테오네 집이었다.


"테오는 분명 멋진 기사님이 될 수 있을 거란다! 그러니 아르센 기사님을 따라가렴!"


하면서 소년의 어머니는, 자식을 생각해 흔쾌히 아이를 보내주었다.


테오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물을 불러 모으는 가슴에 있는 흉터 때문에라도 마을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었으니까.


***


마을 어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렬해있던 기사단원들이 단장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오는 걸 보곤 말 위에 올라탔다.


새까만 흑마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테오는 자신이 마을 밖으로 빠져나왔단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땅거미 지는 하늘을 일별한 아르센이 다시 아이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꼬맹아. 너, 말은 탈 줄 아냐?"


지금까지 보여준 소년의 자질.

성기사 레오가 말했던 것처럼 사특한 것과 손만 잡고 있지 않다면, 충분히 데려갈만한 가치가 있다.


"못 타면요?"


"음?"


"못 타면 뒤에 태워주게요?"


장난스레 웃는 소년을 보며, 기사가 느물거리며 따라웃었다.


"그야 뭐-, 네가 이 아저씨 뒤에서 꼬옥 붙어 가길, 그.렇.게.까지. 바란다면, 못해줄 것도 없고-."


인심 쓰는듯한 말투.


그의 말에 피식 웃은 테오가 말 한 마리와 눈을 맞췄다.


처음엔 짐을 짊어지고 왔으나, 지금은 등이 비어있는 말.


눈을 마주쳐 짧은 시간 안에 말과의 교감을 끝낸 테오가 아주 능숙하게 말 위로 올라탔다.


"오...?"


감탄사를 내뱉는 입과 달리 암갈색 눈동자가 깊게 잠겼다.


당연히 소년이 말을 못 탈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깡촌 마을에 소보다도 값이 나가는 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고로 아이는 말을 타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능숙하게 올라탄다고?


것도 다른 동물도 아니고, 민감도랑 지랄도가 최대치로 소문이 자자한 말을?


"근데요."


말에 올라탄 소년이 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아르센을 불렀다.


"엉? 왜?"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눈에서 힘을 뺀 기사가 소년을 바라봤다.


"아저씨, 분명히 이름이 루이스라 하지 않았어요? 근데 왜 다른 사람들은 아저씨를 아르센이라고 불러요??"


소년의 두 눈이 은은한 의심을 품고 기사를 바라봤다.


테오에게 있어선 이게 꽤 중요했다.


이 자가 초장부터 본인을 속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전생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소년은 원래부터 거짓말을 싫어했고, 흑룡 사냥에 나섰던 설산에서의 사건 이후로는 완전히 혐오하게 되었다.


선의의 거짓말도 봐주기 싫은데 첫 만남부터 거짓말을 쳤다?

그것도 제일 기본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이름을 가지고?


그렇다면 더 고민해 볼 필요도 없이 자신과 이 기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인 것이다.


처음부터 마적과 피해자의 관계라는 괴랄한 인연이긴 했지만.


"아르센 루이스."


"?"


"이 아저씨 이름이지. 틀린 이름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고-?"


양아치 기사가 슬핏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근데 저 키워주려고 데리고 간다면서요."


분명 기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소년이 슬쩍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아르센이 마치 '이상한 걸 다 보네?' 하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응. 그랬지? 너한테도 차라리 이러는 편이 낫지 않냐??"


"그럼 호랑이 새끼를 키우겠단 거예요?"


"아?"


소년의 순수한 질문에, 예의 그 '이상한 걸 다 보네?' 하는 표정이 한층 더 짙어졌다.


"아까 아저씨가 나한테 이번 일, 전부 아저씨네 탓으로 돌리라면서요. 그렇담 추후에 내가 커서 복수하려 든다면, 그때는 어쩔 생각이에요?"


살짝의 위협이었다.


어차피 저자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속 기사.


자신과는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 다르고, 추구하는 결이 다르다.


미리 어느 정도 기대치를 떨어뜨려놓는 편이, 자신에게도 상대한테도 좋을 것이었다.


하나, 그런 위협 따위는 귀엽지도 않다는 듯 아르센이 이번엔 픽 비웃었다.


"복수? 맘껏 해라 꼬맹아-. 호랑이 새끼 덕에 잠시라도 호사를 누려볼 수 있다면, 이 아저씬 그것도 썩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특유의 나른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 보기 좋게 호를 그렸다.


"어떻게 내덕에 아저씨가 호사를 누려요?"


상상만으로도 불쾌한 것처럼 테오가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그야- 잘 키워놓은 후배는 선배의 이름을 드높여주니까? 그래, 예를 들자면 레오처럼 말이지-?"


"레오?"


"그때 같이 술 마셨던 까만 머리 형아 말이야-."


기사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자신만만한 표정이 테오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전생에 제대로 후배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후배들을 깔짝깔짝 가르쳐본 적은 있지만, 끝까지 제대로 키워본 적은 없는 테오.


시간에 쫓기며 용을 잡느라 바빴던 탓이 컸다.


그 때문일까. 테오는 아르센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래도 진짜 봐보기만 하고 마지막 결정은 내가 할 거예요!"


사속 기사가 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던 소년은 기사 계약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미리 깔아놓는데 열을 올렸고,


소년이 어떻게 해서든 거절할 작정이란 걸 어렴풋이 눈치챈 기사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끌어올 수 있게끔 대화하는 도중에도 머리를 팽팽 돌렸다.


물론, 성당에 가서 아이가 사특하지 않다는 결백이 증명된 후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래, 그래-? 근데 꼬맹아, 우리 '파노블' 가문인데?"


"?"


'어쩌라는 건지...?'


아직도 소년은 북부의 신성 파노블 가문의 존재를 모르고,

기사는 사람이 북부에 살면서 파노블 가의 명성을 모를 것이라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하. 야, 전에 내가 우리 파노블가 소속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었냐? 그럼 가서 아무한테나 물어봤어야지-!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다 대답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심각할 정도로 의문 가득한 테오의 얼굴을 본 아르센이 헛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유명한 가문이면, 자신이 아닌 소년이 살아있는 동안에 스치듯이 한 번 정도 듣긴 했었겠지.

하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뭐... 그래! 여하튼 유명세가 결국 무슨 소리겠냐? 이쪽에서 기사일을 하게 된다면 돈을 많이 벌수 있게 된단 말씀이지-!"


기사가 특유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손가락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혼자 남겨진 어머니랑 네가 평생을 먹고 살아도 남을 돈. 우리 파노블가의 기사가 된다면 충-분히 벌 수 있다는 말씀-!"


'먹히나?'


아르센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 '적어도 부인은 내가 책임지고 지킬 테니 걱정 말고 편히 가요.' 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가 떠오른 테오는, 눈에 띄게 크게 동요했다.


'이야. 이거, 먹히네?'


대놓고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


그 미세한 반응을 놓칠 리 없는 노련한 기사는, 소년이 딴생각을 하기 전에 바로 말을 이었다.


원래 노는 물 들어올 때 저어야 하는 법이니까.


"비록 이 아저씨가 네 아버지를 지켜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남은 가족들이 굶어죽진 않게 신경 써줘야 하지 않겠어-? 물론 결정은 네 몫이지만, 제안을 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 같거든-."


"허, 인심 쓰는 척은요!"


테오가 헛웃음을 켰다.


날티나게 생긴 기사가 얼굴값을 톡톡히 하려는 듯 아주 뻔뻔하게 나온다.


"아무튼 이만 가자고-."


말 위에 올라탄 아르센이 고삐를 쥐었다.


이내 수십 개의 말발굽 소리가 일사불란하게 대지 위에 울려 퍼졌다.


어둑한 밤. 말 위에 탄 소년은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무수한 별들이 하늘에 총총 박혀있다.


자신이 제대로 흑룡을 잡지 못해서 지금껏 용제니, 뭐니 해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저 정도는 되려나 싶었다.


잠시 고개를 숙인 소년이 다시 하늘을 우러러본다.


별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본인의 가슴에 새기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면 저 책임감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는 건, 고개를 숙인 채 있으면 떠오르는 밝은 태양조차도 바라볼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그 태양은 명예를 뜻하기도 하고 희망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임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


같은 시각. 시골마을과 달리 달빛이 흐린 야심한 밤.


성당 주위 나무 사이에 몸을 숨긴 흑발 사내가 급히 손을 뻗어 독수리 다리에 종이를 묶었다.


"부디... 늦지 않아야 할 텐데..."


사내가 독수리를 다시 하늘 위로 날려보냈다.


달빛을 닮은 걱정 어린 눈동자가 흐린 밤하늘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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